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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달아보시는 하나님 잠16:2, 24:11-12 단5:5-6, 24-28
지난 1일 밤 화재가 난 울산 북구 한 아파트에 살던 일가족 전원이 사망했다. 어머니와 자녀 둘은 숨진 채 발견됐고 40대 아버지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학생이 등교하지 않았다”는 신고가 울산 모 중학교로부터 접수되어서 경찰은 해당 학생집에 출동하여 확인한 결과 아버지가 아내와 아들 둘을 목졸라 죽이고 자신도 화재연기로 사망했다는 사건이였다. 경찰 조사결과 대기업 직원인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집은 지난 8월 경매로 넘어간 상태였고, A씨는 최근 회사도 나가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목숨을 강제적으로 빼앗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10 계명 중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인데 남을 죽이면 살인이고 자신을 살해하면 자살이라고 하는데 이 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11월 29일에는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사찰 내 요사체(숙소)가 불타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자승스님은 지난 2009년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제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되고 2013년 연임에 성공하면서 불교 종단을 위해 열심히 일 하셨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불자들 만나서 행사도 하셨던 분이신데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사찰 숙소를 불질러가면서 까지 왜 자살했었을까? 여러 의심이 가지만 사망 직전 CCTV 동선을 보니 그가 칠장사 사찰 방문한 후 차에서 내려서 인화물질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요사채 안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찍혀 있고 이어서 자승스님이 문을 열고 바깥을 살피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찍힌 후 7분 정도 후에 요사채 안에서 불길이 치솟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만약에 누군가가 그사이에 침입한 사람이 없었다면 그가 자살했을 가능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인데 불교계의 최고수장으로서 자살했던 것이 과연 부처가 분신을 요구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살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불교 교리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불살생이라 그들은 곤충하나라도 죽이지 않는데 여기에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생명도 살해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살한 불교계 거장의 죽음을 조계종에서는 그가 소신공양을 했다고 발표했는데 '자살한' 승려의 행동을 소신공양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불교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다. 소신공양이란 문자 그대로 진리를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과거 월남에서는 국가권력인 가톨릭의 탄압에 맞서 항의하던 시절 불교를 대표하여 승려 틱쾅득이 1963년 6월 당시 월남의 수도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분신자살했었던 틱쾅득의 죽음을 가리켜 불교를 지키려 한 소신공양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 자승은 그가 남긴 이른바 '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지극히 개인적인 번뇌로 자살했다. 국민이 잘 아는대로 지금 한국 종교지도자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거금을 주무르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인데 전 총무원장인 자승은 조계종 간부의 노른자위 자리인 총무원장을 지냈고 여러 비위와 추문에 연루되었던 자승이 자살한 것을 어찌 틱쾅득의 죽음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승려가 자기 몸만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절간을 불태워 가면서 자살하는 경우는 불교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줄기차게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특히 종교계가 앞장서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할 사명을 지닌 지도자가 개인적 번뇌로 자살한 것을 '소신공양'으로 위장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에 가까운 패륜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종교계가 사회의 모범이 되지 않아서 사회적 욕을 먹은지는 이미 오래다. 기독교는 이미 '개독교'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었는데 불교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추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승스님의 개인적 일탈을 조계종이 조직적으로 '소신공양'으로 포장하는 짓까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른 것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실제로 기독교든 불교든 지극히 세속적인 돈과 권력을 놓고 싸움박질하는 것도 모자라 일반인도 비난받는 패륜을 저지르고 자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한국에서 종교가 설 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죄를 짓고도 무감각한 자들이 차고도 넘친다.
