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찾아온 꽃샘 추위 덕분에 오랜만에 속 뜨끈해지는 그 국수가 생각 나 삼각지 옛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다른 소문난 음식도 그러하겠지만, 옛집 국수는 좀 쌀쌀해지거나, 비가 추적 추적 올 때... 등등 유독 생각나는 날씨가 있더라구요. "아....오늘 같은 날씨엔 옛집 국수가 딱이겠다." 싶을 때가 말입니다.
<"국수 전문"이라 써있는 옛집>
저야 워낙에 오래 알고 지낸 집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어떻게 소문이 났나 싶어 검색을 좀 해봤더랬습니다. 그 집 국수 맛있다. 국물이 끝내준다. 등등 맛 자체에 대한 칭찬과 찬사 외에도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어 읽어보았지요.
확실친 않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실리는,좋은 생각 같은 그런 류의 잡지에 소개 되었던 글이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 달랑 탁자는 4개 뿐인...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은 2,000원에 묶어놓고도 면을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더 준다.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B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15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먹고 아내까지 떠나버렸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한끼를 구걸했다.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다보니 독이 올랐다. 휘발유를 뿌려 불 질러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네 국수집에까지 가게 된 사내는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두 그릇치를 퍼 넣은 그는 냅다 도망쳤다.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말구, 다쳐!" 그 한 마디에 사내는 세상에 품을 증오를 버렸다.
단 한 사람이 베푼 작은 온정이 막다른 골목에 서 있던 한 사람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네 마음이 이처럼 따뜻함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 될까요?
두 그릇 공짜로 내어주시고도 급하게 뛰어 도망가는 사나이가 걱정되는 할머니.... 그 옛집 할머니가 오늘도 계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집에 오는 80%가 할머니 단골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손님들이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는 "아이고 왔어? 왜이렇게 오랜만이야~?" 하고 반색을 하십니다.푸근한 할머니의 반가운 인사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옛집에 들어서면서 할머니의 반가운 인사에 마음이 녹고, 뜨끈한 온국수 국물을 들이킬 때면, 나머지 남았던 마음까지 훌훌 녹아버립니다.
옛집 메뉴는 보시다시피, 7가지, 아 그리고 이른 아침 시간에만 드실 수 있는 해장국도 있지요. 제가 처음 옛집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2,000원 하던 온국수가 이제는 세월을 말해주듯 어느새 3,000원으로 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물가를 볼 때, 그래도 너무 싼 가격이라 느껴지지요. 친구랑 둘이서 배부르게 먹어도 만원이 넘지 않으니까요.
오랜만에 친구와 둘이 자리에 앉아 온국수와 비빔국수를 시켰습니다. 저야 옛집에 오면 반/드/시 온국수를 시키구요. 같이 온 친구가 굳이 온국수를 먹겠다 주장하지 않으면 비빔국수를 시키도록 유도를 하지요.ㅎㅎ 둘 다 먹고 싶은 마음에 말이죠. 사실 두 가지를 시켜 나눠먹는게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일 아닌가요? ㅎㅎㅎ
<좀 더 깨끗해지고 확장된 옛집 모습>
아~ 온국수가 나왔습니다. 맑은 멸치 육수 국물에 고명으로 채썬 파와 다시마, 그리고 튀긴 유부를 올렸습니다.
휘휘 저어서 국물을 한 숟가락 입안에 떠 넣으면, 정말 깔끔한 맛입니다. 절대 조미료를 넣지 않은, 입 안에서 저절로 느끼는 깨끗함이죠. 느끼한 맛이 절대 없는 담백한 맛이 목 안으로 술술 넘어갑니다. 뭐가 이렇게 섞여서 이 맛을 낼까? 라는게 아니라, 그냥 멸치 육수와 야채가 만나 풀어내는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여기 다시 국물의 핵심입니다. 원재료 그대로의 맛이 국물 전체에 다 풀어져 나와 국수 면발과 어울리는 그맛. 아마 화학조미료가 생겨나기 전, 우리나라 국수의 맛이 이 맛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보았습니다.
복잡하고 느끼하게 주는 감칠맛이 아닌, 멸치 육수 만이 줄 수 있는 시원한 감칠맛. 왜 천연조미료로 멸치 말린 가루를 쓰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간간히 간이 잘 맞아 국수 면발과도 참 잘 어울립니다.
국수 면발은 꼬돌꼬돌하지도 푹 퍼지지도 않고 국물과 잘 어울려 오물오물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다시 국물이, 이 적당히 익혀진 면발을 감싸서 간간한 맛을 내고 있지요. 면발을 씹다가 국물의 맛이 사라질 때 쯤이면 다시 국물만 한 숟가락 더 떠서 입안에 넣어주면 씹던 면발과 합해져서 기막힌 맛을 줍니다. 또 국수를 먹으면서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집에서 먹는 것 같은 김치를 곁들여주면 자극이 전혀 없는 국수의 잔잔한 맛에 김치로 포인트를 콕콕 찍어주는 느낌이지요.
