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낱잔, 잔술’
낱술이나 잔술은 얼마나 큰 그릇에 담아야할까?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조그만 반 되짜리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커다란 사발에 몽땅 따라 마시는 것을 왕대포라고 하였다. 물론 술독에서 대접이 넘쳐흐르게 퍼서주기도 하였다. 곁들여 허연 설렁탕 한 그릇에 소금 한 숟가락 넣고 휘휘 젖어서 배추김치 한 가닥이나 멸치 고추장 안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해장술이었다.
주량이 한 병을 다 마시기에는 너무 많기도 하고, 호주머니 사정으로 생겨났던 것이 잔술 문화이었는데 그동안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음주문화의 변화로 잔술이 심심찮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규제완화가 한몫을 하고 있다.
1960~1970년대 성행하던 ‘잔술(낱잔으로 파는 술)’ 문화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5월 28일 병이 아닌 낱잔으로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주류면허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엔 소주, 막걸리 등을 잔에 나눠 담에 팔았다가 적발되면 주류 판매 면허가 취소될 수 있었다. 이번 개정안에는 '주류를 술잔 등 빈 용기에 나눠 담아 판매하는 경우'를 주류 판매업 취소 예외 사유로 명시했다. 사실 그동안 실제 면허 취소로 이어진 사례는 없었더라도 이제는 명확하게 ‘무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잔술(낱잔) 문화가 새로운 변화로 정착할지는 미지이다. 민도가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낱잔에 담긴 술이 새로 따른 술인지, 마시다 말은 술을 따른 것인지 께름칙하고 위생이나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 정현종의 시 “낮술”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치 덜그럭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우리는 그대의 빈 그릇
무엇으로든지 채워야 하느니,
우리가 죽음으로 그대를 배부르게 할 때까지
죽음이 혹은 그대를 더 배고프게 할 때까지
신성한 시간이여
간지럽고 육중한 그대의 손길.
나는 오늘 낮의 고비를 넘어가다가
낮술 마신 그 이쁜 녀석을 보았다
거울인 내 얼굴에 비친 그대 시간의 얼굴
시간이여,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그대,
낮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비로소 낮의 꼭대기에 올라가 붉고 뜨겁게
취해서 나부끼는 그대의 얼굴은
오오 내 가슴을 메어지게 했고
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을 시큰하게 했다.
낮술로 붉어진
아, 새로 칠한 뺑끼처럼 빛나는 얼굴,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리
정현종 시인의 ‘낮술’이란 시를 소개한다. 이 시는 단순히 ‘낮에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한 시라기 보다는 ‘낮술’은 술이 아니라 시간의 은유이다. 시인은 ‘낮술 마신 그 이쁜 녀석’=‘술에 취한 시간의 얼굴’ 시간을 의인화하고 있다. “시간이여,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그대”라는 구절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사실상 죽은 시간이고, 사람이 무엇인가에 깊이 취하고 몰입할 때 비로소 시간이 살아 움직인다고 본다. “낮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낮술’은 밤에는 꿈으로 시간을 살리고, 낮에는 취하여 시간을 살리겠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시가 ‘낮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시’라기보다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의 시’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ChatGPT 협조, 2026.9.21.)
첫댓글 달스탄님(심교수), 옛 시절 왕대포와 해장술 이야기부터 정현종 시인의 깊이 있는 시 해석까지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법 개정으로 잔술이 다시 가능해졌지만, 작가님 지적처럼 위생이나 관리 면에서 정착될지는 두고 봐야겠네요. "시간에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한다"는 시 구절처럼,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취하고 몰입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깊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