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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정상
정토종 행자의 시대감과 사명감
출처 / 순정시대(純淨時代) ⇒ http://cafe.daum.net/sunsujeongto
정종법사 강술, 정전스님 번역
오늘은 우리 정토종행자들의 시대감과 사명감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 개인적으로 여기에 대해 비교적 느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근래 한 동안은 정토법문과 정토종에 관한 일부 문제들에 대해 생각을 했었고, 또 일부 스님들과 연우님들과도 토론한 바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인터넷 상으로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젊다는 점입니다. 칠팔십 대의 노인분들은 인터넷에 대해 비교적 생소할 테니까요. 또 하나는 어느 정도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여 인터넷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젊은 사람이 있으면 현대적 활기가 있고 시대의 숨결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불교의 미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과 함께 정토종행자들의 시대감과 사명감이라는 화제에 대해 교류를 해보고 싶습니다.
정토종을 독립시켜야 한다
(혜정)상인께서 최근에 아주 중요한 두 편의 문장을 쓰셨는데, 한편은 『정토종교장』이고, 또 한편은 『정토종특색』이었어요. 우리(홍원사)의 홈페이지도 ‘정토종선도류’로부터 ‘정토종’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정토종교장』은 가히 우리 정토종이 천년 넘게 발전해온 근본구조·근본기초·근본원리에 대해 전면적인 총결과 귀납을 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아주 강령적인 것으로서 가히 한부의 헌법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토종특색』 중에, 상인께서는 전체 정토종을 네 구절로 표현하셨는데, 매 구절에 네 글자가 있습니다. 이른바:
본원인 칭명으로 범부가 보토에 들어가며, (本願稱名, 凡夫入報)
평생에 과업이 완성되고 현생에 물러나지 않는다. (平生業成, 現生不退)
물론, 자세한 법의는 다른 기회가 생겼을 때 다시 여러분들과 함께 연구 토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상인께서 이처럼 간결하고 분명한 귀납을 해주시고, 그 다음에 또 정토종교장을 쓰신 그 목적은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정토종의 교법과 정토종의 규칙을 독립시키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 이 시대 중생들의 근기와 우리 불교의 발전추세에 순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교 발전의 세 가지 시기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만약 우리 정토종의 시각으로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로 이천여 년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대략 세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 불교 내의 여러 종파들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 불교 내의 여러 종파들이 정토로 회귀하는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 정토종이 부흥하는 시기이다.
1. 불교 내의 여러 종파들이 형성되는 시기
첫째, 불교 내의 여러 종파가 형성되는 시기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부터 쭉 수당시대에 이르러 각종 각파들이 형성되기까지 대략 육백 년의 시간입니다. 종파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부터 생겨난 것으로서, 인도에는 선종·천태종·정토종이 없었습니다. 불교가 종파로 나눠진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지요. 사실 그분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발전의 필연적인 추세이고, 또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일대 진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불교가 인도에서 생겨난 초기에는 석가모니불께서 대기설법을 하셨기에, 서로 다른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모든 경전을 설하신 것을 이른바 ‘팔만사천법문’이라 말하지요. 이는 마치 대의왕大醫王이신 노중의老中醫가 어떤 환자가 오던 간에 맥을 한번 짚고 나면 모든 걸 다 아시고 바로 처방전을 내려주시는데, 환자가 처방전을 따라 약을 지어 먹으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중에 이 대의왕이 돌아가시면서 팔만사천 가지 처방전만 남겨놓으셨어요. 석가모니불이 바로 대의왕이시고, 그분께서 남겨주신 경전이 바로 처방전입니다. 이렇게 많은 처방전이 있지만 대의왕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 후의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이런 처방전을 찾아서 가져가야만 했어요. 대의왕에 대해 매우 존경하고 매우 숭배하여 믿었기 때문에 ‘이 처방전들은 대의왕께서 남겨주신 것이므로, 전부 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의왕께서 내려주신 것이라면 전부 진귀한 보물이라 여겼으니까요. 이런 심정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본인 마음대로 하나의 처방전을 가지고 스스로 복용한다면 약을 잘못 먹을 수도 있겠지요.
따라서 우리 현재 사람들이 만약 입종판교立宗判敎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때로는 이런 관점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 사람은 아직 당나라 이전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를 무엇 하러 분종판교分宗判敎를 하십니까? 석가모니불께서 설하신 경전은 모두 좋은 거잖아요! 모두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므로 우리가 전부 가져올 수 있잖아요!” 이는 마치 “이것은 모두 대의왕께서 내려주신 처방전들이고, 전부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이니, 전부 가져가셔서 드십시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혼란이 생기게 되겠지요.
