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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전 [삭개오의 회심]
진사 2012.08.21. 10:00
삭개오의 회심
눅 19:1~10
(이전 생략)
하나님의 심판과 그 절대성을 깨달음
‘아,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자기를 보장하느냐? 보장할 길이 없지 않는가?’ 삭개오는 이렇게 인생의 무상(無常, 헛됨)도 깨닫고 인간이 심히 연약한 것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무능’이라는 것과,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체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심판해 나가시는 현실’도 때때로 봤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어렴풋하게나마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씀하신 대로 그는 유대 사람인 까닭에 성경에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만큼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성경에 대해서도 과거에 어떤 기회로든지 배웠을 것입니다. 풍부하게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혹은 어떤 구절들이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날마다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그분께서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 7:11-12] 하는 말씀을 생각할 때, ‘회개하고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멸망 받지 않겠느냐?’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火箭)이로다.”[시 7:13]. 화전이라는 것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푸르륵 날아와 가지고 갑자기 콱 박힙니다. 미리 방비하기가 어렵습니다. 화전은 그 사람 등허리로 올는지, 가슴으로 올는지, 앞에서 올는지, 옆에서 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심판은 네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와서 네가 아무리 막아 보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이 찾아와서 너를 심판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전입니다.
그뿐 아니라 삭개오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여러 가지 재료에 의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욥기 9장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빼앗으시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했습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죄악에 대해서 양심이 자기에게 때때로 책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전도서 8장 7절을 보면, “사람은 장래 일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여러 가지나 자기 장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도 인생의 길을 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가노라면 결국 깜깜한 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데도, 거기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절벽이 될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성이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모르고 그냥 태평 무사한 것같이 살아오다가, 이제 그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자기가 참으로 위험한 데 서 있다.’는 것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삭개오는 예수님의 성호(聖號)를 듣고 ‘아, 내가 결국은 그분을 한번 만나 뵙고 내 이 마음의 번민이나 공허에 대해서 여쭤 보고 싶다.’ 이런 심정이 생겼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아, 그러면 나도 병 고치러 가야겠다.’, ‘그 큰 희한한 일을 하는 것을 보러 가야겠다.’고 했는데, 삭개오는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 마음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서 그분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런즉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뽕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시니까 즐겁게 내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냥 단순히 구경차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워했고 만나고 싶어 한 것입니다.
죄를 깨달음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삭개오에게 그런 것이 있었을 것이다.’ 하는 우리의 추상이지만, ‘삭개오에게 반드시 그런 것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을 때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 됐습니다. “구원이 오늘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 전 시간까지는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했던 사람이, 즉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가 구원 받은 사실을 가장 능력 있게 증명하는 사실은 뭐냐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려면 믿음이 있기 전에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생기면서 동시에 회개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는 ‘변개(conversion)’, ‘에피스트로페’라는 것입니다. ‘회개’, 또는 ‘변개’라는 말은, ‘지은 죄를 아프게 여기고 과거에 그 지은 죄와 함께 가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죄’에 대해서 깊이 느꼈던 것입니다. ‘인생의 유한’에 대해서 ‘허무’하게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두렵게 여겼지만, 그 두렵게 여기는 기본은 무엇이냐 하면 ‘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죄를 짓고 살았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죽일 기계를, 활을 당기에 예비하셨는데 만약 탁 쏘기만 하시면 나도 죽는 것 아니냐? 이렇게 멸망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그는 ‘멸망’을, ‘하나님의 심판’을 무섭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구원 받는 사람의 당연한 심정입니다.
복음의 사실을 가르칠 때 ‘예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다.’ 하는 것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이 죄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신 심판 받으셨다.’고 해야 복음이 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구원받을 사람은 그러한 생각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해 집안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그냥 떠들고 논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자기 심정을 호소했습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구원의 빛을 주신 것입니다. 성신께서 그 안에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환연히 죄를 아프게 회개하면서 “주님을 믿습니다. 나를 건져 주시고 살려주시는 것을 믿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원한 생명이 그의 속에 생겼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의 확실한 증거
그는 구원받기 전에 필연 죄의 문제로 마음 가운데 번민이 있었습니다. 이 번민을 풀고자 할 때 예수님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사람들이 각각 자기가 보고 들은 대로 예수님을 그에게 소개했겠지만, 그는 그것을 그대로 다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로서는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거룩한 계시자다.’ 하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직접 예수님을 만나 뵙고 그 다음에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는 데서 ‘예수님께서 구주이심’을 아마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구원 받은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 앞에 정중하게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오늘 제 재산의 절반을 풀어서 가난한 사람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습니다.” 도적놈이 도적질한 것을 갚는 것같이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일상생활 가운데 필요한 것들도 많이 뺐었을 테니까 ‘토색’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옛날 목축을 하던 시대에 양을 도적질해 가는 경우를 상정해서 그 시대의 일반 경제 상황에 적절하게 정한 규례대로(출 22:1) 삭개오는 “네 배를 갚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훌륭한 구원받은 사람의 실증입니까? 과거에는 뺏고뺏고 쥐어짠 사람이, 이제는 “주겠습니다.”고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쥐어짜고 괴롭게 하고, 또 로마에 자세(藉勢)를 해 가지고 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며 법을 내세워 뺏었던 모든 것 대신 이제는 ‘네 배씩이라도 자기가 갚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재산이 다할 때까지 갚겠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자기가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
는 말과 같습니다.
