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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팝 음악계는 미국과 영국 뮤지션들의 각축장이었다. 뮤지션과 팝 음악 관계자들은 팬들에게 자신들의 매력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제 단지 음악성만으로는 대중적 인기를 담보할 수 없었기에, 이들은 대중과 만날 최적의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촉각을 세웠다. 청자들과 얼마나 많이 접하냐에 따라 뮤지션과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누리는 부와 명성의 수준도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 아티스트들은 음악 자체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본질적인 측면과 상업성 있는 음악이 살아남는다는 실용적 측면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팝 음악이 정치, 경제, 사회 변화에 영향을 주고받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는 점에서, 뮤지션과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음악 외적 요소들을 엮고 녹이고 통합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다른 돌파구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기 영화,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주요 매체들도 음악과 관계된 수익 사업을 구상하면서 적극적인 광고, 홍보,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점차 팝 음악은 영화, 패션, 뮤직비디오, 공연 등을 동원해 대중의 삶을 파고들었다.
1975년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퀸(Queen)은 혁신적인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Bohemian Rhapsody]를 발표할 때, 팝 아티스트 최초로 뮤직비디오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뮤직비디오는 음반 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러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 외에도 팝 음악은 대규모 공연, 영화의 사운드 트랙, TV 쇼 등에서 다른 요소들과 결합하여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No. | 아티스트 & 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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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Donna Summer (도나 섬머) – Hot Stuff | |
2 | Donna Summer (도나 섬머) - I Feel Love | |
3 | Bee Gees (비지스) - Stayin’ Alive | |
4 | Bee Gees (비지스) - Night Fever | |
5 | Kool & The Gang (쿨 앤드 더 갱) - Ladies Night | |
6 | Abba (아바) – Gimme! Gimme! Gimme! | |
7 | Jackson 5 (잭슨파이브) - Dancing machine |
전곡 듣기: 9월 10일까지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토요일 밤의 열기] 영화 중 1970년대 디스코텍 파티 장면. 1977년
영화정보 보러가기
1970년대부터 80년대 대학 생활을 보낸 사람들은 디스크자키(DJ)와 나이트클럽, 나팔바지와 음악 감상실의 추억이 가슴 한 편에 남아있을 것이다. 1970년 말 DJ와 플로어 사이의 교감에서 출발한 음악들이 당시 생활양식과 결합하여 팝 음악으로 인기몰이하면서,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들어냈는데, 바로 디스코(Disco)였다.
음악 장르로서 디스코 음악은 50년대 백인들에게 인기를 끈 로큰롤과 6~70년대 흑인들의 소울이 반영된 리듬 앤 블루스(R&B)가 만난 형태였다. 디스코 음악은 대개 전기 기타, 베이스, 키보드 같은 악기들이 드럼같이 비트감을 부각시켜, 율동감을 돋우는 게 특징이다. 특히 디스코 음악에서 현을 끊어 쳐 펑키(Funky)함이 느껴지는 기타나 작은 악절에서 변주가 자유로운 베이스, 그리고 톡톡 쏘는 듯한 건반은 짜릿한 쾌감을 자아낸다.
슈프림스(The Supremes), 잭슨 파이브(Jackson 5),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등 모타운 뮤지션들이 R&B와 소울의 감성을 펑키하게 풀어내어 빌보드 팝 음악 차트에서 인기를 모았는데, 이는 디스코 음악 인기에 밑거름이 되었고, 1970년대 초 중반에 이르러 여러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앨범에 디스코 음악을 실으면서 점차 장르간 접목도 폭을 넓혀갔다.
60년대 팝의 상징이 비틀즈(Beatles)였다면, 70년대 디스코의 아이콘은 도나 섬머였다. 1951년 보스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음악 재능을 갈고 닦은 도나 섬머는 성인이 되자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뉴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뉴욕에서 식당의 접시 닦이와 웨이트리스 생활과 함께 수많은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담당자로부터 냉정한 거절 통보만을 받게 된다. 끊임없는 도전 끝에 그녀는 간신히 독일 뮌헨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팀에 합류하게 된다. 독일로 거처를 옮긴 도나 섬머는 뮤지컬 공연과 더불어 다른 아티스트를 뒷받침해주는 가수로 몇 년 동안 무명시절을 보낸다.
