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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분 모두 즐겁고 행복한 추석명절 되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오
강성주 드림^^
엄마와 어머니
추석 연휴에 홀로 계신 엄마를 보고 왔다. ‘엄마’라고 쓰니 기분이 뭐랄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갑자기 아늑해진 느낌이 든다.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나이 먹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에 대한 호칭이 바뀌어갔다.
언제부터인가 전화를 드릴 때 “어머니, 저예요" 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라는 호칭은 왠지 내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부엌에 계신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니 못 알아들으신 듯한데, “엄마” 라고 부르니까 반사작용처럼 고개를 즉각 돌리신다.
어머니 얼굴에 생기가 확 도는 걸 느꼈다. 내 어머니는 엄마라고 불리길 좋아 하시는구나. 예의범절을 따지는 사람들은 철이 들면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 라고 부르는 게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그 호칭 자체가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어머니가 엄마의 존댓말은 아니다. 두 단어는 유아어와 성인어의 차이일 뿐이다. 어머니의 존칭은 ‘어머님’ 이다. 국어사전도 ‘엄마’를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엄마라고 부를 때는 왠지 ‘나는 그대의 영원한 새끼입니다.’ 라는 말이 후렴처럼 느껴진다.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머리가 하얘져도 내 새끼다. 엄마라는 호칭은 확실한 피붙
이의 관계를 과시한다. 거기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엄마’는 생물학적 존재, ‘어머니’는 가족의 위계질서적 냄새가 난다.
왜 딸들은 평생을 한결같이 엄마라고만 부를까? 소설가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해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로 끝난다. 작가는 첫 문장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하다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호칭을 쓰면서 글이 술술 풀렸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시골의사 박경철과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늘 독립된 인간이라고 느껴요. ‘어머니’ 역시 ‘엄마’로 불리는 순간 의존하는 느낌, 즉 분리가 아닌 하나가 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어요. 엄마는 모든사람들의 자기 얼굴이죠. 잘 닦아서 보면 나의 근원이고 시작이에요. 그 근원을 찾아가는데 어머니가 아닌 엄마에게 의존해서 가더군요. 첫 문장을 ‘엄마’로 고치는 순간 합일과 충만한 느낌이 다가왔어요.”
알베르 카뮈의 그 유명한 작품 ‘이방인’ (1942년 작,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한 이래 가장 강렬한 첫 문장으로 회자된다. 1950년대 불문학자 이휘영 교수는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번역했다. 1980년대 들어 그의 제자였던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바꿔 번역
하면서 이 첫 문장이 불세출의 문장이 됐다.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나다. 전혀 다른 세계다.
원본은 ‘Aujourd’hui, maman est morte.’ 다. 카뮈가 영어의 ‘마더 (mother)’ 격인 ‘메르(mère)’로 쓰지 않고 굳이 아이들의 표현인 ‘마망 (maman)’을 쓴 것은 주인공 뫼르소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고들 해석
한다.
엄마와 아빠를 뜻하는 어린아이의 말은 신기하게도 세계 여러 언어에서 비슷하다. 어머니 계통의 말은 대개 ‘ㅁ(m)’의 발음이다. 엄마, 마마, 마망, 맘마다. ㅁ의 글자 모양처럼 부드럽고 여성적인 발음이다. 아버지의 어휘는 ‘ㅂ(p)’의 발음이다. 아빠, 파파다. m이나 p 발음은 입술소리다. 아기가 폐에서 나오는 공기를 입 밖으로 내보낼 때 자연스럽게 나는 인간의 첫 옹알이다.
중국어도 엄마는 ‘마마’, 아빠는 ‘빠바’다. 우리 옛말에서 부모는 엄(母)이나 압(父)의 어근에서 발전했다. 어머니가 아닌 엄마 라고 부를 때야 비로소 고향의 냄새가 난다. 엄마는 고향이다. 유년의 젖이다. 한자 ‘어미 모(母’)는 여성의 가슴 모양에서 나왔다.