그래서 불법이 중국으로 전해온 뒤에 조사대선지식들은 이러한 상황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승과 대승에서 전부 공을 말하고 유를 말하고 있고, 서로 다른 경전과 서로 다른 법문들이 각각 다른 근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경전들이 어떤 부류의 근기와 대응하고 어떠한 중생과 대응하며 또 어떠한 수행방법임을 설명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분류하고 귀납하고 정리하고 판별하지 않는다면, 후대의 학자들은 두서를 잡을 수 없습니다.
간단한 비유 하나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백화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 때, 상품들이 모두 진열대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에 분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고자 하는 물건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수학修學하려는 법문을 찾기 위해 부처님의 경전을 펼쳐보면 무량무변하여 팔만사천법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경전들 중에 도대체 어느 경전이 우리의 근기에 적합할까요? 만약에 조사님들의 판교判敎가 없었다면 우리로서는 결택決擇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이른바 조사의 판교란 바로 석가모니불께서 설하신 모든 법을 조사님 자신이 수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신의 방식에 따라 그것들을 분류하고 귀납하고 정리를 한 다음 판별을 하신 것으로서, 그 목적은 후인들이 법문을 결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백화점에 가면 그분들이 분류를 해놓아서 전자제품은 사층에 있고, 복장은 삼층에 있고 식품은 이층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알 수 있겠죠. “아, 내가 식품을 사려면 이층으로 가야겠구나.” 이렇게 되면 아주 명료합니다!
따라서 각종의 판교는 모두 그 필연성이 있습니다.
건물 지을 것을 계획하는 비유――각종의 다른 판교
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판교가 생겨난 걸까요? 이것은 각 종의 조사선지식들이 그분들 자신의 수학修學에 의거하여 인연 있는 경전으로써 인연 있는 근기들을 섭수하고자 서로 다른 각도로부터 석가모니불께서 설하신 일대불교에 대해 일종의 분류와 판석(分判)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 옳습니다! 다만 그분들의 각도가 다르고 착안점이 다를 뿐이었지요.
비유를 하자면 마치 건물 한 채를 지으려고 계획할 때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도로부터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물의 층수구조로부터 설명합니다. “이 건물은 삼층으로 되어 있는데, 일층에 방이 몇 개 있고 계단은 어디에 있으며, 이층·삼층은 어떻고……” 그가 이렇게 해석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각도로부터 설명하지 않고 건축자재로부터 설명을 합니다. 그는 이 건물을 지으려면 어떤 사이즈의 철근·시멘트·목재·인테리어자재 등등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맞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외의 각도로부터 이 건물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시공할 것인가를 분석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설명입니다. 이러한 갖가지 설명들은 서로 간에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치중하는 점이 각각 다릅니다.
정토종의 판교입장
우리 정토종의 판교는 어떤 입장에 서있을까요? 정토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분석은 모두 맞습니다. 건물의 층수구조와 방사의 배치로부터 설명을 하든, 아니면 건축자재와 시공방안으로부터 분석을 하든 모두 정확합니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당신에게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돈이 없다면 이런 자재를 살 수 없을뿐더러 건축 상의 배치를 말할 수도 없고 공사 기일의 이르고 늦음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의 말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만 의미가 있을까요?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 이 건물에 입주할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겠지요.
정토종을 제외한 성도문의 여러 종파들은 모두 자력으로 수행하는 법문에 속하는데, 곧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해탈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방금 말씀드린 건물을 짓는 것처럼 자신이 돈을 벌어서 건축을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문의 여러 종파들에 대해 정토종에서는 그들의 높낮이와 우열에 대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정토종은 어떤 입장에 서있을까요? 말하자면 비록 나 본인은 건물의 층수구조와 건축 자재 등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누군가 이 건물을 다 지어놓고 나에게 입주하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토종입니다!
정토종은 바로 아미타불께서 불과와 수행, 그리고 생사해탈을 전부 다 완성해놓고서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이 정토종의 입장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정토종의 판교와 각종파의 판교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문과 정토문의 분판
방금 말씀드렸듯이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에 육백년의 시간을 거쳐서 중국불교의 일대 특색인 종파불교가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중국불교의 특질로서 인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또 설명해야 할 점은 각종파마다 다른 이유와 각 종파를 형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인데, 이는 그들 자체에 각자의 특질과 특색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선 뒤섞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약에 정토종의 각도에서 본다면, 선종·천태·화엄 등에 대해 자세하게 그들 각종파의 특색을 분별하지 않고 그들을 똑같은 성도법문, 자력수행의 법문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느 방면으로부터 정토법문과 기타 법문을 구분할까요? 주로 정토법문은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지하고 기타법문은 자신의 수행력을 의지하는 것으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분류가 있은 뒤에 우리 후대의 학인들은 아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선정을 닦고 공을 관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의 수준에 알맞은 법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분판(分判:분별하여 판석함)이 있음으로써 우리의 마음속에는 희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을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알맞은 법문입니다.” 따라서 교판이란 우리들이 법문을 결택하는데 있어서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난이이도·자타이력·성정이문
정토종을 위해 온전한 교판체계를 세워주신 분이 바로 선도대사님이십니다. 최초로 정토종의 교판사상을 제기하신 분은 담란대사님이셨죠. 대사님은 난행도와 이행도·자력과 타력으로써 일대 불교를 분판하시면서 우리 정토종은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을 의지하는 타력·이행도라고 설명하셨지요.
