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12월 31일 24시 간단하게 먹을 빵과 마실 음료를 사서
롯데시네마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3시간 10분짜리 영화을 보러 갔다.
몇 개의 관(館)마다 표가 매진된 모양이다. 우리가 보던 3관만 해도
바닥에 앉아 보는 커플도 보인다.
많은 사람이 커플이거나 가족(우리 정도의 4인 가족이 많다)
심야극장을 가 본적도 없을뿐 더러 가족과 함께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사춘기의 아들 녀석은 가족과 함께 다닐때 마다 어찌나 짜증을
부리는지, 이번에도 친구랑 영화를 보겠다고 먼저 돈을 타 갔는데
예매를 못 했는지 흐지부지 돈을 써 버려 할 수 없이 동행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속셈은 다른 것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남편 '왈' 영화를 보고 나서 부산 달맞이 고개로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 같으면 가능한 아이들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싶고 경험하게
하고 싶은데 아들 녀석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3편 왕의 귀환에 있는 전쟁장면인 헬름협곡.필렌노르 평원.크리스 운골 탑
의 전투는 1.2편 전체를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는 것 같다.
판타지를 집대성한 영화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 싶은 피터 잭슨 감독의
방대한 전쟁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 넋을 빼 놓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나와 딸에겐 끔찍한 오크들, 무자비한 전쟁 장면의 끔찍함에
치를 떨었지만 울 집 남자들은 그 장면이 제일 재미 있었다고 한다.
하긴 전 세계의 역사를 통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 남자들이니까.
우린 영화의 여운에서 덜 깨어난 채 부산으로 차를 몰았다.
새벽의 공기는 상괘했고, 부산으로 꼬리를 문 차량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황령산 터널을 지나 광안대교 앞, 어라 차량 통제를 하고 있다.
광안대교의 밤바다 바람 한번 시원하게 쐬어 볼 심산이었는데
물거품이 되고, 광안리 해수욕장 부근에서부터 차량은 밀리기 시작한다.
잠들도 안 자는지 가게마다 문은 열려있고 온통 젊은 커플들의 물결이다.
해운대로 진입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을만큼 차량이 밀린다.
드디어 달맞이 고개, 5시 10분경 고개에는 차를 주차 할 공간이 없다.
한 바퀴을 돌아서 겨우 차를 주차시키고
차안에서 한 숨, 선 잠을 자고 6시30분경, 고개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기 시작한다. 일방통행이 되버린 도로 , 사람들의 물결,
고개에서 해맞이 축제 무대가 한창이다.
새마을부녀회가 건네주는 따뜻한 둥글레차 한 잔에 추운 몸을
녹이면 해 뜰 시간만 눈이 빠져라 기다리건만 해는 쉬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경비행기가 뜨고, 10분 후 헬기가 뜨고 그래도 또 10여분
7시 31분에 뜨다던 해는 안개 탓인지 10여분이나 늦게
뿌연 안개를 뚫고 붉게 달궈진 쇠덩이처럼 삐꼼이 고개를 내미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고개 위 건물 옥상에서 함성이 들리고 뒤이어 내 옆. 뒤.
나만 어디? 어디? 이럴 때 키 작은 걸 조상탓으로 돌려야 하나.
기다림에 지친 딸은 해의 모습을 채 다 보기도 전에 날더러 가자고
보챈다. 에긍 더 보고 싶단 말이야. 눈이 부셔 볼 수 없을때까지
10여분, 보채는 딸을 겨우 달래 붉은 색이 서서히 주황색으로
변해 황금빛으로 보여질 때까지 아쉬운 마음 뒤로 하면 해운대쪽으로
차를 몰았다. 물론 내가 아니라 남편이--
난 깜빡 잠이 들고, 많이 왔겠지. ? 여기 어디? 어 그 자리잖아.
달맞이 고개 내려 오는데 한 시간, 꼼짝을 않는 차량들 틈에서
난 시내 전경에나 열심히 눈도장을 찍고, 아직도 차량 통제를 하고 있는
광안대교, 광안리로 내쳐 달려 문현, 황령 터널을 놓친 신랑.
동서고가도로 올리면 된다고 하는 남편, 나도 작년에 이 도로로
진입을 했던지라 잘 찾아 가겠지 했는데도 남편과 함께 헤메이기는 마찬가지
남편은 부산서 5년이나 살았는데 길이 왜 이래? 웬 길 탓.
조방앞을 지나 다시 서면쪽으로, 겨우 동서고가도로 진입
집에 오니 10시 50분이 넘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뜨거운 물과 먹을 걸 챙겨갔기 망정이지.
10여분을 위해 몇 시간을 길 바닥에서 헤메이면 고생은 했지만
갑신년 0시부터 아침 그 시간까지 짧은 가족 외출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울 딸, 아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기어이 차에서 잠만 잔 아들이지만 가족은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정으로 연결된 소중한 관계이며 어떤 존재감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때때로 힘들고 지치게 하는 가족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과의 갑신년 새해 첫 날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리라.
.
.
.
.
.
.
영화가 준 여운은--
1.2.3편 환상과 탐욕에 의한 전쟁.. 사람에게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순수함. 그 순수을 바탕으로 한 우정의 힘에 의한 구원,
그것만이 탐욕으로 얼룩지고 있는 전 세상 사람들에 대한
감독의 메세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어요.프로도의
순수와 변함없는 샘의 우정이 구원의 원천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