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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7. 소책자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섬기는 일터
홀로 걸어가는 그 길에서도 너는 혼자가 아니다
출처 : 『사막에서 별을 노래하다』 김운용 /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2017년
우리는 풍성함과 변혁과 회복을 열망한다. 우리는 가능한 것 그 이상을 열망한다.
- 월터 브루그만 -
1) 무너지는 소리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2004년 8월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주며 평화롭게 삶을 정리하도록 도움을 준 ‘죽음의 의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미국 버지니아 주의 애팔래치아 산맥에 위치한 쉐난도(Shenandoah) 계곡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농장을 샀습니다. 그곳에 살 집, 내방객의 숙박 시설, 직원들의 숙소를 지은 다음 치유센터의 문을 열었습니다.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을 입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그는 그곳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994년 10월, 그의 집에 불이 나서 기둥뿌리까지 모두 타 버렸습니다. 그동안 모은 자료와 준비한 원고, 그리고 소유한 모든 것이 한 줌의 재로 변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고 서둘러 와 보니 새빨간 불길과 연기가 거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불은 그녀의 모든 보물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고이 간직했다가 건네준 어린 시절의 일기장, 그동안 쓴 논문과 비망록, 사후의 삶에 관한 연구를 위해 모아 놓은 2만여 건에 달하는 사례집, 수집해 놓았던 아메리칸 인디언 미술품, 사진, 옷가지, 그동안 받은 편지 등 자신의 보물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울어야 할지, 소리를 질러야 할지, 악담을 퍼부으며 주먹질을 해야 할지, 아니면 비정한 인심을 탓해야 할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퀴블러 로스는 그 삶의 고통의 순간이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분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서 그것을 수용하기로 결심합니다.
【어쨌든 잃어버린 것은 오로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도 생명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나는 손끝하나 다치지 않았다. 몇몇 못 된 인간이 우리 집과 재산을 불태워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코 나를 파괴할 수는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내 인생은 많은 일이 있었고, 결코 안락하지 않았다. 푸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고난 없이 기쁨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고통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전쟁의 비참함이 없이는 평화의 안락함을 알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속담이 있다. 골짜기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고 메워 버린다면 자연이 새겨 놓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
다시 일어나 시내에 나가 옷을 사고, 다시 글을 쓰고,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돕고,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힘차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었던 '하나님의 정원', 바로 그곳으로 그도 옮겨갔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그 시간은 아프고 힘들며, 분노에 사로잡혀 몸을 떨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너짐의 시간에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려고 했던 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다보면 수없이 많은 무너짐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실망하기도 하고,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당황하며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왕궁에서 최고의 삶을 누리며 장성한 청년 모세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모세의 생애는 출생으로부터 왕궁에서 보낸 40년, 좌절과 절망에 얼룩져 보내던 미디안에서 보낸 40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민족을 구원해 내는 하나님의 사자로 세움 받아 이집트에서 가나안 문턱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로서 광야에서 보낸 40년, 이렇게 대략 3기로 나눠집니다. 한 단계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면 언제나 무너짐으로 나타납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아 누리며 모세는 왕궁에서 자라는 특권을 누립니다. 대 이집트 제국의 왕자였으니 그가 무엇을 못했겠으며, 무엇을 먹지 못하였을까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생명을 보존한 것만도 대단한데 이집트의 왕자가 되어 40년 동안이나 왕궁을 누빌 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화려했던 왕궁에서의 행복한 인생의 시간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2) 다시 내던져진 인생
이 사실을 전하는 출애굽기의 말씀은 “모세가 장성한 후에”(출 2:11)라는 구절로부터 운을 뗍니다. ‘장성’이라는 의미가 나이가 얼마큼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사도행전 7장 23절은 “나이가 사십이 되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2장 10절과 11절 사이에는 40년이라는 긴 간극이 있었던 셈입니다. 인생의 완숙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에 인생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왕궁에서 쫓겨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을 출애굽기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 (출 2:11). 왕궁에서 쫓겨나고, 권력자의 자리에서 축출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기 형제’라는 표현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뭔가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 살고 있었지만 그의 의식 속에는 히브리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모세가 우연히 두 가지 사실을 보았답니다. 하나는 히브리 노예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고, 또 하나는 그 노역의 현장에서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았답니다.