이어서 도작대사님이신데, 대사님은 일대 불교를 정토법문과 성도법문으로 분판을 하셨습니다.
도작대사님의 분판은 마땅히 비교적 계통화系統化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담란대사의 분판은 근본입장에 서서 왜 다른 법문들이 난행도이냐면 자력을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도작대사님은 정토법문을 말씀하실 때, 아미타부처님의 제18원을 들어서 이른바 타력이란 바로 아미타부처님의 제18원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라 설명하셨습니다.
선도대사의 교판: 요홍이문
이상의 분판은 여전히 하나의 큰 틀이었습니다. 따라서 왜 선도대사님의 교판체계가 비교적 엄밀하다고 말하겠습니까? 그것은 선도대사께서 다시 정토종의 교판을 가지고 진일보하여 온전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도작대사님의 성도와 정토에 대한 분판을 계승하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토문 내에서 다시 요문과 홍원문으로 분판을 하셨기 때문이지요.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을 의지하여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는 부르는, 이러한 왕생의 방법을 홍원이라 부르고, 정선과 산선 같은 온갖 선을 누적하여 회향하여 왕생을 염원하는 방법을 요문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선도대사님은 도작대사님의 성정이문판聖淨二門判의 기초위에서 정토문의 내부로부터 다시 세부적으로 방편요문과 진실홍원을 판별하셨는데, 이것은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단지 큰 틀에서 성도문과 정토문만 판별한다면 성도문의 근기에 대해 그들로 하여금 단번에 전수염불로 들어오도록 하기엔 역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선도대사님의 이러한 세판(細判:자세히 판별함)은 성도문의 행자들을 위해 하나의 계단을 마련해 주셨는데, 비록 그들이 단번에 꼭 전수염불로 들어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당장에 본래 하던 수행을 버리지 않으면서 정토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본래 참선을 하던 사람이라면 당신은 계속해서 참선을 하시면서, 당신의 참선공덕을 회향하여 정토왕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지관수행과 독경 등의 여러 가지 법문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이렇게 회향하여 왕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주 순조롭게 정토법문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요문의 작용입니다.
물론, 요문은 여전히 방편에 속하여 아미타부처님의 진실한 본회는 아닙니다. 요문으로 들어오고 나서 진일보하여 방편으로부터 진실로 인도하여 들어가고, 그들을 요문으로부터 홍원문으로 들어오도록 인도해야 하겠지요.
마치 어떤 사람이 높은 누각을 오르려하는데 한 걸음에 올라갈 수 없어서 중간에다 계단 하나를 설치해 놓으면, 그러면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자력으로만 감당해야 했던 성도문으로부터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의지하고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홍원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선도대사께서는 요문이라는 하나의 계단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 자체도 선도대사님께서 마련한 게 아니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관경』 속에서 개설하신 것으로서, 이른바 13정관과 삼복구품이었습니다. 다만 앞 사람들이 체계적인 교리상의 분판을 하지 않으셨기에 선도대사께서는 그것들을 요문으로 귀납을 해버린 것입니다. 이른바 ‘선도화상만이 홀로 부처님의 바른 뜻을 아셨다’는 말씀처럼 선도대사님의 고묘高妙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요문이 있음으로 인해 성도문의 근기에 대해 그들을 섭수하는 방편이 있게 되고, 홍원문으로 이끌어 들이는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승진할 수 있는 계단이 생기게 되었기에, 수많은 중생들의 근기를 정토법문 속으로 섭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도대사의 행판: 전잡이행
정토신앙은 선도대사님의 시대에 이르러 온전한 체계가 갖춰져서 정토종을 형성하게 됩니다. 선도대사님에게는 이러한 요문과 홍원문의 교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수행방면의 행판行判도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정행과 잡행입니다. 홍원문의 행법은 전수염불을 하는 정정업이고, 요문의 행법은 공덕을 쌓아서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으로서 바로 이른바 잡행잡수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행법에 상응하여 두 가지 이익이 있는데, 잡행을 하는 사람은 왕생하기가 어려워서 백 명 중에 한 두 명도 드물고, 천명 가운데 세 명 다섯 명도 드물며; 전수염불을 하면 왕생이 쉬워서 열이면 열 명, 백이면 백 명이 왕생합니다. 이처럼 선도대사께서 완비된 교리체계를 구축하셨기에 정토종의 집대성자로 공인받는 것입니다.
