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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東學과 天道敎의 歷史槪觀
/橫說竪說./조리가 없이 이것저것 되는대로 지껄임.
吾菴東學思想硏究所 運營管理者 金用天
이름 소개 /별도 그림.
用天 → 用天之道/1920년 전후까지 『天道敎會月報』에 게재된 글들에서 여러 번 논의(論議)되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목적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이 시기가 항일운동에 전념하게 됨으로 삶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用天은 天道, 天理, 天命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방도로, 順天命順天理 또는 敬天命順天理를 의미한다. 이때의 용천지도(用天之道 對 無極大道)에서 천은 천,지,인을 수반(隨伴/內在)한다. 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合天與地生萬物-理氣象形./天道無知(心)./天道無親 常與善人/老子,第79章) 어떻게 하면, 잘 생각하는 법과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울까?/진리와 인품(人品/人稟)은 변하는 것인가? 변한다면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不變의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므로, 불변과 변화가 양면이 아니라 둘은 상호내재하고 있다. 점(둥글다)과 선(길다)은 다르지만, 선이 점의 집합이라는 측면에서는 점과 선은 동일한 것이다.
■ 용천지도(用天之道)의 例.
孔子 - 爲己之學과 克己復禮.
孟子 - 遏人慾存天理와 四端(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을 바탕으로 仁義禮智의 인간의 德性을 함양시키려함.
老壯哲學 – 無爲自然/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려는 儒敎와는 달리 脫 世俗的인 傾向을 보이며 道에 대한 철학적인 문답을 주고받는 경향의 道家思想으로 발전하였다.
天道敎 - 水雲 - 侍天主. 海月 - 事人如天. 義菴 - 人乃天.
存天理/遏人慾存天理.
次讀孟子하야 於辨明義理 遏人慾存天理之說 一一明察而擴充之니라.
다음은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분명하게 분별하는 일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梁惠王과 仁治/德治에 대한 문답에서. 이 사상은 발전하여 송대의 주자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어 滅人慾存天理/去人慾存天理 = 存天理去人慾. 朱子의 性理學의 核心이 되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자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Robert M. Pirsig/미국의 철학자)
리차드 도킨스의 일류션에서 ‘만들어진 신’. 크리스토퍼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에 대한 생각은?
아래에 인용한 글들은, 필자가 쓴 여러 편의 연구논문들 중애서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모은 것이다.
무신론(atheism)은 유신론(theism)의 반대개념이다. 유신론은 창조주와 같은 신(神)이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이 세상을 직접 주재하고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무신론은 신의 개입이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 각자는 유신론이 편한지 무신론이 편한지는 개인의 자유선택으로,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고, 결정한 후의 모든 책임은 타인에게 전가(轉嫁)할 수가 없다. 모든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당사자의 무한 책임으로, 그 결과에 승복(承服)해야 한다. -김용천
인간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자각(自覺)했을 때, 성숙(成熟)한 인간(侍天主의 新人間)으로 새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면,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동물 중에 하나일 것이다./개같은 놈, 개만도 못한 놈. 18세기가 산업화로 인하여 19세말부터 ‘人間性喪失의 時代’로 변화되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人間性 回復運動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미래에 대한 不確實性 時代의 到來로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김용천.
인간의 지능(知能)이 발달하면 할수록, 천부(天賦)의 천성(天性)이 흐트러져 변화하게 되는데, 본능적으로 이기적(利己的)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인간의 인지(認知/認識과 知性)는 교육을 통하여 어느 정도 변화를 막을 수는 있으나 멈출 수는 없으므로, 양질(良質)의 교육이냐 불량(不良)한 교육이냐 와 관계없이 그 사람의 인성에 따라 이기적(본능적) 인간이 되거나 이타적(이성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무극대도가 용천지도로 변천하는 것으로, 인간의 분별(分別)로는 변화(變化)라 말하고, 하늘의 이치로는 조화(造化)라 한다. -김용천.
