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이 본 업보] 11.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
“남을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원망을 풀지 못한다했는데…”
50대 후반 김 씨의
분노와 적개심이 빚어낸
지하철 방화사건
두려움이 앞서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두 명의 기관사에 의해
유례 찾기 힘든
대형 참사로 이어져
‘두려움도 재난도 번뇌도
어리석은 자로부터
생긴다’는 말씀을
미리 들었더라면 …
그는 2001년 뇌졸중이 와 우측이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생겨 생업이던 택시운전을 그만둬야 했다.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분노와 적개심은 차츰 세상 전반으로 확장됐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타인에게 쉽게 화를 내고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분노.공격 통제불능증’을 지니게 되었다. 파출소에 찾아가 경찰관에게 자신을 총으로 쏴 죽여 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의 마음에는 원망과 불만이 산처럼 쌓여갔다. 2003년 온 국민을 울렸던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의 범인 김 아무개 씨(2003년 당시 57세)였다.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남을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누구에게도 그 원망을 풀지 못한다. 다만 원망을 떠남으로써만 원망을 풀 수 있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다.“
운명의 날인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김 씨는 대구 안심역 방향으로 운행하던 대구지하철(도시철도) 1079호에 있었다. 휘발유 냄새가 나는 음료수 페트병 두 개를 들고 경로석에 앉아 가끔 휴대용 라이터를 꺼내 ‘켰다’ ‘껐다’ 하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한 승객이 “위험합니다”라며 제지하자 그는 페트병에 있던 휘발유를 바닥에 부은 뒤 불을 붙였다. 열차는 중앙로역에 도착해 정차해 있는 상태였다. 순식간에 화염이 솟아올랐고 당황한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다.
이 순간 1079호 열차 기관사 최 아무개 씨(당시 31세)는 자신의 신분과 역할을 망각했다. 최 씨 역시 여느 승객처럼 객차 기관실을 나와 대피해버린 것이다. 화재경보기 인식을 통해 지하철 본부 사령실의 붉은색 경보 램프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갔지만, 사령은 기관사의 보고가 없었기 때문에 ‘오경보’라고 예단했다. 당연히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고 1079호 열차에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전혀 모른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정차해 있는 앞 1079호에서 화염이 보이자 1080호 기관사 최 아무개 씨(당시 37세)는 1079호와 무전 연락을 시도했으나 될 리가 없었다. 본부 사령실에 이를 보고하자 사령은 ‘기다리라’고 했다. 뒤늦게 사령은 ‘중앙로역을 떠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이미 불길은 1080호와 연결된 전력 공급선을 다 녹인 뒤였다. 1080호는 불도 꺼지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고철 덩어리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최 씨 또한 1079호 기관사처럼 저 혼자 도망쳤다. 기관실에 꽂혀 있는 마스터키마저 빼서 달아나 다른 관계자가 와도 객차 문을 열어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승객들을 가둬놓고 달아난 셈이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모든 두려움은 한결같이 어리석은 자로부터 생긴다. 지혜로운 이에게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재난도 어리석은 자로부터 생기며 모든 번뇌도 어리석은 자로부터 생긴다. 어리석은 이는 두려운 생각을 갖지만 지혜로운 이는 두려운 생각을 갖지 않는다.’(아함경 다계경)
중앙로역은 순식간에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했다. 꽉 닫힌 객차 안에 갇힌 채 화염과 유독 가스에 휘말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갔다. 객차에서는 탈출했지만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역 계단이나 복도에서 질식해 숨을 거둔 사람들도 많았다. 총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엄청난 사고였다.
1994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세계적으로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이처럼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김 씨의 범죄에 더한 총체적인 인재(人災)였다. 당연히 처벌이 뒤따랐다. 가장 책임이 무거운 1080호 기관사 최 씨는 금고 5년, 1079호 기관사와 최초로 화재 사실을 통보받은 관제사는 금고 4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다른 관제사들은 책임의 경중에 따라 각기 금고 1년 6월에서 3년까지의 형을 선고 받았다. 고위 책임자들이 단 한 명도 처벌을 받지 않자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 가족 등 대책위원회에서는 분노했다. 고위 책임자들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생존 부상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2월18일이면 중앙로역과 시민회관 등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식’을 연다. 범인 김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범인 김 씨와 두 기관사가 ‘보왕삼매론’의 다음 구절을 가슴에 새겼다면 그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소종섭 (전 시사저널 편집장)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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