2. 제종이 정토로 회귀하는 시기
이어서 당나라 말기 이후부터 쭉 내려와서 청나라 말년·민국 초년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을 거치면서 중국불교는 제종(諸宗:모든 종파)이 정토로 융합되고 회귀하는 그러한 역사적 시기로 진입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판교가 있었기 때문에 각 종파의 특색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이어서 상호간에 교의를 천명하고 해석할 때 피차간에 교차가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마치 방금 드린 비유에서 건물의 층수와 구조를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건축자재를 말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건축자재를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시공방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각 종파의 교의敎義 사이에는 융통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난 것이고, 비록 융통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각 종파의 입장에 서서 여전히 본종의 해석방법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중생들의 근기가 점차적으로 어둡고 둔해져서 각 종파의 조사선지식들은 모두 한결같이 정토로 인도하였고, 잇달아 본종의 인연 있는 신도들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인도하셨지요. 예컨대 천태종의 지자대사님 같은 경우에는 『관경소』『아미타경의소』『정토십의론』등을 지으셨는데, 천태의 교리로써 정토를 해석하셨고, 최후에는 길상와吉祥臥의 자세로 서방정토에 왕생하셨습니다. 화엄종의 4조이신 징관대사님께서도 『관경소』를 지어서 정토신앙을 선양하셨고, 선종의 수많은 조사대덕님들께서도 모두 정토법문을 제창하셨으니, 송나라의 영명연수대사님 같은 경우 연종의 6조로 존중받았고, 동시에 그분은 선문 법안종法眼宗의 3조이기도 하셨습니다.
제종의 회귀가 정토법문을 장대 시켰다
이렇게 되다 보니 어떠한 추세를 형성했을까요? 바로 모든 종파가 정토로 회귀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회귀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토법문을 신속하게 장대壯大 시키고 왕성한 기세로 발전시켰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수많은 지류들이 장강에서 합류하면서 강물이 아주 넓게 변한 것과 같습니다. 선종의 조사님들께서도 염불을 말씀하시면서 “수행은 염불이 온당하다”고 하셨고, 천태종에서도 염불을 말하면서 “교학은 천태를 따르되 수행은 정토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며, 『반야경』을 공부하는 스님들께서도 “교학은 반야를 따르되 수행은 정토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고, 『화엄경』을 공부하는 스님들께서도 “교학은 화엄을 따르되 수행은 정토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으며, 남산 율종에서는 계율을 홍양하며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시지만 역시 “수행은 정토로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각종 각파의 선지식들이 모두 인연 있는 중생들을 서방극락세계로 되돌아가도록 인도하셨기에 정토문이 굉장히 보급되고 굉장히 광대해진 것입니다.
현재 모두들 다 같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다들 모두 똑같은 인식과 지견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바로 모든 종파의 회귀가 정토법문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종의 회귀가 정토의 종지를 흐려놓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말한다면 제종의 회귀도 역시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정토종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정토종’이라는 개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들 아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토법문이 이렇게 발전되었는데, 어떻게 정토종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토법문’과 ‘정토종’ 이 두 가지 명사가 대표하는 함의에 대해 일반 신도님들은 그다지 구별을 하지 않고, 심지어 수많은 스님들조차도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정토법문이 바로 정토종이고 정토종이 바로 정토법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실 교리의 분판으로부터 말한다면 엄격한 구분이 있어서 법문과 종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종’은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이후에 형성된 일대 특색이어서 중국에만 있고 인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법문’은 그렇지가 않아서 인도에서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 8만4천 법문을 설해주셨기에 ‘법문무량서원학’이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종도 무량하게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중국에는 8대종 또는 10대종이 있었기에 종은 아주 적습니다.
종은 조사님들께서 창립하신 것이고, 법문은 석가모니불께서 드러낸 것이기에 근원이 다릅니다.
