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루1,28)
오늘 복음은 대림 4주일인 내일 복음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사야서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아하즈 왕은 <스무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과는 달리 주 그의 하느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이스라엘 임금들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쫒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따라, 자기 아들마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였다.>(2열왕 16,2-3)는 사실을 열왕기 저자는 전하고 있습니다. 아하즈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고, 하느님께 불경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강대국인 아시리아의 왕을 섬김으로써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을 물리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지 이사야를 보내어 당신의 호의와 인자를 베푸시려하였지만,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얄팍한 꼼수를 부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이사야 예언자를 보내시며, 그가 원하는 징조를 청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징조는 곧 예언의 성취와 약속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하나의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징조를 청하였다면 하느님께 대한 불신앙을 확신에 가득한 신앙으로 바꿀 수도 있었으며.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믿었기 때문에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이7,12)라고 말합니다. 그는 언뜻 듣기에 옳은 대답을 하는 듯싶지만 기실, 신명기(6,16)의 계명을 들어 자신의 불신앙을 포장하려고 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하즈는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완고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내 이사야 예언자는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그에게 경고합니다. 다윗 왕실이 백성들을 그토록 학대하고도 마치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느님 앞에서 경건을 가장하고 불신앙으로 하느님의 은총마저 거절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며 하느님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7,13~14절 참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이사야의 이 예언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어 낳으시리라는 예언으로 믿어왔던 것입니다.
아하즈는 하느님의 생각과 뜻 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대단한 것처럼 여겼고,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러한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말미암아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말미암아 유다는 아시리아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즈와 달리 어머니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참된 신앙인의 기본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들었을 때, 자신의 생각과 뜻 보다 하느님의 생각과 뜻을 무엇 보다 우선해서 살려고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1,38)고 응답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야 바는 바로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가짐과 신앙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게 가장 옳고 또한 그게 성숙한 성인의 자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생각대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거나 올바른 신앙생활은 아니라고 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머니 마리아께서 본으로 보여 주신 것처럼 < 주님의 생각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아하즈의 불신앙을 통하여서도 인류구원을 위해 임마누엘을 보내실 것을 예언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 말씀대로> <주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더 굳게 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오늘은 기도를 대신해서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를 보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알림: 이제 곧 새로운 소임지로 떠나기 이전에 카톡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미 알려드린대로 일단 서울 동반자회원들은 저의 묵상 글을 기존의 김 사욱시몬회장을 통해 <동반자회 밴드>에서, 부산 지역은 양로사자매가 준비한 채팅방에서 받아 볼 수 있습니다. 벳남은 손 영일안드레아 형제와 박미정 루치아 자매에게, 벳남의 수녀님들은 박미숙 수녀님에게 연결해서 받아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부부는 앞으로 한 배우자에게만 보내렵니다. 물론 원하시는 분은 자진해서 차단하셔도 좋습니다. 소임지에 가면 지금과 달리 분주하기에.... 아무튼 예고한 대로 25일까지 개별적으로 보내지만 위에 언급한 그룹은 봉사자들을 통해서 보냅니다. 그 동안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카톡을 통해 함께해서 감사했습니다. 저의 친구가 보내 온 동영상을 통해서 저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