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곁에 요사스러운 스승...
역사의 답, 언제나 똑같다 [백성호의 궁궁통통]
#궁궁통1
세계사를
훑어보면
왕이나 황제 등
최고 권력자에게는
종종
스승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고조선 때는
스승이
따로 있진
않았습니다.
정치 지도자인
단군이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시대였으니까요.
삼국 시대까지도
왕의 스승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신라 진흥왕 때
혜량 스님이
‘국통(國統)’이란
직함을 가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 승려의
최고 지도자란 뜻이지,
왕의 스승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왕의 스승’을
뜻하는
‘국사(國師)’ 제도가
생겨난 건
고려시대부터입니다.
<삼국시대까지는 따로 왕사가 있진 않았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국사 제도가 생겨났다. >챗gpt, 백성호 기자
아시다시피
고려는
불교 국가였습니다.
고려 초기에는
왕에게
불교의 교리,
이런저런 삶의 고뇌,
국정 등에 대해 조언하는
왕사(王師) 역할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왕사(王師)가 국사(國師)가
될 만큼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궁궁통2
우리가 아는
대각국사 의천도
고려 문종 때
국사를 지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
진각국사 혜심,
태고국사 보우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스님들이
국사를 맡았습니다.
“청산은 날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라는
선시로 유명한
나옹 선사도
공민왕 때
국사를 지냈습니다.
당시
고려의 국사들은
산속에서
도만 닦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수행을 통해
이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었고,
인간과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남다른 안목도
있었습니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정치가 혼란스러울 때
보조국사 지눌은 불교계 정화 운동을 벌이며 국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어지러운
무신 정권기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계 정화를 주도하며
고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선진화한
문명과 문물이
있었던
중국 대륙에서
유학하거나
활동한 경험을 통해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남달랐습니다.
#궁궁통3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게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국사를
지낸
나옹 선사의 수제자인
무학 대사였습니다.
실제
무학 대사는
새 나라의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는 등
여러모로
이성계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서는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의
스승 역할을 했습니다.
세종대왕 때는
집현전 학자들이
스승이었습니다.
왕에게
학문과 언어,
과학과 제도까지
폭넓게
가르쳤습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세종대왕의 스승은 다름 아닌 집현전의 학자들이었다.> 챗gpt, 백성호 기자
퇴계 이황은
왕이 성군(聖君)이 되는 길을
제시하며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쓰기도 했습니다.
율곡 이이가 쓴
『성학집요(聖學輯要)』를 보면
오늘날
최고 권력자가 읽어도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왕을 향한
도움과 경고의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국사(國師) 대신
성리학적 왕도정치를
가르치는
실력 있는 유학자들이
왕의 스승 역할을
했습니다.
#궁궁통4
만약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잘못된 스승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나라를 망치기
십상입니다.
러시아 제국 말기,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
그랬습니다.
그들의 곁에는
라스푸틴(1869~1916)이라는
신비주의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황제 부부의 외아들인
황태자가
혈우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치료법이 없었고
황후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온갖
용하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요승'으로 불리던 신비주의 성직자 라스푸틴은
결국 제정 러시아가 멸망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그중 하나가
라스푸틴이었습니다.
그가
기도와 예언, 최면 등으로
황태자의 통증을 완화하자
황후는
라스푸틴을
‘신의 사자’로 여겼습니다.
황후의 신뢰를
등에 업고
라스푸틴은
러시아 황실로
입성했습니다.
니콜라이 2세 황제는
전장에 나가 있었고,
알렉산드라 황후가
실제
내정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위 관료 인사를
단행하게끔
황후에게 입김을
불어넣었습니다.
황실의 부패와 무능,
귀족 여성들과
성적 스캔들까지 일으키며
‘요승(妖僧)’으로 불리던
라스푸틴의
국정 개입까지 더해져
제정 러시아는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했습니다.
라스푸틴이
그 촉매제 역할을
한 겁니다.
러시아뿐이
아닙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
젊은 나이에
즉위한
황제 가정제(嘉靖帝)는
도교의 사기꾼 도사들에게
국정을 의지했습니다.
도사들이
국방부(兵部) 장관과
예부(禮部) 장관을 맡을
정도였습니다.
<명나라 말기, 황제 가정제는 도교의 사기꾼 도사들을 중용했다.
그들은 불사의 약이라며 조제해 황제에게 바치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챗gpt, 백성호 기자
그들은
불사(不死)의 약을 조제해
황제가 먹게 하고,
점을 쳐서
나라의 앞날을
예언했습니다.
유능한 신하의
충언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관료 시스템은
마비되다시피 했습니다.
결국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습니다.
#궁궁통5
대한민국의
현대사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요.
박정희 정부 때
청와대 안에서
야당 역할을 하던
육영수 역사가
암살당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있던
영애 근혜양이
종종
영부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최태민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스스로 총재가 되고,
박근혜는 명예총재를 맡았다. 이를 뒷배 삼아
최 목사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국가기록원
이 틈을
최태민 목사가
파고들었습니다.
10만원을 내면
목사 타이틀도
사고팔던
시절이었습니다.
최 목사는
신학교육을 받지 않고
목사가 됐습니다.
그는 원래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전 보문산 골짜기의
감나무 집에서
활동하던
무당이었습니다.
보문산 골짜기는
사립문마다
대나무와 만장 깃발이
꽂혀 있던,
무속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입니다.
최태민 목사는
반공단체인
대한구국십자군을 만들어
자신이
총재를 맡았습니다.
그는 당시
근혜양이 내주었다는
지프차를 타고
청와대를
마음대로
드나들 정도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무당 출신인 최태민 목사가 반공단체인 대한구국십자군을 창설해 총재를 맡았다. >국가기록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
대통령 가족은
청와대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후에도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인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촉매제가 됐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그랬습니다.
정권 초부터
그들 주위에서
‘천공’과 ‘건진법사’라는
이름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고려시대의 국사는
불교계 내부의
엄격한 시스템을 통과한
검증받은
스승들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공과 건진법사는
다릅니다.
그들은
도사 흉내를 내는
물음표투성이의
인물입니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멘토 논란'이 불거진 천공이 유튜브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2022년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선거대책본부의 네트워크본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씨(노란색 원)가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여러모로
그들에게 기댔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사를
거울삼아 들여다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요사스러운 인물이
왕의 스승을
자처하며
국정에 영향을 미칠 때,
왕은
늘
무능한 왕이었습니다.
참
공교롭지 않나요.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윤석열 전 대통령도
결국
탄핵되고 말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핵심은
지도자의 눈입니다.
지도자의
안목,
지도자의
통찰력입니다.
지도자의
눈이 밝아야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지도자의
눈이 어두우면
엉터리 스승을
진짜인 양
모시는 법입니다.
율곡의 『성학집요』에는
왕을 향한
이런 조언이 있습니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은
반드시
도리에 맞는지
따져보시고,
뜻에 맞는 말은
반드시
도리에 맞지 않는지
따져보십시오.”
왕의 스승을
자처하는
사이비 도사나
무속인들이
내뱉는 말들이
도리(道理)에 맞기는
힘들겠지요.
[출처:중앙일보] 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