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 일기
오늘은 음력 5월 5일, 단오다.
예전 농촌에서는 모내기 등 힘든 일이 끝나고 왠만한 파종도 마무리 하는 시절이다. 몸마음 다소 여유가 생기는 때다. 단오절이 명절로 여겨진 이유일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오 풍습은 사라지고 없다.
요즘 우리 동네 어른들께서 뽄디(강낭콩의 이곳 사투리)를 따고 빈 땅에 팥씨를 파종하기도 하지만, 나는 가끔 잡초나 매주고 있다. 검은 비닐 멀칭 덕분에 한결 수월하다.
지난 봄에 뽄디 씨를 동네 아지매한테서 얻어 같은 날 파종했는데 아지매 밭 뽄디는 잘 자라 수확하고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내가 심은 건 발아가 거의 되지 않았다.
그 뒤 답답한지 아지매가 직접 우리 밭에 심어준 뽄디는 잘 나고 잘 자라 열매도 충실히 맺혀있다.
그냥 땅 파고 씨앗 넣고 흙 덮으면 되는 아주 단순한 작업에 무슨 비결이 있는 지 모르겠다.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아 본 거 좀 있다고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자꾸 어긋난다. 그래서 요즘에는 동네 아지매들한테 귀찮도록 묻는다.
왜 아지매들한테 묻냐고? ㅎ 동네 아재들은 밭에 잘 안 보인다. 생존하고 계신 분들도 많지 않지만 허리나 다리가 아파서 농삿일을 못 하시는 분들이 많다. 젊었을 때 몸을 너무 험하게 써서 그럴까? 힐체어 타고 다니고 어르신 유치원 이라는 보호 시설에 아침에 갔다가 저녁 무렵에 오는 아재나 형님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농약통을 짊어진 친척 형수님을 보았지만 대신 해드리겠다는 말은 못 했다. 내가 내 체력을 알기 때문이다.
'아지매', '아재', '형수', '형님'이라고 하니 어쩐지 젊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칠순 팔순 되시는 할매 할배들이다. ㅎ
주말에는 동네에 못 보던 차량이 늘어난다. 아들 딸들이 부모 찾아오는 차량이다. 손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집 손주들도 주말에 바쁜 모양이다.
아들딸이 찾아온 동네 할매 할배들 얼굴 표정이 환해진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겠지.
어떤 아지매는 묻지도 않았는데, '아들이 딸이 요즘 바쁘다 하더라. 그래서 한가할 때 오라고 했다.' 그런다. 속상하고 또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오뉴월 농촌에서는 이른 아침이나 해거름에 주로 일하러 논밭에 나가는데 어떤 할매들은 한낮 땡볕에도 밭고랑에 앉아 풀을 매기도 한다.
"아이구! 아지매, 이 땡볕에 그러면 큰일납니다. 좀 쉬지 뭔다고 그리 애터지게 일을 합니꺼?"
하고 말을 부치면 돌아오는 말이
"이기 낙이다. 옛날에 너거 어매도 그랬다."
아아 어머니! 그냥 목이 메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선다.
밭에는 옥수수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재미로 심어놓은 도라지는 보라색 꽃을 피우고 방풍은 하얀 꽃이 예쁘다. 잎당귀도 꽃을 피웠다. 생김새가 방풍꽃과 비슷해 같은 과인지 궁금하다.
촌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촌부 흉내를 내지만 촌부되기 참 힘든다. 전에 한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고향에 내려가서 살다보면 후회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고향 가서 살아 볼란다."
나도 그 선배님 마음에 공감한다. 하지만 아직 고향에 완전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도회지와 농촌을 왔다갔다 한다.
녹음이 아름다운 6월!
늘 淸安하시길 기도하네.
2023.6.22. 삼천포서
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