물론, 조사님들께서 종파를 창립하신 것 역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에 의거한 것이기는 하나, 아무튼 그것은 조사님들께서 창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법문은 굉장히 많아서 이른바 8만4천이나 되지만 종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나아가 종은 모든 법문에 대해 분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문자체에서, 예컨대 ‘나는 정토법문을 닦는다’, 혹은 ‘나는 참법을 닦는다’, 혹은 ‘나는 좌선을 한다’, 혹은 ‘나는 지계를 한다’고 말할 때,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수행하는 법문들입니다. 법문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법문마다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당신은 당신대로 배우고 나는 나대로 배우므로 피차간에 분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이 형성되고 나면 다릅니다. 종사(종파를 창건한 조사)께서는 석가모니불께서 설하신 모든 법문에 대해 분판을 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신의神醫가 남겨 둔 약방에 대해 분류를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약방들은 전염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이 약방들은 뼈와 관련된 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이 약방들은 무슨 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따라서 종은 모든 법문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리 있는 분판을 함으로써 본종의 종지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문자체는 분산되어 있는 것이고 각자 근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만약에 정토종이라는 관념이 없다면, 그가 정토법문을 배우는데 있어서 마음속에 자신이 없게 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느 것이 맞습니까? 왜 이렇게 해야 하고 왜 저렇게 해야 합니까? 실상염불도 염불이고, 관상觀想염불도 염불이고, 관상觀像염불도 염불이고, 지명염불도 염불이며, 석가모니불께서 설하신 삼복을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는 것을 포함해서 이런 것들 역시 모두 정토법문인데, 이런 것들을 정토법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기만 하면 아미타불을 신앙하는 정토법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종이 정토로 회귀하면서 당연히 각자의 교리로써 정토를 해석하였기에 이로 인해 정토법문에서 여러 가지 색깔이 잇달아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참선을 좋아하고 당신은 독경을 좋아하고 그는 다라니를 좋아하므로 전부 그것을 회향하여 왕생을 구하고는 있지만, 왜 좋아하는지를 모르고, 어떤 방법이 왕생의 정인인지는 더욱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정토종이라는 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왕생하는 일은 개인의 기호에 따르는 게 아니다
왕생을 하는 일은 개인의 기호에 따르는 게 아닙니다. 마치 환자가 약을 먹을 때 의사의 진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정해서 “내가 병이 나서 이 약을 지으러 온 것은, 내가 이 약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약의 포장이 보기 좋고 이 약의 맛이 달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당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불법의 수행으로부터 말한다면, “내가 이 법문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회향하여 왕생한다”는 것은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가 아니고 또한 여법하지도 않습니다.
종에 대한 관념이 생기고 나면 우리는 엄격한 분판이 있게 되므로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의사선생님이 당신에게 무슨 약을 주면 무슨 약을 먹어야지 환자 자신의 기분을 따르는 게 아닌 것과 같습니다.
각 종파의 조사님들은 의사의 직책을 이행하며 석가모니불의 이런 약방들을 가지고 분판을 하시어 어느 종류의 약방이 어느 부류의 중생과 대응하는가를 변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분판의 이론원칙에 의거하여 종이 형성된 것이지요.
정토종의 입장에서서 염불을 선택하다
네 가지 염불을 말할 때 왕왕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왜 염불을 하냐고요? 저는 깨닫고 싶어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염불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관상을 하고 싶지만 관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염불을 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제가 깨달을 수 있다면 저는 깨달음을 얻으러 갈 거예요” 마치 어쩔 수 없이 칭명염불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정토종의 관점에서 본다면 설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하더라도 깨달음을 자본으로 삼지 않고 또한 깨달음을 칭명보다 수승하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칭명을 가장 수승하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게 바로 정토종 교판의 입장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왜 설사 깨달음을 얻었다하더라도 여전히 칭명염불을 할까요? 왜냐하면 깨달음은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에서 선택하신 왕생의 방법이 아니고, 아미타불의 명호야말로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선택하신 극락왕생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무량수경』에서 법장비구의 제18원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만약 내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기뻐하며 나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내지 십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정토종의 이러한 분판이 있은 다음에 법문선택의 조리는 매우 뚜렷해집니다. 남들에게 염불을 권장할 때도 증거가 아주 확실하여 ‘네가 옳네’‘내가 옳네’라며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문에는 높고 낮음이 없어서 당신도 옳고 나도 옳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삼복을 닦아서 이를 회향하여 왕생하는 것도 역시 정토법문이어서 우리 모두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선도대사님의 정토종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당신이 닦은 것은 요문에 속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미타부처님의 ‘내지 십념으로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본원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순하지 않으므로 요문에 속하고 잡행에 속하여 왕생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경전의 증거가 있고 조사님들의 해석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승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요.
우리 자신이 정토법문을 수학할 때, 이럴 때는 자신의 지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래도 잡행잡수를 좋아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왕생을 더욱 좋아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잡행잡수를 매우 좋아하기는 하나, 만약에 왕생할 수 없다면 역시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목적은 왕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정토종의 일향전념의 도리를 안다면 우리는 자신의 지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튼 정토종의 건립은 우리가 법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아주 도움이 됩니다.