만물(萬物)에 대한 인식(認識)과 분별(分別/미래에 대한 眼目)의 주체인 내가 없다면, 만물의 실재(實在)란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存在 無). 아무리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지상천국이 건설되었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없는 한, 나에겐 추구해야할 세상도 아니요, 신인간(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의 새사람/새인간)이 되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만물도 각각의 독자적(獨自的)인 실재(實在)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가르치려 애를 쓰고, 현명한 사람은 남으로부터 배우려 애를 쓴다. 그러므로 가르치려고만 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과는 인간적인 대화나 소통을 하기 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듣는 사람(聽者)이 말하는 사람(話者)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청(敬聽)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意圖)를 혜아려 보려 한다./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행간(行間)을 읽는다. 이 세상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갈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하고, 타인의 말을 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나는 말하는 사람인가? 말을 듣는 사람인가? 모든 사람은 화자이며 청자인 것이다. -김용천.
東學과 天道敎를 硏究하는 主體는 누구이며, 어떤 方式으로 硏究되고 있는가?
硏究主體
學界
在野/ 일반인과 교단의 교인으로 교단을 대표하지 않는 연구자.
敎團
硏究方法
1. 意味論的인 方法/解析, 解說, 註解./1900년대-현재.
2. 文體論的인 方法/文章構成, 表現力, 技巧力./1960년대 이후.
3. 公示論的인 方法/1990년에 朴塋鶴의 『東學運動의 公示構造』 간행이후. 公示(弘報)方式의 種類는,
/mass communication 大衆傳達.
/information 知識情報. 案內, 報道/big data 大量 統合情報 및 技術.
/message 말씀, 敎訓, 文句, 전갈(傳喝). 等이 있다.
■ 現在 統合的인 硏究者나 硏究結果物이 없음.
韓國人의 特異한 言行의 斷面.
1. 유교문화권에 속한 한국인은 유교적인 사상의 극기복례(克己復禮)에 지나치게 얽매여, 심한 경우에 부정적이며 배타적이거나 적대적인 언행(攻擊性)을 보일 때가 있다. 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중인격자(二重人格者) 또는 더 심하면 다중인격자(多重人格者)로 오판(誤判)할 수는 있는 빌미를 주기도 한다.
2. 朴鍾鴻의 博士學位論文 『否定에 關한 연구』에서의 認知와 無知.
/소크라테스의 I don't know nothing but 1 know I don't know nothing/"I know that I know nothing"
老子의 도덕경 제 71장에 ‘知不知上, 不知知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것이 상책이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어느 누가 병을 오로지 병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병이 되지 않는다. 聖人은 병이 없다. 그 병을 병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
■ 우묵눌(愚黙訥) - 수행의 마음가짐으로, 어리석은 체하고, 침착하게 하고, 말을 조심하라./君子之道./해월의 법설 중에서 1871년 9월 중순에 朴龍傑의 집에서 대인접물과 우,묵,눌의 설법이 있었다.
愚 (어리석을 우) - 어리석다
黙 (묵묵할 묵) - 침묵하다(말없이 잠잠하다)
訥 (말 더듬거릴 눌) - 생각하면서 말을 천천히 하라.
『論語』 爲政篇에 나오는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원문을 보면, 「子曰 由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유(子路)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道德經』 제 68장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與. 善用人者, 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관리를 잘 하는 자는 무위(武威/무력의 위세)를 사용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을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마주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의 아래에 몸을 둔다(謙遜).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 쓰는 능력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과 짝할 수 있는 옛날부터 전해온 지극한 이치라 한다.
3. 메타認知(metacognition) 또는 상위인지(上位認知)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관찰, 발견, 통제, 판단하는 정신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higher-order thinking skills)을 말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메타에서 왔다.
메타(meta-, 그리스어/ μετά→ "뒤", "넘어서", "와 함께", "접하여", "스스로", “위에서”, “초월하여”)는 영어의 접두사로, 다른 개념으로부터의 추상화를 가리키며 후자를 완성하거나 추가하는 데에 쓰인다. 인식론에서 접두사 meta는 "-에 대해서" 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메타데이터는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이다. 메타메모리는 심리학에서 무언가를 회고할 때 이를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아니하는 데 대한 개인의 지식을 뜻한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화자가 하늘이라 했는데 땅이라고 이해한다면 청자의 그 언어는 언어가 아닌 게 된다.
■ 認知와 認識 ?
認知/기본적인 의미는, 어떠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앎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심리학에서는 심리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으로. 지각, 기억, 상상, 구상, 판단, 추리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지적 작용을 말한다./類義語로 認識.
認識/기본적 의미로는,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로. 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물에 대하여 가지는, 그것이 진(眞)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개념. 또는 그것을 얻는 과정을 의미한다./類義語로 認知.
