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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이 2016년 4월 8일(금) 로마 시각 낮 12시(한국 시각 저녁 7시)에 공개되었다. 이 문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집했던 가정에 관한 두 차례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곧 2014년 제3차 임시총회와 2015년 제14차 정기총회 결과를 소개하고 발전시킨 후속 권고(post-synodal Exhortation)이다. ‘가정에서의 사랑에 관하여’(on Love in the Family)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서론과 9개 장, 325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황이 권고문에 최종 서명한 반포일은 성 요셉 대축일인 2016년 3월 19일이다. ====================================================================================================================== 가정의 사랑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2014년 10월과 2015년 10월에 개최된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 총회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작성하신 가정의 사랑에 관한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의 중요한 핵심들에 집중하는 데에 아래의 질의응답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자들의 예상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1. 「사랑의 기쁨」의 새로운 점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기쁨」은 교회 가르침의 오랜 역사와 세계주교대의원회에서 집중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새로운 것과 옛 것 모두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은 무엇보다도 동반의 자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당신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가정생활의 복잡한 상황을 인지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교황 성하께서는 교회와 그 교역자들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있든 교회에 대하여 느끼는 거리감이 아무리 크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을 이해하고 동반하며 그들과 함께하고, 특히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향하여 두 팔을 벌려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사랑의 기쁨」, 312항 참조). 「사랑의 기쁨」은 사람들의 현실 문제와 무관한 이론적 문서가 아닙니다. 이 후속 권고의 제목 자체가 이 문헌의 긍정적 정신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기쁨」의 전체 내용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가정생활은 아름다운 것임을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어떻게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께서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은” 세상을 만드시는 데에 협력하는 일이 되는 것인지를 설득력 있게 말씀하십니다(「사랑의 기쁨」, 321항 참조). 2. 이 문서의 양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 문서를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오직 전문가들을 위한 문서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서문에서 밝히셨듯이, 사람들은 이 「사랑의 기쁨」을 서둘러 읽지 말고 자신의 개별적인 필요에 가장 적합한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교와 신부와 가정 사목 담당자들은 반드시 「사랑의 기쁨」을 읽어야 하지만, 모든 가톨릭 신자도,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교회의 노력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혼인한 부부들은 제4장 ‘혼인의 사랑’과 제5장 ‘결실을 맺는 사랑’, 제7장 ‘자녀 교육의 강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그리스도인 부부가 신의와 인내를 지속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시며, 가정생활에 평화와 기쁨이 사라질 때마다 모든 이가 자비의 징표가 되도록 촉구하십니다(「사랑의 기쁨」, 5항 참조). 「사랑의 기쁨」을 읽다 보면 그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알고 놀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목자의 마음으로 가정생활의 일상적 현실을 깊이 파고드십니다. 3.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는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가톨릭 신자의 영성체 문제에 대한 논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기쁨」은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가정생활과 혼인, 그리고 힘들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성소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하느님 백성을 존중과 자애로 살펴보는 것이 생산적인 것입니다. 제8장 ‘가정의 어려움에 대한 동행과 식별과 통합’은 일반 원칙을 모든 개별 상황에 직접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깊이 통찰하고 있습니다. 개별 상황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제8장의 내용이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제8장은 분명히 목자들과 가정 사목 종사자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의 말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울 것을 권유합니다. 4. 이 문서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에는 ‘식별’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 ‘식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자애로운 사제들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까? 식별은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현실을 밝히기 위하여 하느님 말씀에 자신을 여는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식별은 우리가 성령을 따르도록 해 줍니다. 식별은 우리 모두 최대한 사랑하며 구체적 상황에서 활동하도록 힘을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목자들과 신자들이 모든 구체적 상황에서 신중하게 식별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사목 일꾼들과 사제는 쉬운 방법, 간단한 해결책, 가벼운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식별은 결코 복음에 나오는 진리와 사랑의 요청, 교회의 가르침과 전승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식별에는 겸손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진지한 추구가 필요합니다. 5.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하고 교회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이들에게 무엇을 제안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기쁨」은 교회와 그 교역자들이,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그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랑의 기쁨」은 그들이 교회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파문당하지 않습니다(「사랑의 기쁨」, 243항 참조). 그들이 아직 교회의 성사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교회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유받습니다. 이 후속 권고의 핵심 개념은 통합입니다. 목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교회] 공동체 생활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른바 불법적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갈라진] 부모의 상처 치유를 돕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하는 자녀들에게는 의지가 되는 교회의 가족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사랑의 기쁨」, 246항 참조). 6.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때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폭넓은 수용을 제안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기쁨」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는 것입니다. 동성 결합은 그리스도인 혼인과 동등한 차원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사랑의 기쁨」, 251항 참조). 「사랑의 기쁨」은 우리 모두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따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무한한 사랑을 베푸시는 주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사랑의 기쁨」, 250항 참조). 「사랑의 기쁨」은 혼인과 가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혼인을 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외짝 부모, 과부와 홀아비, 독신자들이 포함됩니다. 이들도 가족 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가족사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가족과 사랑의 유대를 맺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친구가 있습니다. 7. 「사랑의 기쁨」은 (특히 본문 36, 37, 38항에 나오는) [교회의] 과거의 관행, 특히 윤리적 교리적 문제를 강조하고 타락한 세상을 비난하며 긍정적인 것을 제시하지 못한 관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임 교황들에 대한 비판입니까? 