‘고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시벧르탐’인데 일반적 의미의 ‘노동’이 아니라 ‘혹독한 노역’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라는 표현에서 ‘친다’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쳐죽인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짐승처럼 그렇게 일하다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맞아 죽는 일은 당시 작업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생하였습니다. 꼭 감독하는 사람들이 악해서도 그렇지만 기강을 잡고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종종 시범 케이스로 삼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 광경을 모세가 보았다는 말입니다. 여기 ‘보았다’는 히브리어의 표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그렇게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매맞고 죽어가는 그 모습이 바로 자기 자신인 것처럼 그렇게 고통을 느끼면서 보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노예들이 노동에 시달리는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니었고, 죽도록 얻어맞는 일도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눈에 그게 새롭게 들어온 것입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죽이고, 그를 매장했습니다. 모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성경은 특별한 윤리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 그 현장을 다시 방문했을 때 이번에는 히브리인 동족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답니다. 성경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출 2:13~14). 그리고 성경은 모세가 ‘이 일로 인해 두려워하였다’고 전합니다. 또한 바로가 이 사건의 전모를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았고, 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당시 왕정 시대에 왕자가 사람 한 명을 죽인 사건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싸움을 말리는 이집트의 왕자에게 노예가 대들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즉결 처형을 한 일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는 사실도 이례적이며, 그 작은 사건으로 인해 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했다는 내용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왕권을 둘러싸고 궁중의 정치세력 간에 암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모세가 히브리 노예의 아들임이 밝혀지면서 정적들이 그를 제거하고자 일제히 일어난 것으로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그리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다만 그 일로 인해서 모세가 왕궁을 떠나 멀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만 보여줍니다. 작은 사건이 그런 큰 결과로 이어진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궁에서 우상이나 섬기다 끝날 인생이 아니었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다가 끝날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인생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부모 품에서 나일강으로 내던짐을 당했던 모세가 이번에는 왕궁에서 미디안 광야로 내던짐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으로 내려가는 그의 가슴에는 깊은 좌절과 눈물, 한숨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죽음의 땅, 광야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으로 던져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광야를 버려진 땅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칭합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것은 정적을 피해 도망간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 가운데서 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는데 그 첫 번째에 나오는 시, “산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시가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남보다 더 살았으니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달관의 자세가 가슴에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인은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젊은 날이지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고 외치면서 정작 우리는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회한의 외침을 토합니다. 때론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때론 너무 답답하고 외롭기 때문이었습니다. 청춘만이 아니라 중년에도, 노년에도 아름다움은 숨겨져 있습니다. 화려한 왕궁만이 아니라 사막에도 아름다움은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비록 아픔과 고난으로 얼룩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이 하늘의 축복으로 주어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주저앉지 않을 수 있다면 이미 축복은 시작됩니다. 이집트의 왕자로서 잘 나가던 그의 인생은 이제 완전히 망가졌고, 촉망받던 화려한 왕자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때 남는 것은 비애감과 좌절뿐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 절망의 땅에 서있습니다.
그 절망의 땅을 성경은 ‘미디안’이라고 칭합니다. 미디안 광야는 아카바만 근처의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하는데, 이집트 왕궁에서 그곳까지 걸어서 갔든지, 아니면 낙타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갔든지 간에 쉽게 이를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수천리 길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이른 곳이니 더욱 멀었을 것입니다.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당시의 왕이 아멘호텝 3세나 4세였을 것으로 추정하면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730km 떨어진 룩소에 왕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룩소에서부터 출발하여 배를 타고 홍해만을 건넜든지, 아니면 카이로 쪽으로 돌아서 홍해를 끼고 먼 길을 내려갔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출발했든지 미디안 광야까지 걸어가는 데는 수개월이 걸린 먼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모세는 멀고 먼 길을 걸어 그 땅, 미디안에 이른 것이지요. 그렇게 그곳에서 그의 인생의 제 2막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3) 정말 확인해야 할 것
미디안 땅에 버려진 모세는 우물가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통해 가정을 이루면서 그곳 삶에 정착하게 됩니다. 자식도 낳고 평범한 촌부로 살아가는 동안 젊은 날의 모든 꿈은 접었고, 그렇게 인생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쓸쓸한 인생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성경은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모세를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실패도 기회가 되고, 무너짐도, 고통도, 절망도 위대한 기회가 됩니다. 