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처리하는 기술
흰 구름 따라 흘러 왔다가
밝은 달 따라 홀연히 사라지네.
오고 가는 자취 찾을 길 없는데
애초에 걸림 없어 상관할 일 무엇이랴.
[덧붙임]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모든 형상은 항상(恒常)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모두 나고 죽는 생멸법(生滅法)이다.
나고 죽는 생멸법 자체를 멸(滅)해 버리면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얻으리라.”
열반경에 나오는 구절인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설산동자로 있을 때,
나찰에게 몸을 던져 얻어낸 구절로도 유명하다.
세상 모든 것은 나라고 할 수 있는
형상이나 모습은 하나도 없다.
결국은 모두가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무상
(無常)하다고 하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이나, 괴로운 마음까지도
시시각각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즐거움이 즐거움이 아니고,
괴로움이 괴로움이 아니다.
하물며 그렇게 애타게 얻으려 하는
다섯가지 큰 욕심 즉, 오욕락
(수면욕,식욕,재산욕,성욕,명예욕)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존재의 세계인
유위(有爲)세계의 모습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물질의 세계나,
수(受)상(想)행(行)식(識)의 마음으로
꾸며진 오온(五蘊)의 세계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
(成住壞空)을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어떤 물질도 그 어떤 마음도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거니와,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결국에는
하나도 차이가 없이 모두가 변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갈구하고
욕심에 매달리는 것은 감정의 업(業) 때문이다.
부처님의 고구정녕(苦口丁寧-입이 쓰도록 당부하다)한 말씀이나,
거룩한 법문을 들을 때도 당장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업으로 굳어진 오만가지 감정이 사방으로
달아 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황제도 거지도 모양만 황제이고 거지이지
마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락(苦樂)과 선악(善惡)의 감정은
절대로 차이가 없으니,
부귀공명과 산해진미(山海珍味)도
지나가는 모습에 불과할 뿐,
결국 오고 가는 자취는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잘 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등등은 이름과 형상으로 꾸며진
인연의 모습에 불과하니,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괜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문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업 즉 고락(苦樂)의 감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감정이 일어나면
이 또한 생멸(生滅)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그 사이 괴로운 마음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게 되니, 부처님께서는 결국 이 감정을
처리해야만 적멸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 될 것인가?
일단 육근(六根-눈귀코혀몸생각)으로
감지되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다음, 차근차근 감정을 제어하는
순서를 잘 알아서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야 하는데,
이를 성취하려면 올바른 스승을 정해서
몸과 마음을 바쳐 수행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이 쉼이 없어야 한다.
- 진우스님 -
첫댓글 어렵습니다 마음을가다듬고열삼히 공부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見聞覺知 하십시요
갈길이 아늑하지만 조금씩 이라도 다가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見聞覺知 하십시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 심없이 노력 하겠습니다.
見聞覺知 하십시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에 쉼이 없어야 한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에 진전 있으시길 빕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