배움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특별한 전략들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메타인지에는 두 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다. 인식에 대한 지식과 인식에 대한 규제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을 뜻한다. 메타인지에 관한 글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두 작품인 『영혼에 관하여/On the Soul』과 『자연학 소론집/Parva Naturalia』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타인지(메타인지 인식)는 세 가지 요소로 분류하고 있다. 메타인지 지식은 개인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인지 프로세서로 알고 있다.
메타인지 조절은 사람들이 학습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하여 얻어진 인지(認知) 및 학습 경험을 조절하는 것이다.
메타인지 경험은 현재의 지속적인 인지 노력과 관련이 있는 경험이다.
메타인지는 학습 상황에서 사용되는 사고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통제를 포함하는 사고 수준을 말한다. 학습 과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이해도를 모니터링하고, 과제 완료를 향한 진행 상황을 평가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메타인지 기술이라 한다. 메타인지는 메타인지 지식을 고려할 때 적어도 세 가지 유형의 메타인지 인식을 포함한다.
선언적 지식 - 학습자로서 자신에 대한 지식과 자신의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선언적 지식은 "세계 지식"이라고도 한다.
절차적 지식 -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높은 수준의 절차 지식을 통해 개인이 작업을 보다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보다 효율적으로 액세스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조건부 지식 - 선언적 및 절차적 지식을 사용할 시기와 그 이유를 아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전략을 사용할 때 자원을 할당 할 수 있다. 이것은 차례로 전략이 더 효과적이게 되도록 한다.
■ 액세스(access) - 원래는 접근, 출입, 접근 방법 이라는 의미로, 정보에 접근하거나 또는 그 방법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억장치에 데이터를 기억시키거나 기억장치로부터 데이터를 얻는 과정. 또는 컴퓨터의 경우 기억된 정보를 꺼내는데 걸리는 시간을 액세스 타임이라 부른다. 그것은 1) 주변장치나 주기억장치(main memory)로 부터 데이터를 검색하는 것 2) 주기억장치로부터 하나의 명령을 꺼내 이것을 실행하는 것. 3) 단말 장치로 부터 중앙처리장치로 데이터의 송수신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하는 것으로, 이에 관해서는 무작위 호출(random access)법과 순서 호출(Serial access)법 등이 있다.
眞實과 人格.
1. 삼성의 이재용의 팁이야기.
2. 선종(禪宗)의 화두(話頭)와 성철(性徹大宗師)스님의 물음.
해인사의 스님이었던 성철스님(1912-1993)의 입적(1993. 11. 4.入寂/불교에서 수도승의 죽음을 말한다. 생사를 벗어나 고요하고 무위(無爲)의 경지에 든다는 것이다./유의어(類義語)로, 멸도(滅度), 열반(涅槃), 입멸(入滅), 입열반(入涅槃), 입정(入定), 귀원(歸元), 귀적(歸寂), 천화(遷化) 등이 쓰인다.)후, 불학(佛學)이나 속학(俗學)에 조예(造詣)가 깊은 학승(學僧)으로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 ’라는 화두를 늘 강조했다는 기사를 보고.
중국 당대(AD.618-907)에 형성된 선종(禪宗)은 일체의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않는 인간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本來心) 곧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그리고 본래심의 지혜와 인격적인 덕성을 일상 생활화하는 가운데 전개(展開)하여 주체적인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려는 당대의 조사(祖師/선종에서 존경받는 스님)들에 의해 새롭게 완성된 생활종교이다.
■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 중생 차원에서는 <남을 속이지 말라>는 의미이고, 둘째, 수행자 차원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에 속지 말아야, 남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마음에 속지 말라는 말은 <번뇌에 속지 말라>는 뜻입니다. 중생들은 번뇌(煩惱)가 뭔지도 모르고, 번뇌가 자신을 속이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요. 1971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던 한 청년이 가장 친했던 친구가 출가해서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에 있다고 하여 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성철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대화 끝에 “스님, 좌우명을 하나 주십시오.”하고 말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큰 스님은 대뜸 부처님께 ‘만 배(萬拜)’를 올리라고 하셨지요. 삼 천 배로 녹초가 된 청년에게 스님이 말씀을 내리셨습니다. “속이지 말아라!” 굉장한 말씀을 기대했던 청년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툭 던지는 스님의 말씀에 실망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와? 좌우명이 그래 무겁나? 무겁거든 내려놓고 가거라.” 그러자 청년은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 그 길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했습니다. 이분이 성철 스님이 입적(入寂)하실 때까지 꼬박 20년을 곁에서 모셨던 ‘원택(圓澤) 스님’이셨습니다. 이 ‘불기자심(不欺自心)’은,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는 성철스님 자신이 평생 잡고 계셨던 화두(話頭)였다고 합니다.