제종에서 해석한 정토
정토법문이 중국에서 천여 년을 거치면서 각종파의 관점들이 스며든 이후로 비록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이 각 종파로 보급되기는 하였으나, 선도대사님의 교판사상이 중국본토에서 실전失傳되었기에 이 부분의 역사에 대해 마땅히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선도대사님의 『관경소』『관념법문』『법사찬』『반주찬』『왕생예찬』, 그리고 담란대사님의 『왕생론주』와 도작대사님의 『안락집』 등등이 당나라 말엽 이후로 전부 중국에서 실전되었다가 민국초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으로부터 중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따라서 천여 년의 시간 동안에 정토법문은 있어도 정토종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토종의 특색이 매몰되고 상실되었으니까요. 따라서 정토법문의 수행자들은 왕왕 전부 선종·천태종·화엄종의 관점으로 정토를 해석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똑같은 문제를 놓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게 되었고, 나아가 각자 근거가 있게 되었지요. “여기에 경전의 증거가 있어요! 어느 어느 대덕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수학하려는 사람들은 왕왕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중생들의 근기로는 요문과 계합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천년의 역사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과거에, 옛날 사람들은 근기가 비교적 맹리猛利하였기에, 만약에 이런 요문의 수행방법을 의지한다면 설사 명확한 교문의 분판이 없다하더라도 역시 겹겹으로 에워싸인 포위망을 뚫고서 탈출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락될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 요즘 시대에 현대인들의 근기는 더욱 졸렬하고 번뇌 역시 더욱 두터워졌습니다. 만약에 여전히 이처럼 애매모호한 정토법문의 관념(법문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어떻게 수행하든 간에 모두 회향하여 왕생할 수 있다)을 의지한다면, 우리로서는 결택을 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한 시대와 근접해 있고 중생들의 근기와 근접해 있는 해탈법문을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정토종 관념의 회복은 대세의 흐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전祖典의 회귀
저는 아미타부처님께서 너무나 자비로우시고 확실히 부처님의 눈은 걸림이 없으셔서 중생들의 근기가 성숙하였다는 것을 관찰하셨기에 백여 년 전에 선도대사님의 저서들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 하나의 큰 사건입니다. 이 큰 사건은 불교가 두 번째 시기에서 세 번째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시기에서는 제종이 정토로 회귀함으로써 정토종의 특색이 매몰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치에 밝지 못하게 되었지요. 선도대사님의 저서의 회귀는 교리방면으로 명확하게 정토종을 독립시키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연지대사·우익대사·인광대사가 노력한 방향
명나라 말기의 연지대사님과 우익대사님, 그 뒤로 다시 인광대사님에 이르기까지 이 세분의 조사대덕들, 그분들이 노력한 방향은 모두 정토법문이 제종에 혼융되어 본래면목을 상실하기에 이른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정토종을 독립시키고자 각 종과 비교를 하실 때, 정토법문의 초월성과 수승함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연지대사님의 『미타소초』가 바로 이러한 출발점이었지요. 그러나 우리 후인들이 봤을 때 역시 쉽게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익대사님의 『미타요해』에서도 이 같은 뚜렷한 경향이 있었는데, 비록 천태의 교판을 사용하셨으나 천태교리의 틀을 돌파하셨습니다. 예컨대 천태에서는 사토의 분판을 말하지만 우익대사님은 이 사토에는 횡사토橫四土가 있고 수사토竪四土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사토란 바로 자신의 수행의 경계·공행의 깊이에 따르는 것으로서, 만약에 혹업(번뇌)를 끊지 못하였다면 범성동거토에 태어나고, 만약에 아라한이 되었다면 방편유여토에 갈 수 있으며, 무명을 깨트렸다면 실보장엄토에 가게 되고, 부처님은 상정광토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사토입니다. 동시에 대사님께서 또 횡사토를 말씀하셨어요. 범부로서 번뇌를 끊지 못하고 범성동거토에 왕생하는 동시에 세 가지 불퇴三不退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른바 행불퇴行不退·위불퇴位不退·염불퇴念不退입니다. 그다음 범성동거토에서 당장에 바뀌지 않고서도 사토로 융합해 들어가서 부처님과 같은 수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사실상 이미 천태에서 자력에 의지하여 수사토를 달성하게 되는 그러한 관념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돌파가 있기는 하나 어쨌든 우리로 하여금 조금 동떨어진 얘기 같아서 그다지 뚜렷하지도 않고 그다지 통쾌하지도 않게 느껴지므로, 선도대사님의 말씀처럼 “범부가 보토로 들어간다!凡夫入報” 왜 그런가? “부처님의 원력에 올라탔기 때문이다(乘佛願力)”는 것과 같지가 않습니다.
왜 우익대사님은 이 정도까지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대사님께서 선도대사님의 사상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원력을 타고 범부가 보토에 들어간다’는 점을 지적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천태종의 틀 속에는 이러한 사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이런 조사대덕님들께서 정토종을 독립시키고 분명하게 밝히려고 하셨으나, 유감스럽게도 유력한 교리기초를 만나지 못하셨던 것이지요.
인광대사님께서도 『문초』 속에서 거듭 강조하신 것이 바로 정토법문은 특별법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특별법문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이 법문은 제종의 법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광대사님께서 ‘특별법문’이라는 이 명사를 말씀하신 자비심이 바로 정토종을 독립시켜서 제종의 사상이 혼재되어 있는 선정과 지혜의 색깔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었으니, 이른바 ‘입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마음이 산란하다면 목이 터져라 불러도 헛수고다’‘염불이 만약에 청정심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왕생할 수 없다’는 것들입니다.
