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트란타의 깃(旗)빨 에는 미국의 어떤 대도시보다도 커다란 참사에서 회복된 도시에 잘 어울리는 잿구덩이에서 쏟아 오르는 불사조가 보인다. 1864년 남북전쟁시 연합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도시가 남부에서는 가장 크고 번성하는 도시로 급격히 재건된 것이다.
애트란타 시가 건설된 지금의 죠지아 주는 원래 원주민 체로키 족들이 대대로 고도의 문화강국을 설립하고 살던 곳인데 잭슨 대통령의 원주민 이주정책강행으로 원주민 인디언들을 1837년 “눈물의 행진”을 통해 오크라호마 지역 서쪽으로 강제 추방하고 그 자리에 백인 이민자들을 정착시켜 미합중국으로 확장한 곳이다. 인디언들을 추방한 자리에 1837년 철로선의 종점으로 설립된 이 도시는 원래는 Terminus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1843년에는 당시 주지사의 딸의 이름을 따서 마르다스빌(Marthasville)로 바꾸었고 결국은 1845년에 아트란타로 정착하였다. 1861년 남북전쟁 초기에 아트란타는 4개의 철로가 교차하는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로 남부에서는 가장 큰 철로운송의 중심지였다. 남북전쟁중에 아트란타는 남부연방의 주요 수송센터로 공장이나 농장으로부터 집약된 군수물자들을 전방에 있는 남군에게 열차로 운송하는 중심지였다. 남군의 이러한 군수물자 생산 및 조달능력을 파괴하려고 북군의 윌리암 태쿰쉐 장군(120-1891)은 1864년 9월 2일 “그의 유명한 ‘바다에로의 행진”이라는 전투중에 애트란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화재는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과 영화를 통해 잘 알려졌다(영화 1939) 셔먼의 공격은 애트란타를 검은 폐허로 만들어 버렸지만 이 도시는 재건을 다짐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급속히 과거의 상처를 잊고 그 지역을 재건하려는 소위 남부인 새로운 제네레이션 지지자들에 의해 남부의 수도가 되었다. 전 후 20여년만에 애트란타는 전쟁 전의 인구수를 능가하였고 유명한 코카콜라 회사를 위시해서 수많은 기업들이 애트란타로 몰려들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였다. 2019년 애트란타 주민은 50만 여명으로 미국에서 37번 째 도시이지만 애트란타 메트로포리탄의 인구는 600만으로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인구가 많은 메트로포리탄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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