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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과 예배
[주일·예배 ①] 뉴노멀의 예배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뉴노멀을 말했다. 일상 또는 일반을 이야기하는 노멀이 새로워진다는 이 뜻은 결국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그 동안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리고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요즘 우리는 자주 접한다. 심지어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요즘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교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예배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용어로서 우리에게 교회는 ‘교회당에 모이는 무리’를 의미한다. 신학적으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나 ‘하나님 나라 백성 공동체’라는 설명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일반 성도에게는 00교회라고 하면 그 교회당을 지칭하기도 하고, 그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회당이 폐쇄됐다. 사람의 출입이 극도로 제한되었고, 모일 기회마저 사라졌다. 먼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예배가 제한되었다. 주일예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예배들이 중단되었다.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저녁 또는 오후예배가 중지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주일예배마저도 제재를 받아 모임이 금지되고 온라인 예배만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이외에 성경공부나 소모임 등등이 중지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되자 성도들은 교회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현장 예배가 없는데 예배당이 필요한 것인지, 정부가 예배를 중지시킬 수 있는 것인지, 교회는 정부가 명령한다고 예배를 온라인으로만 드리는 것이 옳은지. 정말 끝없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이 이어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제 성도들이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갈등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바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사회학 분야 중 ‘갈등 사회학’이라는 것이 있다. 갈등이 있는 곳에서 그 사회의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갈등이 있는 곳을 살펴보면 그 사회를 가장 잘 볼 수 있다. 유사한 관점에서, 교육학에는 ‘갈등 중심의 교육학’이 있다. 갈등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고, 사람들의 관점이나 생각을 변화시키기에 좋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질 때는 바로 교회에 분쟁이 있을 때다. 교회가 평화로울 때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회에 갈등이 생기니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심이 있으니 참여하게 되고, 참여해 보니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본질이 궁금하고, 이렇게 생각이 확대되니 의식이 커지게 된다. 이런 구조가 바로 갈등 중심의 교육학이다.
현재 우리는 교회의 모임과 기능이 제한되므로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연하게 주일에 예배를 드리던 우리는 그 예배가 제한되니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습관처럼, 또는 오랜 전통으로 드렸던 주일예배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어느 설교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다. 한 시골 교회에 젊은 목사가 부임했다. 목사는 오래된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찬송을 부를 때면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15도 정도 몸과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을 좇아 살펴보니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런 모습을 보다 궁금해진 목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그냥 오래전부터 찬송을 부를 때면 그렇게 방향을 바꾸어 섰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교회를 오래 다닌 한 노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오래전 개인 찬송가가 없었을 때 그쪽에 찬송가 가사를 적은 괘도를 걸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찬송을 부를 때면 그 괘도가 있는 정면 오른쪽 15도 방향을 보았다. 이제는 그 괘도가 사라졌지만 습관은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찬송을 부를 때마다, 이제는 그 괘도가 사라져 빈 벽만 있는 정면 오른쪽 15도를 보게 되었다. 관습이, 오래된 전통이 이렇게 무섭다. 교회가 전통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설교를 들을 때는 그냥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다시 떠올려 보니 ‘그래서 그 목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15도 방향을 돌리는 그 성도들에게 이제는 그 괘도가 없으니 정면을 바라보라고 했을까, 아니면 그 전통을 존중하며 함께 따라 했을까.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어느 것도 잘못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의 문제이다. 필자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통을 그대로 따랐을 것 같다. 성도들이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 그럴 때 마음의 평안과 감동이 있다면, 나에게도 좋고 교회에도 좋은 것이다.
주일예배가 온라인으로 중계되었다. 정말 기적같이 대부분의 교회가 한순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어느 날, 예배를 현장에 모이지 말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라는 정부의 권고가 나오고 많은 교회들이 동조하면서, 그리고 모이기가 어려워진 신천지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올 거라는 카톡이 돌면서, 주일예배는 급하게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굳이 이걸 기적이라 하는 것은 세계 어느 교회도, 또는 어느 집단도 이렇게 순식간에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인프라와 한국교회의 유연함이 가져온 기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90% 이상이 가지고 있다는 스마트폰의 힘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생중계를 이루어 내고, 모든 교인들이 동시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린다. 단언컨대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어쨌거나 한국교회는 이러한 기적을 한순간에 이루어내며 온라인 예배를 일상화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주일예배 영상을 제공하면서 내보내는 측도 받는 측도 ‘실시간’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세미나와는 달리, 예배는 순서상 쌍방향 소통이 꼭 필요하지는 않으므로 실시간 참여가 구태여 중요시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미나를 진행한다면 강의 중간이나 후에 참여자들의 질문과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실시간 참여가 중요하다. 그런데 예배는 현장에 함께 있지 않은 이상, 그 예배가 실시간 송출인지, 하루 전에 녹화한 것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기술적 어려움과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교회는 실시간 예배를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교인들 역시 실시간으로 자기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한국교회의 특성을 잘 반영한다고 본다. 개교회 중심적이고, 주일·예배 중심이다. ‘우리 교회’를 떠나지 않는 공동체 의식, 예배에 집중된 신앙생활, 주일성수를 중시하는 태도가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 또는 포노 사피엔스1)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시공을 초월하여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교회는 과거의 익숙한 개념과 방식에 머무르고자 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우리에게 남은 ‘정면 오른쪽 15도’가 아닐까. 찬송을 부를 때마다 전통에 따라 몸을 돌려 흰 벽을 보며 찬송하던 그 교인들처럼, 우리는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긴 예배에서도 우리 교회 주일 11시 대예배에 동일하게 참여하며 내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습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경건하지 못하다고 혀를 차며 정죄한다. 찬송을 부를 때 몸을 돌리지 않고 정면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요즘 것들은…’을 남발했을 것 같은 그 교인들처럼 말이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우리의 ‘주일’과 ‘예배’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때로는 기존 관념을 깨야 하는 고통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교인들의 의식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할 때다. 교회가 틀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 들어오지 못하는 교인들은 오지 말라는 식의 배짱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교회를 떠나가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좇아가야 하는 목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이어 보고자 한다.
