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에 서면 누구나 외로워집니다. 여름 바다에선 힘을 얻지만, 가을 바다에선 그렇지 못합니다.
누구는 겨울 바다가 더 외롭다고 하지만, 시리도록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겨울 바다에 나가본 사람은 알겁니다.
외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추위에 질려, 영혼보다 몸이 먼저 따뜻한 공간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요.
가을 바다를 보며, 누군가 우두커니 아무것도 못하고 멈춰있다면, 옆에 다가가 따뜻하게 어깨를 내어주세요.
그리고 말없이 그를 앉아주세요.
외로움을 나눠가질 마음이 있다면 말이죠.
제 아이도 곧 외로움을 느낄 나이가 올 겁니다. 시간은 빠르니까요.
모두가 떠난 섬은 텅 빈 놀이터 같았습니다.
제부도 매바위는 시간에 맞춰 옷을 갈아입습니다. 바닷물로 만들어진 옷을 말이죠.
제부도. 물때를 잘 맞춰야 비로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섬.
설령 들어갔다고 해도, 마냥 넋 놓고 있다간, 바다로 변한 길을 보며 그저 발만 동동 구르게 되는 섬.
그 흔한 시간표 한번 확인 안하고 일단 섬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길 수십 번. 그래도 저는 또, 제부도에 갑니다.
섬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꾸역꾸역 섬을 빠져나오는 시간,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저는 반대로 섬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길이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말이죠.
그저 바다가 저를 받아주기만, 섬이 저희를 받아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찰랑찰랑! 금방이라도 바퀴를 적실 것 같은 바닷물을 가르며 시원하게 도로를 달립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이 길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봐야하는데, 제부도 입구에서도 그럴 만한 시설이나 사람을 찾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일단 열려진 길이기에 무작정 들어오기부터 했습니다.
이제 막 길이 열린 제부도
그렇게 제부도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시간을 물어보는 것이었죠.
제가 달려온 길의 입구에는 초소 같은 건물이 있는데, 그곳 안내원이 사람들에게 시간을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다가서니, 그는 뭔가 종이를 제게 건네며, 지금부터 내일 새벽 1시까지 길이 열려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이젠 정말 마음 놓고 놀다가도 되겠네요.
그가 건네준 종이를 펼쳐보니, 제부도 안내문이었습니다.
전 다시 그에게 물었습니다. 새벽1시에 길이 닫히면 언제부터 다시 통행이 가능하냐고 말이죠.
돌아오는 대답은 2시간쯤 닫혔다가 새벽 4시 정도면 다시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다면 정말 오랜만에 ‘일탈행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와 상의하여 민박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아들도 좋아했죠. 제부도에서 제가 사는 안양까지, 새벽에 간다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새벽 6시에만 나가도 될 겁니다.
“자! 민박집을 구해보자!”
저희는 기분이 좋아져서 창문을 다 열어 놓고 바닷가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펜션과 민박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죠.
정말 놀라운 건, 그 많은 민박이나 펜션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
어제 토요일 만해도 12~13만원하던 펜션이 절반 가격인 6~7만원하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비싸서 4만 원짜리 민박을 재차 흥정하여, 3만5천원에 잡았습니다.
풀어 놓을 짐도 없었기에, 그저 민박집 방문만 걸어 잠그고, 저희는 바닷가에 나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거의 없는 바닷가는 마치 아이들이 뒹굴며 놀다가, 다들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 버린 공원 놀이터 같이 공허했습니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도, 아마 곧 이곳을 떠나겠죠.
그럼 이곳은 더 외로운 섬이 될 것 같습니다.
멀리 매바위가 보입니다. 제부도의 명물이죠.
오른쪽 바닷가에는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조개구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서, 그만!
그래도 바닷가를 마주하고 자리 잡은 식당만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저희가 지나치면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고 유혹합니다.
이럴 땐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지는 겁니다.
정면만 바라보고 걸아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한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저희는 어께한번 으쓱 하며 눈이 마주친 사람의 손짓을 따라, 어느 조개구이 집에 들어섰습니다.
사실, 민박을 구할 때부터, 조개구이를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바닷가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었거든요.
주문한 조개구이가 나왔습니다.
지글 지글 맛있게 익혀주고!
간혹 갈매기들이 창밖을 휘휘 날며 돌아다닐 뿐, 식당 밖은 한산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차도 없습니다.
옆자리에 앉았던 연인들도 시간이 다됐다며, 자리를 떠나버리고, 이제 식당 안에도 남은 건 저희와 일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저희와 눈이 마주친 사내도 이젠 식당 안으로 들어와 일을 돕습니다. 전 그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어제, 토요일엔 사람이 많았냐고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씩 웃습니다.
이 섬 사람들은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로 먹고 산다는 겁니다.
어제만 해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와 아내는, 사람들이 떠난 섬에 점점 매력을 느껴가고 있습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여유와 사색할 시간을 주는 이런 일탈 행위야말로, 지친 삶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윤활유입니다.
저희 테이블에 술병이 늘어갑니다. 그리고 저희는 바다에 취하고, 갈매기에 취하고, 저녁 어스름에 취해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2번째 리필한 조개를 다시 불판 위에 올리며, 거리에 켜진 가로등을 바라봅니다.
섬에서의 밤은 이렇게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섬은 어둠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놀이공원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자,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로 속을 풀고 저희는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리곤 바닷가로 내려갔죠.
바다는 갯벌을 드러내놓고, 파도는 나중을 기다리며 저 멀리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자정쯤이면 파도는 이곳까지 달려올 겁니다.
그리고 또 새벽에는 저 자리로 돌아가겠죠.
제부도 밤바다에선 드넓은 갯벌이 주인입니다. 주인은 지금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저희도 따뜻한 불이 켜져 있는 민박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어느새 엄마 등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를 방에 뉘이고, 저희도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쌀쌀해진 가을 밤. 아무런 준비 없이 온 가을 바다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네요.
그저 가족끼리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다 아들도 잠이 들고, 술에 취한 저도 잠이 들었습니다.
이제 핸드폰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길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제부도 가실 때 유의사항>
인터넷에서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가세요. 그리고 섬에 들어갔다 나오실 때는 꼭 시간의 여유를 두고 좀 일찍 나오세요.
예전에 제가 30분 여유를 가지고 섬에서 나오려고 했으나, 섬을 빠져나오는 사람이 일시에 몰리니까, 도로에 정체가 일어나고 결국 섬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흐르는곡○ 그대 /노래 가수 수연
/작사 정옥란
/작곡 구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