한때 세상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마음’을 속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이었던 ‘임권(任權/1486~1557)’의 좌우명이 ‘독처무자기(獨處毋自欺)’였습니다. 즉, ‘홀로 있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뜻이지요. 이 말도 유교 경전 ‘대학’에서는 ‘신독(愼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역시 홀로(獨) 있을 때 삼가야(愼) 한다.’는 의미입니다./김덕권 시인/기사입력 브레이크뉴스. 2022/05/17.에서.
■ 천축(印度) 출신으로 춘추전국시대 남조 양나라(梁/502-557)의 달마대사(達磨大師/?-528)가 북위(北魏)의 숭산(崇山)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의 면벽수련(面壁修練/坐禪)으로 동토(東土) 중국에 선법(禪法)의 터를 닦았다는 달마 대사는 직관적 깨달음을 통하여 선종(禪宗)의 기초를 닦았고 1대 선사가 되었다. 선종이란 참선(參禪)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종파로. 선종에서 면벽수련을 할 때 화두(話頭/스승이 제자를 인도하기 위해 참선에 들어 갈 때 도를 깨치게 하기 위해서 제시하는 과제를 주는 것을 이르는 말로, 약 1,700여 종이 된다고 함)로 제시되는 것 중에 하나였다.
■ 춘추전국시대(BC 770-221) - 각 제후국들이 약 550여 년간, 합종연횡(合從連橫)을 하여 수많은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1) 춘추시대(BC 770-403) -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제후국들의 힘이 강해져 제후국들은 주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전통과 관습을 만들어 나갔다. 이때 힘을 떨쳤던 다섯 제후국은 제(齊) · 진(晉) · 정(鄭) · 초(楚) · 오(吳) · 월(越)이었다.
2) 전국시대(BC 475-221) - 이때 세력을 떨쳤던 일곱 제후국은 진(秦) · 초(楚) · 연(燕) · 제(齊) · 한(韓) · 위(魏) · 조(趙)로, 이들을 전국 7웅(七雄)이라고 했다. 각 나라의 왕들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키웠다.
수운은 안심가에서
개벽시(開闢時) 국초(國初)일을 만지장서(滿紙長書) 나리시고
십이제국(十二諸國) 다버리고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하네. 라 했고
몽중노소문답가에서는
십이제국(十二諸國) 괴질운수(怪疾運數) 다시개벽(開闢) 아닐런가
태평성세(太平聖世) 다시정(定)해 국태민안(國泰民安) 할것이니
개탄지심(慨歎之心) 두지말고 차차차차 지냈어라. 라 하였다.
3) 제자백가의 시대. - 춘추 전국 시대에는 많은 사상가와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해요. 이때 공자(孔子/BC.551-BC.479
.魯), 맹자(孟子/BC.371-BC.289.鄒),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모두 생몰미상, BC.300년 이전 초나라 사람으로 추정.), 묵자(墨子/BC.468-376.魯) 등의 학자와 유가, 법가, 도가, 묵가 등의 철학이 등장했다.
3. 소크라테스(socrates./BC 470-399)의 너 자신을 알라. 의 진실.
“너 자신을 알라”(그리스어로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으로, 그리스의 여행담 작가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프로나오스(앞마당/아고라)에 새겨져 있는 비명(碑銘)이었던 것이라 한다. 이 경구는 흔히, 다음 6명의 그리스 현자(스파르타의 킬론,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아테네의 솔론 밀레투스의 탈레스) 중 하나의 저작으로 간주된다.
다른 자료에서는 이 격언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인 페모노에의 저작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절제와 자각에 대한 논의인 그의 저작 de caelo(천국으로부터)에서 그리스에 전해지는 다른 경구들과 함께 이 격언을 언급하고 있다. 일설에는 아폴론 신전의 신탁명이라 하기도 한다. 또 일설(一說)에는, 이 말의 원문은, ‘너 자신을 알아서 분수를 지켜라.’로 너 자신을 알라. 는 분수가 있는 삶(동양에선 安分知足)을 살라는 전재조건이었던 것이다.