1) 휴대폰(phone)과 호모사피엔스의 합성어로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는 인류를 의미한다(편집자 주).
[주일·예배 ②] 그들이 떠나고 있다
3년 전, 중형 교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대략 교인 수 500~1,000명 사이의 교회를 중형 교회라고 보는데, 이런 교회들은 대부분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 교회들을 조사한 것은 이들의 상황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이제 중형 교회들마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살펴보니 그래도 안정적일 줄 알았던 교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 볼 때는 규모도 있고 역사도 있고, 안정된 평신도 리더십이 형성되어 있는 교회들이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어려울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 이런 교회들이 리더십 문제와 노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고, 상태가 너무 심각하여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 조사를 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교회별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몇몇 교회에서 40대 초반 이하로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40대 중반까지는 있는데, 40대 초반부터는 교회 출석률도 떨어지고, 봉사하는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이렇게 꼭 집어서 연령대를 정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임 목사들의 이야기이니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40대 초반이라면 사회에서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2000년대로 넘어올 때 청소년이었거나 청년들이었다. 그 당시 X-세대라고 불렸던 이들이다. 사회에서는 민주화가 자리를 잡은 이후에 학교 교육을 받았고, 소위 이해찬 세대, 즉 이해찬 씨가 교육부 장관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많은 자율권을 주고 공부가 아니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꿈을 준 세대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문화 충격을 겪었고, 학교를 벗어나라는 ‘교실 이데아’에 열광했던 이들이다. 인터넷이 널리 이용되면서 사이버 민주주의를 경험했고,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 5년마다 한 번씩 정권 교체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스마트폰이 나타난 이후에는 급속한 사회변화를 직접 겪은 이들이다.
X-세대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들의 특성을 알 수 없어서였다. 무어라 특징지을 수 없으니까 알 수 없다는 의미로 X-세대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이후에는 더 알 수 없는 세대가 나타났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X 다음에 나오는 알파벳을 붙여 Y-세대라고 했다. 이들은 80년대와 90년대에 출생한 이들이다. Y-세대까지는 보통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한다. 그리고 2천 년대에 들어와서 출생한 이들은 더욱 알 수가 없기에 역시 이름 붙이기를 포기하고 Z-세대라고 했다.
지금 중형 교회에서 사라진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되는 X-세대와 Y-세대이다. 교회에 30대와 40대가 없다는 말은 이들의 자녀인 청소년과 아이들도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교회의 미래가 없다. 50대 이상 어른들만 자리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한국교회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두가 걱정은 한다. 다음 세대가 없다고 한탄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마음이 있는지, 이 위기에 대해 진정한 두려움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서 만나는 40대나 30대 성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변하지 않는 교회, 아니 예전의 순수함마저 잃어 버린 교회에 대해 너무 큰 실망을 하고 있었다. 원로 목사의 은퇴 과정에서 시험 드는 일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신앙의 모범으로 생각하며 바라보았던 목사님이 상상하지도 못한 액수를 받고 은퇴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목회 리더십이 바뀌면서 겪게 되는 교회의 분란도 큰 시험이다.
교회의 노령화도 문제다. 30대, 40대면 사회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할 때이다. 기업에서는 40대 중반에 이사로 진급이 안 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아직 마이크도 잡을 수 없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한다. 그것도 어떻게 참고 있는데, 마이크를 잡은 어르신들이 정치 이야기로 염장을 지른다. 기도 시간에 정치 선동이 이루어지고, 설교마저 복음을 잃은 지 오래다. 거기에 동성애 이야기가 나오고 ‘빨갱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면 아무리 예배 시간이라도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이러니 교회에 40대 이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교회 내에 이들의 자리가 없다. 어떻게든 교회에서 버텨 보려고 하지만, 교회 자체의 문제와 이념 문제까지 겹쳐 너무나 괴롭다.