민주당대표 이재명의 최측근자들이 감옥에 가고 자신의 비리로 자살한 자가 네명이나 나왔어도 여전히 정치판에서 활보하는 것을 보노라면 기가찬다. 지난주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와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지방의회 의원 김용과 대장동 개발사업을 관장하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실세 유동규가 민간업자 사이에서 장기간에 걸쳐 인허가를 매개로 금품 수수를 통해 밀착해 유착한 일련의 부패 범죄"라며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민간업자에게 귀속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당내 대선 예비경선 전후인 2021년 4~8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와 공모해 민간업자 남욱 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대선자금 명목으로 8억47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유 씨와 정 씨는 무죄, 남 씨에게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데 대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스스로 최측근임을 인정한 김 전 부원장이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며 "이 대표와 대장동 세력간의 연결이 법정에서 인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의원은 "매우 느리지만 이제 사법부도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다"며 "이제는 단군 이래 최대게이트인 대장동 게이트의 주범 이 대표를 구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김용(57)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판결문 곳곳에는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120차례 등장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사건 피고인은 아니지만,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를 보면 관련사건 대부분이 그를 위해 이뤄졌던 것을 암시한다. A4 용지 147쪽 분량 판결문에 이 대표 이름이 구속된 '김용'이라는 이름이 107회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이 사건과 이 대표의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법원은 주요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이 대표에게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김 전 부원장에게 건네진 금품 역시 이 대표의 정치활동을 위해 쓰였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번 재판에 대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사법 살인이 다시 반복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재명 대표도 이런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성경말씀은 이런 경우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보더라도 미물까지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고 국가의 지도자를 세우시는 것도 또 국가가 세운 법관의 판결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민주당대표 이재명하면 전과 4범이라는 딱지와 그가 그의 형수와 형에게 한 쌍욕이 생각난다. 한마디로 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인간으로 볼 수가 없는 자이다. 이재명이가 지난 대선후보에 나와서 경제대통령이라는 말로 대장동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대장동사건은 이재명이 성남시장이었을 때 설계하고 개발했던 일로 이재명 측근들이 몇십억 투자해서 몇천억 투자금을 해먹은 비리사건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자살한 것이며 그의 비리를 고발한 사람이 어느 날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며 그의 아들이 도박에 빠진 것이며 그의 부인이 공무원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이며 이재명이가 변호사시절 모녀를 회칼로 37번 찔러 살해한 조카를 심신미약자라고 변호한 것 등은 어느 하나 보통사람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죄악들이 그의 이력인데 그가 지금 거대야당 대표가 되었다는 데 있어서는 탁월할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며 야당이 돌았다는 것이지 정말 헷갈린다. 이제 이재명 가족들의 불법을 알아보자.
이재명은 아들 이동호의 불법 도박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아들의 도박을 '카드게임' 이라고 불렀던 것 자체가 도박을 축소하는 말이다. 이재명 아들 도박 판돈은 얼마나 될까. 이재명의 발언에 따르면 아들 이동호는 1년 반 정도 도박사이트를 이용했고, 한 번에 10만원에서 30만원 정도를 썼다고 했다. 즉 한판에 10만에서 30만 정도를 베팅했고, 많을 때는 한 번에 수백만원까지 베팅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동호의 게시글에 따르면 이동호는 열흘간 도박을 해서 536만 원을 따기도 했었고, 하루에 500만 원을 잃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동호는 도박판에서 최소한 3~5천만원 이상의 자본금을 소유한 채로 하루 또는 며칠에 걸쳐 수백만원을 잃거나 수백만원을 땄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동호는 할머니 발인 다음 날에도 아침 7시부터 11시간 동안 도박을 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도박판에서 딴 돈으로 성매매업소를 찾기도 했다. 카드가 돌아갈 때마다 현금을 베팅해야 하는 게임으로, 한판에 걸리는 시간을 3분여 내외이라면 한판에 평균 30만원씩 베팅해서 4명이 11시간 동안 했다면 220판을 했다. 이날 도박판의 판돈은 경찰식으로 계산해서 2억6천4백만원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매일 1년 6개월을 했다면 판돈은 54억7천만원이 된다. 직업도 없는 자가 이런 판돈이 어디서 나왔다는 것인가? 또 이재명 부인 김혜경은 공무원을 통해 법인카드 유용하였는데도 아직 이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공사 구분도 못하는 자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 권력은 결국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은 아닌지? 이재명뿐만 아니라 아들, 부인까지 어느 하나 상식적인 사고를 지닌 가족 구성원도 갖추지 못한 자가 다음에 대선후보로 나오지는 않을까 정말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민주당 대표이지만 정말 대선후보자로 나온다면 이재명의 국가관은 어떻한가? 202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힌 이재명 경기지사는 자신의 고향 경북 안동에 가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었다. 건국 7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입에서 미 점령군이 대한민국 지배세력과 합작해서란 말로 이재명이는 건국에 대한 개념조차 자격미달임에 틀림없는데 어떻게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 것은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다. 친북좌파 이념에 빠진 극좌 운동권들은 초창기에는 자신들의 민낯을 감추기 위해 민주화니 진보니 하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다녔으나 이제 저들은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1948년의 대한민국은 건국이 아니라거나 미군정을 점령군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국가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다.