일반적인 정토학인들은 왕왕 이러한 성도문 타 종파의 관점·일반법문의 관점으로써 정토의 수승한 이익을 판단하고 있었지요. 인광대사님께서는 이처럼 애매모호하고 사람을 그르치는 정토수행의 관념들을 바로잡는데 주력하여 정토법문은 특별법문임을 거듭 강조하시면서 “일반법문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일반법문의 교리로써 논판論判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정토법문과 제종의 법문을 분리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인광대사님께서 하신 일은 그분의 출현이 바로 이러한 역사의 인연을 완성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사님께서 재삼 이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선도대사 정토사상의 시대적 의의
이 점만 갖고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왜 여전히 부족할까요? 그 이유는 현대인들의 지견이 매우 번잡하여 만약에 하나의 체계적이고 조리분명한 이론구조가 없다면 아마 소수의 사람들만 이러한 인도로 인해 정토종으로 들어올 수 있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제가 예전에 『인광대사문초』를 봤을 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떨 때는 아주 쉽게 느껴지다가도 어떨 때는 또 아주 어렵게 느껴지는데 여전히 갈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선도대사님의 정토사상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달라졌지요. 왜냐하면 선도대사님은 엄격한 교판체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한 걸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상인, 혜정법사님의 출현이 바로 선도대사님의 이처럼 온전한 정토종의 이론구조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선도대사님의 이런 이론구조는 정토종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사실상 전체 불교를 위해 튼튼한 기초를 건립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전체 불교에서 8종이든 10종이든 간에 말법시대에 이르러 만약에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번뇌를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생사해탈을 해야 한다면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들 정토로 회귀하면서 “정토종, 우리 모두 당신을 의지하겠습니다!”고 말한 것인데, 만약에 정토종에서도 “아!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고 말한다면, 이는 마치 남들이 길을 물으면서 “우리는 길을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몰라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의지하겠습니다!”고 말하는데, 만약에 당신도 “저도 안 됩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되면 모두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각 종파들이 모두 정토종을 의지하는데 만약에 정토종 자신마저도 교리의 분판방면에서 또 명확하지 않다면, 예컨대 “당신들은 나를 의지해야 하지만 나 역시 당신의 원만한 계정혜를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되면 법이 근기와 맞지 않아서 중생들은 해탈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 정토종을 반드시 온전하게 독립시켜서 불법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건물 한 채와 같아서 이 건물에 다섯 개의 기둥이 있는데 사방에 각각 한 개씩 있고 중간의 기둥 하나가 주가 됩니다. 그런데 현재는 네 개의 기둥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약해져서 차츰차츰 기울어져서 중간에 있는 이 중심이 되는 기둥을 의지하게 됩니다. 중간에 있는 이 중심이 되는 기둥이 만약에 “나도 버틸 수 없습니다!”고 말한다면 이 건물은 무너지고 말겠지요. 중간의 이 주 기둥이 바로 정토종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정토법문이 아니예요) 왜냐하면 법문을 말한다면 높고 낮음이 없어서 다들 거기서 거기이고 각자 자신의 기호와 자신의 근기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을 말한다면 다르지요. 종은 모든 법문에 대해 하나의 분판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어느 것이 높고 어느 것이 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당신이 성도법문의 근기여서 계정혜를 원만히 닦아 번뇌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생사해탈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수행하셔도 됩니다. 만약에 이러한 근기가 아니라면 당신은 정토종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고요? 아미타불의 원력을 의지하면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교판이론입니다. 교리의 근거가 있고 경전의 근거가 있으므로 우리 모두 매우 명확해집니다.
3. 정토종의 부흥시기
불교가 천여 년의 역사 과정을 거쳐서 오늘 날 우리의 이 시대에 이르렀는데, 정토종의 입장에 서서 말한다면 세 번째 시기, 즉 정토종이 부흥하는 시기로 접어든 것입니다. 정토종이 만약 부흥하지 않는다면 정토왕생을 염원하는 행자들은 방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선도대사님의 정토사상을 접하지 못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모두 막연하여 자신이 없게 되는데, 이것은 눈앞에 놓여있는 현실입니다. 만약에 이 점마저도――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희망마저도 실현될 수 없다면, 그럼 불교에 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정토종이 부흥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전체 불교의 흥망성쇠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시기를 총결하며 불조의 자비에 감사하여 마음에 새기다
역사를 알면 미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종의 형성, 이것은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된 이후로 필연적으로 걸어야 할 첫걸음으로서 이 첫걸음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많은 경전들이 있는데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따라야 합니까? 어떻게 결택해야 합니까? 따라서 필연적으로 불교 내의 제종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첫 번째 시기였습니다.