■ 그리스가 두 번째로 남긴 인문학적 유산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숙고하는 삶'이다. 숙고(熟考)란 '곰곰이 생각함, 깊이 고려함'이란 의미이다. 깊이 생각하고, 오래도록 고찰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들어간다. '깊고, 길게' '검토하는 것'이다. 한문으로 '숙(熟)'자가 '익다'라는 말이고, 고(考)는 '곰곰이, 오래 생각한다.'란 말이다. 그래 어떤 사람들은 숙고하는 삶이란 말 대신 검토하는 삶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nined life is not worth living)."라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인용한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언제나 탁월함에 대해 논하고, 자신과 이웃을 성찰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참 인간이란, 늘 탁월함을 생각하고, 자신과 이웃을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숙고하는 삶이란 다시 말하면 성찰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탁월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탁월함이라는 말이 탁 와 닿지 않는다. 최진석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높은 시선을 지닌다.'는 것 같다.
'탁월(卓越)하다'는 '남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나다'로 사전은 정의한다. 탁월함을 동양적 사유로 말하면, 덕(德)이다. 내가 알기로 '덕'은 도(道)가 실제 삶에 구현된 것이다. 이를 그리스어로는 아레테(arrete)라고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최대로 발현된 것을 아레테, 탁월함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탁월함은 그냥 아무렇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각에게 해당되는 ▪ 짜임새 있는 배열(taxis)-질서 ▪ 올바름(orthotes)
▪ 기술(techne)을 통해서 탁월해 진다고 한다.
탁월함에 왜 질서가 필요한가? 질서에서 절제가 나오기 때문이다. 탁월함은 절제에서 나온다. 좋음(훌륭함)과 탁월함(덕)은 다르다. 탁월함은 'GRIT'에서 나온다. '그리트'란 열정적 끈기의 힘(투지와 기개)에서 나온다. GRIT는 결단력과 용기(determination and courage)이다. 재능보다 노력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공식으로 표현한다. 성취+재능X노력의 제곱이다. 아레테는 어떤 종류의 탁월성 혹은 도덕적 미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이해하면 된다. 고대 그리스 윤리학에서는 참된 목적이나 개인의 잠재된 가능성의 실현과 관계된 최상의 우수성을 가리킨다.
그럼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숙고의 대상은 무엇인가?
▪ 그는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델포이에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탈레스의 '너 자신을 알라(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라는 격언을 보았다. 그는 이 격언을 통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성찰하겠다는 삶의 자세를 다짐한다.
▪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숙고하지 않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인문정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나라면,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소크라테스의 답은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 배우는 자세가 생기고, 죽을 때까지 숙고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숙고하는 삶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 쉽지 않다. 방심(放心)하면, 관성으로 삶이 훌쩍 흘러간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을 묻지 않으면, 우린 자꾸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된다. 그 질문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향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질문을 한 다음에는 그 대답을 모색하는 경험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모색하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살고 싶다./인문운동가의 박한표의 글 중에서 요약.
4. 이승만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의 진실.
이 유명한 말은 벤저민 프랭클린이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에 서명하면서 한 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Join or Die)"라는 제목의 정치 만평에서 온 말이다. 가젯트(gazette/팜플릿(pamphlet) 신문이나 公報)라는 지면에 실린 만평의 그림은, 뱀을 13개 토막을 낸 그림이었다. 이순신, 단합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團生散死)라고 했다.
■‘단생산사(團生散死)’는“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로 우리에게는 꽤 익숙한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한 말로 “사람의 목숨은 기(氣)가 모인 것이니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고 했다.
우리 민족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단생산사(團生散死)'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여해(汝諧) 이순신 장군은 1597년 명량해전 당시 칠천량 해전의 대패로 남은 전선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왜선을 대적할 때, 음력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은 조선 수군에 단생산사의 신념을 일깨워 대승을 거뒀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구절이 하나 있다.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단생산사(團生散死),”로.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다,
『莊子』 外篇 第22篇 知北遊 第1章 01.도를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한다.
人之生氣之聚也 聚則爲生 散則爲死 若死生爲徒 吾又何患 故萬物一也 是其所美者爲神奇 其所惡者爲臭腐 臭腐復化爲神奇 神奇復化爲臭腐.