사회에서도 세대 간의 갈등은 심각하다. 마치 시한폭탄과 같다. 아니 이미 터져버린 폭탄이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는 그 갈등이 더 증폭되어 있다. 교회라서 폭력은 없을지 몰라도 그 긴장감은 더하다. 대한민국에서 60세 이상의 세대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아니, 아직 다양한 세대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밖에 없을 것이고, 그 긴장을 아직 내재하고 있는 곳 역시 교회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폭탄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부끄러워한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나오는 교회발 집단 감염 뉴스나, 교회들의 합리적이지 않은 대처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사회가 교회를 향해 던지는 모욕적인 발언들을 고스란히 받아 삼켜야 하는 이들은, 방역을 정치로 이해하고 예배를 정치의 수단으로 보는 어르신들을 향해 분노를 넘어 냉담을 보인다.
기성세대의 끄트머리에 있는 나로서는 이들이 신기하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교회에 발을 붙이고,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신기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분노로 꺾이고, 실망으로 넘어진다. 어려서부터 삶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회에 출석을 끊고, 교인이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졌던 교회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지만, 감당이 안 되어 떠나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을 붙잡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남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의 분노와 실망을 알기 때문이다.
한때 SNS에 널리 퍼졌던 미국 타임스 스퀘어 교회 카터 컬론 목사의 “생명을 위해 도망가십시오!”(RUN for your Life)라는 설교가 있다. 5분여 길이로 편집된 영상에서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시종 ‘RUN’을 외친다. 생명을 위해서 잘못된 복음으로부터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여, 도망치세요.
성경이 없는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에서 벗어나십시오.
십자가가 없는 신학에서, 영혼을 반성시키는 말씀이 없는 데서, 죄로부터 회개함이 없는 데서, 예수님의 보혈이 언급되지 않는 데서 도망치세요.
정치꾼들로 가득 찬 설교 강단으로부터 도망치세요.
그들은 하나님의 강단을 개인적인 정치 성향을 위해 사용합니다. 도망치세요.
인종과 문화차별을 외치는 자들로부터 도망치세요.
달리세요. 달리세요. 벗어나십시오.
전원을 내리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세요.
나는 오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동일하게 외치고 싶다. 꺾이고 무너지지 말고 도망치라고. 사람에게 실망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누를 범하지 말라고. 공동체에 시험 들어서 신앙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꺾이지 말고, 무너지지 말고, 조금 얄밉더라도 교회를 떠나 신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찾으라고. 너의 믿는 바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그것도 안 되면 주일 11시에 매이는 교회 말고 너의 믿음에 동의해 주고 위로를 주는 교회를 만나라고. 그게 차라리 꺾이고 무너지는 것보다 낫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최근 온라인 예배가 하나의 선택으로 나타나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시험 들 일이 없어서 좋다는 거다. 장로님들이 대표기도 하는데 정치 이야기가 들어오고, 듣기에 거북한 이야기들이 쏟아져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온라인이니 기도는 넘어간단다. 설교 중에도 거북한 이야기가 나오면 넘어가던지, 다른 설교를 듣는단다. 젊다고도 할 수 없는 40대 후반의 이야기이다.
목사로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답해 줘야 하는가. 잘못했으니 회개하라, 예배는 그런 게 아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그래도 신앙을 가지고 버텨줘서 고맙다’고 하겠다. 온라인이라도 끈을 붙잡고 있어서 고맙다고 하겠다. 그 징한 공동체를 버리지 않고 그렇게라도 이어가고 있으니 고맙다고 하겠다.
몇 년 전 미션얼 처치 현장을 경험해 보고자 미국 시애틀에 간 적이 있다. 시애틀은 미국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도시였고, 그들 말에 의하면 주일에 교회 가는 사람이 10%도 안 될 것이라고 하는 세속화된 도시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들은 다양한 사역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곳이 몇 곳 있다. 한 교회는 토요일 저녁에 방문했는데 예배당 뒤편에 간단한 음식으로 뷔페를 마련했다. 미국 사람들이 먹는 핫도그도 있었고, 과자나 간식거리, 그리고 다양한 음료들이 있었다. 우리도 음식을 챙겨 먹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예배로 연결이 되었다. 주위를 보니 다들 음식을 먹으며 예배를 드린다. 중간에 성찬식이 있었는데 앞에서 동네의 노는 형 같아 보이는 사람이 일어나는데 성찬 그릇을 들고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야구 모자를 썼는데 그가 성찬 위원이었다. 또 다른 교회를 방문했는데, 목사의 차림이 심상치가 않았다. 몸에 다양한 문신과 여러 곳에 피어싱이 있었다. 검은 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걸쳤는데 딱 보면 동네 깡패였다. 모이는 사람들도 보니 목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은 처음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목사가, 교회가, 예배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는 충격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들도 경험해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감이 되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사회에서 이미 교회를 떠나버린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다시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그들은 일부러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주일이 어려우면 토요일에 오라고 했고, 예배가 지루하면 밥을 먹으면서 참여하라고 했고, 부담스러운 옷차림은 하지 말고 오라고 했다. 그들이 교회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들이 다시 복음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그들의 처절함이 있었다. 나는 미국에서 예배나 목회의 특별한 재주를 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간절함,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처절함을 보았다.
