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모두의 잔치 ‘인봉 학예회’
“탕, 탕, 탕! 대한독립만세!” “저기, 저 조센징 안중근을 체포하라!” 영화나 연극에 나올 법한 외침들이다. 지난 7일 전주 아중리 인봉초(교장 곽용식) 학예발표회에서 5학년7반(담임 박대우) 학생들의 연극 대사 일부다. 모든 학년 각각의 교실에서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끼’를 지켜보면서 잠시 추억에 젖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7-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라면 학창 시절 학예회의 ‘한 토막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예회 날,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일손을 놓고 나와 학교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기억을 말이다. 동네잔치처럼 학부모 간의 어울림 한마당이자 교류의 장이 되었던 ‘학예회’는 언제부턴가 학부모들의 참석률이 뚝 떨어져 썰렁해지더니 어느 순간 예전의 모습을 감추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러한 최근 흐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다수 학부모가 참석하는 학예회가 열렸다. 지난 7일 열린 전주인봉초 학예회가 그것. 인봉초는 3년 전부터 기존 학예회의 틀을 깨고 특별한 학예회를 시작했다. 강당발표 형식을 교실발표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곽용식 교장은 현재의 인봉초 학예회에 대해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학교 학예회는 강당에서 전교생 중 분야별로 뛰어난 몇 명의 학생만 발표하는 형식이었다”며 “우리 인봉초는 이 틀을 과감히 깨버리고, 대신 각각의 교실에서 모든 학생이 전부다 발표 기회를 갖는 자발적이면서도 자율적 형식의 틀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곽 교장은 바뀐 학예회에 대해 “모든 학생들에게 골고루 발표 기회를 주자는 것이 첫 번째 취지다. 심지어 몸과 맘이 불편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까지도 발표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며 “두 번째는 자율성을 가르치자는 취지다. 학생들 스스로에게 프로그램을 편성토록 해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학예회의 틀을 바꾸자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 우선 학생들의 참여 태도가 적극적, 자발적으로 변했다. 게다가 덤으로 얻어진 수확이 있었다. 각각의 교실에서 열린 학예회에 많은 수(반 평균 25명 안팎)의 학부모님들이 찾기 시작한 것. 전체적으로 1000여 명이 넘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게 된 것이다. 이날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들딸들이 발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과거 인봉초 학예회 역시 여타 학교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한 강당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특출 나게 재능 있는 몇몇 특정 학생들의 ‘끼’를 자랑하는 무대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발표하는 몇몇 학생의 학부모만 학교 강당을 찾을 뿐 발표 무대에 서지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의 학부모는 참석을 꺼렸다고. 남의 자식만 발표하는 학예회에 가고 싶은 맘이 적은 것이 인지상정이었을 터다. 한 마디로 과거엔 학예회에 참석 안 하는 학부모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각각의 교실에서 ‘모든 학생’이 발표하는 기회를 가지면서부터다. 노래, 연주, 연극, 무예, 마술, 그 밖의 여러 가지 것 중에서 일단 자신 있는 하나를 고르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학생이 원하는 것을 발표하게 하는 형식은 학예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최철석(3학년6반 담임) 선생님은 교실 발표의 가장 큰 장점으로 “모두 다 발표하는 것”을 꼽았다.
이에 대해 인봉초 김진영 운영위원장은 “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내 자식이 발표하는 걸 보면 흐뭇하지 않은가?”라며,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학부모들은 행복하다. 그래서 학부모 참여도가 높은 모양이다. 나는 이걸 모두의 잔치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6학년 자녀(이규민)를 둔 직장인 학부모 정윤진 씨는(여, 43)는 “발표 시간이 고작 1시간에 불과하니까 직장인 부모도 맘만 먹으면 왔다 갈 수 있다”고 말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학예회가 끝난 이날 오후에 인봉초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뒤섞여 할 수 있는 배구 등 간단한 부대행사 성격의 체육행사를 준비하여 많은 학부모로부터 “학예회 날을 동네잔치 형식으로 만들어 아주 좋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학예회 날을 이렇게 만든 데에는 직전 교장 박승우 선생님의 발상 전환과 직전 운영위원장 조관현 씨(남, 43)의 든든한 밑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두 사람의 공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좋은 전통은 이어가는 것이지요”라고 단호히 말하는 인봉초 곽용식 교장과 김진영 위원장의 표정이 향후 더 좋은 모습의 인봉초를 기대하게 한다.
한편, 같은 날 강당 발표 형식으로 열린 우아동 소재 A초등학교 학예회는 인봉초에 비해 학부모 참석률이 현저히 적었고, 오랜 시간 지켜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모두의 잔치, 인봉초 학예발표회.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