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9·11테러범 빈 라덴의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것 아니냐. 미국과 테러집단간에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독일이 일부러 나서서 도울 필요가 있겠느냐.”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치른 지난 9월 22일 독일 총선이 집권 연정세력의 승리로 끝난 후, 한 독일인은 반전(反戰)·반미(反美) 입장을 분명히 밝힌 슈뢰더 총리의 손을 독일 유권자들이 들어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선거는 때마침 불거진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추진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전·반미 감정이 작용하면서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집권 연정세력인 사민당 당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연정파트너인 녹색당의 우상인 외무장관 요슈카 피셔는 생각지도 않게 손에 쥔 반전·반미 카드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슈뢰더 총리는 지난 8월 말 갑자기 터진 대규모 홍수사태도 적절히 활용해 부동표를 끌어모았다. 집권 연정세력으로서는 모처럼 유리하게 조성된 분위기를 등에 업고 극도로 악화된 경제침체와 400만명을 넘나드는 실업률에 따른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최종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경기침체로 선거 전 민심 악화
사실 선거 전만 해도 독일내 정치 상황은 집권 연정세력에 크게 불리했다. 정권교체마저 얘기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경제침체에 따른 민심 악화가 집권 세력측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유럽통합이 실현된 올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경제침체는 예상을 훨씬 넘어서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국민들의 원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또 사회의 중추인 중산층 회사원들과 공무원들은 수입은 변함이 없는데 지출은 유로화 도입 이후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이 극에 달했다. 국민들 사이에선 “지난 4년간의 집권 결과가 고작 물가상승, 경제침체, 4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 양산, 높은 세금 부담이냐”는 불만이 터져나왔고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다.
그러나 집권 세력에는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다. 무엇보다 부시 미 대통령의 대 이라크 전쟁 추진이 부동표의 향배를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부시의 대 이라크 전쟁 추진과 독일의 참전 가능성 문제는 독일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독일인들은 전쟁 얘기만 나와도 끔찍했던 2차대전을 떠올려 누구도 전쟁을 입에 담기를 꺼려한다. 패전의 참화를 잊지 못하는 독일인들에게 자국(自國) 병사들의 파병과 관련된 일은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그런 독일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반영이라도 하듯 슈뢰더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에 즉각적이고 완강하게 “나인(Neinㆍ아니오)”이라고 답변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슈뢰더는 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독일 내 최고 인기 정치인인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과 함께 ‘이라크는 즉시 UN 결의에 따른 무기사찰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유권자들은 미국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서방 국가 지도자로서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힌 데 대해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경쟁자인 기사당 슈토이버 당수는 이 문제에 대해 슈뢰더처럼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 역시 녹색당의 정강 정책에 비춰볼 때 당연히 반전 입장에 섰다. 그는 특히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의 대 이스라엘 보복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일부 지역 유세에선 이스라엘의 각료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동지역에 경제적 이해가 많은 독일로선 미국과 다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과 이라크가 지금처럼 견원지간이 되기 전 독일 기업들의 이라크 진출은 활발했으며, 대외 경제 관계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경제 구조상 대 중동 관계에선 미국과는 다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반전·반미 카드로 점수를 딴 슈뢰더 총리는 미국측의 거센 압력에 직면해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다루는 방법이 마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고 한 법무장관의 발언이 물의를 빚자 즉각 부시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앞으로 미국 대통령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자는 각료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독일 집권세력이 반미주의를 부추킨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독일주둔 미군의 재배치까지 검토할 만큼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8월 홍수사태 때 적극 대처
또 8월 말에 터진 대규모 홍수사태도 환경보호에 남다른 관심을 쏟는 독일 국민들에게 환경보호 문제를 새삼 상기시키면서 집권 연정세력 쪽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시켰다.
슈뢰더는 홍수사태가 터지자 몸소 장화를 신고 수해 지역을 찾아가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들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수재민을 위로하면서 법적 재해 대책을 신속히 내놓았다. 이러한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그를 현실감있는 정치인으로 인식시켰고 특히 수해로 큰 고통을 받은 옛 동독지역 주민들에게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이런 와중에 가진 TV 인터뷰에서 경쟁자인 기사당 당수 슈토이버보다 점수를 더 따 승패를 갈랐다는 것이다. 슈뢰더는 겸손하고 유머가 섞인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홍수사태에 대한 대책을 차분하고 자신감있게 역설해 점수를 얻었다.
이런 사태는 근본적으로 쉽게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독일 국민들의 정서와도 맞아떨어졌다. 즉 많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력에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현 정부를 다시 지지, 국민과 정부가 한데 뭉쳐 긴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베를린=노미자 재독 한인연합회 부회장)
◆녹색당의 우상, 요슈카 피셔 총선의 사실상 승자… 꾸밈없는 태도로 ‘최고 인기’
이번 총선의 사실상 승자는 녹색당의 간판스타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이라는 분석이다. 녹색당은 8.6% 지지를 얻어 명실공히 제3당으로 전격 부상했다. 특히 집권 연정세력의 승리 주역으론 무엇보다 피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총선 전 실제 지지율과 거의 비슷한 ‘8%+α’의 지지율을 예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79년 환경보호주의자, 반전주의자, 여성운동가들의 느슨한 연합 세력으로 출발한 녹색당은 98년 사민당과 집권 연정을 구성하면서 자신들의 반전, 환경보호, 반원자력 노선을 선명하게 지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환경보호주의자, 반전주의자들로부터는 변절자로, 사민당쪽에서는 비현실적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4%대로 급락했다.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녹색당이 선전한 데는 피셔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애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피셔는 이번 총선에서 전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피셔는 미국 문제와 관련,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48년생인 그는 고교를 중퇴하고 공장 노동자, 택시 기사, 서적 외판원 등을 지냈다. 한때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81년 녹색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83년 3월 총선에 녹색당 후보로 당선되어 정계에 첫 진출했으나 당시 보수적인 독일 국민들로부터는 별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1996년 식이요법과 조깅으로 몸무게를 35kg이나 줄이고 지속적인 체력 훈련을 위한 서적을 출간해 관심을 끌었다. 특히 1998년 슈뢰더 총리의 외무장관에 발탁됨으로써 하루아침에 일반 국민에게 클로즈업 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탁월한 연설가로서 꾸밈없는 자연인으로서 독일 국민과 우방국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정계 내의 위치도 더욱 견고해졌다. 비스바덴 주정부의 환경에너지 장관 시절엔 하얀 운동화에 편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외무장관으로서 능수능란한 외교를 펼치고 있는 그에게 독일 국민들은 꾸밈없는 정치인, 자연인으로서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 또 최근 불거진 미국과의 떨떠름한 관계도 그가 잘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5월엔 이스라엘 하이퍼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