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장 구속사 강해
이스라엘 백성 안에 담긴 반신국적 사상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가 율례와 성막 건설에 대한 계시를 받고 있던 동안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는 적지 않은 동요가 발생하고 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지 40여 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들의 대책은 여호와를 대신할 신(神)을 만드는 것이었다(1절). 그들은 각기 금고리를 빼어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하였다.
본 장의 분위기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계시를 받고 있는 분위기와 전면 대치된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통치하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율례와 성막이 모세에게 주어지는 것과는 달리 산 아래에서는 자기들이 만든 신상을 경배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의 신상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막은 묘하게도 대칭을 이루며 극적인 긴장감을 가져다 준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1.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상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기들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하고 그 신분을 각성한다는 것은 출애굽 사건이 가지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각성을 기다리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언약을 기억하고 돌아오고자 할 때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출애굽기 2장 구속사 강해 참조). 이스라엘이 신국 백성으로 자의식(自意識)을 갖는 순간 이미 출애굽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국 백성의 속성을 하루아침에 요구할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하나님은 애굽에 내린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그들에게 오염되어 있었던 신관(神觀)을 정화시키셨다. 그리고 유월절 사건을 통해 애굽과 철저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극적인 사건은 홍해 사건이었다. 홍해 사건은 단순히 죽기 직전에 기적과 같이 살아났다는 경험만을 이스라엘에게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다. 바울의 해석과 같이 그들은 모세와 더불어 세례를 받았다(고전 10:2).
이런 점에서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의 신분이 세속 국가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증한 사건이었다(출애굽기 14장 구속사 강해 참조). 홍해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신국 백성으로 성숙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라 사건과 므리바 사건은 여전히 성화의 과정을 겪어야 할 이스라엘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신 광야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여호와이신 것과 철저하게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신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만나를 통해 보여주셨다. 하나님에 의해 인생이 보장되는 삶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복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절대적인 분이셨다.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모세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위치에 있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여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광야에서 모세만을 기다리고 이스라엘은 적지 않은 동요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보인 반신국적 행위
이스라엘이 당면한 문제는 모세를 대신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세의 생사를 떠나 당장 이스라엘을 지도할 지도자로서 모세와 같은 인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지도자를 찾는 대신에 직접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기로 결정하였다. 모세의 실종으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찾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에서 이스라엘이 처한 심각한 영적 상태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들었던 여호와를 상징하는 금송아지는 실상 여호와께서 가장 강력하게 금하신 우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범하였다. 제 1계명은 여호와의 본체론(ontology)에 대한 계명이다. 이미 여호와라는 성호(聖號)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본체를 밝히시는 분'이시다(출 3:14).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형태나 상태로 정지됨 없이 역사를 주관하시며 진행해 나가시는 분이심을 계시한다는 점에서 '여호와'라는 성호에 합당하신 이름이다. 이미 어떤 형태나 상태로 정체되어버린 신관은 더 이상 여호와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에서 자기들을 불러내신 여호와만을 생각했다. 지금도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진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관에서 부패가 발생하였다.
그들의 신관에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하나의 형상으로 상징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금으로 조각하여 송아지를 만들었다. 어떤 형상으로 신을 대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이다. 비록 그들이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의 형상을 만든 것이 곧 우상 숭배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 본위의 제의나 예배를 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을 명하신다.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는 어떤 이유에서든 인간들이 상상하거나 만들어 낸 것을 거부한다. 성막 건설과 각 구조물과 집기 등을 자세히 계시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를 가리켜 모세에게 그들이 '부패했다'고 지적하신다(7절).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본문 주석 참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아래에서 이 세상과 구별된 독특한 존재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더 이상 이스라엘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기꺼이 그들을 버리시겠다는 의지를 모세에게 밝히셨다. 그러나 모세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기시키며 진노를 거두어 주실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11-13절). 모세의 청원은 충분히 하나님의 의도를 읽은 것이었다. 곧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그의 청원이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의 청을 받아주시기로 하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증거의 두 판을 가지고 이스라엘 진영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금으로 조각한 송아지를 진 중앙에 두고 한창 무르익은 축제의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모세의 뜻을 받들어 레위 족속이 나와 칼로 심판을 행했다(27절). 그리고 그 날에 삼천 명이 죽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신들을 심판한 것으로 여호와께 인정되었다(28-29절).
이 사건은 지금까지 전개된 성막 건설에 대한 계시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막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반면 금송아지는 언약의 파기와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성막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아직 성막이 건설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판단에 따라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한 그들에게 성막이 주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