한국교회는 아직 배부르다. 아직 남은 것이 있고, 지난날의 영화가 남아 있다. 대형 교회의 신화와 꿈이 있고, 이 사회에서 힘을 쓸 수 있다는 교만이 있다. 그런데 현장은 무섭다. 무너져 가는 현장은 지난번 폭우에 일어난 산사태 같다. 교회에 실망하여 떠나가는 지체들이 너무나 많다. 비대면 상황이라 확인을 못 해서 그렇지 상당히 많은 이들이 부평초처럼 떠다니고 있다. 이제 교회가 전면적으로 변해야 한다. 교회 내의 기득권과 헤게모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너진 집에서 우두머리를 해 봐야 내려앉는 서까래를 떠받칠 뿐이다. 이번 코로나 상황이 준 충격에서부터,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로운 건물을 세워야 한다. 복음에 대한 간절함과 처절함을 가지고, 교회를 떠나 믿음마저 버리는 이들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방향을 돌려 변화해야 하고,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예배와 교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주일·예배 ③] 안식의 날과 예배의 날
주일예배는 우리의 신앙 전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앙생활에서 제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면 가장 마지막에 남을 것이 주일예배일 것이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주일예배가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한목협의 “2017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교회 출석자 중 약 74%는 매주 주일 낮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수치는 1998년부터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이 조사에서 큰 변화가 없는 부분이다. 이 수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데,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한국갤럽이 정기적으로 행하는 “한국인의 종교” 조사를 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당/교회/절에 가느냐는 질문에 긍정 응답이 불교인은 6%로 가장 낮았고, 천주교인은 59%가 나왔다. 이에 비해 개신교는 80%나 나왔다. 이처럼 한국교회 교인들은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척도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개신교인 중 매주 교회에 가는 사람은 23%이다. 독일의 경우도 독일개신교연합(EKD)의 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가는 신자가 20% 정도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한국교회의 교인들이 얼마나 주일예배를 중시하는지,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일예배를 얼마나 기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성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필자가 아는 한 목사님은 젊을 때 군대에서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모진 박해를 감내했다고 들었다. 한번은 소위 말하는 ‘빠따’를 100대 맞고 ‘독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교회에 갔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대한민국 남자치고 이런 전설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신 교단에 속한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다. 마침 식사 때가 되어 담당하는 부장 집사와 임원들과 함께 중국 식당을 갔다. 밥을 먹는데 이분들이 하는 이야기가 ‘고신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주일에 외식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심지어 주일이면 돈을 쓰면 안 되기 때문에 간식도 못 사 먹고,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한번 시작되자 이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일성수와 관련한 다양한 전설들을 쏟아 놓았다. 어디 고신 교단뿐이겠는가. 아마 보수 교단에 속했던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그렇게 주일성수를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전에 손봉호 장로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장로님은 학생 때 주일이면 공부를 안 했다고 한다. 온전한 안식을 누린 것이다. 그런데 시험 때가 되면 불안했다. 그래서 주일에 공부를 안 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일 밤 12시부터 시작해 밤새워 공부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유학 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 아마 손 장로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다시 나왔던 <불의 전차>라는 영화는 영국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였던 에릭 리델의 이야기를 다룬다. 올림픽 100m 달리기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그가 경기가 주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불참했던 일화가 나온다. 국가의 대표로 나와서 온 국민의 열망을 담고 있었던 그가 주일성수를 이유로 경기에 불참한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100m 경기 대신 400m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다. 이 이야기는 주일성수에 관한 감동적인 예화로 한국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주일성수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또한 수많은 전설도 가지고 있다. 때론 인생을 걸고, 모진 박해를 감당하고, 불편함과 불안함도 이겨야 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이며 또한 절대적 의무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주일성수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주일성수의 정확한 의미다. 주일에는 두 가지 개념이 들어 있다. 하나는 ‘안식의 날’이고, 하나는 ‘예배의 날’이다. 안식의 날이라는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비롯한 유대인의 전통에서 왔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친히 안식의 날을 제정하셨다. 6일간의 창조 후 7일째 되는 날에 쉬시며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이 되어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표징으로 남아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특별히 쉬는 날이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7일마다 쉴 수 있는 날을 만들었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안식의 명령 때문에 유대인 성인(成人)뿐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그리고 그 집안의 종들과 한마을에 사는 외국인들까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가축에게까지도 안식의 혜택을 누리게 했다. 안식은 그저 권고 사항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였으며 신적 권위로 보장된 권리였다. 쉴 수 있는 날이 아니라 반드시 쉬어야 하는 날이었다.
1주일 단위로 살고, 그 가운데 쉬는 날을 가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매 주일 쉰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 일반적이지 않았다. 조선 시대로 올라가면 물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농경문화에서 살던 우리는 명절이나 되어야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창조의 때부터 7일마다 안식일을 가졌다. 이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한 사회가 이런 쉼을 제도화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큰 배려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절대적 계명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이들은 촘촘하게 안식일 규정을 만들어 놓고 안식일에는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가축까지도 어떤 노동도 할 수 없도록 했다. 안식일 계명은 지금까지도 유대 전통 안에서 절대적이다. 아니, 너무 과도하게 엄밀하여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정도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도 그러한 폐해를 지적하며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막 2:27). 하지만 이러한 폐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놀라운 모습으로 발견되곤 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다. 주일(Lord’s day)이라고 명칭도 바뀌고, 그 지키는 날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지만, ‘안식’의 전통은 이어져서 노동에서 해방된 날로 여긴다. 기독교 국가인 유럽의 나라들은 아직도 이런 전통에 따라 주일이면 상행위가 중지되고, 심지어 상용 트럭의 고속도로 운행을 금하고 있다(적어도 독일에서는 그렇게 지켜지고 있다). 한국교회도 그러한 전통에 따라 주일을 안식의 날로 여겼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노동을 금하고, 상거래도 중지하고, 심지어 학생들은 공부도 멈추었다. 특히, 청교도의 전통을 따라 주일이면 오락행위도 멈추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주일을 ‘안식의 날’로 지킨다는 의미이다.
