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 터를 잡고 시민단체 일을 하는 후배 강복현에게
그 쪽 대표들께 저녁 한끼 사겠다고 했다.
실은 우리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서예지도를 하시는 이정식 대표에게
'독좌대웅봉'을 써 달라해 먹값 대신 밥을 사는게 좋을 듯해서다.
5시 전에 직원의 차를 타고 고흥동초 앞에 내려 남계천을 걷는다.
문이 절반 이상 닫혀있는 시장 옆을 지나 홍교정과 느티나무를 만난다.
두 남자가 물 속의 잉어를 보다가 고양이 더러 잡아오라고 하며 웃는다.
나도 웃으며 훈련을 시키라고 한다.
수덕 행정 쪽에서 흘러오는 개천에 두 개의 홍교가 있는데
지금은 유물처럼 갇혀 높다랗다.
동치10년이라는 연호가 보이고 일한 사람들의 이름도 보인다.
무돌길 걸은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조심스럽게 옥상마을로 올라간다.
목일신 음악거리에서 잠깐 그의 시를 읽는다.
우리 가족이 한 때 살았던 서문리 1번지는 지붕 사방을 더 늘였지만 본채는 그대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복개된 길을 따라 더 올라가 본다.
한결이가 떨어져 빠지곤 했던 돌바닥의 개천은 물이 없다.
정부장의 집은 기억이 없다.
길 끝쪽에 새로 지은 집은 큰 물통이 있고 세워진 하얀 차를 보니
강복현의 집 같다.
시간을 맞춰 서서히 돌아와 읍성으로 조심스레 올라간다.
물집이나 발톱 빠진 것이 조금 통증을 알려오지만 견딜만 하다.
읍성을 돌아 추억의 거리라는 초등학생들의 서툰 그림들이 구워져 벽에 늘어서 있다.
돌아가니 아득한 기억속의 제각이 나타나 다가간다.
가락 김해김씨의 종친회관 현종재다.
비석들이 즐비하다.
성주인 이백순 경주인 이계인 중당 신수일 등의 이름을 대충 읽는다.
뒷쪽에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파노라마로 이리저리 찍어본다.
10분 전에 해태식당에 도착하니 이수일 선생과 후배 송호철,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영남의 선배 등이 복현이와 함께 입구에 서 있다.
죄송하게 김부일 형님의 성함을 묻는다.
남양농협지점장이면서 통일운동금모으기 사무국장을 하고 있다는 강경우(영남 우암)와 인사하고
한잔 하는데 신순일 지회장이 와 8명이 다 찬다.
소개와 함께 속한 단체에 대해 잠깐 공유한다.
복현이와 호철 그리고 신선생과 나 넷이만 마시고 네 분은 안 마신다.
운전이 서투르신 이수일 선생님의 차를 타고 포두 질머리에 와 호철이와 한잔 더 하다가
송기신 형까지 불러 마시고 방으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