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묵시록의 일곱교회 / 스미르나(이즈미르)

스미르나(현재 지명은 이즈미르)는 지금도 터키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여전히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터키 남부의 미항이다.
스미르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되었는데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는 가시 돋친 이 나무는
쓴맛을 지니고 있으며 그 향기가 대단히 훌륭해서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박사들이 선물로 가져왔을 만큼 값지고 훌륭한 향료이다.
이즈미르에는 묵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건물이 있다.
바로 황제 숭배를 거부해 순교한 폴리카르푸스 주교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당시 스미르나에는 많은 유다인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잔학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숭배 거부로 스미르나 교회는 많은 재정적 궁핍을 겪었다.
그럼에도 스미르나 교회는 모든 핍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열렬한 신앙을 지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너는 사실 부유하다.
또한 유다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서 중상을 받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묵시 2,8-11).
주님은 스미르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을 잘 아신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주님은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 생명의 화관을 받으라고 명령하신다.
이즈미르는 터키에서 성당이 가장 많다.
종려나무 늘어선 ‘사랑의 거리'를 잠시 걷다가 폴리카르푸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폴리카르푸스 성인은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는 유혹에
“86살이 되도록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신 그분은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셨다”고 신앙을 고백한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붉은 피 위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인 나 또한 그들의 붉은 피 위에 있다.






이슬람은 예수가 유다인들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하늘로 불러올림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대신한 어린 양'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확실히 이성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를 뛰어넘는 ‘믿음'의 영역이다.
나는 앞서간 많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믿는다.
그들이 놀라운 삶으로 보여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앎을 나는 신뢰한다.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나 보나벤투라 같은 박사들이 성취한 학문적 업적,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대 데레사 성녀가 도달했던 깊은 밤이나 영혼의 성,
프란치스코가 온 삶으로 보여준 ‘예수님 사랑 때문에 미친 사랑',
그들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결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치열한 영적 투쟁을 통해 쌓은 영예로운 보물들이 오늘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한다. 과연 내가 그들보다 빈 수레 같은 내 정신에 더 의지할 수 있는가.
폴리카르푸스
폴리카르푸스는 스미르나의 주교로서 초대교회 때부터 큰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그는 사도 요한에게 직접 배웠고 그로부터 주교 임명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사도적 권위를 지니며 사도교부(使徒敎父)로 불린다. 사도교부란 1세기와 2세기 초의 교부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12사도, 또 그 목격자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을 말한다. 따라서 사도교부들의 가르침과 주장은 사도들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와 권위를 지닌다. 로마의 클레멘스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 등이 사도교부에 속하는 분들이다.
폴리카르푸스 주교에 관한 역사적 증언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순교록》에 의하면 86세 되던 해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는데 순교 연도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156년경으로 보고 있다. 110년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남긴 일곱 서간 가운데 마네시아, 에페소 두 서간에 폴리카르푸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와 폴리카르푸스 주교 개인에게 각각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두 주교 사이의 친분관계를 알 수 있는 것으로 폴리카르푸스 주교가 당시 교회에서 얼마나 비중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가 110년에 이미 주교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50년 이상 주교직에 재직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순교 직전인 155년에 로마를 방문하여 아니체투스 교황(+166)과 함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차이가 있던 부활절 경축 날짜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조직적인 영지주의자로서 당시 교회를 괴롭히던 마르치온에게 “나는 네가 확실히 사탄의 맏자식임을 알고 있다”는 말로서 단죄하였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2월 23일에 지낸다.
171년 이후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폴리카르푸스의 《순교록》은 폴리카르푸스 주교의 영웅적인 모습을 알리기 위해 스미르나 교회가 필로멜리움 교회에 보낸 서간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공 경기장에서 여러 순교자에 대한 처형이 있은 다음, 끝으로 폴리카르푸스 주교의 차례가 되자 총독은 주교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유혹하였다. 그는 “86살이 되도록 섬겨온 그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고 또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그분이신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하며 거부하였다. 경기가 이미 끝난 뒤라 총독이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하자, 군중은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뜨거워 요동을 칠까봐 군인들이 못질을 하려하자, 주교는 “염려말게. 이 불을 견딜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박지 않아도 장작불 속에서 버티어 낼 힘을 나에게 주시리라”고 안심시키고 당당히 순교하였다.
스미르나의 노인, 폴리카르푸스 주교 또한 단단한 믿음의 모델로 나를 자극한다.
위대한 순교자들, 성인들은 우리가 쉬이 용인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소한 배반에도 엄격했다.
내가 육신을 부실하게 하는 것 또한 피조물의 마땅한 자세는 아닐 터.








여전히 남아 있는 편두통을 의식하며 나를 돌아본다.
칠죄종을 깊이 생각할 것! 그리고 내게 주신 것을 최대한 발휘하고 나누도록 힘쓸 것!
“온 마음으로 피정에 들어가라. 혼자 남아 있으라.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라”는
알퐁소 성인의 조언을 다시 생각한다.
결국 ‘내 마음의 광야'를 구축해야 한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하느님 안에서 고독한 시간을 가질 때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다.
냉방이 잘 되는 성당에서 부드러운 쿠션이 깔린 의자에 앉아 미사를 드리고
소화데레사와 잔다르크와 폴리카르푸스 성인께 안녕을 고한다.
교회 : 요한 묵시록의 일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