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의 중간 지점인 무등산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지맥이 흘러가다가 솟은 산이 모후산(918.8m)으로 본디 이름은 나복산이다.
고려 공민왕 이후 산명이 모후산으로 변경되었다. 왕이 왕비와 함께 홍건적의 난을 피한 산이라는 뜻에서이다.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에 있으며 광주 무등산(1,186.8m)과 순천시 조계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유마사, 화순물염적벽, 주암호, 사평폭포등의 명소가 곳곳에 있고, 항상 맑은 계곡물이 넘쳐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산에는 조릿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 겨울철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모후산의 독특한 이름이 눈길을 끈다. 과연 어떤 산이기에 임금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산 이름의 유래는 고려시대 공민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모후산의 원래 이름은 나복산이었다고 한다.
산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을 피해 나복산까지 피신한 왕이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온 왕은 이곳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1년간 머무른 뒤 개성을 탈환하며 난을 평정했다.
그 뒤부터 이 산을 황태후와 함께 난을 피했던 곳이라 하여 모후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모후산은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지금의 이름과 비슷한 모호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 동복현감을 지낸 서하당 김성원이 정유재란 때 노모를 구하기 위해 순절한 역사적 사실이 배경이 됐다.
이후 나복산을 모호산으로 불렀다고 전하고 있다. 이처럼 산 이름의 유래가 여러 가지라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의 내공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덩치도 크고 산세가 험한 데다,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남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해 활동하기도 했다.
모후산은 주변의 산들에 비해 유난히 높게 솟은 출중한 산세가 일품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복호, 주암댐의 푸른 물이 삼면을 감싸고 있는
독특한 풍광을 만날 수 있고, 멀리 무등산, 조계산, 백아산 등 호남의 산줄기가 조망된다.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보면 하늘과 맞닿아 어른거리는 득량만의 바다까지 볼 수 있다.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인 유마사는 중국 당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고려 때에는 8개 암자를 거느린 거찰로 당시 호남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근래에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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