이재명이가 어떤 사람인가는 과거 전과 4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1.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죄(검사 사칭 공범)사건은 이재명이 사칭을 한 것이 아니라 사칭한 것을 도운 공범으로 처벌받은 사건이다. 2002년 KBS 추적 60분에서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및 파크뷰특혜분양 사건 기획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담당 PD였던 최철호 PD가 취재를 위해 당시 성남시장인 김병량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거부되자 이재명이는 자신이 검사라고 사칭해서 대화를 하고 녹취한 사건으로 법원에서는 최철호 PD에 대해 1심 공무원자격사칭으로 벌금 300만원 선고, 이재명에 대해서는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으로 벌금 150만원이 선고되었다.
2. 이재명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 벌금 150만원
3. 2004년 7월 28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공용물건손상벌금 500만원 - 2004년 8월 26일 성남시의회(당시 김상현 의장)는 2004년 3월 24, 25일 성남시 시립병원 설립조례 제정을 놓고 벌였던 임시회 의사진행 방해사태와 관련해 성남시립병원설립 임시회의에서 이재명이가 중심역할을 한 범시민추진위원회들이 소속 시민들을 폭행과 공무집행방해, 기물손괴 등 혐의로 시의회는 이 과정에서 시의원 3명이 폭행당해 전치 2-3주의 상처를 입고 의회 집기 일부가 파손됐다며 폭행과 기물손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범추위측을 경찰에 고발했는데 여기 고발당한 주동자가 이재명이다.
4. 기타 전과벌금 100만원 미만의 전과여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다. 2010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명함 300장을 배포한 혐의로 기소되어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선거법 위반 벌금 50만원 확정 되었지만 선거법 벌금 100만원 미만의 선고이기 때문에 성남시장직은 유지되었다.
위와 같은 전과 4범 기록만 보더라도 정말 함량미달의 이재명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대한민국은 불행한 역사가 계속 될 뻔 했다. 우리가 애국가에 부르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위기일적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도우시는 것을 믿게 된다.
이스라엘사람들이 늘 읽고 있는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하나님은 부자가 인색한지 가난한 자가 불평하지 않는지 저울질 하신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다같이 영혼을 달아보신다는 말인데 사람들이 사람을 대할 때는 우선 외모에 호감이 가고 말을 잘하면 일단은 그에게 끌리게 된다고 한다. 과연 이런 것이 올바른 측정인가?
영국 시골에 얼굴도 못 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전교생 중에서 성적이 맨 뒤에서 세 번째였고 학적부에는 "이 학생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어렵고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 학생이 훗날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하나인 윈스턴 처칠이 되었다. 윈스턴 처칠하면 신장은160cm 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영국 총리였으며 학생시절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인 처칠은195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윈스턴처칠은 어려서는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훗날에는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인데 그가 한 명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돈을 잃는 것은 적게 잃은 것입니다. 명예를 잃은 것은 크게 잃은 것 입니다. 그런데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2. 전쟁에서 오직 한 번 죽지만은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는다
3. 경쟁의 세계에는 두 마디 밖에 없다. 즉 '이기느냐, 지느냐'이다.
