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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당화섬 원문보기 글쓴이: 안치호
부록 1. 행정체계
신석기 시대 주민거주시작
청동기 시대
마한 시대
신미제국시대
백제 시대 고록지(개요)현
신라 시대 무 주 압해군 염해현
고려 시대 해양도 영광군 임치현 개요지도
전라도 영광군(정주)임치현 임치도
공도 시대
조선 시대 사복시 임자도 목장(1414-1436-----1796)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임자도진
전주부 영광군 염소면 임자도진
전라남도 영광군 임자진
전라남도 지도군 임자면
일제시대 전라남도 무안군 임자면
대한민국 전라남도 무안군 임자면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부록 2. 연표
신석기시대 주민거주 시작
마한 시대
369 백제국 고록지(개요)현
660 백제멸망,통일 신라신라 소속
757 신라 경덕왕 고록지현을 무주 압해군 염해현으로 편제
918 왕건,염해현에 진출 견훤의 교역선을 나포
995 성종 행정체계 개편 ,해양도 영광군 임치현으로 편제
1018 현종 행정체계 개편,전라도 영광군(정주)임치현으로 편제
1231-1259 몽고군 침입,영광군민 입자도 입보
1263.6 송나라로 가던 일본의 관선대사 '여진'등 230여명 임자도 표착
1270 추토사 김방경 공도령 발령
임치현민 지금의 영광군 백수읍 대전리 묘동으로 천읍
1273.3 기묘일 삼별초 토벌군 병선 47척 난파로 임자도 해역에서 115명 익사
1409 임치현 혁파,영광군의 직촌화 단행
1414-1436 태종14-세종 18년 어간 사복시 직할 임자도 목장을 장동에 설치
1400-1550 일부 주민들이 지금의 괘길리,진리,저동,이흑암리,재원
등지에 이주
1592 임진왜란 발발
1597 정유재란 발발,피난민 대대적 유입
1597.9.17-18 이순신 장군 명량해전 승첩 후 어의도(어리,느리)경유
1597.9.19 왜군 법성포 침입 방화등 노략질
1597.9.21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내동 부락 거주 선비 정호인(당시 19세),
가족대동코 선박편으로 피난차 재원도 기착 후 족숙 정희득과 함께
임자도 최고의 시 2수를 남김
1597.9.20 강항 ,피난차 낙월도 경유
1595.8.15 이순신,한산도 본영에서 임치첨사 홍견등과 회식 후
[한산섬 달밝은 밤에...] 작시
1596.9.8 이순신,임치진 시찰
1597.9 중순 김현회,대기리 정착
1600 박중석,부동입촌
1611 박동원, 화산 입촌
1636-7 허상옥, 하우리 입촌
1680 최만신, 삼두리 입촌,경주봉씨 수도 입촌,강상호 조삼 입촌
김정희, 조삼 입촌
1700 이경국, 도찬리 입촌
1684 전라감사 이사명,서해안 설진 건의
1706 임치도등 6곳 설진 적합지로 비변사보고
1711.7.8 임자도진 설진
1731.4 임치진 첨사,영운차원으로 선발
1731.5 나주목 소속 도서에 고을 설치 논의
1793 임자도 목장 혁파 및 목장지 농토개간논의
1796.8.8 임자도 목장 혁파.목장지는 선희궁(사도세자 묘)에 편입
1801.2 한인 재원도 표류,대접소홀로 임자도 첨사 파직
1810.3 도민 다수 익사
1810.11 중국인 29명 이흑암리에 표류
1813 중국 복건성 상인73명 재원도 표류
1831 중국인 35명 표류
1840년대 콜레라 창궐,전도민의 절반정도가 사망
1848 무신대황
1852 임자대겸
1856 중국 강남성 사람 11명 표착
1857.12 전라우도 암행어사 성이호,임자도 첨사 최문철을 벌주도록
조정에 보고
1862.6.22 경상도 개령현감 김후근,가렴주구로 파직 후 임자도 유배
1862.9.4-8 경상남도 단성현 선비 김령,임자도 유배
1869 기사대무
1876-1877 병정대흉년 내습,사상 최대의 흉년
1886 전라도를 전주,나주,남원,제주의 4부로 나누고
영광군은 전주부에 편입
1886.9 일본인 3명 표착
1895.8 을미개혁 군제 개편으로 임자도진 폐진
1896 지도군 설치,초대군수 오홍묵
1895-1897 군수 오홍묵, 지도군 총쇄록 집필
1896.6.2 군수 오홍묵,향약 17조 절목 41조 시행
1896.6.22 임자도 파감 김복연 섬타리에서 일본인 들과 충돌 사망
1896.10.4 청나라 산동성 선상 3인,군수면담
1896 갑을세 거부 사건
1896 인구 토지 조사실시
1908 지도군지 편찬
1916 화산단 설치
1914.3.1 무안군 설치
1922.4.20 사설 학술 강습소 설치
1924 임자 보통학교 설립 인가
1924 임자 청년회 면민대회 개최
1897.10.1 목포개항
1925 임자 청년회,투옥 소안면 노농연맹 대성회 간부 지원 성금 모금
1925.4.30 임자 노농회 결성
1924 삼막동 교풍회 활동
1925.8.30 도구포 어업자 친목회 결성
1920년대 사회주의 유입
1940년대 장동 삼막 부동 저수지 축조
1945 청년단,치안대 제압코 해방후 임자주도권 확보.임자인민위원회 결성
1946 임자 인민위원회 해체
1946.10.31 31폭동사건 발생
1950. 보도연맹사건 발생
1950.7.24경 임자면 공산당위원회,인민위원회,내무서등 구성 숙청진행
음 9.9 해군 백부대 임자도 수복
1951 염전개간
1950년대 대이농 시작
1968.3 임자 재건중학교 설립
1968.7 임자도 간첩사건 발생
1968.12 임자중학교 신설
1968.12.31 전라남도 신안군 설치
1975.5 임자도 해저유물 발견
76.10.26-84.9.18 임자도 해저유물 인양
1983 대광해수욕장 개장
1971 임자도 재경향우회 결성
1971 삼막동 뒷산에서 마제 석기류 대량 발견
1975.6.20-8.20 최몽룡 서울대 교수 임자도 선사유적 조사
부록 3. 역대 주요 인사
