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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넬카의 도메네크호 일대기]
ⅱ 졸전의 연속 2004년 8월 27일, 도메네크호 2기 명단이 발표되었다. 다비드 트레제게의 부상으로 루이 사아가 그를 대신하여 뽑혔으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복부 부상으로 유로2004 본선행이 좌절됐던 뤼도빅 지울리가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하였다. 특히 미드필더 비카슈 도라소의 컴백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는 유로2000 예선 안도라 원정 경기 이후 약 5년 2개월 만에 레 블뢰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는 2006 독일 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에서 아일랜드, 스위스, 이스라엘, 키프로스, 파로제도와 함께 4그룹에 배정되었다. 도메네크호 2기 발표 이후 그들의 예선 첫 경기 상대는 이스라엘이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생드니로 들여와서 그들을 첫 승 제물로 삼으려 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보스니아 전과 마찬가지로 3백을 들고 나왔다. 전 경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레프트 센터백에 아비달 대신 지베가 나왔으며 앙리의 파트너에 사아가 기용되었다. 미드필드진의 중앙 구성은 기존 로텐에 비에라와 마케렐레가 합류하였다. 마지막으로 골문 수호의 직무는 바르테즈 대신 쿠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경기는 대체적으로 프랑스가 주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각 포지션 별로 따로 놀고 있었다. 그리고 유기적인 플레이 없이 자신들의 횡적인 라인만 지키고 있었다. 특히 우측 윙백 멘디는 FIFA 100주년 경기 브라질 전에서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농락했던 장면을 전혀 재현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돌파와 크로스 하나 올려보지 못했다. 게다가 무모한 중장거리 슛을 연발하며 개인 능력의 한계를 표출했을 뿐이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투톱 파트너 사아와 동선을 유지했던 앙리는 하프라인 근처까지 자주 내려왔다. 앙리가 자원해서 게임을 조율하는 투혼을 발휘하였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전반전이 마쳐졌다. 후반전 들어서 로텐과 멘디를 빼고 피레스와 지울리를 투입한 프랑스는 3-5-2에서 4-4-2로 전형을 바꾸었다. 아스날과 비슷한 전형이 되었는데 좌측에서는 피레스가 게임을 풀어주고 에브라가 애슐리 콜스럽게 오버래핑에 이른 공격을 보여주었다. 마케렐레는 질베르투 실바 같이 홀딩에 주력했으며 지울리는 륭베리 같이 기동력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수비진을 흔들어 놓았다. 투톱은 앙리가 오히려 베르기의 역할이었고 사아가 최전방을 공략했다. 전반전 보다는 훨씬 수월한 공격을 가했지만 득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울리에게 한 차례의 결정적인 골 찬스가 있었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고 경기는 0-0으로 마무리 되었다. 한편 수비형 미드필더 클로드 마케렐레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다며 경기 후 은퇴를 선언했다. 프랑스는 3기 발표 이후 열흘 뒤에 아일랜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3번째 예선경기를 치루었다. 양 팀은 모두 4-4-2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프랑스의 중앙 미드필드 조합은 다쿠르-마부바 라인인데 특히 20살 풋내기 마부바의 기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전반전은 아일랜드가 근소하게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아일랜드의 로이 킨과 킬반은 다쿠르와 마부바 라인을 완전히 압도했으며 더프를 중심으로 활발한 측면 공격을 퍼부었다. 이 날 프랑스는 도메네크가 좌우 미드필더 피레스와 윌토르에게 윙의 역할이 아닌 플레이메이커의 롤을 지시한 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후반전에는 양 팀의 갈라스와 오셰이가 결정적인 찬스를 각각 한 차례씩 놓친 채 경기가 0-0으로 마무리 되었다. 10월 28일, 피레스가 영국 미디어를 통해 도메네크 감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피레스는 "키프로스 전에서 감독이 나를 아웃시키고 다니엘 모레라를 투입 시켰을 때 나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내 축구 경력에 있어서 이와 같은 일을 당하긴 처음이다. 만약 키프로스전이 생드니에서 벌여졌다 하더라도 나는 떠나버렸을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화가 나 있었고 이성을 잃었다. 그의 행동은 나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었다. 나는 마치 학교에 있고, 20살로 돌아간 것 같고,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갑갑한 느낌을 받았다." 라며 적나라하게 그를 비난했다. 5일 뒤에는 공격수 지브릴 시세가 왼쪽 종아리뼈 골절상을 당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시세는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대 블랙번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제임스 맥키블리와 엉켜 넘어지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트레제게의 고질적인 '유리몸화(化)', 아넬카를 부르지 않는 도메네크의 고집까지 더해져 앙리의 쓸 만한 파트너는 루이 사아만이 유일해졌다. 2004년 마지막 경기인 폴란드 친선전을 위한 도메네크호 4기에는 세 명의 새로운 인재들이 탑승했다. 리옹의 좌측 와이드맨 플로랑 말루다, 보르도의 플레이메이커 카멜 메리엠, 그리고 파르마의 골리 세바스티앙 프레이가 그들. 특히 프레이는 1st와 2nd인 바르테즈와 쿠페의 동반 부상으로 3rd 랑드로의 유사시를 대비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관심이 모아졌던 'Pires Case'는 피레스 본인에게 절망적인 판정이 내려졌다. 도메네크 감독은 "순전히 그의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돌려 말했지만 아무리 봐도 피레스의 발언에 대해 삐진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리스트 발표 이후 실베스트르 또한 도메네크가 자신을 뽑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폭언을 퍼부으는 등 프랑스 팀 분위기는 말이 아니게 되었다. 한편 공격수 트레제게는 어깨 수술을 받게 되기로 예정되어있어 2월에나 복귀가 가능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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