주일에 포함된 두 번째 개념은 ‘예배의 날’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종교 의례를 행하는 날로 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에서 행하는 안식일 의례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합적 의미의 종교 의례는 없었다. 물론 성전에서는 안식일마다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제사장들이 행하는 종교 의례였지, 모든 유대인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제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것이 회당 시대1)가 되며 바뀌었다. 회당이 생기면서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매 주일마다 기독교인들이 모였고, 처음에는 함께 모여 식사하고 말씀을 나누는 모임에서 점차 의례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전통에서 발전하여 주일이 ‘예배를 드리는 날’로 정착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일성수’는 무엇보다도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에 가서 담임 목사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하는 일로 이해한다. 바로 그것이 특별히 한국교회 교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주일성수 표징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말하는 주일성수에는 이 두 가지 개념, 안식의 날과 예배의 날이 함께 들어 있다. 둘이 분리 가능한가라고 질문할 수 있지만, 엄밀히 보면 이 둘은 구분될 수 있고, 구분되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7번째 날의 안식일 이상의 쉼을 누리는 상황에서 안식의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일요일뿐 아니라 토요일까지도 휴일로 보내는 상황에서 주일만 안식일로 간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일을 안식의 날, 노동에서 해방되는 날로만 본다면, 그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없다.
또한, 온라인 예배가 들어오고 안식의 날이 하나로만 정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일만을 예배의 날로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도 한계를 가지게 된다. 자칫하면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배에 참여할 권리 자체를 빼앗아 가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교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정해진 소수만 참여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참여자에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주일성수가 인정될 수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주일성수는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안식과 예배의 두 개념을 함께 지켜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다루기 위해, 성서와 교회사를 돌아보며 안식일과 주일, 그리고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부록
아래는 2020년 3월 13일에 개인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당시 온라인 예배가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 포기 입장을 옹호하다가 너무 과하게 대처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우리에게 예배당으로서 교회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예배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나누었다.
예전에 제가 알고 지내던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정말 여장부셨고 교회에서 열심이었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장수의 복은 없으셔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남편은 항상 교회에 오시면 맨 앞자리, 전에 권사님이 앉으시던 그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 전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은 겁니다. 그 교회 오래 다니신 분들은 그 자리가 돌아가신 그 권사님의 자리이고, 이제는 그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 남편의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 남편이 그 자리는 “우리 0권사의 자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화를 낸 것입니다.
교회당 자리에 누구 이름이 붙은 것도 아니고, 그 권사님 돌아가신 지도 몇 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분의 자리겠습니까? 그런데 남편인 그분에게는 분명 그 권사님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드렸던 권사님의 기도를 그분은 아셨던 거겠죠.
역사 있는 교회에 부임하면 몇 년 동안 교회 물품을 치우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못 하나에도 사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나무로 된 무거운 강대상을 치우고 크리스털로 된 세련된 강대상을 놓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가 그 강대상에서 울려 나는 말씀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죠. 거기서 나온 말씀에 감동하고, 결단했던 기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강대상에 몇십 년 서셨던 원로 목사님도 있고, 그걸 헌물하셨던 분도 있는 것이죠.
요즘 교회당에 모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별수 없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하며 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니 여러분들이 정당화에 나섰습니다. 신학적으로 예배당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에 예배당이 어디 있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들의 신앙이 우리보다 더 좋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공동체라고도 합니다. 실은 어디 하나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건 아닙니다. 예배당에는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굴곡 가운데 그 예배당에 엎드려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세례를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고, 성탄절에 주일학교 장기자랑도 했던 자리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삶의 매 순간이 이 예배당과 얽혀 있습니다. 저는 교역자 생활을 하며 여러 교회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래서 딱히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담겨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학 가기 전까지, 그러니까 예수 믿은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 3년까지 다닌 교회가 있습니다. 제겐 그 교회, 영은교회가 모교회이고 신앙의 뿌리이고, 삶의 정착지입니다. 이제는 현대식 건물로 대체되어 아쉬움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 있었던 빨간 벽돌의 예배당은 볼 때마다 내 신앙을 일깨워주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 설교자로 그 예배당에 섰을 때를 기억합니다. 강단에 서니 내가 항상 앉았던 바로 그 자리가 제일 먼저 보였습니다. 그리고 절로 눈물이 나서 설교 전에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기가 전에 내 자리였다고’고 말입니다. 내가 눈물이 났던 건 그 자리를 보며 내가 쌓았던 예배와 기도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시온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교회당에서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가 된 중에 예루살렘 성전에 다 함께 모여 주님께 제사 드리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이 구약의 성전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신앙이 쌓여 있는 귀한 삶의 자리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어려움이 지나면 다시 그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교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1) 회당이 처음 생긴 시기가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유물은 주전 3세기 것이며, 회당이 예배의 중심이 된 것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이다. Wikipedia, “Synagogue”(편집자 주).