가. 임자진 첨사
최문철(1856.11, 1857)
李錫俊(1880.11)
金孝源(1886.7.21)
金東肅(1895)
*연도는 재직시
나. 면장
1 대 高談圭 2대 兪現榮 3대 蔣錫元 4대 金談龍 5대 鄭龍澤 6대 鄭正澤
7 대 李種珉 8대 李相云 9대 朱貴天 10대 李種珉 11대 崔永彦 12대 鄭泰化
13대 李仁澈 14대 兪龍濬 15대 鄭泰老 16대 鄭正澤 17대 崔淏年 18대 趙宗植
19대 安載成 20대 金鈴仁 21대 李禧澈 22대 金廷寬 23대 白永雲 24대 崔元默
25대 姜大杓 26대 崔相淳 27대 朴亨柱 28대 남상창
다. 면의원
1대: 李仁宰 高四奉 金鍾玉 崔淏年 金雲述 李公述 李仁澈 李鍾宅
兪龍濬 兪張植 朴連福
2대: 鄭鍾溶 黃京春 金廷寬 金貴公 朱年圭 崔永彦 金啓三 任月宰
尹磁洪 崔永道 李仁澈 李東錫
3대: 高三用 金吾培 李完山 金廷寬 徐泰運 金夏準 黃學龍 崔永道
金相洙 姜大均
후기
나는 누구인가 ?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가 ?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었고 그 결과 본서에서 보듯 임자도의 역사를 나름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정의가 있다.
영어의 History는 라틴어 Histotoria에서 유래된 말로 [찾아서 안다]라는 뜻이다.또 중국어로는 歷史 또는 鑑이라 하는데 歷史는 [지나간 일을 적는다]는 뜻이며 鑑은 [과거의 일을 거울에 비쳐 반성한다]는 뜻이다.동서를 막론하고 역사란 모두 과거의 사실을 연하여 현재를 바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의미의 역사정의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지않을 수 없었다.이해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의 인식체계는 너무도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이며 삶의 한 방편,수단적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저자는 임자사 연구라는 개인적 경험을 통하여 역사는 이러한 의미 외에도 인간애의 표현 그 자체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과거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더듬는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에 다름이 아니다.미래의 인간 역시 훗날에 우리의 삶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 추적할 것이다.그 역시 마찬가지로 반성하려는 의미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 이유는 앞서간 사람들로서의 우리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이러한 과거에 대한 사랑을 끈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는 하나로 묶여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 중 얼마간은 세상에서 자기의 뜻을 펴며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당시의 시대 상황에 의하여 강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대부분의 삶은 그들이 세상에 태어나야 했던 의미조차도 잊혀져 버린채 두꺼운 세월의 심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자는 임자도를 중심으로 인근 섬에 살다가 포말이 되어 날아가버린 선인들의 작았던 이야기를 비록 흔적 뿐이겠지만 두꺼운 망각의 지층 밑으로부터 꺼내보려 하였다.그러는 과정에서 섬에 살았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진실로 역사는 인간애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애를 확인함으로써 그 사명을 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외에도 섬에 대한 역사자료를 뒤적거리는 과정에서 저자는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인 [에드워드 기번]이 우울할 때 내뱉곤 했다는 [역사란 범죄와 어리석음,그리고 인류의 불행에 관한 기록에 불과하다]라는 독백에 심정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저자는 역사에 대한 전문적 교육을 받아본 일이 없다.다만 공직자로서 근무 또는 휴가나 휴일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연구한 결과를 모은 것이니 만큼 본 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기가 부끄럽다는 점을 고백한다.그러나 작업결과를 나자신의 참고자료로만 한정하려 했으나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의하여 출간하게 되었다.훗날 섬의 역사에 관심있는 동호인이 있어 본서를 초고로 하여 더욱 훌륭한 섬의 역사가 만들어지면 나의 부끄러운 행위가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1995.9.12
金 永 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