"사람이 태어남은 氣기가 모인다. 氣가 모이면 태어나서 살고, 흩어지면 죽게 된다. 만약 죽고 사는 것이 집을 옮겨 이사 가는 것과 같다고 본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따라서 만물은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신기하다고 하며 그들에게 추하게 보이는 것을 고약하고 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썩은 것은 다시 신기해지고 신기한 것은 다시 썩습니다.“
5.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의 진실.
1863년 1월, 링컨은 미국의 300만 명에 이르는 노예의 해방을 선언하였다. 7월에 남북전쟁(1861-1865) 중 가장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전쟁 희생자의 영령을 위한 식전이 행해졌다. 이 식장에서 링컨은 남북 전쟁이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government of the people,by the people,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를 주장하였다. 국민의 정부이면서, 국민에 의한 정부이면서, 국민을 위한 정부로, 국민은 국가의 단순한 지배 대상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고 직접 운영하며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의 원전은, 18세기 영국 출신 미국의 저술가이자 국제 혁명이론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1
737-1809년)이 1776년 1월 10일 소책자 하나를 출간했다. 제목은 『상식(常識/Common Sense)』이었다. 50쪽짜리에 불과한 이 소책자가 출간 3개월 만에 12만 부가 팔리고 1년 만에 50만 부가 나갔다. 요지는 간단했다. ‘미국의 독립이 당연하다’는 거였다. 페인은 독립의 당위(當爲)를 이렇게 비유하여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이 책안에 기술된 명구(名句)로 알려져 있다. 독립전쟁의 원전(原典)이라 할 수 있다.
奴隷解放
1. 純祖가 1801년(순조 1)에 왕위에 오르자, 1월 28일에 선왕의 유지에 따라 공노비에 대한 혁파를 하교하여, 관아(官衙)의 하인들의 노비문서를 모두 모아 돈화문(敦化門)앞에서 소각(燒却)하였다./공노비(公奴婢).
2. 수운대신사는 1860년 4월 5일에 동학을 창도한 후, 바로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하녀 2명 중에,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다른 한 명은 수양딸을 삼았다./私奴婢.
3. 남북전쟁이 시작되던 1862년 7월 22일에,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의 초안을 마련하여 1963년 1월 1일에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고든 그레인저(Gordon Granger) 연방군 총사령관이 6월 19일 군사명령으로 텍사스의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효력을 발휘한 지 2년 반 만이었다. 미국 대다수 주들은 그래서 노예해방일로 1월 1일이 아닌, 6월 19일을 ‘Juneteens(June + nineteenth)’의 날로 기념한다./私奴婢.
내가 보는 東學과 天道敎의 歷史槪觀.
東學의 創道부터 天道敎의 現在까지를 돌아봄
1824년 水雲의 誕生以前 - 매년 홍수와 가뭄으로 다수의 기아자(饑餓者)가 생겨 주거지 이동이 심해졌고, 이에다 원인 모를 질병으로 인하여 다수의 廢村現狀이 계속되었다. 이런 현상은 일제식민지하와 6,25동란까지 지속되었다.
1824-1860. 수운이 득도전후에, 국내외 시대조류(時代潮流)에 대한 수운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 西洋之人道成立德 及其造化無事不成 功鬪干戈無人在前 中國燒滅豈可無脣亡之患耶 都緣無他/논학문) 中國(中華)의 沒落. 西敎의 流入.
2. 개같은 왜적놈아 너희신명 둘아 보라(안심가)
3. 함지사지(陷地死地)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고(권학가)/『史記』에 陷地死地而後生/三政의 紊亂 - 조선조의 국가재정의 근간인, 田政(田稅), 軍政(軍布), 還政(還穀)을 말하는 것으로, 壬丙兩亂 이후 더욱 문란해졌다./王家에는 內醫院(典醫院)이 있었고, 百姓에게는 惠民署와 活人署가 있었으나 유명무실했다./1.2항의 인식이 갑오동학혁명에서 기치(旗幟)에 斥洋斥倭로, 백성의 고난이 輔國安民으로 나타났다,
1.2차의 中英戰爭(阿片戰爭)으로 난징조약을 거쳐 북경조약으로 인하여 나라도 모른 채, 두만강하류의 녹전도를 잃었다. 그리고 기아로 인한 이민으로 동북 3성과 연해주의 동포들이 이주하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