1974년 어느 날, 도나 섬머는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던 전설적인 테크노/일렉트로닉 프로듀서 조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의 눈에 띄게 된다. 당시 조지오 모로더는 건반과 기타를 사용하여 전자 음악을 실험하길 원했는데, 도나 섬머는 그 이미지에 맞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도나 섬머는 조지오 모로더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유럽 시장에서 첫 싱글[Hostage](1974)를 발표했고, 이는 미국 시장에서 그녀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빌보드 팝 계에서 도나 섬머가 디스코 음악의 헤로인으로 주목받은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싱글 [I Feel Love](1976)의 발표였다. 조지오 모로더와 피트 벨로트(Pete Bellotte)가 제작한 [I Feel Love]는 혁신적인 키보드와 몽롱한 도나 섬머의 음색을 조합하여, 어둠과 빛을 밀고 당기는 나이트클럽의 사이키 조명을 연상시키는 명작이었다. 이 싱글 앨범은 당시 약 50만 장을 판매, 빌보드 싱글 차트(US Billboard HOT 100) 6위의 쾌거를 올렸다. 곧이어 공개한 앨범 [Live And More](1978), [Bad Girl](1979)은 도나 섬머를 디스코의 여왕으로 등극시킨다.
앨범 [Live And More](1978)에는 1977년에 선공개 된 [I Feel Love] 외에도 [Mac Arthur Park]가 실려있었는데, 이 곡은 그녀에게 첫 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US Billboard HOT 100) 1위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또 앨범에 실린 [Last Dance], [Love to Love You, Baby]들도 연달아 히트하면서, [Live And More]는 빌보드 앨범 차트(US Billboard 200)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도나 섬머는 1979년 4월 25일 일곱 번째 정규 앨범 [Bad Girl](1979)을 발표했다. 수록곡 [Hot Stuff]과 [Bad Girls]가 대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자 두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거머쥐었고, 평단도 이 앨범을 시대의 걸작으로 평가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1977)
디스코 음악이 대중문화 전반에서 팬덤을 만들어 낸 것은 존 바담(John Badham) 감독,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 주연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1977)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페인트 가게에서 일하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 토니 마네로(Tony Manero)가 춤을 통해 젊음을 발산한다는 이야기로 1970년대 미국 내 성/인종 차별 등 사회적 편견에 대해 메시지를 던진 영화다.
맵시가 살아있는 셔츠와 나팔바지를 입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는 영화에 등장하는 비지스(Bee Gees), 더 트램프스(The Trammps), 케이씨 앤 더 선샤인 밴드(KC & The Sunshine Band) 등의 음악에 사랑과 몸을 싣는다. 특히 비지스의 곡 [You Should Be Dancing]과 더 트램프스(The Trammps)의 곡 [Disco Inferno]에 맞춰 클럽 무대 위를 나비같이 훨훨 날아다니는 존 트라볼타의 춤은 전 세계에 디스코 열기를 퍼뜨렸다.
이 영화 개봉 전까지만 해도 디스코 음악은 모타운 사운드가 태동한 디트로이트, 나이트클럽이 많았던 시카고 등 미국의 몇 안 되는 도시에서만 유행하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유희, 패션, 춤, 머리 모양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유행을 몰고 오면서, 디스코 음악은 빌보드 차트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팝 음악계에서 대중 장르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미러볼에 반사되는 빛이 음악과 어우러져 유희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나이트클럽과 무릎 아래부터 바지단까지 종 모양으로 늘어트린 바지(Bell Bottom Pants)는 1970년대 후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문화가 된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과 오일쇼크, 경제 불황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진 미국의 젊은 세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이런 문화 코드를 세련되게 표현해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흥행과 더불어 OST도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4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OST 흥행의 일등공신은 당연히 영국 그룹 비지스였다.
비지스(Bee Gees)는 배리 깁(Barry Gibb, 기타), 로빈 깁(Robin Gibb, 보컬/피아노), 모리스 깁(Maurice Gibb, 기타) 3형제로 구성된 영국 출신 밴드다. 1967년 1집 앨범 [The Bee Gee's 1st]로 데뷔한 비지스는 초창기 소프트 록이나 R&B 등의 음악을 했던 밴드였다.