윈스턴처칠처럼 어렸을 때는 외모도 별로 였고 전혀 뛰어난 점도 없는데 훗날에는 훌륭한 인물이 되어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각자에게 맡겼는데 어떤 평판을 받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 책임이며 자신이 할 나름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과 하나님과의 약속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사기에 입다는 그의 아버지 길르앗이 창녀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가지고 데려 왔는데 본처 자식들에게 구박을 많이 받으며 성장하였다가 후에는 본처의 형제들로부터 쫒겨나서 이방 지역 돕 땅에 가서 살게 되면서 그곳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면서 보스가 되어 기반을 잡게 되었다. 한편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로 쳐들어와 전쟁이 났을 때 나라가 위급해지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하였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입다가 처음엔 거부하였지만 결국 입다는 승낙하였고 맨 앞장서서 암몬과의 전투를 진두지휘하면서 입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삿11:30-31) 입다가 주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암몬 자손을 틀림없이 내 손에 넘겨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떠나 평안히 돌아올 때에 무엇이든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다고 서원까지 한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입다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은 무남독녀인 입다의 외동딸이었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고 그 마음이 참담하였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지 않고 결국 약속을 지켰다. 입다는 하나님앞에 서원한대로 두 달 후에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입다는 자신에게 큰 손해가 와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입다의 행위가 종교적이냐? 윤리적이냐를 떠나 진짜 딸을 제물로 바쳐도 되느냐? 등등 많은 의견 등이 있으나 성경이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교훈은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입다의 신앙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도 달아보신다. 오늘은 "인생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달아보신다
입다는 자기 딸에게 말하기를
(삿11:35) 내가 주를 향해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 한 마디도 다 듣고 계시며 말한대로 행하였는가 저울에 달아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한 말도 더러운 말도 불평의 말도 하지 말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행하려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자기 속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이어서 십계명중 제9계명에서도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전매특허입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도록 사주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귀는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에 대해 말하기를
(창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선악과를 먹어도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음에도 마귀는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도록 미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자는 거짓말과는 상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지만 오직 거짓말만은 할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알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거짓말의 아비 마귀를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은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한 말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다.
(마12:36)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보고를 하리라.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심판날 말에 대한 회계를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말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은 최후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 중에 말 때문에 낭패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생각 없이 함부로 말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나라가 한시도 잠잠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첫째 "이런 것도 못하니 너는 실패자야"라는 말도 있으며
둘째 "이런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문제를 자신에게 찾지 않고 남에게 돌리는 사람이며 그들은 이처럼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남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해온 분이 이런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교도소에 온 사람들 중에 어린 시절 집에서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어떤 말인가를 조사하였더니 "넌 교도소 가서 살 놈이다"
"넌 하는 짓이 콩밥 먹을 짓이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녀들의 운명이 부모님의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폴레옹 힐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과 실패한 사람을 보면 성공한 사람은 남을 칭찬하지만 실패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을 비난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크게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성공한 자를 보면 "야! 훌륭하다. 감동적이다"하며 칭찬하는데 실패한 사람들을 보면 성공한 사람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기를 "재수가 좋았다느니, 누가 도와 줘서 그렇게 되었다고 폄하하거나, "어쩌다 맞아 떨어졌지",하거나 "미꾸라지가 용 되었네"하며 상대방을 깍아 내리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할 확률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같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런 생각은 다 마귀가 주는 생각인 것을 알고 속히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달아보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신다거나 마음을 저울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도 지옥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16:2)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주께서는 (심령) 영들을 달아보시느니라"고 하였다. 심령을 감찰하신다는 말은 마음을 달아보신다는 뜻입니다.
