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그는 날
<수필> - 文霞 鄭永仁 -
오늘은 우리 집 술 담그는 날이다.
어머니는 시루에다 술밥을 쪘다. 술밥은 언제나 된 고두밥이었다. 밀가루로 시루에 시룻번을 붙이고 한데아궁이에다 솥을 걸고 술밥을 쪘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면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퍼서 둥근 맵방석에다 펴서 깔아 식혔다. 우리들은 슬금슬금 고두밥을 집어 먹었다. 그 당시 쌀밥 먹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배불뚝이 두 말가웃 되는 중항아리에다 술을 담갔다. 밀을 빻서 띄운 누룩을 섞어 잘 빚으셨다. 술항아리에다 붓는 물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정갈한 샘물을 일부러 길어다 부셨다. 그때부터 그 술독은 신주단지 위하듯이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였다. 술항아리에다는 헌 담요를 씌웠다.
한 이틀 지나면 술이 괴기 시작한다. 술이 괴는 소리는 아주 다양했다. 보글보글 부글부글 꼬르륵 꾸르륵 푸푸 등. 어머니는 술 괴는 소리만 듣고도 술이 얼마나 익었는지 짐작하셨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 때는 술이 막 괴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걸 떠다가 설탕이나 사카링을 넣고 먹으면 달착지근한 것이 꽤 먹을 만했다. 너무 먹어서 술기운에 해롱거리다가 된통 혼나기 일쑤었다.
술을 거르는 날이다. 어머니는 술항아리에 용수를 박고 맑은술을 떠낸다. 햇빛에 비친 술항아리의 맑은술의 색깔은 마치 노리끼리한 얼음판 같았다. 어머니는 우선 웃국을 뜨신 다음 제주(祭酒)를 두어 병 정성껏 떴다. 다음에 남은 맑은술을 떴다. 그다음에 남은 술은 휘휘 저어 체에 거른 것이 막걸리 가 되었다. 맑은술은 어느 정도 오래 둘 수 있었지만 막걸리는 오래 보관하지 못했다. 오래 두면 시어터지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막’은 마구, 아무렇게나 라든지, 지금, 금방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막걸리는 그때그때 술독에서 퍼다가 걸렀다.
사실, 그 당시 술 담그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밀주(密酒)이기 때문이다. 설이나 추석 즈음에 세무서에서 술 조사가 나왔다. 걸리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술독은 은밀한 곳에 감추었다. 그 근처 양조장에서 술이 안 나가면 세무서에 술 조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혹여 우리 동네에 술 조사가 나오면 어머니들은 술독 감추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술독을 변소 잿더미 속에 묻거나 급하면 똥통에 쏟아 붓기도 하였다. 대문에 금줄을 걸거나 잿물을 만들어 놓아 아기 낳은 집으로 위장하기도 하였다.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것이 술지게미이다. 술지게미에다 사카링을 넣고 끓이면 달착지근하고 술기운이 돌아 기분 좋게 하였다. 살림이 없는 집에서는 양조장에서 술지게미를 얻어다 끓여 먹으며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다. 벌건 대낮에 얼굴이 불콰한 사람들은 대개다 술지게미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 출출하면 장광에 있는 막걸리 독에서 찔끔찔끔 퍼 마셨다. 어머니에게 들키면 눈만 흘기셨지 크게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어렸을 때부터 술버릇을 키우려고 그러셨나 보다. 하기야 술은 어른 앞에서 배우라고 하지 않던가. 들에서 모내기 하는 날, 어머니는 밥 광주리 이고, 나는 술주전자 들고 졸랑졸랑 따라 갔다. 목이 마르면 슬쩍 주전자 꼭지로 막걸리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술버릇은 괜찮은 편이기도 하다. 집에 와서 잔소리를 해서 그렇지만…. 나는 집에서는 거의 술을 반주로도 잘 먹지 않은 편이다.
우리 집에서는 과일주 같은 다른 술은 담그지 않았다. 오직 맑은술 막 걸리였다. 소주가 막걸리로 내린 술이라면, 막걸리는 완전한 곡주(穀酒)였다. 소주가 추운 지방 술이라면 막걸리는 더운 지방 술이기도 하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소주는 양반이 먹는 술이고, 막걸리는 서민이 먹는 술이라 한다. 마치 러시아의 보드카처럼. 내가 아는 고향이 함경도인 분은 꼭 소주만 먹었다. 맥주를 먹어도 꼭 소주를 타서 먹었다. 막걸리는 절대 먹지 않았다. 그분은 함경도에서 아주 잘 살던 분이었다고 했다. 독한 술에 장사 없다더니 결국 술 때문에 간경화로 세상을 등졌다.