고향은 돌아갈 곳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들의 마지막 대사는 거의 대부분 “집에 가고 싶다. 엄마를 보고 싶어” 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일본군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들 하는데, 실제 참전 군인의 증언
을 들어보면 마지막 순간에는 다 “오카상(어머니)”을 외쳤다 고 한다.
엄마는 어디에든 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했다. 냉장고 속 고등어에 (김창완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고향마을 뒷산에 열린 홍시에
(나훈아 노래 ‘홍시’), 짜장면 면발에 (god 노래 ‘어머님께’),
짠 설렁탕 국물에 (함민복 시 ‘눈물은 왜 짠가’) 엄마는 있다.
늦깎이 시인 심순덕은 이렇게 읊었다.
엄마는 종일 죽어라 밭일을 해도, 부뚜막에서 찬밥 한 덩이로 점심을 때워도,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 방망이질을 해도, 배부르다 생각 없다고 말해도, 발뒤꿈치 다 헤지고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아버지가 허구한 날 술 취해 큰소리치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고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에서).
시인은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 사진을 손에 들고 소리 죽여 우는 엄마를 보고서 비로소 알았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음을.
정한모 시인의 ‘어머니’
라는 시 첫 구절은 절창이다.
‘어머니는/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
내가 본 가장 가슴 아픈 엄마의 편지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여학생 엄마가 합동분향소에 남긴 것이다. “엄마가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야. 몇 푼 벌어 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 없는 집에 너 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나는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준 반찬과 고춧가루를 들고 고향
에서 돌아왔다. 내가 드린 용돈
은 차비가 되어 다시 내 호주머니로 돌아왔다. 며칠간 비웠던 집은 썰렁했다. 거기에 어머니는 없다. 전화를 드렸다.
“엄마 저 잘 도착했어요. 힘드셨죠?” 돌아온 대답은 “니들이 고생했지, 엄마가 뭐 한 게 있다고.”
(PS)
지금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나 지금 엄마가 필요해요.”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대사에서).
/ 한기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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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 엄상익 (변호사)
추억을 되살리는 아들의 감사
내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가는 붓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 라고 돌아가신 조상의 지방을 쓰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이 찾아온다는 새벽 1시 경
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가느다란 향 연기를 타고 머나먼 곳에서
조상의 영이 찾아와
음식을 드시는 것 같았다.
문을 조금 열어둔 채
우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상이 흠향하시도록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지방문을 태워
그 재를 날렸다.
거기 담겼던 조상이
다시 밤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우리 가족은 크리스찬이 됐다.
부모 조상의 기일이 되면 꽃과 십자가를 상 위에 올려놓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한식과 추석이 되면 공원묘지에 있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가
그 앞에 꽃을 놓고 기도했다.
세월이 지나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다.
아이들은 조상을 위해 하는 추도식을
마지못해 따라 하는 것 같았다.
2년 전 나는 집안의 모든 식을 다 접기로 했다.
진정한 애정이 없이 의무로 형식으로
하는 행위는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었다.
기억에 없는 조상을 위해 먼 묘지까지 아이들이 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걱정이 생겼다.
내가 죽고 나면 평생 내가 돌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이
잡초 속에 버려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풀이 수북이 자라난 버려진 남들의 묘들을 보면 마음이 애잔했다.
특히 공원묘지는
관리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묘를 없애버리는 것 같았다.
공원묘지에 묻힌
유명한 코미디언의 묘지가 파헤쳐 없어지고 비석만 창고에 나뒹구는 장면을 한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죽고 난후 공원묘지의 관리비를
자식들이 흔쾌히 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모든 걸 정리하고 가기로 했다.
지난해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을
파헤쳐 유골을 상자에 담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의 유골을 내 차의 좌석에 올려놓고 오랫만에 바뀐 서울 구경을 시켜 드렸다.
오십삼년, 삼십년 만에
다시보는 서울풍경에 놀라실 것 같았다.
나는 유골을 집으로 모셔 와 얼마간 쉬시게 했다.
손자와 아들이 사는 집구경을 하고 얼마간 묵으시는 셈이다.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의 나무 밑에 묻어드릴 예정이다.
