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이른 아침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 일을 시키고 품삯을 인간이 생각하는 상식으로 주지 않는 집 주인(집주인의 의와)과 같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품삯을 많이 주고 적게 주는 계산 방법이
품꾼들의 상식에 맞지않는 점이다
품삯을 주는 포도원 주인의 의가 곧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이다
이 대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의 상식은 하나님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의이다
이 의는
품꾼들의 상식과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품꾼들은 주인의 계산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불평을 하게 되어 있다
주인의 계산 방식이 하나님의 의이다
품꾼들이 기대한 품삯 지급방식은 사람들의 상식으로 사람들의 의이다
주인이 그들의 불평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 의가 너희들 사람의 의의 관점에서는
악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불공평하게 보인다 말이다
이 대목에서 불공평은
의가 아니고 악이라는 뜻이다
다시 한 번 더 글을 자세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에게 적용되는 의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의의 심판에 서게 되면 이런 기대에 어긋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한테는
예수님이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까지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 나가서
울며 이를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간다는 것은 억울하다는 말이다
또
예수님이 오히려 자기들를 배반했다고 소리를 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의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선악의 기준도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품꾼들의 의와
포도원 주인들의 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말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삶의 원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 (인간들의)방식의 의의 잣대를 가지고
그들의 품삯을 기대 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품꾼들의 의의 잣대로 보면 의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평이 나온 것이다
바울도
세 째 하늘에 잠간 이끌려 갔을 때 아마
그의 평생토록 봉사하여 쌓아 놓은 선교라는 실적(적선)에 바울이 예수님 앞에 우쭐한 것 같이 추척 되어 보인다
바울이 쌓아 놓은 선교는 인간의 삶의 원리로 보면 대단하고 칭찬 받을 만 하지만
하나님 보기에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성경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은 바울의 이런 우쭐함은 점을 꾸짖어실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울을 이렇게 꾸짖어셨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 너더러 그 선교만 하라고 했나 ? 라고
성경 문맥으로는
선교 자체는 예수님이 바울에게 원하시 것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울에 하나님의 열매가 그에게 맺혀야 하는 것으로
그에게
신적 사랑의 성품이 형성 되는 것이다
이 신적 사랑이 열매로 바울에게 형성되면
그 사랑이 바울을 종처럼 끌고 다니며
선교를 하도록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는
선교된 사람의 숫자가 많고 적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만
바울의 선교와 선교로 믿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바울에게 열매가 맺혀 있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사도 행전에
베드로는 한번의 선교 설교로
3천명이나 믿었는데
스데반은 한 번의 긴 선교 설교로
당시는 단 한 명도 안 믿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품꾼의 입장에서는)
베드로는 3천명의 상이 있고 스데반에게는 상이 극히 적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 선교 실적에 대한 상이 많고 적음은 품꾼의 상식이고 세상의 대형 교회에서의 상식이다
노트해야 하는 것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고 있을 때는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야 할 예수님 께서 기립하신 내용이다
이유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형상이 맺혀 있는 큰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립하신 이유는 스데반에게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맺혀 있음이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큰 자가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 오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창조한 사람을 우리(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자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열매인 것이다
열매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스데반에게 맺힌 열매는 아래 절에 있는 내용으로 사랑이다
사도행전( 행 ) 7장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열매야 말로 예수님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즉
예수님 그분의 형상의 내용은
아래 구절에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눅 ) 23장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 간구는 신적 열매가 있다는 증거이다
바울이 늘 두려워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도 열매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당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고린도전서( 고전 ) 9장
27. 내가 (절제로 열매 맺기 위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죽도록) 전파(선교)한 후에
자신이 (열매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으로 부터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는
그가 평생 죽도록 한 선교는
바울에게 열매가 맺혀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증거물은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다
신적 사랑의 성품이 바울에게 형성되어서
그가 사랑하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선교를 해야 하는데
혹
사명감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즉 율법적으로 선교를 하게 될까
바울이 두려워 한 것이다
아기가 있는 남편에게 재가한 여인은
아기에게 정이 들기 전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아기에 음식을 주고 돌 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기에게 정이들게 되면 그로 부터 생겨나게 되는
사랑으로 아기 에게 음식을 주고 아기를 돌 보게 된다
사명감으로 아기에게 도덕적 의무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율법적 사랑으로 율법이지만
사랑을 느끼고 난후 사랑의 감정으로 아기에게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이 곧 복음이다
아기에게 선을 베풀어 주는 행위의 이유가
사랑이어야 하는 것이 복음이다
마찬가지로
선교의 이유가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선을 행한 분량이 많고 적음에 대해서는
포도원 주인처럼 개의치 않으시는 것이다
첫댓글
아름다운 세상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