법제하다.
남영숙
‘건물의 정수리에 일몰이 내린다.
이운 하루들이 모여 한해가 저문다. 결 고운 꿈들을 뒤뜰에다 묻어버린 고단한 여행자, 세상을 교직하기 위해 한 올의 씨줄로 또는 날줄로 얽혀들었던 그 한 해를 이제 접으려 한다. 새해를 헐어서 쓰기 시작하면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이다. 시간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무척 불편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쉬려할 때 시간도 좀 멈추어 준다면 정히 좋으련만 세월은 속절없다.‘
위의 문장들은 내가 젊은 날에 쓴 것이다. 세상이라는 숲에서 한 그루의 튼실한 나무로 서있기 위해 가졌던 열정이나 번민은 항상 시간에 대한 갈증을 갖게 했다. 그리하여 시간은 사정없다고 투덜거렸다. 젊은 날의 초상은 늘 그러했다. 섬돌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들처럼 언제나 생이 가지런하기를 바랐다. 그러하니 시간이란 늘 모자라는 것이어서 허기졌었다.
한 시대는 그 시대가 앓는 질병이 있다. 그러하듯 개인도 인생의 소절마다 갖는 통증이 있으리라. 나의 서슬 푸른 날들도 그 마디마다 욕심으로 아팠다. 성취도, 제어도 어려운 맹랑한 욕망들이었다. 정신의 역마살이었다. 그때의 열정이나 번민, 투덜거림마저 그립지만 이제는 지금 이대로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상전벽해로 달라진 것이 아니라 주변을 깜냥대로 재단하여 대처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대처법의 으뜸이 ‘제어’이다. 세상사란 이루는 것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 그 미성취로부터 자신을 어르고 다독이는 것이다. 얼굴을 바꿔가며 끝도 없이 들러붙던 욕망들도 제풀에 지친 모양으로 주인 앞에 너붓이 엎드린다. 세상에 공연한 것은 없다. 인생은 대체로, 거창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기까지 많은 날들이 흘렀다. 시간과 관조를 맞바꾼 셈이다. 시간만 흘렀으랴. 사람이나 자연, 내 주변의 모든 것에 주파수를 맞추어 많은 것을 취하고 배웠다.
자연에서 채취한 생약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처리하는 과정을 법제라고 한다. 자연 상태의 식물이나 동물, 광물 등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부피가 큰 것은 나누고 단단한 것은 무르게 하며 독성이 있으면 제거하고 성질을 완화시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쓴다. 그것은 치료효과를 높이거나 새로운 효능을 얻기 위해서이다. 즉, 약이 지닌 서로의 개성을 조합하여 약효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하듯 인생도 세상을 법제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법제하여 얻은 묘약을 자신에게 투여해가며 스스로 강건하고 유능한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능하다는 것은 무엇으로 꽉 채우는 역량이기도 하겠으나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된, 비움에 능한 것이기도 하다. 비우고 버리기가 용이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비운다 함은 그것이 바탕이 되어 더 풍족한 것이 채워질 수 있는 것임도 알았다. 비우면 충만해진다는 충만의 아이러니, 그것 또한 인생의 묘약이다.
얼마 전 몇 사람과 회동하였다. 나는 늘 타인에게서 장점을 배우려고 한다. 선배는 물론 후배에게서도 취할 점은 많다. 한 원로문인은 팔순의 나이임에도 소설을 출간했고 또 다른 장편을 집필중이라고 했다. 문청인 양, 몇 년 전부터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고도 하는 그의 마르지 않는 열정을 법제의 과정에 넣는다. ‘계속해서 배우는 행위는 우리가 떠안은 일종의 진화론적 운명이다’라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후배의 발언 또한 법제의 과정에 넣는다. 문학 자체보다 글 쓰는 이가 그냥 좋다는 후배의 친구가 가지고 온 과일이 풍성하다. 음식과 술, 정담이 몇 순배 돌았다. 웅크리고 있던 개개인이 한시적이지만 ‘우리’라는 집합명사 속으로 편입된다. 끈적한 무언가가 잠시 느껴진다. 예서 무엇을 더 취하랴. 행복도 기술의 영역이라고 한다. 행복을 느끼거나 취득하는 것은 그것을 위한 태도나 마음 길들이기에 좌우된다는 말이겠다.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한 개씩의 뜻글자였다. 그들의 면모를 이모저모 법제하여 만든 약이 나에게는 양약이 되었고, 가끔은 약효가 뛰어나 내안에 내처 존재하게 될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삶이 흐르면서 강 하류에 퇴적해놓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온하고 평범한 것에 대한 애정이었다. 늙어가는 내 안에 젊은 내가 몇 인고 하니 ‘수 없이 많다.’이다. 그런 젊은 ‘나’들이 모여 요만큼의 모양새나마 갖추었다고 스스로를 위무한다. 밑줄 그음으로 살아나는 문장들처럼 그저 흘려보낸 날들이려니 했던 수많은 그날들이 모두 비범한 하루들로 부활한다. 유정하게 다가온다.
이해를 보내고 다발로 묶여 내게 올 새해 선물, 새로운 그날들을 기다린다. 개안한 듯 환해진 눈으로. (2015년)
첫댓글 '법제'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남영숙 전 회장님의 귀한 글을 찾아 올리신 이미영선생님,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의 '집합명사' 속에 저도 머물고 싶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늘 밑줄 친 문장처럼 비범한 날들이라 여깁니다. 세월에 늦게 편입해서 사느라 시간이 왜 이리 없냐고, 왜 이리 바쁘냐고 허둥대다가 선생님의 글을 읽고 고요히 머물어 봅니다. 산사에서 바가지로 약수 한 모금을 입에 넣은 듯합니다. 언제 한 번 훌쩍 길나들이 해서 떠나보고 싶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