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문학동네, 2013) 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읽고
1993년 『작가세계』에서 시 「강화의 대하여」 외 4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연수 작가의 몇 권의 소설집과 산문집을 읽은 이력이 있다. 작품마다 굵직한 상을 수상하며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작가가 인물의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 인물들이 고통을 통해 고통을 지나가며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인물과 관계 맺고 그 안에서 갈등하거나 화해하는 방식, 문장을 통해 소설의 정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에 유의하며 읽으라는 설명을 들었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결국, 다시 한번 우리의 서로는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고, 이를 인정하고 함께 걸을 수 있음을 알아가게 해 준다. 불면증을 앓는 주인공이 나온다.
불면증은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가벼운 고통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척 공감되고 무거운 고통일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은 코끼리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코끼리가 자기 심장에 한 발을 올려놓는다고 생각한다.
소설 첫 부분부터 지네, 배짱이, 사마귀 등이 등장해 이상한 전개처럼 보였다. 부처가 말한 생로병사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로병사가 고통이 되는 건 인연 때문이고, 그의 몸으로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지는 괴로움의 궤적이라고 말한다. 자려고 누우면 코끼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잠들기 위해 두껍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찾다가 『암 환자를 위한 생존 전략』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그 책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주인공의 직업도 힌트를 준다. 암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찍으려고 했다고 한다.
밤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힘들어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을 적고, 전화를 걸어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심장의 고통이 코끼리가 발을 올려놓은 것처럼 느낀다. 친구와 산책하며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자, 암흑의 핵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코끼리는 여전히 그를 따라다닌다. 여전히 불면증도 고쳐지지 않는다. 새벽 2시쯤, 결심한 고통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는 다시 그 책을 펼쳤다. 책을 읽다가 코끼리와 대화를 하기도 한다. 코끼리로 보이는 부분은 주인공의 내면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고통이란 자기를 둘러싼 이해의 껍질이 깨지는 일이다. - 칼릴 지브란”(p308)
고통을 정의하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첫 번째 친구와 산책을 마치고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시고 친구의 품에 안겨 꺼이꺼이 운다. 이 부분이 좋았다. 슬픔도 고통도 쏟아내야 돌파구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공은 아홉 명의 친구와 산책한다. 마지막 친구와 헤어지자 “옆 골목에서 코끼리가 나타나 그의 심장 위에 슬며시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가 잠들 때, 코끼리도 잠들었다.
심장에 발을 올린 코끼리가 언제 힘을 줄지 몰라서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처음부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녀’가 있다. 통증을 공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작은 공으로 만들어서 어딘가로 던져 버리면 통증이 사라질까?
『암 환자를 위한 생존 전략』의 출판사에 전화해 연락처를 물어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쉰한 살에 폐암 선고를 받았다. 걷기를 통해서 암을 앓으면서도 장기 생존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Y 씨와 그는 경찰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또한, 코끼리와 지네와 베짱이와 수컷 사마귀와 함께. 그것을” (p320) 마지막 문장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 저승사자? 고통? 누군가가 던져 보낸 고통으로 만든 공은 아니었을까?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데 집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지나가는 데 집중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