(이하 생략)
김홍전 {예수님의 행적 7}에서
댓글 21
진사 12.08.21. 10:12
토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진리의 영이신 성신님께서 이 글을 보시는 회원님들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부산갈매기 12.08.21. 10:28
연중론자들 눈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려면 믿음이 있기 전에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는 김홍전 말씀이 얼른 보이겠여.^^;
마우스 12.08.21. 10:43
예수님을 만나고 분명한 회심을 하는 삭개오의 장면이군요. 확실히 예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본 준비된 사람은 분명한 회심을 하게 되는군요.
우리도 전도와 사역을 할 때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심, 그리스도의 영광을 분명히 볼 수 있도록 해줘야 될 듯합니다. 얼마나 큰 심판을 주님께서 받으셨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설교자의 역할이 참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김홍전 목사님이 인용하신 시편의 활과 화전의 말씀도 전도 시에 잘 활용하면 좋을 듯합니다. ^^
┗ 부산갈매기 12.08.21. 11:01
연중론과 다른 해석이지요?
┗ 마우스 12.08.21. 11:07
전 연중론자인데요?
┗ 부산갈매기 12.08.21. 11:12
마우스 님이 연중론자인 건 알구여, 하나님의 <일반 은혜>인 <준비 은혜>를 말씀하시는 <김홍전 목사님은 연중론자가 아니다.>는 말이네예.^^;
┗ 부산갈매기 12.08.21. 11:18
바보새 님은여 <개혁주의 개념에서는 일반 은혜로 회개해서 특별 은혜로 넘어가는 개념이 없다>고 <단정>하신 것 같은데예, <하나님의 일반 은혜>인 <준비 은혜>를 말한 <헤르만 바빙크 신학>, <김홍전 신학> 역시 <변종 신학>이라는 생각이 드네여.
┗ 마우스 12.08.21. 11:23
갈매기 님은 삭개오에서 어디가 일반 은혜, 준비 은혜로 보시나요?
┗ 부산갈매기 12.08.21. 11:48
잘 읽어 보세여, 주님의 <오늘>이라는 말씀을 기점으로여.
00 님이 그러는데여, 핸드릭슨 사복음서 주석과 에프에프 부르스 사도행전 주석을 살펴보면 양무리 마을에서 <연속적 중생관 실전예제>를 했던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준비 은혜라는 과정 속에 순간 도약 중생>을 했던 인물들이라네예.
김홍전 {예수님의 행적 (1)~(10)}과 {사도행전 강해 (1)~(9)} 나오는 인물들, 이 인물들 중생을 놓고 말씀하시는 김홍전 목사님 해석도 모두 그렇다네여.
┗ 부산갈매기 12.08.21. 11:48
물론, 이 견해는 00님 견해이니깐, 그리 <신경>쓰지는 마세여.
┗ 마우스 12.08.21. 12:03
갈매기 님 말투가 귀엽우신 것 같으시네예 ^^ 정감이 느껴지네예.
┗ 부산갈매기 12.08.21. 12:21
<귀엽다>는 말은 어릴 때 들어본 뒤로 참 오랜만에 듣네여.^^;;
동자 12.08.21. 11:44
저는 토론하자는 것이 아니라 김홍전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올려 진 이 글을 보면서 의문점이 들어서 몇 가지 적어봅니다.
<죄를 깨달음>이라는 항목에서 밑줄이 있는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을 때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 됐습니다. “구원이 오늘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 전 시간까지는 그가 구원을 받지 못했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했던 사람이, 즉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성신의 역사로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동자 12.08.21. 11:45
그런데 <구원 받은 자의 확실한 증거> 항목에 있는 두 번째 단락에서는 이렇게 구원 받은 증거라 말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그가 구원 받은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 앞에 정중하게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오늘 제 재산의 절반을 풀어서 가난한 사람을 주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습니다.” 도적놈이 도적질한 것을 갚는 것같이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일상 생활 가운데 필요한 것들도 많이 뺐었을 테니까 ‘토색’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동자 12.08.21. 11:48
의문은 <구원 받은 자의 확실한 증거>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선언하시기 전의 삭개오 고백이라는 것이죠.
김홍전 목사님은 분명히 예수님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라는 선언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삭개오를 말하는 데 어떻게 예수님의 구원의 선언 전에 삭개오가 구원의 증거를 나타낼 수가 있나요?
┗ 부산갈매기 12.08.21. 11:52
그 문제는 카페지기님께서 잘 설명해 주실 것 같네여.^^;;
마우스 12.08.21. 11:50
동자 님,<연속적 중생론의 관점에서 보는 성경읽기의 실전 예제6:난장이 삭개오의 회심 시기> 검색해 보세요.
동자 12.08.21. 11:50
이 글을 가지고 회심의 과정을 설명하시기 위한 것이라면 김홍전 목사님이 모순된 주장이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김홍전 목사님이 회심의 과정을 설명하기보다는 단지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점과 구원 받은 자의 드러내는 증거들을 설명하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마우스 12.08.21. 11:57
네, 그런 것 같습니다. ^^
부산갈매기 12.08.21. 11:55
토론의 핵심은 {하나님의 큰 일}에서 <준비 은혜>와 <도약>이라는 말을 쓰는 {헤르만 바빙크 신학} 역시 {변종 신학}일까, 하는 거네여. ^^
동자 12.08.21. 12:00
마우스 님, 글 검색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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