술 먹는 것은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가 보다. 우리 친가 쪽에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술을 그리 먹지 못했다. 외가 쪽 외할아버지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오형제 중에 큰형은 음복주 한 잔 정도, 둘째형은 막걸리 소주 한 병 정도, 셋째형은 완전히 외탁하여 두주불사형, 넷째인 나는 중간치, 막내 동생은 음복주 한 잔 정도이다. 아버지는 거의 술을 못 하셨다. 체질에 안 맞으셨다. 어쩌다 불가피하게 약주 두어 잔만 잡수시면 어머니와 누나는 초비상이 걸렸다. 아버지는 술만 몸에 들어가면 사시나무 떨 듯 하셨다. 사랑방에 군불을 땐다, 두꺼운 솜이불을 덮어라, 백비탕(白沸湯)을 끓여 꿀물을 탄다, 오이즙을 해 바친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선 술주정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즐겨 잡수시던 술은 감주(甘酒)였다. 아버지는 설탕물에 밥을 말아 잡수실 정도로 단 것을 좋아 하셨다. 아버지는 술을 안 드셔서 그런지 되게 깐깐하셨다. 어렸을 적, 배곯이를 많이 하시던 아버지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셨다. 퇴근하자마자 저녁 밥상이 즉시 대령하지 않으면 야단이 났다. 또 밥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질면 밥상이 날아갔다고 한다. 또 배추김치 썰어 놓은 것이 뿌리에 붙어 있어도 밥상이 날아갔다. 아버지는 면서기를 하셨다.
오래 전에, 술 좋아하시는 셋째 형은 문학에, 나는 학익동에 살았다. 고개 한 턱만 넘어가면 셋째 형네 집이다. 가끔 셋쩨 형은 술 한 잔 하자고 넘어오란다. 주거니 받거니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셋째 형은 얼큰해진다. 그 때하는 레퍼토리가 두 개 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야. 인명(人名)은 재천(在天)이야!” 또 하나는 술이 많이 취하면 셋째 형은 셋째 형수님 손을 잡고 부르는 십팔번지는 “젖은 손이 애처러워 살며시 집아 본 순간~” 라는 노래였다. 그 레퍼토리는 일찍 세상을 떠닐 도 때까지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셋째 형만 생각하면 그 말과 노래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는 육남매 중에 위로 한 분이신 엄마 같은 누나도, 부모 속을 그렇게 주색(酒色)은 빼놓고 잡기(雜技)로 속 썩히던 큰형도, 술 같이 마신던 셋째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지 한 아버지에 어머니가 두 분, 한 누님에 매형이 두 분, 한 형에 형수가 두 분이다. 그래도 다 그리운 사람이다. 술만 취하면 지긋이 눈을 감고 ‘베싸메 무쵸’를 부르던 첫째 매형, 군인 소위 봉급으로 내 하숙비 내준 둘째 형, 셋째 형네에서 밥 먹던 시절, 맞벌이하는 우리 집에 도맡아 김치 담가주던 누님……. 이젠 술 한 잔 일일이 못 부으니 인명은 재천이련가?
왜 술일까? 돈이 돌고 돌아서 돈이듯이, 술술 넘어가서 술이란다. 술도 술술 마시는 사람이 있고,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이 있다. 나는 찔끔찔끔 마신다.
술은 왜 먹을까? 기분 좋아서도 먹고, 기분 언짢아서도 먹는다. 하여간에 긴장을 풀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먹는가 보다. 조현긴장(調絃緊張)이라 했던가.
어느 신부님이 말했다. 술은 오감(五感)으로 먹는 거라고. 코로 먹고(코맛), 눈으로 먹고(눈맛), 손으로 먹고(손맛), 입으로 먹고(입맛), 귀로 먹기 위해(귀맛) 잔을 부딪치는 것이란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늘도 건배(乾杯)를 한다. “코로나 종식을 위하여!” 귀맛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귀한 건배사가 쏟아져 나온다. 오늘은 어떤 건배사를 하시겠습니까. 혹시 ‘세상에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위하여’ 는 어떠하신지요?
좌파이며 국회에서 공중부양(空中浮揚)으로 유명해진 강기갑 전 국회의원은 농사를 지으며 배운 소감을 보수 신문에서 인터뷰하면서 하는 말이 “미생물도 우파 미생물과 좌파 미생물아 어울려야 농사가 잘 된다. 서로 상생(相生)해야 한다.” 하기야 술이 괴는 것도 미생물이나 효소 때문이다. 새는 날개 하나로 날 수 없듯이 좌파와 우파의 균형적인 조화의 상생이 필요한 것이리라! 우리 거시적으로 거파적으로 건배합시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여!”
지금 내가 제일 먹고 싶은 술은 즉석에 만드는 보리술이다. 어머니는 시어터진 보리밥을 정갈히 닦아 보리술을 즉석에 담그셨다. 보리밥에다 누룩만 넣고 따끈한 부뚜막에 두면 저절로 보리술이 괴었다. 이 보리술은 주로 여자들과 아이들의 달콤한 간식이었다. 나는 그 술이 먹고 싶다. 사실, 보리술은 새콤달콤하였다.
어머니가 담근 맑은술, 한 잔 마시고 싶다. 노리끼리한 풍미(風味)가 웅숭깊게 감도는, 어머니의 손으로 빚은 맑은술 한 잔을…. 그리고 언젠가 나도 술을 한 번 빚어보고 싶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집콕이 많으니 가족 끼리 할 수 있는 일이 인기라 한다. 그중에 막걸리 담그기가 유행이라 한다. 어느 양조장에서 개발한 막걸리 담그기 세트가 인기라 한다. 나도 그거라도 사서 한 번 술을 담가 보련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