정리하는 길에
야산 기슭 남의 땅에 방치 되어 있는 외증조 할머니의 무덤도 파서
그 유골을 그 할머니가
젊은 시절 사셨다는 마을의 뒷산에
뿌려드렸다.
가족이 북에 있어서
관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의 제사는 뭘까.
형식보다 함께 한 즐거웠던 추억을 되살리면서 하는
아들의 감사는 아닐까.
기억의 동영상을 끝까지 뒤로 감아
재생시켜 본다.
희미한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억들이 우글거리며
흑백영화 속의 동영상 같이 나타난다.
나는 기억의 동영상을
십육배속으로 앞으로 뒤로 돌리며 재생시켜 보았다.
세 살 정도 된 내가
아버지에게 안겨있다.
아버지의 높은 어깨 위에서 차들이 오가는 길이 보인다.
다시 영상의 한 부분을 재생했다.
다섯 살쯤 무렵이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를 아버지가 깨웠다.
세발 자전거가 보였다.
나는 너무 좋아서
잠도 깨지 않은 채 그 위에 올라 페달을 밟고 방안을 돌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차에 태워 학교로 갔다.
‘시발택시’ 라는 걸 처음 타본 날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받은 교과서들을 꼼꼼하게 은박을 한 종이로 싸줬다.
아버지의 젊음과 고뇌
그리고 늙음과 병 죽음의 장면들이
내 기억의 동영상 속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부모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자식들의 추억으로 녹화되어 있다.
이번에는 추억의 동영상 마지막 부분을
재생시켜 보았다.
쌀쌀한 봄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하루 전이다.
중환자실로 간 내게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밤 아주 좋은 곳으로 갔다.
아름다웠어.
그런데 병원에서 주사를 놓고 괴롭히는 바람에 가지 못했어.”
아버지의 말이 신기하게 들렸다.
저세상이 있다는 말과 글은 수없이 많이 듣고 봤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들인 내가 믿는 바람에 아픈 몸으로 뒤늦게 세례를 받았다.
그런 아버지의 말이었다.
세뇌된 관념이나 이론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
정말 다른 세상이 있는 것 같아?”
“응, 있어 내가 봤어.”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다.
내 아버지니까.
나는 그 말이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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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 👧
부부가 이혼하고 아이 때문에 다투는데,
법정에서 부인이 당당하게 말하기를
"아이는 내 배 속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내 거입니다."
남편이 분노하면서 말하기를 "웃겨, 완전 헛소리하네,
현금 인출기에서 나오는
돈은 현금인출기 거겠네?
카드를 끼우는 사람 거잖아."
법관은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변호사 조차도 탄복했다.
부인이 이어서 말하기를
"만약 나온 돈이 위조지폐면 당신 갖겠어?"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모두 졸도해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ㅎㅎ.??😁
🔰세상에는 없는게 3가지가 있는데~
1.정답이 없다.
2.비밀이 없다.
3.공짜가 없다.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것 3가지가 있는데~
1.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2. 나 혼자서 죽는다
3.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 3가지 있다.
1. 언제 죽을지 모른다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러나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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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말에는
온도가 있습니다
말은 우리의 입을 통해서
전달 되지만 그 뿌리는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차가운 말 한마디는
그대로 굳어 버리게 합니다.
오늘 하는 말이 사랑으로 가득차
불타는 마음의 난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말이 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함이 사라진 말이 나올 때는
차라리 침묵을 선택할 수 있기를
입술의 침묵, 마음의 침묵,
눈의 침묵, 귀의 침묵,
정신의 침묵...
우리 신체중에서 제일
약한 것 같으나 제일 강한 것이
입술의 말입니다.
가장 슬픈 일이 입에 있고
가장 기쁜 일 또한 입에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온도 높은 좋은 말로
주변에 감동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설픈 가식의 말보다
침묵이 더 금이 될 수 있음을...
- 인생수업 중에서
https://youtu.be/OhQeoZc4ctA?si=vnlgapArYY-fl80T
첫댓글 엄마 아빠 생각하다가
웃다가 또 하루가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