「사랑의 기쁨」의 각주들을 훑어보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의 말씀, 특히 「가정 공동체」(Familiars Consortio)가 많이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도 인용하셨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희망, 많은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원칙이나 단죄의 목록이 아니라, 수용, 동반, 참여, 통합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이상에 맞추어 살아가지 못할 때조차도, 교회와 교역자들은 그들 곁에 있으면서 그들의 여정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교회의 길은 누군가를 영원히 단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길은 진실한 마음으로 자비를 청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의 향유를 부어주는 것입니다”(「사랑의 기쁨」, 296항 참조). 8. 많은 부부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는 자녀의 터울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기쁨」에서는 이 문제를 크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사랑의 기쁨」은 42, 68, 82, 222항을 포함해 여러 항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은 자녀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부모에게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책임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부부의 의무를 강조하는 「인간 생명」(Humanae Vitae)도 인용하고 있습니다(「사랑의 기쁨」, 68항 참조). 게다가, 자녀의 터울에 관한 결정은 “부부의 합의적 대화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사랑의 기쁨」, 222항 참조)이어야 합니다. 「사랑의 기쁨」은 이에 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을 인용하며, 모든 인간이 하느님과 단독으로 만나는 자리인 양심의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의 기쁨」은 자연적인 출산 조절을 권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부부의 몸과 ‘온전한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9. 「사랑의 기쁨」이 주는 가장 큰 도전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도전은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쁨」의 실천을 서두르기보다는 그 내용을 먼저 천천히 읽는 일입니다. 「사랑의 기쁨」은 교회와 교회의 목자들이 가정에 관한 초점을 바꾸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상처를 받아 고통당하는 모든 이와 동행하고, 통합하고,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의 기쁨」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이해하라고 촉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에게 나약한 이들을 심판하지 말고 연민으로 대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다른 이들의 구체적인 삶 속으로 들어가 온유의 힘을 알게 되기”(「사랑의 기쁨」, 308항 참조) 때문입니다. ======================================================================================================================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 이해하기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는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지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또 다시 많은 나라에서, 심지어 서양에서조차 낯선 분이 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실적으로 우리 대화 상대자들이 우리가 말하는 것의 배경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가 말하는 것과 거기에 의미와 아름다움과 매력을 부여하는 복음의 핵심을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짐작해서는 안 됩니다”(「복음의 기쁨」, 34항).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화법은 단지 ‘쇄신’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참된 언어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복음의 선포가 의미 있고 모든 이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사람들의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 대하여 말하고, 가족들에게 말을 하는 데에 문제는 교리의 변경이 아니라, 일반 원리의 토착화로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현실의 모든 가정이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힘을 주고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사려 깊은 언어로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식별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식별을 하려면 진리에 관한 특정한 주장이나 선택을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가 목자로서 우리의 신자들, 모든 사람, 가정, 개인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식별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이러한 식별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닙니다. 식별은 모든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밝히기 위하여 하느님 말씀에 자신을 여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을 따르도록 해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 사랑으로 구체적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동하도록 격려하시며 우리가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힘을 북돋워주십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에 따르면, 식별의 특징에는 객관적 진리의 파악만이 아니라 그 진리를 선하고 건설적인 정신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별은 목자들이 늘 자기 양들의 구원을 위하여 착한 목자이신 주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고방식은 대화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미완성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유는 매우 대화적인 것입니다. 대화는 자기중심적이거나 독백, 또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대화는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우리의 생각을 옳은 것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자기 안에 갇혀’ 대화를 하지 못하는 두 가지 인간 유형을 지적하십니다. 이 가운데 어떤 이는 자신을 자기의 지식과 감각에 환원시켜 버립니다(영지주의로 지칭된 유형). 또 다른 이는 자신을 자기의 능력에 환원시켜 버립니다(신펠라지우스주의로 지칭된 유형). 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개인만으로는 불완전하다는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확신이 있어야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우리 존재의 근원인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문화에는 모든 이를 포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가 단순히 개인들의 총합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모든 이’는 하나가 된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우리가 교회를 이러한 충실한 하느님 백성으로 여겨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포괄적인 사회관을 지니고 계십니다. 이러한 포괄에는 다양성의 수용,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대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참여의 촉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화와 식별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치빌리타 카톨리카』(Civiltá Cattolica) 직원들의 알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식별은 인간과 문화의 현실 안에서 하느님 성령의 현존을 인식하고자 합니다. 성령 현존의 씨앗은 세상의 일들, 인간의 감정과 열망과 마음 속 깊은 절박함,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영적 상황 안에 이미 심겨 있습니다”(2013년 6월 14일). 따라서 목자들은 모든 상황을 주의 깊게 식별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84항; 베네딕토 16세, 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29항 참조). 사목을 법과 대조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진리에 대한 사랑은 법과 사목의 접점입니다. 진리는 추상적이지 않으며 모든 믿는 이의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인다운 여정에 함께합니다. 사목은 또한 단지 신학의 부차적인 현실 적용이 아닙니다. 이는 사목을 교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그 사목적 본질과 원천에서 떼어 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비의 언어는 진리를 삶 안에 구현합니다. 그래서 교황 성하께서는 교리를 교회의 사목적 사명에 도움이 되도록 재상황화(re-contextualization)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교리는 그것이 적용되는 사목적 상황에 비추어 그리스도교 케리그마의 핵심과 연관하여 해석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영혼들의 구원(salus animarum)이 최상의 법(suprema lex)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여야 합니다. 이는 교회법의 마지막 조항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법적 공평을 지키며 영혼들의 구원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서 항상 최상의 법이어야 한다”(교회법 제1752조). ===================================================================================================== [사랑의 기쁨]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의 몸의 신학에 관한 교리 교육
[사랑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가정에 관한 교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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