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탄산음료대표 탄산음료들의 탄생 비화 ‘톡 쏘는 맛’을 넘는 알싸~한 비하인드 스토리
치킨, 피자, 햄버거의 둘도 없는 단짝이자… 삑! 콜라! 야~ 김새게 벌써 답을 말하면 어떡해? 최애 음료가 ‘코카콜라’라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그럼 여기서 문제! 코카콜라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은? 전 세계에서 1초당 판매되는 코카콜라의 평균 잔 수는? 코카콜라 덕분에 독일에서 탄생한 탄산음료는? 뭐야, 갑자기 최애 음료가 꿀물로 바뀐 건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답이 없으시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자, 네가 진정한 마니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금부터 탄산음료 탄생의 뒷이야기를 들려줄게.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마시는 즐거움>
사진 위키백과
자양강장제로 출발한 음료계의 King of the King
탄산음료 애호가들에게 1886년 5월 8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란다. ‘코카콜라’가 세상에 출시된 날이거든. 코카콜라를 개발한 주인공은 미국에서 약사로 활동했던 존 팸버튼 박사야.
음료를 약사가 만들었냐고? 웅, 코카콜라는 두통에도 효과가 있는 자양강장제로 출발했거든. 기운을 북돋아주는 데다 맛까지 좋은 약이라니! 기대에 찬 팸버튼은 자신이 곧 부자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기에 코카콜라는 하루 5~7잔만 간신히 팔릴 정도였어.
2년의 시간이 흐르자 판매 부진, 희망 상실까지 겹쳐 팸버튼은 결국 이 자양강장제의 제조, 판매 등 모든 권리를 약제상 에이서 캔들러에게 단돈 122만2천 원에 팔아버렸어. 에이서는 이 자양강장제의 ‘희망찬 내일’을 알아봤고 1892년 코카-콜라 컴퍼니를 설립해 대대적인 홍보와 신들린 영업 능력을 선보였지.
이제 코카콜라는 하루에 간신히 5잔 팔리던 소박했던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을 정도야. 1초에 평균 2만1천990잔이 판매되고 있거든.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탄산음료 왕좌의 자리를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며 말이지.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탄생한 탄산음료
코카콜라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야.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한 바람에 잠자코 전쟁을 관망하고 있던 미국이 ‘어쭈? 우리 땅을 건드려?’ 하며 1천600만 명의 군인과 그들이 마실 콜라 100억 병을 전선에 투입했거든.
그런데 말야, 음료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진 않는다는 말씀이지. 코카-콜라 컴퍼니는 ‘군복 입은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 코카콜라 원가 제공!’이라는 전략을 내세우며 전투로 인해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군인들에게 잠깐의 달콤한 시간을 선사했지. 명심해라, 공짜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으로 꼽히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가 집권했을 당시 독일은 코카콜라 소비량이 미국 다음으로 많았어. 히틀러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수 기업의 공장을 세웠는데 그중 코카콜라 생산 시설도 있었거든. 43개의 제조 공장과 600개가 넘는 국내 유통 업체를 보유하고 있었다니 가히 독일의 국민음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 히틀러 역시 코카콜라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해.
1941년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 내 코카콜라 생산 시설은 모두 멈춰버렸어. 코카콜라 원액 공급이 중단됐거든.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 국민 모두가 비탄에 잠겼지. 히틀러는 독일만의 코카콜라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코카콜라 독일 지부장이었던 막스 카이트를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정중하게(?) 부탁했지. “독일식 탄산음료를 빨랑 만드시게. 오래는 못 기다릴 듯싶네.”
그렇게 해서 ‘환타’가 탄생했어. 맛이 일정한 코카콜라와 달리 환타는 다양한 맛을 지닌 음료지. 전시 상황이라 안정적인 물자 수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과를 넣다가 떨어지면 포도를 넣고 파인애플을 넣고 하는 식으로 출시됐거든. ‘꿩 대신 닭’이었지만 환타는 독일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독일 패전 후 단종됐다가 코카콜라에 흡수돼 현재 코카-콜라 브랜드 중 두 번째로 긴 역사와 두 번째로 큰 매출 파워를 자랑하는 음료로 거듭났단다.
일곱 개 별이 아니라 일곱 개 성(姓)씨?
올해 만 70세가 된 우리의 대표 장수 탄산음료 ‘칠성사이다’. 칠성사이다는 사실 ‘일곱 개의 별’을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 아니었단다. 창업주 7명의 성씨가 달라서 일곱 성씨가 만든 탄산음료라는 뜻으로 작명된 거야. 주·우·김·박·최·장·정씨. 신기하지?
성이 1도 안 겹쳐! 그런데 제품이 출시되자 음료 이름이 좀…. 그래서 성씨를 가리키는 ‘姓’ 대신 별을 뜻하는 ‘星’으로 한자를 바꿨단다.
칠성사이다는 우리 국민들과 오랜 추억을 공유한 ‘영혼의 동반자’로 함께 성장했어.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조부모님의 어린 시절에는 ‘소풍 때 빠지면 안 될 친구’로 인식될 정도였지. 지금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롯데월드타워를 707만 개 쌓은 높이와 같다고 해.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탄산음료 쫌 아는 교양인’으로 거듭난 거야. 친구들 앞에서 마음껏 자랑해보자고!
내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