이래 저래 설명이 길었지만, 단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옛집 국수의 다시 국물은 정말 끝내줍니다. '조미료 맛이 절대 없는 깨끗, 담백한 시원함'으로 말입니다.
친구에게 강제로 시키게 한 비빔국수, 빨간 고추장과 파릇파릇 오이와 나물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하고, 입안에 군침을 돌게 만듭니다.
슥삭슥삭 비벼서 한입 입 안에 넣으면 매콤한데도 자극적으로 맵지 않은 맛이 히안합니다. 게다가 콩나물과 살짝 단무지처럼 달콤하게 양념이 된 무, 오이가 부드러운 면발과 어울려서 씹히는 맛이 독특하고 시원합니다. 찌는 듯 더운 여름날에 비빔국수 한 그릇이면 기분까지 상쾌해질 것 같습니다.
<절대 1,500원이라 믿을 수 없는 속이 알찬 김밥>
<자꾸 자꾸 리필하게 되는 옛집 김치>
친구와 국수 두 그릇을 싹 비운 후, 계산을 하면서 옛집 다시 국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맘씨 좋은 우리 할머니께 애교 섞어 인터뷰를 시도해보았지요.
제가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찰랑소녀 : 할머니~ 이 국수 국물이 진짜 넘 맛있어요. 끝내주는데.... 이거 집에서 하면 절대 이 맛이 안나요, 이거 어떻게 만드는거예요? 뭘 넣고 만들어요?
옛집 할머니 : 아~ 그래요? 우리는 국물 낼 때 딱 네 가지만 들어가. 멸치하고 다시마하고, 파뿌리 있잖아요 그거하고 양파... 요것만 들어가지.
찰랑소녀 : 우와 그것만 들어가도 맛이 이렇게 나요? 조미료는 절대 안쓴거 같아요. 맛이 깔끔한게...글고 재료를 좋은거 쓰시나봐요.
옛집 할머니 : 우리는 절대 조미료 안쓰지, 조미료 쓰면 맛이 배려. 다시 국물은 멸치가 좋아야지. 우리 집 앞에 멸치 다시 국물 빼고 내놓은거 봤지요? 우리는 멸치, 여수에 일년에 한번씩 9월에 직접 가서 좋은 멸치 2,000박스씩 사다가 창고에 넣어두고 쓰지. 여수에 친척이 있거덩. 멸치는 다른데꺼 함부로 사면 안돼. 다 잡탕으로 몰래 섞어서 팔거든... 베트남꺼 뭐 중국꺼 이런거 섞어서 쓰면 안돼. 그런건 맛이 안나.
찰랑소녀 : 와아...그렇구나. 김치랑 이런것들도 진짜 너무 맛있는데, 김치도 다~ 직접 만드시는거죠? 그쵸?
옛집 할머니 : 그렇지. 우리는 가락시장에 가서 배추 300포기씩 사와가지고... 내가 다 직접 가서 보고 좋은거 사오지... 일주일에 한번씩 직접 담가가지고 내 놓지요. 고추도 우리는 해남에 가서 가져오잖아.
찰랑소녀 : 할머니 재료들은 다 직접 가서 사시거나 전라도 쪽에서 가져오시는데, 고향이 그쪽이신가봐요.
옛집 할머니 : 우리 친정이 순천이고, 여수랑 해남에 친척들이 다 살아. 그래서 그쪽에서 가져오지요. 내가 사람들한테 잘 속아,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믿음직한 친척들 한테서 재료를 직접 받아와서 쓰지. 내 혼자 속는 거야 뭐 괜찮지만, 내가 여기서 31년 했는데, 10년 이상 찾아주는 단골이 많아. 우리 단골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번거롭더라도 재료는 믿을 수 있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한테서 가져와서 자연식으로 하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진짜 음식점 하는 사람들은 할머니처럼 해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31년 한자리에서 음식점을 하면서 10년 이상 단골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믿을 수 있는 친척들로부터 최상의 재료를 공급받아 쓰신다는것...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대박 나야겠다...보다는 '우리 단골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이 우선시 되어 지금 옛집의 맛을 유지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구나 싶었지요.
인심 좋은 할머니가 이렇게 다~ 가르쳐 주셔도, 이 국물맛을 다른 가게에서 못 내는건 최상의 재료를 쓴다는 것과 재료의 비율을 맞추시는 할머니만의 노하우가 오랜 세월 쌓여서이겠죠.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기본으로 돌아간 맛, 조미료다 뭐다 절대 안쓰고 재료 그 본연의 감칠맛과 단맛을 다시 국물 안에 이끌어 낸 응축된 맛의 비결은 어떻게 보면 믿을 수 있는 최상의 재료가 기본 베이스가 되었기 때문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단골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최상의 재료를 쓰고 따끈한 국수를 대접하는 그 할머니의 마음이 손님들을 대하는 할머니의 반가운 인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10년 이상의 단골들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손님들로 하여금 따뜻한 국물과 할머니의 반겨주는 따뜻한 인사가 그리워 또 옛집을 찾게 하는게 아닌가 싶구요.