[주일·예배 ④] 안식일의 의미(1)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절대적인 율법이다. 그들은 모든 일상과 구별하여 안식일을 특별히 지켰다.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이러한 규칙은 때로 경제적 어려움을 주었고, 생활의 리듬이 다른 그들을 차별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안식일은 유효하여서 마카비 전쟁 중에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다. 로마군이 몰려오는데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학살을 당한 것이다. 구약성경을 통해 그들에게 안식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자.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정은 창세기 2장에서 유래한다. 1장과 연결되는 2:2-3은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셨다고 말한다. 일곱째 날에 왜 안식이 필요하셨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6일간의 사역이 힘들어서 쉬셨는지, 달력에 빨간 날로 표시되어 쉬셨는지, 그도 아니면 7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드셨는지, 별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그것을 기념하여 하루를 안식하셨다고만 말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이어지는 요일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등으로 구분하였고 일곱째 날을 사밧(Sabbat)이라고 하여 안식의 날로 불렀다. 즉, 창세기 말씀은 우리가 왜 7일마다 한 날을 쉬게 되었는지는 언급하지만, 그날이 오늘날의 어떤 요일인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느 날에 쉬어야 하는지, 어느 날을 기준으로 일곱 번째 날인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단지 7일의 주기가 있고, 그중 일곱 번째 날을 사밧(안식)이라고 명명할 뿐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며 재밌는 일을 경험했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유대인이 주류이지만 모슬렘인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적지 않고, 대부분 외국인이지만 기독교인도 일부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각자 종교에 따라 안식의 날이 다르다는 점이다. 모슬렘은 성경의 안식일 법을 따라 쉬지만, 쉬는 날이 금요일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이다. 즉, 토요일이 안식의 날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표준인 일요일도 역시 안식의 날이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가면 지역마다 쉬는 날이 다르다. 유대인 지역과 이슬람 지역이 구분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곱째 날’이라는 규정이, 어느 날을 기준으로 일곱째인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성경에서 안식일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명령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온다. 두 곳의 십계명은 잘 살펴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특히, 안식일 규정인 제4계명 부분은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십계명의 각 계명은 간단히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설명이 있더라도 간단히 한 절이거나 특별한 경우에 한 절이 더 추가될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안식일 규정인 제4계명에 이르러서는 4절이나 되는 분량으로 자세한 설명이 따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부분에서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출애굽기 20:8-11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신명기 5:12-15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 두 성경 구절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사밧이 거룩한 날이며, 여호와의 날이고, 안식의 날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이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 이날은 다른 날들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날이다(창 2:1). 다른 날은 우리가 일상으로 사는 날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하는 날이다. 그러나 이날은 다르다. 그런 날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마치 같은 물건이라도 안수하여 구별할 때 성전에서 쓰이는 성물이 되는 것과 같다.
또한, 이날은 여호와의 날이다. 이것은 소유권에 관한 선언이다. 이날은 인간이 소유한 날이 아니며 철저히 하나님께 속한 날이다. 물론 이날만 여호와의 날은 아니다. 그러나 이날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을 선언하면서 우리에게 속한 모든 날들도 하나님의 날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날은 안식일이다. 이날은 쉼을 얻는 날이다. 그런데 이 계명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안식해야 하는 이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는 점이다. 계명을 받는 당사자인 ‘너’로 시작해서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이 포함된다. 거기에 더해서 심지어 가축들에게도 쉼을 주라고 한다(신명기는 가축에 대해서도 소나 나귀라고 더 명확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안식일의 중요한 의미는 피조물에 대한 배려이다. 고대 사회에서 7일마다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당사자인 ‘너’와 그 자녀들까지, 그리고 그 종들까지도 쉼을 얻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안식의 범위가 가축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을 넘어 피조물에 대한 배려로 나아간다. 심지어 안식년에 이르러서는 땅으로까지 배려의 대상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 생명체를 넘어 모든 창조물에 대한 배려가 이 계명에 포함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안식의 명령은 가장 혜택을 입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종들에 관해 더 강조된다. 신명기 5:14을 보면 안식을 누려야 할 대상을 출애굽기와 동일하게 나열하고, 다시 덧붙여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구절의 ‘너 같이’라는 말씀에 주목하게 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의 계명들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로 요약하셨던 그 말씀이다. 이 두 계명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서 여호와의 주권을 확인하고, 또, 네 종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증거로 그들에게 안식을 주라는 안식일 계명과 겹쳐 보인다. 또한, ‘내가 너를 배려한 것과 같이 네 종들을 배려하라’, 다시 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도 네 종들을 사랑하라’는 말로도 이해된다.