(잠24:11-12) 11 네가 만일 죽음으로 끌려가는 자들과 죽임당할 자들을 구출하려 하지 아니하고 12 말하기를 보라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살피시는(저울질하시는)이가 그것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시겠느냐 또 네 혼을 지키시는 이가 그것을 알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분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달아보신 후에 뽑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달아보실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1) 정직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
욥기서 시작은 욥에 대하여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정직히 살라는 것입니다. 정직과 진실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기본 덕목입니다. 정직의 반대인 거짓은 마귀의 속성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믿기 위해선 거짓 말, 거짓 행동, 거짓 생활 모두 다 버리고 마음이 정직해야 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 온 세상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의인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게 하였고 그 무서운 홍수심판을 피하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입니다.
(창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의 세대들 가운데서 완전한 자더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2) 겸손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었지만 이 세상에 계셨을 때 만왕의 왕이시지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들어 가셨던 것은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약 4:6)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시느니라.
마귀는 사람에게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나 주님은 원래가 겸손한 분이셨으므로 겸손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저울에 부족함을 보였던 벨사살 왕
(단5:25-28) 25 기록한 글은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니이다. 26 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메네는 하나님께서 왕의 왕국을 세셔서 그것을 끝내셨다는 것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다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며 28 베레스는 왕의 왕국이 나뉘어서 메대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니이다.
단5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왕이었지만 BC 562년에 죽은 후 바벨론 역사는539년 마지막 왕 벨사살에 와서 메데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86년 동안 번창하였던 바벨론이었지만 갑자기 멸망하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수도는 유프라테스 강에 의해 둘러 쌓인 천연적인 요새였다. 도시 주위에는 높이 10.6m, 폭 2.6m의 성벽이 세워져 있었고, 이 벽 안쪽으로 800m떨어져 똑같은 높이의 성벽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두 벽 사이에는 78㎢의 기름진 땅이 있어서 적이 도시를 포위할 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외벽 바깥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9m 깊이의 수로가 벽 주위를 따라 파여져 있었습니다. 또 바벨론 제국은 막강한 군사력이 가진 방어 체제로 인해 바벨론 제국은 난공불락의 성같이 보였습니다. 그 어떤 막강한 적도 감히 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올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볼 때 바벨론은 강력하게 보였고 또 벨사살 왕은 전쟁을 대비하여 요새마다 많은 곡물을 저장하여 20년은 견딜 수 있었으나 적은 항상 내부에 있는 법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영적 도덕적 부패로 인해 뿌리로부터 썩어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메대와 바사가 연합하여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을 때 벨사살 부왕인 나보니더스 왕이 주력 부대를 이끌고 먼 나라로 원정
간 사이 바벨론은 점령당했습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은 고레스의 지휘아래 바벨론 성을 포위했습니다. 이제 벨사살 왕과 바벨론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싸울 태세를 갖추고 경계를 해도 부족하였는데 벨사살 왕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바벨론 역사상 가장 거창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중에서 중요한 인물 일천명을 초빙했는데 왕후들과 빈궁들이 참석한 것을 보면 잔치 분위기가 얼마나 음란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방심과 방탕은 멸망의 징조입니다. 벨사살왕이 거나하게 취하여 술기운이 오르자 자제력을 잃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잠20: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날뛰게(떠들게)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그것들로 말미암아 속는 자(미혹)는 자에게는 지혜롭지 아니하니라.
