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평소에 아름다움을 얼마나 느낄까? 단순히 ‘아~예쁘구나’가 아닌 눈시울이 붉어질것 같이 아련한 아름다움, 약간의 소름이 돋는 여운이 긴 아름다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요즘은 눈을 자극하는 화려함과 현란함에 여간해서는 아름다움을 쉽게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야 함은 모든 분야의 숙제이기도 하다.
15세기 쾌락과 욕망을 억눌러야했던 교회중심 시대에서 보티첼리는 그만의 스타일로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성상을 표현했다. 작품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가 자신의 결혼기념으로 주문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리스 신화에 의존한 육감적이며 감각적인 나체화가 아니라 인간 영혼을 신 플라톤적 해석으로 풀이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화가 보티첼리는 풍속문란 죄 같은 검열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너스의 탄생’은 15세기 최초로 신화를 소재로 한 파격적인 누드화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 속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우로노스의 성기를 거세한 후, 그 남근을 바다에 던지자 바다 거품이 모였고, 이 바다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했다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아내 클로리스 여신은 비너스의 육체를 향해 꽃송이를 바람결에 실어 보내며, 다정하고 시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고대 과실나무의 요정인 포모나 또한 봄의 시간이 수놓은 비단 망토를 들고 마중 나온다. 이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사랑에 빠져있으며,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육체적 쾌락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으며, 특히 제피로스와 클로리스는 아무런 죄의식 없는 당당한 포옹의 자세로 비너스의 육체를 찬미하고 있다. 사랑하는 두 신이 비너스가 타고 있는 조개껍질을 해변으로 불어 보내는 장면은 중세의 죄의식과 어두운 도덕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상, 특히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세속적인 사랑의 정의를 되찾은 연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몸무게를 의식할 수 없는, 신기루같이 성이 없는 가벼운 여신상을 보여준다. 그녀는 지적이고 영적인 아름다움의 구현이다. 또한 그녀는 인간 영혼의 상징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흉한 물질의 껍데기를 쓰고 볼품없는 인간으로 태어나기 이전의 원초적 순결과 진실한 영혼의 알레고리이다.
긴 목의 새침한 비너스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오른손으로 그녀의 한쪽가슴을 가리고 무릎까지 닿을듯한 긴 금발을 걷어 그녀의 아랫부분을 가렸다. 이러한 제스처는 메디치 가의 비너스 조각에서 모방했다고 한다. 아랫부분을 가리려는 동작 때문에 왼쪽 어깨는 밑으로 처지고 왼팔은 어색하게 길다. 비너스는 옷을 입은 숫처녀 모모나의 몸과는 대조적으로, 긴 체구에 이슬만 먹고 자란 처녀같이 몸이 가늘고 늘씬하다. 보티첼리는 순결한 이상미 속에 감성적인 육체미를 살짝 숨김으로 그녀의 양편에 있는 부부 신의 격정과 봄의 계절을 알리는 포모나의 순결을 동시에 보여준다.
비너스의 포즈에서 가슴을 누르는 손과 이로 인해 쳐진 어깨선, 짖눌린 왼쪽가슴과 반대쪽으로 갸우뚱하게 내린 고개는 폐결핵을 앓는 사람의 특징으로 보여진다. 보티첼리가 폐결핵으로 죽은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렸기에 이런 모습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시모네타는 15세기 피렌체의 대표적 미인으로 남편이 있었음에도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 디 메디치’의 정부였다고 한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아름다움은 고통을 잊게 해주며,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준다. 아름다움을 보다 쉽게 느끼며, 아름다움을 자주 표현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신의 지고한 성스러움과 동격으로 묘사한 보티첼리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는 비너스의 모델 시모네타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순수하고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완성시켰다. 그렇기에 ‘비너스의 탄생’은 육체적 아름다움의 표상이 아닌 정신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보티첼리의 진정한 사랑이란 아름다운 육체의 쾌락적, 표면적 집착이 아닌, 그 육체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정신적 추구에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