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Ⅱ : 의료활동 ㅡ 성 골롬반 의원
무의촌 진료
1966년 골롬반 수녀들은 춘천 주변 지역으로 무의촌 진료 활동을 펼쳐 나갔다. 산골 등 오지에서부터 병원에 올 수 없는 노인들이나 어린이들,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하고, 어린이 예방 접종 등 질병 예방을 위해서도 힘썼다. 또한 전문화된 의료 시설을 갖추지 못해 위급하거나 위험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서울한미재단'을 통해 '하와이 아동정형외과 병원' 과 연계하여 화상 및 심각한 질환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가족계획센터 및 '행복한 가정 운동'
1970년대 초 한국 정부는 두 자녀 갖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책적으로 가족계획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에 모든 의료 기관들은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을 따르며 참여해야 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유교적 인습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기로, 아들을 낳기 위해 낙태 수술과 여성의 불임 수술이 기족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었다.
특별히 조산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수녀들에게 이 정책은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개인 병원등은 앞다투어 3개월 무렵이 되면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는 기구들을 갖추었고, 이렇게 성별이 감지 된 후에는 낙태로 이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 토마스(Thomas Stewart) 주교는 대한민국 정부의 가족계획 정책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명했고, 골롬반 수녀들은 주교의 입장을 지지하며 춘천 골롬반 의원 산하에 아기들을 위한 병동과 가족계획센터를 설치하기 위해 병원을 증축했다. 그 당시 산간 벽지에 사는 환자들이 입원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는 골롬반 의원이 유일했다. 그래서 골롬반 의원 근처에는 민박이나 여관이 급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멀리서 온 환자들과 가족들이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받으며 머물 곳이 필욧했기 때문이다.
1973년 마침내 가족계획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다. 이 센터에서는 젊은 부부와 미혼 여성들을 상대로 자녀 출산 계획 상담을 해 주었고, 생명존중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고, 인공 낙태를 막기 위해 점액 관찰법 및 기초 체온법에 의한 자연 피임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청소년 순결 교육과 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교구와 본당에서 일할 봉사자를 양성하고, 여러 사회단체 및 교육 기관등과 함께 생명 존중 운동을 펼쳐 나가는데 주력했다. 1975년 박 토마스 주교와 가톨릭 의과 대학에서 주도한 '행복한 가정운동'은 하나의 사목 운동으로 강조되었고, 부모 교육과 대화 방법 등 가족 간의 가치를 되새기고 유대감을 갖게 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특별히 '자연 피임법을 통한 가족계획' 방법을 홍보하였는데, 골롬반 수녀들은 가족 상담을 위한 상담사(당시 가족계획 지도원) 교육을 비롯하여 기본 상담 기술, 영적 · 의료적 · 사회학적인 측면을 고려한 가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헌신적이고 훌륭한 협력자들을 얻을 수 있었고, 춘천 가족교육센터는 한국 천주교회 14개 교구에 가족계획 지도자들을 양성하여 배출했다.
글/ 교회사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