술 취한 벨사살 왕은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 은 잔을 가져오게 하고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술을 마셨습니다. 느부갓네살 같은 위대한 왕도 감히 거룩한 성전 기명에 손 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벨사살은 신성 모독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습니다. 우상숭배는 또 다른 신성 모독죄입니다. 벨사살 왕과 그 귀인들이 잔치를 벌이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을 때, 이들 앞에 두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단5:5-6) 5 바로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와서 등잔대 맞은 편에 왕궁의 회칠한 벽에 글을 쓰는데 왕이 글을 쓰는 손의 일부를 보니라. 6 그때에 왕의 안색이 변하고 그가 자기 생각들로 말미암아 근심하므로 그의 허리뼈 마디가 풀리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치매
여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그때에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툭 튀어나와서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 모두가 놀라서 쥐죽은 듯이 조용하게 되었고 긴장감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벨사살왕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했으나 그 해석을 왕에게 해석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5:10에 보면, 바로 이때 왕비가 들어와서 왕에게 다니엘을 추천하는데 이유는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때부터 하나님이 함께하는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자 왕은 다니엘에게 글을 읽고 해석해 주면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니엘은 왕이 제시한 엄청난 상급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다만 다니엘은 왕에게 글자의 뜻을 해석해 주기 전에 먼저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다니엘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예언자의 사명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글자를 해석하기 전에 먼저 손가락이 나와서 벽에다 글자를 기록한 이유가 선친 느부갓네살의 왕궁에서 쫓겨나서 7년이나 짐승처럼 살았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느부갓네살왕은 내가, 나의 도성, 내 위엄의 영광같은 말을 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영광을 가로채는 교만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여지없이 낮추셨습니다. 왕의 교만한 말이 그 입에 있을 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단4:31) 아직 그 말이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내려와 이르시되 오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이것을 말하노니 그 왕국이 네게서 떠났느니라.
이런 일이 있은 후 왕은 백성들로부터 쫓겨나 소처럼 풀을 뜯어 먹었습니다. 그의 몸은 하늘 이슬에 젖고 그의 머리 털은 독수리 털과 같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짐승보다 더 못하게 낮추셨습니다. 왕은 짐승과 같이 되어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던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버렸을 때 인간의 고귀함을 상실하고 짐승보다 못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무제한적 육신의 자유를 갈망하여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내지만 그 결과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단4:34) 34 그 후 7년이 지났을 때 그 날들의 끝에 나 느부갓네살이 내 눈을 들어 하늘을 보매 내 지각이 내게로 들어오니라.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하나님께 절실히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붓가네살왕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근거로 벨사살 왕의 교만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벨사살 왕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런 하나님의 겸손훈련을 통하여 비로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일어난 사건을 다 알고 있었으므로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을 마음깊이 새기고 마음을 낮추어야 하는데 그는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더 큰 악을 행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왕의 교만을 책망한 후 글을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단5:25) 기록한 글은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니이다.
'메네'는 세어보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이 여러 해 동안 그의 날을 세어보시다가 '이제 너의 시대는 끝났다'고 정지 신호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선언하시면 인생들은 하던 모든 것을 중지해야 합니다. 벨사살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날을 끝나게 하셨습니다.
'데겔'은 '무게를 달아보았다'는 뜻으로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들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바르신'은 무게를 잰 결과로 왕의 나라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날이 벨사살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단5:30을 보면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62세에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벨사살에게 행하신 메네 메네 데겔 우라르신이라는 글자를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들을 세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139:3에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행로(길)와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했고, 욥14:16절에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신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들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시고 세신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허비하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선순위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의 시간 사용을 계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달아 보시고 심판 하십니다.
'데겔'이라는 뜻은 '무게를 잰다, 저울에 달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떤 기준에 미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달아보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벨사살 왕이 하나님의 저울 위에 놓여져 있는데 그 결과 '함량미달'로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저울에 달으신 후에는 우바르신이라고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바르신'이라는 말에서 '우'는 AND(그리고)의 뜻이고, '바르신'은 '베레스'라는 말의 복수형인데 '나누다, 가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저울 위에 올려놓으시고 믿음의 분량을 재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심판대에 섰을 때 '함량미달'이 아닌 장성한 믿음의 분량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2) 쾌락을 즐기다가 망했습니다.