결국, 안식일 계명을 지키면서 우리는 하나님 형상(Imago Dei)인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게 되며, 모든 창조물을 향한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며 경험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십계명 안에 안식일 계명을 엄중한 의무 사항으로 담아 두셨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의무로 포장된 권리이다. 하나님이 보장해 주신 안식일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신적 정당성이 부여된 권리이다. 특히, 그 집에 속한 종들에게, 그리고 유대인이 아닐 수도 있는 그 집의 객에게까지도 보장된 거룩한 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이다. 하나님은 계명의 모습으로 이 모든 배려와 사랑을 보장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계명을 품고 있는 이 두 성경 구절은 서로 다른 부분도 있다. 그것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근거 부분이다. 출애굽기 본문은 11절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언급하며 하나님이 그날에 쉬셨고 안식일을 복되게 하고 구별하셨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출애굽을 언급한다. ‘네가 애굽의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고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신명기는 종들에 대한 강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런 종 되었던 상황에 있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인도하였으니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다. 출애굽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언급하고, 신명기는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한다. 즉, 이 둘을 합하면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안식을 정하셨으니, 너희는 지키라는 말이다.
남들처럼 쉼 없이 노동하는 것, 종들을 쉼 없이 부리는 것, 가축들을 쉼 없이 채찍질하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에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방식을 포기하고 온전히 쉼을 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인으로서는, 몸은 쉴지 몰라도 마음은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날을 온전히 쉬었다. 하나님이 이날을 복 주고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 계명을 따라 쉰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신앙이다. 하나님이 쉬라고 하셨으니, 그분이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신앙이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이렇게 보면, 삶으로 드리는 신앙고백이다. 내 삶의 주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가시적으로 나타낸 신앙고백이다. 즉, 입으로 말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더 나아가서는 삶으로 온전히 보여주는 신앙고백이다.
그런데 그 신앙고백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이 성경 구절에 드러난다. 바로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다. 유대인들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창조주이시며 구원자가 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 그들의 삶의 주인이 바로 이 하나님이심을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며 일하기 위해 먹던 인간들이, 한 번의 쉼을 통하여, 반복되던 노동의 삶을 멈추고 그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 바라봄을 통하여 자신의 삶에 주인이 있음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된다.
안식일은 이런 의미에서 단순히 노동에서 해방되는 날이 아니다. 우리의 창조주와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경험하는 날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내 삶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안식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 계명을 지킴으로써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 이런 충만한 의미에서 우리는 주일을 안식의 날로 맞이한다. 단지 하루의 쉬는 날을 넘어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험한다. 그리고 이날에 모든 창조물들과 함께 우리에게 허락된 참된 안식을 누린다. 안식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다.
[주일·예배 ⑤] 안식일의 의미(2): 안식일에서 예배일로
안식일은 노동을 쉬는 날이다. 이날을 쉬는 것은 7일의 리듬에서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즉,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노동에서 놓여 쉼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 계심을 기억하고 그분이 또한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가시적 형태의 신앙고백이다. 입으로 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고백이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원래 안식일은 의례의 날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공적으로 모여서 종교적 의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이날은 말 그대로 안식하는 날이었지 어떤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날은 아니었다. 물론 가정에서 사적으로 지키는 의례는 있었지만, 공적으로 모여서 드리는 예식은 따로 없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성전 전통을 알아야 한다. 솔로몬이 처음 성전을 지으면서 성전 건축과 함께 지방에 존재하던 제단과 산당 등을 제거했다. 당시 산당과 제단은 우상숭배와 이단적 종교 행위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정비의 차원에서 지방의 종교 기관들을 제거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왕권을 확립하고 종교의 중앙집권화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이때부터 유대교는,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예루살렘의 종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단 한 군데만 존재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규모가 작다고 해도 한 나라이다. 그런데 종교 기관이 단 하나로 통일되었다. 당시의 이스라엘 인구는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다윗의 인구 조사 때 요압 장군이 보고하기를, ‘칼을 잡을 수 있는 자가 130만 명’이라고 했다(삼하 24:9). 그 수에는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빠졌다. 여기에 여성과 ‘칼을 잡을 수 없는’ 아이들과 노인들의 숫자를 더하면 대략 400만 정도로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종교 기관이 딱 한 군데뿐이었다.
우리나라 충청남도와 북도의 인구를 합해도 400만이 안 된다. 전라남도와 북도 인구를 합해도 역시 400만이 안 된다. 아마 당시 이스라엘 인구도 이 정도 규모였으니 비교해 보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즉, 충청도에 교회가 하나 있고, 전라도에 교회가 하나 있는 식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통신이 용이한 시대라고 해도, 사람들이 매주 이렇게 한 군데 교회로 모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율법이 명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일 년에 딱 3번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간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 칠칠절, 유월절에는 모든 유대인들이(정확히 말하면 유대인 남자들이) 성전으로 와야 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날 외에는 의무적으로 종교 기관을 찾아올 필요가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모이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다. 각자 제물을 가지고 먼 길을 오가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도 성전을 단 한 군데에만 만들어 놓고 다른 종교 기관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거의 신앙생활을 포기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일반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성전을 찾아도 정작 제사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 안쪽 ‘제사장의 뜰’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이스라엘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다. 이들의 참여는 자신들의 제물을 제사장들에게 전달하는 데서 끝났다. 제물이 어떻게 드려지는지, 제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볼 수 없었다. 성전에서 개인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은 가능했지만, 공적으로 함께 드리는 예식은 따로 없었다.