시대의 변천을 따라서 중생들의 근기는 갈수록 어둡고 둔해져서 성도제종으로는 갈수록 증득하기 어렵게 되었지요. 불법의 수행은 필경 법이 근기와 상응해야 하므로, 그래서 두 번째 제종이 정토로 융합하여 회귀하는 시기로 진입하게 되었는데, 제종이 선종으로 융합하여 회귀하고 천태종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라 정토로 회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회귀는 단지 정토법문으로 회귀한 것일 뿐, 정토종으로 회귀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 종의 교판이 다르기 때문에 정토종으로 회귀하기란 매우 어려웠던 것입니다. 정토법문으로 들어온 뒤로 하나하나 재편성을 하고, 재편성을 하고 난 이후에 다시 정토종의 틀 속에서 새롭게 귀납과 정리를 하여 왕생의 정인을 확립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역사적 안목으로 불교가 중국이라는 이 땅위에서의 발전을 본다면,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원력의 구제와 역대 조사스님들의 자비심의 교화를 확실하게 체현하였다고 느껴집니다. 우선은 각 종파를 형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일대 불교에 대해 결택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어서 정토로 회귀(이때는 선도대사님의 사상이 잠시 은몰되었지요)함으로써 ‘정토법문은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다’고 하였으며, 그 다음에 선도대사님의 사상이 다시 드러나서 제종이 정토로 회귀하는 이러한 역사적 발전추세를 어어 받아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가 정토종을 독립시키고 정토종의 교판사상을 드러내며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의 특질을 드러낸 것이지요.
해를 향한 화목이 가장 빨리 봄을 만나다
따라서 이 시대에 혜정법사님께서 우리를 위해 드러내신 선도대사님의 교법을 만난 것은, 가히 ‘해를 향한 화목이 가장 빨리 봄을 만나고, 물가에 있는 누대에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밤은 보름이어서 바깥에서는 밝은 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물론 현재 날씨는 비교적 춥습니다) 만약에 봄날이었다면 봄바람이 버들나무가지를 어루만지고 있을 텐데 우리는 작은 의자 하나를 가져와 호수 가운데 있는 정자에 앉아서 명월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겁니다. 물가에 있는 누대에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치거든요.
시대적 인연으로 인해 우리는 선도대사님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상인께서 우리를 위해 홍양하시는 정토종을 만날 수 있었기에 정토종이라는 ‘종’의 관념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명확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심이 백배하고 책임이 중대하다
우리 연우님들, 특히 홍법에 뜻이 있는 법사님과 연우님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 명확한 인식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만 중생들을 인도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 확신이 서게 됩니다.
더 나아가, 불교역사의 변천으로부터 보나, 시대와 중생들의 근기로부터 보나, 정토종의 부흥에 대해 우리는 신심이 충만하고, 이로써 불교의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는 신심이 충만합니다. 기왕 제종이 정토로 회귀한 이상, 정토종은 반드시 부흥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책임이 중대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습니다! 이른바 ‘성인의 가르침이 쇠퇴함을 참을 수 없고, 중생의 괴로움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먼저 법문의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 같이 이러한 사명감을 형성한다면, 그렇다면 정토종의 흥성에 대해 중생들의 해탈에 대해, 그것이 바로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인 것입니다.
새싹이 봄을 알리는 비유――정토의 봄날, 중생의 희망
그래서 저는 이런 비유도 자주 합니다. 예컨대 엄동嚴冬이 지나고 봄날이 도래했을 때, 비록 이른 봄이어서 여전히 산과 들판에 백설이 애애하지만 그 백설을 파헤쳐 보면 아주 연한 파란 새싹을 볼 수 있습니다. 설사 아주 부드러운 파란 새싹 한 포기라 하더라도 그것은 봄이 도래하였음을 나타냅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한분 한분마다 사실상 모두 아미타불이란 보리수 위에 돋은 하나의 새싹들입니다. 과거에 애매모호했던 관념들로 인해 삼도육도三途六道에서 윤회하던 괴로운 엄동설한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현재는 아미타부처님의 봄날극락의 봄날이 이미 도래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정토종의 홍양에 있어서 매우 큰 공간이 있을 것인데, 이것이 중생들의 희망입니다.
제 기억에 한번은 상인과 전화통화를 할 때(십년 전의 일입니다), 상인의 말씀은 저로 하여금 내심 매우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상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이 법문, 선도대사님의 정토사상은 이 시대 중생들의 유일한 희망입니다!”고 하셨는데,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 당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굉장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중생들에게는 확실히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해보더라도 불교의 이런 대세는 육백 년의 제종의 형성과 천 삼백 년의 제종의 정토로 회귀, 그리고 미래의 말법 만 년이 바로 정토종이 부흥하는 시기입니다.
우리 이 자리에 계신 한분 한분의 연우님들은 (스님들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죠) 맡은 바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법문의 주지住持를 위해서 어깨위의 짐은 여전히 매우 무겁습니다. 그러나 역시 매우 영광이기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출처 - 純淨時代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