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국 503년(1894년) 연호 칙지(勅旨)
가. 조선이 사용하던 청나라 광서(光緖)연호를 폐기 하고, 조선개국 503년(1894년) 7월 21부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이미 국력이 쇠약되어 외세의 침략 야욕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貪虐)으로 전봉준 영도하에 동학교도와 농민이 집단시위로 군청을 점령했다 자진해산함.
- 4월 조정에서 파견된 안핵사(按覈使) 이용태의 폭학(暴虐)에 항거하여 1차봉기 하여 농민동학혁명으로 발전되어 전라
도 관찰부(전주소재)까지 점령함.
- 5월 조정에서 홍계훈을 초토사(招討使)로 임명하여 진압에 나셨으나 장성전투에서 패배하므로, 조정과 동학혁명군의
협상에서 동학군의 요구 조건인 폐정개혁(弊政改革)12조와 전라도 53개군에 집강소(執綱所)설치 요구를 수용하여
전라도 관찰부를 관군에게 돌려줌.
- 민비가 비밀리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 하여 청군이 파병 되고, 불청객 일본군도 인천으로 상륙하여 동학교도들를
무참히 살륙하므로서 동학본부는 조선과 일본의 국가간 전쟁으로 간주 2차 봉기함.
- 6월 갑오개혁 시작.
- 7월 우리영토에서 청일전쟁 발발됨.
- 12월 일본의 신식무기의 위력앞에 동학혁명군은 무참히 살륙당하고 완전히 패배됨.
나. 이정환(李鼎煥) 탁지아문 참의 칙지(勅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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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 칙지 이정환 위 통정대부 탁지아문 참의자. 개국503년(1894년, 고종31년)7월 일. 봉 칙 총리대신 김홍집.
※옥새는 시명지보 그대로 사용.
- 갑오개혁으로 직제가 변경되어 교지를 칙지로, 호조를 탁지아문으로, 영의정을 총리대신으로 변경되었음.
2. 개국504년(1895년) 연호 칙명
가.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에서 주도권 쟁탈전이 청일전쟁으로 확전되고 일본의 승리로 청나라가 전쟁 배상금으로 3억엔
과 요동반도를 일본에 할양했으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3국간섭)의 압력으로 일본이 배상금 4,500만엔을 더 받는 조건
으로 요동반도를 포기 하므로서, 러시아가 일본 보다 더 강한것을 알게된 조선은 일본의 내정간섭을 막기 위해 친러
정책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 2월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 사형.
- 5월 김홍집 내각 사임, 박영호 내부대신이 총리대신서리 겸임, 박정양 총리대신 임명.
- 지방관제를 23부 331군으로 개편.
- 7월 일본의 압력으로 일본과 화의적인 김홍집 2차 총리대신 임명.
- 일본공사 미우라 부임.
- 소학교령 공포.
- 8월 20일 을미사변(민비 살해)
- 8월 3차 김홍집내각 성립.
- 11월 단발령.
- 11월17일 일본의 권유로 다음해인 개국505년1월1일(1896년)부터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변경조치.
※ 건양1년(1896년)2월11일 아관파천(고종과 태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나. 이정환 탁지부대신 서리 칙명(勅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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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 : 칙명 탁지부 협판 이정환 명 서리 탁지부대신 사무. 개국504년(1895년, 고종32년)8월24일 대군주 수결 (옥새)대군주보
- 민비 살해 4일 후, 내각 총사퇴로 탁지부 협판(참판) 이정환을 탁지부 대신(판서) 서리로 임명시킨 칙명임.
- 칙지를 칙명으로, 탁지아문을 탁지부로, 임금의 호칭을 대군주로, 옥새 시명지보(施命之寶)를 대군주보(大君主寶) 변경됨.
※ 나라의 힘이 없어 열강의 먹이감이 되고 외세에 의해 백성들이 살륙당하고, 왕비가 살해되고, 우리영토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일러나고, 아관파천, 거문도사건에, 을사늑약, 정미늑약, 강제합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상기 할 수 있는
문서라 생각되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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