이들이 디스코 음악으로 본격적인 변화를 추구한 것은 1975년에 발표한 앨범 [Main Course]부터였다. 앨범 [Main Course]에 수록된 [Night On Broadway], [Jive Talkin’]은 펑키한 리듬과 기타를 전면에 배치하고, 팔세토 창법의 배리 깁을 내세워 발매 당시 대중들을 낯설게 했다.
1976년 6월 그들은 디스코/펑키 사운드를 더욱 발전시켜 싱글 앨범 [You Should Be Dancing]을 발표했는데, 이 곡이 음악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비지스는 곧이어 자신들의 열네 번째 정규 앨범 [Children Of The World](1976)를 발매, 디스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한다.
비지스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OST에 참여한 데에는 매니저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공헌이 컸다. 1970년대 당시 로버트 스틱우드는 아티스트 A&R(Artists and Repertoire), 뮤지컬, 영화 제작 등 연예 사업 다방면에서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는데, 시나리오 채택, 존 트라볼타를 포함한 배우들의 캐스팅, 제작에 이르기까지 두루 참여했던 영화가 바로 [토요일 밤의 열기]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 OST에는 비지스의 곡 [Staying Alive], [Night Fever], [How Deep Is Your Love] 등이 실려 있는데, 이 곡들은 모두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 연속 24주 동안 1위에 머무르는 기염을 토했으니, 디스코 계의 황제로 손색이 없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 OST의 성공은 흑인들의 감성과 리듬감이 강했던 디스코 음악에 영국 출신 비지스가 날린 어퍼컷으로 백인 음악팬들을 디스코의 용광로로 끌어들여 댄스 플로어에서 인종차별 없이 함께 춤추고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Kool & The Gang, Earth Wind & Fire, Chic 등
70년대 말 디스코 음악의 부흥과 더불어 비트감을 더욱 살린 펑키/디스코 밴드들이 대거 출현했다. 그중에서 쿨 앤드 더 갱(Kool & The Gang, 이하 KTG),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 이하 EWF), 시크(Chic) 등이 빌보드 팝 씬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디스코/ 펑키 밴드 계의 대부격이라고 할 수 있는 KTG는 대규모 클랜 혹은 가족을 표방하며 빅밴드를 몰고 다니는 게 특징이었다. 로버트 벨(Robert Bell, 보컬/베이스)과 로널드 벨(Ronald Bell, 색소폰) 형제가 주축이 되어 1967년부터 활동을 해왔고, [Celebration], [Cherish], [Ladies Night] 등의 곡들을 빌보드 차트에서 히트시켰다. 이들은 또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OST에도 참여하여,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면서 인기를 더해 갔다.
EWF는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 보컬/드럼)를 주축으로 버딘 화이트(Verdine White, 베이스),필립 베일리(Philip Bailey, 보컬), 랄프 존슨(Ralph Johnson, 보컬/드럼), 래리 던(Larry Dunn, 키보드), 알 맥케이(Al McKay, 기타)가 뭉쳐 결성한 밴드다.
'앉은 뱅이도 일어나 춤추게 만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들의 음악은 신나고, 풍성한 디스코/펑키 사운드가 특징이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들의 노래 중 [Sing A Song](1975), [Fantasy](1977), [September](1978) 등은 한국 음악팬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Nile Rogers)와 베이시스트 버나드 에드워즈(Bernard Edwards)의 환상적인 궁합으로 한 디스코/펑키 사운드를 들려준 밴드가 시크였다. 이들은 [Le Freak], [Good Times]를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려놓았고,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 싱글을 내놓으면서 빌보드 팝계의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KTG, EWF, Chic 등과 같은 디스코/펑키 밴드들의 출현은 디스코를 음악적으로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나이트 클럽의 댄스 플로어뿐 아니라 공연장에서도 즐기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1970년대 말 영화로, 춤으로, 패션으로 젊은 세대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한 디스코 음악은 80년대 들어 쇠퇴기를 맞는다. 디스코 음악의 열기가 수그러든 것은 관련 문화들의 퇴폐적 요소들과도 연관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수혈해야 하는 팝 음악 생태계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1980년대 초반 팝 음악계에서 디스코는 뉴 웨이브, 펑크 록, LA 메탈 등 다른 장르에게 자리를 내어주지만, 후에 테크노, 일렉트로닉, 하우스 등 전자 음악과 결합하거나 후배 팝 뮤지션들에게 재발견되어 다른 형태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