전쟁중 금식을 해도 시원치 않는데, 술마시며 음란한 연회를 즐겼다. 어느 누구도 술에 취하고, 도박에 취하고, 음란에 취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도를 벗어나 부정한 짓을 즐기는 쾌락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벨사살 왕의 죄악상을 낱낱이 세고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벨사살 왕은 가장 겸손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금, 은, 동, 목석으로 된 우상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면서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결국,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나라는 나뉘어 져서 메데와 페르시야 사람에게로 넘어가 찬란했던 바벨론은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사람의 저울처럼 시대나 환경이나 민족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저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저울을 가지고 우리의 영적인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재어보십니다. 우리는 비록 사람의 저울에서는 무게가 나가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저울에서 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평가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인생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할 일들이 쌓였들지라도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받고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생기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하신 백성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지 아닌지를 평가하시므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2) 인생의 열매들을 달아보십니다
(마7:18-20)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속에 던져지나니 20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나님은 벨사살 왕을 하나님 저울에 달아 보셨듯이 우리들도 죽은 후에는 그분 저울에 우리들의 살았던 삶을 달아본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렘17: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죄악의 잔이 차고 넘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가 임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도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았으며 노아 때의 심판의 기준도 인간의 '강포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달아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선한 행실도 달아보아서 어느 분량이 차면 축복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삼상2:3) 주께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므로 친히 사람의 행동을 다시는 도다.
이 말씀은 한나가 오랫동안 애타게 기도하다가 응답 받고 아들 사무엘을 얻은 뒤에 고백한 신앙 고백입니다.
기도와 구제도 분량이 차야 합니다. 행10장에 고넬료가 항상 기도하고 구제했더니,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며 주께 드리는 예배행위, 주의 이름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모두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십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은 인간을 종합적으로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의 저울에는 정성이 무겁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또 "천국 가는 길은 정성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과부가 엽전 두 냥 바친 것을 제일 많이 바쳤다고 칭찬하신 것은 그 여자의 정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달아보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러 베들레헴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상16: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외식과 가식과 체면치레는 정성이 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죄 중에 하나가 외식과 위선입니다. 그래서 외식에 치우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8).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선을 다할 때, 정성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찬송도, 기도도, 헌금도, 감사도 정성을 다하여 최선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의 믿음을 보시는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책임 있게 인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성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산입니다. 천국은 진실과 정식한 자의 분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고, 신의가 따라야 합니다. 신앙은 입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철학자 칸트는 아버지의 고향인 폴란드 슐레지엔으로 가던 중 말을 타고 깊은 산길을 가다가 강도떼를 만나 가진 것 다 빼았겼습니다.
"이제 더 숨긴 것이 없느냐"고 묻는 말에 너무 무서워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는 도망치다시피 나왔습니다. 가다가 정신이 나서 보니까 몸속에 금 덩어리 하나를 숨긴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이 되돌아가서 강도들에게 "아까는 당신들이 너무나 무서워서 몸속에 금 덩어리가 들어 있던 것을 모르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가다가 몸속에 금 덩어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소. 미처 나도 모르고 한 것이니 용서하고 이제 받으시오." 그러면서 금 덩어리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강도들이 한참을 쳐다보더니 아까 빼앗았던 것 모두 내주면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이 강도들이 볼 때 이 사람은 신실하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했고,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진실은 여전히 진실이고, 거룩은 여전히 거룩이고, 진리는 여전히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경외하는 것이 '거룩성'입니다. 사람에게는 이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악해지고 무서워집니다. 지금 우쿠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을 보세요. 우크라인들에게 무차별 폭탄을 퍼부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명분없는 전쟁을 멈출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늘을 향한 경외심이 있는 사람 같았으면 그런 전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가 염려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도 하나님을 두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도, 스승도, 어른도 이제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심지어는 하늘조차도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매일같이 사람을 찌르고, 죽이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불과 며칠 전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사찰을 불태우면서 자살한 것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내뱉는 민주당대표 이재명이도 바빌로니아를 패망케 한 벨사살왕도 모두가 세상에 두려운 존재가 없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사람이 이렇게 무지한 만용을 부릴 수가 있는가입니다. 사람이 거룩을 지니지 않게 되면 이렇게 무지한 만용을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을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시니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가 베레스왕의 벽에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던지 믿지 않던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쓰여진다면 하나님의 심판앞에서 부족함 드러나면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과 진실함을 달아보십니다. 우리들이 이 같은 거룩한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손에 저울이 들려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방종하지 않고 바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인생들의 신앙을 달아보십니다. 우리 모두 함량미달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차고 넘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