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생선인데요, 최근 통계를 보면 연간 소비량 1위로 오징어와 고등어, 갈치 등을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며 국민생선의 자리에 등극했습니다.
명태만큼 다양한 호칭을 가진 어류도 없어요. 그 명칭은 지방마다 다르며 가공 방식이나 잡는 방법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기본적으로는 갓 잡아 싱싱한 것은 생태, 꾸덕꾸덕하게 반건조 상태로 말린 것은 코다리, 얼린 것은 동태, 바짝 말린 것은 북어, 겨울철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수없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노릇노릇 말려진 것은 황태라고 해요.
[겨울철 말리는 황태]
건조 정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구성되는 명태 족보의 정점에 있는 것이 황태인데요, 황태는 말린 명태라는 점에서는 북어와 사촌지간입니다. 그러나 북어가 주로 바닷가에서 건조되는 반면 황태는 한겨울에 내장을 제거한 명태를 내륙의 산간지방으로 옮겨서 차가운 바람 속에 냉동과 해동을 수십 차례 반복하는 동결건조(凍結乾燥)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점에서 다르죠.
말리는 과정의 정성만 다른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맛과 가치도 다릅니다. 12월 초겨울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 약 4개월간 밤이면 영하 15도 아래의 추위에 꽁꽁 얼고 낮에는 햇볕에 살짝 녹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황태로 변해요. 마른 후에도 외형은 물에 불린 것처럼 통통하고 윤기가 나며 속살은 누렇고 보슬보슬한 것이 부드럽습니다. 더덕처럼 연하게 부풀어 고소한 맛이 나는 북어라 하여 ‘더덕북어’라 부르기도 해요.
황태를 말리는 덕장은 일교차가 커야 하는 동결건조의 조건 때문에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은 곳을 최적지로 꼽히는데요, 원래 동결건조법은 8·15 광복 전 명태의 주산지였던 함경남도 신포에서 오래 전부터 발달한 것입니다. 더덕북어도 신포에서 나는 최상급 황태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어요.
6·25전쟁 이후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휴전선 부근의 속초 등지에 정착하였는데, 그때부터 고향과 기후 조건이 흡사한 미시령과 대관령 일대에 덕장을 세워 황태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두 지역이 황태의 명산지가 된 유래입니다. 황태를 만드는 과정은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덕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황태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30여 차례나 손이 가야 하는 힘든 일이라고 말합니다. 황태 요리는 다양한데요 해장국, 찜, 전골, 구이, 부푸러기, 볶음, 무침, 냉면 등을 만들어 먹지만 가장 친숙하기로는 역시 황태해장국이 아닐까요? 주당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속풀이 음식이기 때문이죠.
[담백하고 속풀이로 좋은 황태해장국]
황태해장국은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것이 얼핏 보기에 설렁탕이나 곰탕과 비슷하지만 맛은 훨씬 개운하고 담백해요. 황태의 국물은 독소를 해독하는 작용이 뛰어나서 과음한 다음날의 해장에는 그만입니다. 황태에는 메티오닌(Methionine)을 비롯한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간 기능의 회복에도 도움을 줘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근년 들어 우리나라 근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의 베링해 부근에서 잡아온 것이죠. 일찍이 명태가 북해에서 나기 때문에 북어라 이름 붙인 선조의 혜안에 찬사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요? 러시아산 명태라도 강원도 산간의 눈바람을 맞으며 황태로 거듭나는 것이니 그나마도 다행이라 자위해야 할 형편입니다.
인제 용대리의 ‘용바위식당’과 대관령 횡계의 ‘황태회관’은 덕장으로 유명한 두 동네에서 황태 요리로 오랜 세월 이름을 떨쳐온 식당들인데요, 서울에서는 삼성동의 ‘황태명가’에서도 시원한 국물 맛을 볼 수 있어요. 점점 추워주는 겨울, 황태국으로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