종교사회학의 눈으로 보면, 확실히 이 당시의 유대교는 예루살렘의 종교이다.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왕권과 귀족층, 그리고 제사장들의 종교였다. 일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전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성전이었다. 평민 유대인들은 유대교에서 소외되었다. 성경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상류층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왕실의 기록만 남아 있다.
다시 안식일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신앙고백의 가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날에 공적인 종교 의례를 가지지 않았다. 그것이 이런 성전 중심의 종교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성전 중심의 종교는 유다의 멸망으로 끝을 맺는다. 주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는 점령당하고, 예루살렘은 파괴된다. 성전은 무너졌고, 성전 기물들은 바벨론으로 옮겨져 유흥 자리의 술잔이 된다. 지금까지 성전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고, 이스라엘의 상징이며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종교적 상징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집단 이주된다. 그들의 지도자 그룹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까지도 상당한 다수가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이들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포로기 이후 돌아온 이들이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을 책망하고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수에서나 영향력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이 통째로 바벨론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뉴노멀’은 시작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그들을 정의했던 것은 500년 전통의 성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성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것이 말씀이었다. 포로기에 그들은 오히려 말씀에 집착했다. 거룩한 문서들을 정리했고 책으로 엮었다. 제사가 중심이던 성전 전통에서는 소홀했던 일이다. 그리고 성전 대신 그들은 회당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유대인 남성 10명 이상이 모이면 회당을 세우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회당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 즉, 공동체가 그 구성 요건이었다는 점이다. 또, 단지 유대인 남성 10명만 모이면 회당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대단한 요건이 아니었다. 10명만 있으면 되는데, 어느 규모 이상의 건물도 필요 없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회당은 곳곳에 세워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은 제사가 아니라 말씀 중심의 예전을 가지게 되었다. 성인 남성 중 누구든지 성경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회중 앞에서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복잡한 제약이 없었다. 그 제도를 가장 잘 이용한 경우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사역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회당을 찾았고, 말씀을 꺼내 읽고는 새로운 복음에 맞추어 그것을 해석했다. 그러한 회당 전통은 이미 포로기부터 수백 년간 내려온 전통이었다.
그리고 안식일의 이동 금지 규정에 따라 회당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에 이동이 허락되는 거리는 대략 1km 정도였다. 즉, 안식일에는 반경 1km 이내의 이웃 사람들이 그들의 회당을 찾았다.
이미 힌트가 다 나왔다. 회당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안식일에 행할 종교 의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 가까운 곳에, 성인 남성 10명 이상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제사가 아닌 말씀 중심의 의례가 생긴 것이다. 그런 접근성 덕분에 사람들은 이제 안식일마다 종교 기관인 회당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제사가 사라지니 제사장이나 왕족이라는 특권 계층이 지배할 수 없었다. 그들 대신에 ‘누구나’ 예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안식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다. 말씀을 읽고 해석하며 그 의미를 새기는 날이 되었다. 안식일은 이제 그들의 날이 아니라 우리의 날이 되었다. 누구나 안식일이면 회당에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그날은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성경은 이러한 회당 전통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제도를 만들었는지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 성막이나 성전이 지어질 때와 관련해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이 만들어질 때, 쉬지 않으셨다. 그 설계도를 주셨고, 인테리어와 기물들에 관해도 꼼꼼히 지시하셨다. 심지어 제사장들의 의상까지도 섬세히 규정하셨다. 그런데 회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종교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성전 전통은 제사장들과 왕족 중심의 엘리트 종교였다. 즉, 역사적 주류의 전통이었다. 그에 반해 회당 전통은 포로들의 모임에서 시작했다. 외형도 보잘것없었다. 그것은 주류가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비주류에 의해 주도되었다. 역사 기록의 관점에서 보면, 성전에 비해 회당 이야기는 별로 적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기록에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전 전통은 포로기를 포함한다고 해도 1천 년 역사로 끝이 났다. 이에 반해 회당은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성전의 제사 제도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회당은 어디에서든 유대인 남성 10명만 있으면 자리를 잡고 명맥을 이어간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을까?
회당을 통해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말씀 중심의 예전을 행하게 되었다. 거기에서는 제사장과 백성의 구분도 없었고, 모든 이들이 예배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회당의 등장으로 비로소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 된다. 적어도 500년 이상 지속되던 성전 전통이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회당 전통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잉태된 곳이다. 회당 전통은 이후 기독교의 예배 전통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성전이 아니라 회당에 그 명맥이 닿아있다. 특히 개신교는 더더욱 말씀 중심, 성도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회당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전 전통만 알고 그 전통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석하고자 한다. 제사장이 중심이 되어 드리는 제사만을 신앙생활의 중심 은유로 삼으면, 자칫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종교 생활과 신앙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쉽다. 이제 일반인들의 공동체로, 말씀 중심의 예배로 새롭게 신앙생활을 정의했던 회당 전통으로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특히, 온라인 예배 공동체가 등장하며 성전과 회당 두 전통이 공존하는 오늘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변화의 시기일수록, 우리의 신앙 전통들의 의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목회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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