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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흥망성쇠의 주권자 (단 10:8-21)
우리 신앙생활에 개인의 영적 체험이 있습니다. 영적 체험해 보셨나요? 저도 어릴 때 예수 믿고 그렇게 하나님을 체험해 보기 원했는데 그 때는 제 신앙이 신비적으로 갈까봐 하나님께서 자제해 주셨는가 봅니다. 그렇게 사모했지만 하나님께서 큰 체험을 주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점차 말씀에 선 후부터는 많은 체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체험으로만 생각해도 하나님을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많은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몸이 불편하지만 며칠 전 하나님께서 제게 지금 나는 이 병을 통해 네 영혼을 고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성도로서 체험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다니엘서 10장에는 다니엘의 특수한 영적 체험이 나옵니다. 어떤 체험을 했나요? 다니엘이 힘을 잃었다가 얻었다가를 반복하는 체험입니다. 다니엘이 가브리엘 천사를 보고 거의 죽을 만큼 힘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 천사가 와서 만져주니까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천사가 말할 때 힘을 잃고 누워 있는데 다시 천사가 와서 만져주며 강건하라고 말하자 또 힘이 나서 일어나는 체험입니다.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요? 대체 무엇 때문에 선지자를 죽였다 살렸다는 반복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선지자의 퍼포먼스를 알아야 합니다. 영어로 퍼포먼스(performance)란 표현행위에 의해 나타내는 예술이나 메시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그 표현행위에 뜻이 담깁니다.
이사야도 벗은 몸 벗은 발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알렸지요. 이것이 퍼포먼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죽였다 살렸다는 반복하심으로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려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체험 후에 주신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의 계시입니다.
그럼 다니엘의 퍼포먼스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1.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달렸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멸망한 이스라엘 조국을 어떻게 하면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다시 힘을 얻어 강성해져서 강대국을 이기고 다시 돌아가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큰 전쟁에 관한 이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전쟁의 환상에 대해서 하나님께 깨닫게 해 달라고 세이레 즉 21일간 금식하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몸으로 채득하게 해 주신 퍼포먼스가 바로 죽이고 살리고를 반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은 바로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주권 즉 손에 달렸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흥하게 하시면 성하다가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시면 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제목이 있지요? 속히 우리나라가 부강해져서 우리를 넘보는 주변 강대국들이 더 이상 침략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히 북한도 개방 되어 완전한 자유와 민주적인 체제를 갖추어 이 나라에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 가운데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한 후보가 있다고 합니다. 진보에 속한 후보인데 그래 가지고는 짐승보다 못하게 혹사당하는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인권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 이 나라 백성들의 반공교육은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인권문제만이 이 백성들에게 북한을 실상을 사실 그대로 홍보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재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좌경화로 치닫는 현 정권의 실책을 그대로 답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악한 정권도 쇠락의 길을 걷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지금 북한은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서 온갖 발악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남한 성도들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 세력을 꺾으시며 무너뜨리시고 머지않아 통일의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세계적인 예언사역자들의 한결 같은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그 예언 중에는 남한의 타락과 일부 남한교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위험한 순간도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예언도 있습니다. 저는 이 예언이 터무니없는 예언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또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하셨으니 그 말씀에 비추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몸으로 느꼈던 흥망성쇠의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흥하게 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면 한 순간 하나님께서 진노의 몽둥이로 쓰셨다가도 폐하시고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시기 위해 본문 다음 장인 단 11장에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의 예언이 주어집니다. 11장에는 다니엘이 살던 역사 속에 장차 될 일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알기 쉽게 풀어서 요약해 보면 그 강대하던 바사제국이 멸망할 것이고 헬라제국이 발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헬라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분열하게 될 것이라(11:2-4), 그리고 남방 애굽과 북방 시리아 두 왕국 간의 전쟁이 있을 것이며(11:5-19), 이 때 신앙을 박해한 시리아 왕국의 셀류쿠스 4세가 등장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곧 멸망시키실 것이며, 또 하나님을 거역하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등장하고 발흥하여(11:20-27) 대대적으로 유대인 박해와 성전 모독을 자행할 것이지만(11:28-39),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만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비참한 말로를 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1:40-45). 그리고 단 12장에는 최후의 날에 대 환난이 오겠으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특별하신 은혜로 최종 승리하 게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가올 일을 미리 천사를 통해서 선지자 다니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역시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 개인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이 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환난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피한 사람들은 그 환난을 이기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창을 열어놓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반성해 보세요. 우리가 복 받고 우리나라가 복 받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자신 있나요? 달리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을 만큼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십니까? 글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총회에 올라가 일하고 있는 상위 지도자들을 보면 금방 심판을 받을 것만 같고 엎드려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진실하게 부르짖는 성도들을 보면 희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영적으로 볼 때 두 종류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점점 약해지고 타락하는 세속교회요, 하나는 더욱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참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외형은 거대하지만 영적으로 침체되고 잠잠하여 죽은 교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이 나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만약 자만하고 계속하여 타락한다면 어려운 일이 안 온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안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평화체제라는 이름은 좋지만 이 그럴듯한 이름으로 미군이 떠나고 북한이 남한을 속이게 되는 날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소리 나지 않고 하루에 30미터씩 뚫는 서구에서 수입한 최신형 땅굴기계가 얼마나 휴전선을 파헤쳤는지, 또 핵무기로 서울을 인질 삼을 수 있고, 미국과 한국의 행정과 신무기 체제를 교란시킬 세계 최강의 사이버부대가 북한에 있으며, 현 정권의 좌경화의 그늘 아래 지금 몇 만 명의 간첩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역시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에 관심 갖다 보니까 북한의 여론 공작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며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오늘 말씀 인간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이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 개인의 흥망성쇠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교훈입니다.
18절에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로 강건케 하여 가로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랬더니 강건하여졌습니다. 천사가 만져주었는데 천사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만져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강건함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강하고 약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시127:1에 그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러므로 알아야 할 것은 개인의 생명과 능력과 번성과 성장과 형통과 세움 등과 같은 일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강해지고 싶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강함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신자들에게 복 주실 때 꼭 신자들에게 복을 주셔서 복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를 들어 쓰셔서 신자에게 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전2:26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한 말씀과 같습니다. 대범하기는 신자보다 불신자들이 더 대범할 때가 많아요. 신자는 이것이 이거냐 저거냐 마음에 논쟁하고 있을 때 불신자들은 국가와 세계를 향한 대 경영을 합니다. 신자들은 좀 똑똑하면 겨우 모여 몰려나 다니고 큰 문제도 아닌 것 가지고 그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티격태격 싸우고 있을 때 불신자들은 그 때 큰 세계를 향해 더 큰 일을 해내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신학이 발전해야 합니다. 신학이 걸음마 단계에 있으면 큰 인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구원론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눈이 자기 외에는 보지 못합니다. 교회론이 부족할 때 얼마나 개 교회주의였습니까? 그래서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왜 그런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원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이 사회를 향하여 국가를 향하여 인류를 향하여 사명을 가슴에 안고 나가는 큰 일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학의 발전 역시 하나님의 손에 부탁해야 하겠습니다. 신학자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성도들이 모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계속하여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강해지지만 능력 거두어 가시면 머리 깎인 삼손 같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다니엘의 체험을 통해서 개인과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방심하지 말고 진실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써주시고 높여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시는 여러분과 한국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가 되도록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