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풍경
일기예보는 하루종일 비가 내린단다. 점심을 먹고 우산을 펼쳐들었다. 약간의 바람에다 주적주적 비가 내린다.
기온 7도, 햇살이 나면 따뜻한 온도지만, 비 내리는 날이면 다소 쌀쌀한 날씨다.
옆집 커피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휴일이다. 대체 휴일, 대체 일은 언제 한다니? 허구헌날 휴일이란 생각이 드니 말이다. 휴일 있어 가족이 함께 하는건 좋은데, 그렇지 않아도 일자리가 줄어드니 걱정스럽다.
무슨 걱정이냐고? 자신이 생산자의 대열에 서있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한 영원한 짐이 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기온이 낮으니 바지 가랑이 물기 젖는 것도 성가셨다. 전철역 계단을 넘어 하천가로 가려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들어섰다.
터미널 안은 영문표기 그대로인 emart24, Dunkin' Donuts, Compose Coffee, 그리고 지역특산품을 파는 가게와 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엔 약국과 게임장이 있었으나 이용자가 적어 사라지고 말았다.
점심시간 끝날 무렵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나는 휴게실 장의자가 나열된 뒷편 좌석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지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룹지어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티비 앞에서 터주대감 티내며 잡담하는 무리, 휴대폰 보며 홀로 멍때리는 청년, 어디론가 빠른 걸음 옮기는 아가씨...
오른편 안마의자에는 외국인 청년이 누워 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건너좌석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비만의 중년 여인은 쉴새없이 입에다 무엇인가를 밀어넣고 있었다.
잠시후 웬남녀 서너명이 나의 뒤 벽면 틈새에 다가와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런 경우 은근히 짜증난다. 빈자리 많은데 왜 내가 자신들 코앞에서 그들의 잡담에 함께 귀를 어지렵혀야 하나? 남일랑 전혀 배려나 의식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쪼다 무식쟁이들이다. 하는 수 없이 힐끗 흘겨보고 내가 자리를 피해갔다.
잠시후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내게로 다가왔다.
"돈 8천원만 빌려주세요."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말은 당돌하였지만, 표정만으로 보아서는 무표정하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런데 앞의 젊은 사람을 두고 곧장 내게로 다가온 것일까? 내가 약해 보였나?
그리고 8천원이란 숫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용도는 두가지로 짐작된다. 시외버스 표를 사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무엇 먹거리를 사려는데 돈이 부족한 것일게다. 그런데 동정의 호소란 전제에 절박함이 결여되었다.
나는 일단 거절을 했다. 그는 내게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을 했는지 나의 얼굴을 바라다 보았다. 나는 "동네 노인이 바람쐬려 나왔는데 무슨 돈을 가지고 다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돌아서더니 나에게 오기전 거쳐온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머뭇거리다 돈을 달라고 요구를 했고, 그도 역시 거절했다.
그런데 그는 무슨 목적으로 돈을 요구했을까? 1,2천원 정도라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8천원은 1만원에 가깝다. 그리고 처음부터 돈의 용도를 말했어야 했다. 차비에 보탤건지, 커피나 도넛을 사먹기위함인지, 그리고 주면 주는 것이지 빌려달라는 말투는 또 뭔가?
하여간 도움을 주지못한 나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여나 매표소 근처에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려나 하는 생각으로 살펴 보았으나 그는 이미 백화점쪽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구걸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걸까? 그것은 경제적 궁핍, 생존의 필요, 수치심을 견디어내는 감정, 그리고 타인의 동정심에 대한 기대 등 복합적인 요인이 수반된다고 하였다.
요즘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한정된 공간에서 자리를 잡고 산다. 이런 터미널에선 정장을 입은 젊은이들은 볼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도 임산부를 좌석 배려하고 있으나 정작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임산부나 어린아이를 본적이 드물다.
직장가진 젊은이 정도라면 적어도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는게 현실이다.
어느쪽이 바람직 하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내가 버스터미널에서 보았던 현실들, 할일 없는 끼리끼리 모임의 놀이터가 되고, 살찐 여인이 거침없이 더욱 살을 찌우며, 남의 감정을 전혀 무시하고 행동하고, 까닭 모르게 도움을 요구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면 소비생활의 비중이 크다고 바람직 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러한 사람들에 의한 나의 뒷모습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람은 누구나 뒷모습을 가지지만, 자신은 한번도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비가 잦다.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꽃피는 봄의 시즌이 연속될 것인가? 그러나 예전에도 그랬듯 꽃샘 추위란 복병이 식물들 꽃맺음의 생태계를 위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