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자리도 마다하고 농촌 초등학교 담임으로 부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한국교육개발원(KEDI) 출신의 박덕규 박사.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삼포초등학교 4학년생 11명은 요즘 아침 7시20분이면 어김없이 등교한다. 그리고 다른 학교 초등학생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인 7시 반에 1교시 수업을 듣기 시작해 12교시가 끝나는 저녁 6시 반까지 교실을 떠나지 않는다.
국경일과 공휴일에도 출석한다. 다른 학년생들이 휴교한 3일 개천절에도 이 학급은 오후 3시까지 특별수업을 받았고 토요일인 4일에도 오후 3시 반까지 연장수업을 들었다. 일요일에도 오후 3시까지 보충수업을 받았다. 지난 주말만 그랬던 게 아니다. 2학기가 시작된 8월 26일부터 추석연휴 사흘만 빼고 이처럼 특별, 연장, 보충수업으로 강행군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농촌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수험생처럼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
교육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박사를 담임으로 만난 게 그 까닭의 전부다.
박덕규 (朴德圭·61) 박사. 웬만한 초중등교사들은 한 번쯤 그의 강의를 들었거나 그가 발표한 논문을 읽었을 만큼 교육계에선 유명 인사다. 그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21년간 재직하는 동안 교육정보부장, 기획처장, 교육연찬실장을 거친 후 지난 6월 정년퇴직한 교육학박사다.
지난 3월 정년퇴직을 2개월여 남기고 전 교생이 60여명밖에 되지 않는 이 자그마한 농촌초등학교의 조병문 교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후 이 학교의 기간제교사로 부임할 뜻을 굳혔다. 그러고는 유급휴가 기간 중 자신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독일 도르트문트대학과 프랑스를 방문, 실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당시만 해도 생각이 많았죠. 출강을 요청하는 대학이 서너 군데 있었던 데다 자그마한 교육관련 사업을 해볼까 하는 궁리를 했을 때였으니까요.”
그가 선뜻 이 제안을 수락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인천사범(현 인천교육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 또 한번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감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첫 번째고, 도회지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농촌초등학교 학생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피어난 게 두 번째다.
그의 수업내용은 기존 교육 스타일과는 판이하다.
단 1명이라도 이해를 못하면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이른바 완성학습을 철저히 이행한다.
“교육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완전한 몰입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 박사는 경험학습과 시나리오학습을 중시한다. 분수를 가르칠 때 박 박사는 아이들에게 소유의 개념을 대입해 설명한다. 옥수수 3개 중 1개를 먹었다면 3분의 1이 없어진 것이다 하는 식이다.
또 영어수업은 150개 단어를 활용해 회화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박 박사는 아이들의 외우기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교실에 막 들어왔을 때부터 학교문을 나설 때까지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을 시나리오로 엮어 아이들에게 연기토록 할 참이다.
국어책 읽는 것도 색다르다. 노래를 부르듯 구절구절에 억양을 넣는다. 공부에 대한 싫증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박 박사의 혁신적인 교수방법에 처음엔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의 자세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 휴일이었던 3일 연장학습에 걸려 오후 6시 반까지 박 박사의 개인지도를 받았던 박건희(11)군은 “공부는 정말 하기 싫죠. 그렇지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우리를 잡으러 온 사람’으로 통하는 박 박사는 학생들의 가정방문에도 남다른 부지런함을 보이고 있다. 40여일새 벌써 3차례 순회를 완료했다.
박 박사의 지도방법에 대해 조병문 교장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수준’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부모들로부터 거의 매일 전화가 오다시피 하죠. 정말 좋은 선생님 만났는데,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맡기고 싶다는 겁니다.”
박 박사는 서울에 사는 부인, 두 딸과 떨어져 이곳 교내관사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서울에는 지난 추석연휴 때 딱 한 차례 다녀왔을 뿐이다.
“그동안 연구했던 걸 아낌없이 모두 털어놓을 계획입니다.”
박 박사는 요즘 초등교사 10호봉 대우를 받는다. 수당까지 더해봐야 한 달에 115만원을 넘지 못한다. 한국개발연구원에 있을 때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래도 보수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보람과 신망을 안팎으로 보탤 수 있는 데다 건강도 관리할 수 있어서다.
박 박사는 이른 아침에는 산책으로, 오후 늦게는 혼자서 축구공을 드리블하다가 학교담장을 향해 발길질하는 ‘벽축구’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삼시 세끼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강원도 농촌생활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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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추천 100자평
고태진(longbeachko) 등록일 : 10/07/2003 20:27:00 추천수 : 10
존경 합니다. 사회의 전반적 침체감에 속상해 있는데 좋은 소식 접하고보니 그래도 참아야 되나하는 일말의 희망을 걸어 봅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고 앞날에 보람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 빕니다.
양승모(orayang) 등록일 : 10/07/2003 23:40:00 추천수 : 6
정말 참 지식인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모든 지식인의 표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손민혁(motley18) 등록일 : 10/08/2003 11:17:30 추천수 : 2
우리나라 각계의 전문가를 은퇴후에 시골학교에서 선생님을 할수있도록 제도를 만든다면 전문가들의 노후전원생활과 격오지 학생들의 수준높은 교육경험등 얻는것이 많을것이다.
오영자(oyj01) 등록일 : 10/08/2003 04:40:58 추천수 : 2
참으로 신선한 소식이군요. 이런 분에게 평생 교육부장관을 하게해서 정권과 관계없이 교육개혁을 하게 해서 이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게 하면 좋지 싶습니다.
임문택(lmtjhj) 등록일 : 10/07/2003 21:17:12 추천수 : 2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시골의 어려운 현실을 몸으로써 감내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모든 교사들이 도시를, 모든 박사들이 대학강단에 서기를 원하는 이때에 물질적 욕망을 모두 버리시고 노력하시는 선생님을 뵙고 전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