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섬머(indian summer)/구연식
인디언 섬머는 단순 문자적 의미보다는 의역(意譯)으로 많이 회자되는 말이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겨울이 오기 전 잠깐 동안 여름과 같은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인디언들은 다시 찾아온 짧은 여름 동안 겨울나기 위한 사냥을 했다고 한다. 이 기간을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인디언 섬머는 일상에서 절망 가운데 뜻하지 않는 희망 또는 만년에 맞게 되는 행복한 성공을 일컫는 말로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문명보다는 자연의 순리 속에 사는 인디언들은 짧은 시간에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하여 우리네의 가을걷이처럼 의식주 준비에 최선을 다하여 겨울을 이겨냈을 것이고, 게으르고 우매한 인디언들은 신이 내린 기회를 놓쳐버려 겨울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인디언 섬머가 누구나 찾아온다. 혹자는 순간의 포착을 잘하여 성공한 삶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나, 어떤 자는 반성보다는 세월만 탓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내놓으면서 시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했다. 즉 시간이란 상황과 주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신화에는 시간의 신(神)으로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절대적인 신 ‘크로노스(Chronos)'이고, 또 한 명은 기회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카이로스(Kairos)'이다. 카이로스 신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인간이 쉽게 접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라고 했다. 그 의미는 시간을 잡으라 건져내라 선용하라는 뜻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주어지는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는 기회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달린 것이다.
우리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를 운(運)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법률 격언에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구제할 수 없다.’처럼 자기 운명의 기회를 지나쳐 버린 자도 신은 외면한다. 기회는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자에게는 오지 않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처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해도 ’카이로스(Kairos)'신은 바람처럼 왔다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인간군(人間群)에게는 한평생 카이로스 신은 운(運)을 한 번도 부여한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인도 캘커타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성녀 테레사 수녀는 한평생을 교류한 가장 가까운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다. “과연 신이 있는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둠, 냉랭함,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천민으로 태어나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제도 속에 갇혀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운명 속에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숱하게 접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도 처절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평생 운은 두 번 정도 온다고 한다. 카이로스 신은 첫 번째는 분망 중 졸지에 지나쳐 버린 경우를 가상해서 다시 한 번 운을 준다는 것이다. 대게 운을 실감하는 경우는 성공보다는 실패했을 때 느끼게 된다. 사업 운, 승진 운, 합격 운. 연애 운 등 그때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지나가 버린 운을 애석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두 번의 운이 온다 하지 않던가? 인간이 엄청난 실수를 하고도 또 실수하는 것은 이성적 인간이 아닌 본능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람직한 사고의 이성적 판단으로 절호의 인디언 섬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인간의 성공과 행복을 무엇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우리네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성공은 자기가 뿌린 자식들의 잘됨을 뜻하는 것 같고, 행복은 늘그막에 부부간의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자식들이 성공한 사례가 얼마나 되며 부부간에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인간의 성공과 행복은 모두 다 가질 수 없다는 일문천답(一問千答)의 우매한 대답이 나온다. 세계 4대성인들도 자식과 부부간의 결과를 놓고 성공과 행복을 논할 수 없어 인류에게 봉사 하면서 생을 마감 했는가 보다.
사람마다 성공과 행복의 개념은 달라도 자기의 운명을 가름할 인디언 섬머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니 나의 선택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사항도 아닌데 때로는 자만에 젖어서, 어느 때는 천성적인 소심 때문에 그리고 형식과 체면을 두려워하는 염치 때문에 카이로스의 신의 손을 뿌리쳤던 경우도 있었다. 나에게 카이로스 신이 운명의 손을 다시 한번 내밀어 주신다면 잡은 손 놓치지 않고 촌음도 아껴 바른 삶에 매진해야겠다.(202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