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 김영하

[청죽]

읽다
김영하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김영하의 는 각각 지난해 9월과 올 3월에 나온 와 에 이어지는 삼부작의 완결편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찰을 담은 와 강연 및 인터뷰 등을 엮은 에 이어 에서 김영하는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를 읽으면, 작가는 쓰는 사람이기에 앞서 읽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 테고, 많이 읽는 이가 꼭 좋은 작가가 된다는 법도 없겠지만, 적어도 김영하가 보기에는 읽기와 쓰기 사이에 필연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 어떤 소설가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그가 말할 때, 그는 모든 소설은 앞선 소설 또는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다. 소설 쓰기에 필요한 경험의 태반이 ‘독서 경험’이며, “살아 있는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별로 강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일급의 소설들로부터는 수도 없이 압도당했”다는 그다운 발언이겠다. 올해 5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 행한 여섯 차례 강연록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는데, 마지막 강연에서 한 이런 발언들은 신경숙 표절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이야기는 이야기의 바다에서 옵니다.” “제 소설에서는 제가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소설들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소설 쓰기란 남의 것을 잠깐 빌려왔다가 그것을 다시 책의 우주에 되돌려주는 작업입니다.” “내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 특히 나를 작가로 만든 문학작품들에 바치는 사랑 고백”을 자임한 이 책에서 김영하는 과 에서부터 와 까지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호명하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동년배 작가들에 비해 현대적 감각과 지향을 자랑하는 그가 고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토로하는 대목이 이채롭다면 이채롭다. 그러나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는 통찰은 역시 김영하답다.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위험한 책 읽기’라는 제목을 단 첫장의 핵심을 담은 대목이다. 기존의 믿음 또는 세계관을 재확인하고 새삼 굳게 다지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믿음을 회의해 보는 일에 독서가 소용된다는 생각이다. 책을 읽지 않고 생각이라는 것도 할 줄 모르는 이들의 무지와 고집으로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이즈음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