계산을 하고 할머니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국물을 끓여내는 들통을 보았습니다. 아...저 들통에서 감칠맛 나는 다시 국물을 끓여내는구나...하고 희미한 비닐천막 사이로 한컷 찰칵 찍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입구에 자신의 몸에서 온갖 맛있는 감칠맛과 단맛을 다 국물에 빼주고 장렬히 전사한 수많은 멸치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싱싱한 여수 멸치들...ㅎㅎㅎ 좋은 재료를 저렇게 듬뿍 넣었으니 그 군더더기 없이 진하고 시원한 다시 국물이 나오는구나...하며 또 다시 한장 찍었죠.
배부르게 먹고 나서도 더부룩하지 않고 속이 편한 느낌. 이것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최상의 재료로 감칠맛을 내었기 때문이겠죠.
진짜 옛맛...우리가 늘 그리워 하는, 음식 재료 스스로가 내는 원초적인 그 맛을 다시 국물에서 보여 주는 곳. 화학조미료에 찌든 내 입안과 혀를 일깨워 원재료 그대로의 맛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한 그런 순수한 맛을 느끼게 해 주는 곳. 그래서 '맛집'보다는 옛집'이라는 이름이 더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음 번에 가서는 할머니께 왜 '옛집'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한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그러고는 너무 잘 어울린다고 말씀 드려야지요. ㅎㅎ
첫댓글 언젠가 친구 화니님이했던 각지 맛집...'옛집'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내리는 날 꼭 가보고 싶어지는 곳인데요
나 밤 패게 생겼단 말씀이지
저 사진에 나온 남자 중앙일보 전문기자아닌가요? 제가 가르쳤었는데...
김선생님 그래요 반갑겠어요. 저 옛집은 꼭 가보고 싶군요. 제가 먹고 일단 도망쳐 볼께요. 그럼 할머니 쫒아 오시며 " 이봐 학생 기타 가져가야지"
그건 스크랩해온 글이라 잘 모르겠구요 어제 글쎄 명동지기님 아들도 입대했대요..논산훈련소로...입대동기생인데 알고 갔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요 어쩜 한 소대에 배치받았을지도 몰라요
학무님 덕분에 웃고 삽니다
참, 아드님 잘 입소시키고 돌아오셨죠
내
아! 그랬군요. 제 제자도 어제 간다고 했는데 가서 못 만났어요. 비는 오고 사람은 많고 정신이 없더라구요. 어제 하루종일 걸려 갔다와 지금 떡실신입니다.
다 잘들 해낸답니다
요즘은 5주랍니다. 그날 정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서요. 어려울것 같아요.
네, 그럼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해요. 선생님도 항상 건강 조심하시구요
예전에는
무척 허름했는데
많이
깨끗해졌네요.
김밥도
맛있습니다.
삼각지 주변에는
전쟁 기념관, 이태원 거리
국립 박물관이 있으니...
저곳에서
김밥 사가지고
나들이 다녀오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김선생님도 맛집탐방에는 일가견이...
밤에 출출한데 이거보니 배가 더 고프네요. 밤에 먹구 자면 않좋은디....
언능 뱅기타고 나오시구랴욜렛언냐가 저 '옛집'메뉴 몽땅 한 그럭씩....그 정도는 사드릴 수 있다는...
가구 싶어유..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저도 전에 함 가본 것 같기도 하구요...
암튼 좋은 식당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워낙 유명한 집이라 남자분들은 한 두번씩 다 가보셨다 하시더라구요
밀가리 메이드 국시락카믄 치를 떠는 괴기 매니아 아짐께서
몬바람이 불어 국시집엘 다 댕겨왔나 혔더니 → 아니나 다를까.. 으음
밀가리로 맹근 것은 수제비만해를 기억하시능구나...류불문 다 하신다는..단 내가 만들지 않은 음식
나 괴기매니아가 아니고...먹는 건
아전 국수라믄,,사족울 모쓰는뎅 전골먹어도 사리추가..사리추가.... ..
구수한 다시국물처럼..나도 그렇게 구수하게 인심좋은 할매로 늙어가야징
국수 사족 못 쓰시는 분들 많더구만요 밀가루 마이 들어간 음식 먹으면 바로 설사하신다능...
난 혹 엄씨 살던 시절 넘 밀가루에 질렸는 거 아닌가 몰러...
제가겨먹는 잔치국수 거기에 맛있는 김치 한젓갈락은 죽여줘요 ........
옆지기님이 만든 것이시죠 서울 옛집은 옛날 신혼집 향수에 젖어 다음 서울행하실 때 하시구요
나의 신혼집이각지란 것을 어케 알는지 각지엿다우
총각때부터 돌아가는
안즉 지 머리가 쓸만 하다능각지랑 무척 가깝죠이내 친구들은 거의 상명여중이나 용산여중 되구..
나 중핵교 신광여중 나왔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