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받지 않는 권력, 모든 불평등의 근본원인
대통령 이상의 최고권력 누리는 검찰
금준미주·옥반가효에 취한 오늘의 '변학도'들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
‘메멘토 모리’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의 로마 격언이라고 한다. 개선장군의 행진 때 노예들이 장군이 탄 마차 뒤를 따라가며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고 한다. 지금은 네가 전쟁에서 이겨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 너도 전쟁에서 패할 때가 있을 것이고, 결국은 죽을 운명을 면치 못 할 터이니 지금 너무 기고만장 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알면서도 욕심을 놓지 못하는 인생
그러나 나는 이를 “인간은 모두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뜻으로 읽기도 한다. 죽지 않는 것은 신뿐이다. 인간은 고귀한 자, 천한 자, 부자, 가난한 자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을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뻐기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다. 악착 부리지 말고, 남 괴롭히지 말고, 여유 있으면 좀 나누기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부처 말씀대로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고, 죽으면 공수거-빈손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말씀들이 어디 사람의 귀에 제대로 들리겠나. 게다가 인생은 생각보다 굉장히 길고 매일 매일 귀에 대고 ‘메멘토 모리’를 속삭여 줄 사람도 없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죽어가면서도 눈에 밟히는 자식이 있으니 저마다 “처 자식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살며 기회만 닿으면 남을 괴롭히고 빼앗기까지 하면서 제 욕심을 채우려 한다. 그러다가 돈이 쌓이고 지위가 올라가면 기고만장해져서 남을 무시하고 뻐기게 된다.
신과 인간은 죽음의 여부로 불평등하게 갈라졌는데, 죽음 앞에 평등해야 할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부와 권력, 때로는 신분으로 인해 대단히 불평등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처벌받지 않는 권력’이 모든 불평등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검찰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아니 유일한 ‘처벌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확신하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뿐 아니라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온갖 부패상과 혼란상의 원인이라고 본다.
경남 밀양경찰서는 검찰청 정문을 훼손한 혐의(공용물건손상)로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사진은 A씨가 창원지검 밀양지청 정문에 쓴 비난 글. 2023.7.19. 연합뉴스
수사권·기소권 독점으로 무장한 처벌받지 않는 존재
나는 오래전부터 검찰이 대통령 권력을 능가하는 최고의 권력을 누려왔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겉으로는 대통령보다 한참 아래인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하고, 검사들 임명을 법무부 장관이 하고, 그중에서 2년 임기의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한낱 공무원 조직에 불과하다. 그래서 검찰이 인사에 목을 매는 공무원 조직인 만큼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 등 정치권력에 복종할 것이라는 오래 된 착각이 있어 왔다. 검찰이 대통령을 손보는 것도 자리에서 내려와야, 즉 죽은 권력이 되어서야 가능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검사들의 실질적 인사권은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그들끼리 기수를 통해서 혹은 파벌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으며 ‘검사동일체’로 뭉친 검찰 임기는 개별 검사(총장 지검장 고검장)들의 임기, 혹은 정년까지 뛰어넘는 거의 영속적인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임기 2년짜리 검찰총장이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뭐가 대단하다고 까부느냐”고 만용을 부린 이유를 알 듯하다. 검찰 조직이 이렇게 철저하게 뭉치고 나면 윗대가리가 옳으냐 그르냐, 성실하냐 불량하냐를 떠나, 마음에 안 드는 선배는 허깨비 취급하고 조직 이기주의에 물불 안 가리는 선배에게는 충성을 다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이런 조직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째로 맡긴 것이다. 수사도 제 마음대로 하고, 기소도 마음대로 하는(기소편의주의) 이 막강한 권력으로, 검찰은 법조삼륜(법원 검찰 변호사) 대가족의 중심 역할을 자임하며 다른 공무원들을 겁주고, 재벌들을 눈치보게 하고, 정치인들을 설설 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벌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권력을 가진 자는 인간사회에서, 최소한 죽을 때까지는 거의 신에 가까운 권력을 누리는 셈인데 대한민국 검찰이 바로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인간계 최상위들이 만든 무법천지
지금은 오랜 세월 정치권력 밑에서 사냥개 노릇으로 만족하는 듯 가장했던 검찰이 드디어 솟아올라 스스로 정치권력까지 잡은 것일 뿐이다. 이젠 모든 자리를 ‘처벌받을 우려 없는’ 검사들로 채우고, 검사 아닌 것들도 처벌하지 않을 거라는 면죄부를 흔들어대며 옆에 모으고 복종시킨다. 아킬레스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악당들이 뭐가 두려워 무엇을 망설이겠나. 다시 한번 지금 이 나라의 혼란과 부패상은 가히 신급으로 격상된 권력자들의 “무슨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신이 별 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과 통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지금 윤석열 정권의 행태는 이명박 때로나 전두환 때로 돌아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탐관오리들의 천국이었던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춘향전>의 변학도는 제멋대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주리를 틀며 고을 부호들을 불러모아 ‘금준미주’와 ‘옥반가효’를 즐겼다. 이자가 민심에 대한 두려움없이 가렴주구에 열중했던 것은 행정권과 사법권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사법권을 독점했다는 것은, 미운 놈은 없는 죄를 만들어 괴롭히기도 하고 이쁜 놈은 있는 죄를 덮어주기도 한다는 말,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세상에 나를 벌줄 놈은 없다”는 의미이다.
소설에서는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몽룡이가 변학도를 징치했지만, 현실에서는 변학도 같은 자들이 창궐하는 바람에 일본 제국주의 놈들이 나타나 나라가 망해버렸다. 백성들을 수탈하고 나라를 망친 자들을 ‘악귀 같은 자들’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죽지 않는 존재는 신뿐 아니라 악귀도 그러하다.
첫댓글 메멘토 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