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아 옵니다.
한동네축구회와 같은 길을 걸어 해가 벌써 15년이다니 세월에 무상함을 느낍니다.
저의 뇌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름들 고 양승만, 고 김철권, 정은식, 김희준, 최명호, 강주산, 박환선, 송주룡, 최종군을 기억하시나 회원님들.... 모르는 회원님들이 다반수 일것입니다.
IMF인 96, 97년경에 동아,한일아파트 할인 분양으로 정상가격을 주고 입주한 세대 주민들이 건설회사를 상대로 반발 움직이 있었고, 이를 조직화하는데 대책위원장에 방경식, 다른 임원들이 결성이 되어 동별로 나누어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이사오는 입주민에 이사를 방해하는 등의 행위로 할인분양을 한 금액에 대해서 되돌려 받는 성과를 얻으면서, 할인분양대책위원이 해산이 되었고,
동아한일아파트 옆에 위치한 상업지구에 *경모텔, **숑모텔이 건립이 되면서, 중화산에 모텔촌이 될 것을 우려한 동아한일아파트 입주민들은 다시 공론화를 시작하였고, 시,도의원 및 국회의원에게 알리고, 또 시사매거진2580에 취채하는 등 여론화에 성공하여 결국 2개의 모텔 이외는 짓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어 단합하면 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모텔의 희소성으로 인해서 **숑모텔은 돈을 많이 벌어서 서부신시가지에 무인텔을 갖고 있고, 또 BMW매장 앞쪽에 건물을 짓어서 딸(의사)에게 물려 주어 병원을 운영하게 하려는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2000년도에 이러한 모임 뒤에 형성이 된 것이 우리 한동네축구회인 것입니다.
초대 회장이 고 양승만님, 부회장에 고 김철권, 총무에 정은식, 재무에 김희준인 것입니다(저의 기억속에 있는 것 만...맞는지는 모르겠음)
그리고 위에서 논한 이름들은 지금의 한동네축구회가 있기까지 매년 노력해 주신 전 임원진들로써 고인이 되시고, 또 직장 문제등으로 탈퇴를 하신 분인 것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공을 차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대우공원에서 통닭내기 족구를 하고, 또 2002년 월드컵 때에는 아파트 앞 비디오가게(박락하 회원님운영)에서 또 선수촌공원에서 '대한민국'을 목이 쉬도록 외치면서 응원하였고, 4강이라는 꿈을 이루워냈고, 여름에는 야유회를 가서 족구, 물놀이를 하면서 가족에 우애를 다졌고, 전주공설운동장, 월드컵보조경기장, 봉동에 하이트맥주, 이서 BYC, 진안에 공설운동장, 임실 공설운동장, 전주대 천연잔디구장, 구이중학교 운동장, 완주실리에 인조잔디구장, 페이퍼 천연잔디구장등등에 원정경기..., 아파트 대항배를 최초 만들었고 여기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등...
왼,오른쪽 무릎을 연골과 십자인대를 다치면서 아픔도 있었던 것으로 저의 30대초부터 40대 중반의 나이를 한동네축구회에 같이 한 것입니다.
지금도 한동네축구회원 가운데에 신상문, 허만승, 박경만, 양한강 회원님등은, 3개 아파트 단합과 친목을 다지는 한동네축제가 얼마전까지 이루어졌고, 전통문화를 알리는 정월대보름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어서 우리 한동네축구회를 위상을 드높이고, 서신동에 화합에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동네축구회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클럽이며 20년이 아닌 100, 200년 이어질 명문클럽인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한동네축구회에 청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 축구회를 위해서 헌신을 할 것이며, 다사다난했던 계사년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해지는 갑오년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윤득수 넋두리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꾸벅(큰절)
첫댓글 화려하고 전통있는 한동네.그 속에 내 이름 석자가있다니 감히 영광이로다.선배동료후배들이 더 멋진 한동네를 만들도록해야겠네요
회장님이 잊어져가는 기억들을 세삼 찾아주었네~ 명절 잘보내고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