무너진 이집트의 왕자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 40년은 긴 시간이었고, 고통의 시간이었으며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라보시며 찢어지는 가슴을 가지신 하나님께는 더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왕궁을 떠나야 했던 비애의 시간, 모든 것이 무너지던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곳에서 여전히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가운데 있음을 믿고 그분의 손에 붙들리기를 바라며, 순백의 믿음으로 걸어갈 수만 있으면 미디안도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한신대 학장을 지낸 김정준 목사는 젊은 날 폐결핵에 걸려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 4기, 죽음 앞에 서있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갈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 갇혀 있는 나비를 잡아 밖으로 날려 보내면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나비에게서 자기를 보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살 수 있다는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한 편의 고백의 시를 썼습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 내가 주님의 것이 되고자 원하기 전에 /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했나이다 // 내 부모 형제에게서 선함이 없고 / 내 자신에게서 아무 의로움이 없지만 /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 내 과거나 현재도 죄뿐이요 / 또 내 미래도 거룩한 보증을 할 수 없건만 /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 주님이 이것을 주님의 소유물로 하셨어도 / 천지나 역사에 털끝만한 변함이 없겠지만 / 주님은 그저 주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 이것을 주님의 소유로 하시오면 / 주님이 이것 위해 마음 쓰시기 괴로우실 텐데 / 그래도 주님의 것이라 하시나이다 // 주님은 나를 주의 것이라 하시지만 / 이것은 또 몇 번이나 주님을 반역할지 모르겠는데 / 그래도 주님은 주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 이것이 주님 것 됨으로 / 주님의 곳간이 부해질 것 아니건만 /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 내게는 배암 같은 간사함이 있고 / 표범 같은 악독함이 있사온데도 / 주님은 그래도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 내 교만이 바벨처럼 높고 / 내 비루함이 수풀처럼 우거졌건만 /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 음부도 내 흑암에 비길 바 못되고 / 우주도 오히려 내 죄악보다도 적건만 /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 주님, 이것이 주님의 소유의 하나이오니 / 쓰셔도 당신 뜻, 또 버려도 당신의 뜻이외다 / 다만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사이다】
죽음의 광야에 던져진 인생이었지만 눈이 열리면서 자신은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열려야 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소명의 눈도 열려야 했습니다. 이은상 시인은 “아무리 뵈오려 해도 안 보이던 님이 눈을 감으니 보이더라”고 노래합니다. 욕심에 대해 눈을 감고, 분노에 대해서도, 미움에 대해서도, 절망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났더니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임의 얼굴 뵙고 싶어서 차라리 소경이 되겠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때 모세가 그런 마음, 그런 고백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다면 저는 세상에 대하여 소경이 되겠습니다. 저는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고 40년을 살았지만 모세에게는 아직도 그 고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려고 미디안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 고백을 갖기를 하나님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2010년 9월 2일, 태풍 곤파스가 수도권을 강타하면서 지나가던 날 새벽이 기억납니다. 북상하면서 많이 약화되었다고 했지만 이른 새벽 서울을 강타한 중형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도시 곳곳에서는 나무와 전신주가 넘어지고 정전사태가 속출했습니다. 그날 아침, 학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정기적으로 말씀 전하는 CBMC(기독실업인회) 모임이 있어서 차를 운전해 가는데 세찬 바람으로 인해 길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가 쓰러져 있었고 가로등이 넘어지고 간판이 떨어져서 뒹구는 모습을 보며 혹시 차를 덮치지 않을까 마음이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날 아침, 모임에 출석하려던 회원들 중 여러분이 여기저기 나무가 쓰러져 있고 비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뛰어난 열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문화는 기독교의 복음과 진리에 대해 갈수록 적대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사역을 주춤거리게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때 정말 필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의 확인과 고백의 회복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그곳에 세워진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폭풍우 속에서도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 신학자이자 신학도들의 영원한 스승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야만적인 폭력이 유럽 전역과 세계를 흔들어 놓고 있을 때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가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베를린에 수감되었고, 1945년 4월 4일에 39살의 젊은 나이로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여인도 있었고, 전해야 할 진리의 말씀도 가슴속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암담한 시절,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 // 나는 누구인가? /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 내가 누구인지 / 당신은 아시오니 /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시간에 본회퍼도, 모세도 지금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또다시 생명 자체가 위협받고 있을 때 거기에서 모세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에는 폭풍이 쉼 없이 불어오는가? 내 인생을 이렇게 비극적으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며, 이런 아픔은 왜 오는가? 그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였습니다.
4)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모세는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 채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수개월 동안 수천리 길을 걷고 걸으면서 방황하던 모세는 어느 우물가에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을 통해 르우엘의 집에 거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진종일 가축을 먹이던 목동들은 해가 떨어지면 우물가로 몰려와 물을 먹인 다음에 집으로 끌고갑니다. 비슷한 시간에 목동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거기에도 힘 있는 사람의 횡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가씨 목동들은 밀리기 마련인데 모세가 그들을 도와준 일로 인해 르우엘 가정과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여기에서 말씀은 ‘버려진 사람’과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이때 사용된 단어, ‘버리고’라는 말의 히브리어 ‘아자브’는 ‘쓸모없는 물건, 혹은 가증스러운 것을 내버린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신세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렇게 그는 버려진 존재였고, 내팽개쳐진 존재로 서있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2장은 모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도 버려진 존재였음을 평행 구조로 보여줍니다. 죽음의 땅에서 모세가 헤매며 탄식하듯 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약 없는 노예생활에서 고된 노동으로 인해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르우엘의 집에 얹혀살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부르짖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부르짖다’는 말의 히브리어 ‘자아크’는 막다른 상황에 부딪쳐 외치는 절규하는 소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아무 때나 절규합니까? 그만큼 어려웠고 심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버려진 존재로, 잊어진 존재로 서있었습니다.
죽음의 땅에서 모세는 마음이 따뜻한 한 사람을 만나 죽을 것 같은 삶의 발걸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낯선 땅에서 망가진 인생으로 배회하고 있다가 정착할 수 있는 처소를 얻은 것입니다. 십보라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가슴 가득 담겨 있던 절망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이 아들의 이름을 통해 드러납니다. 첫 아들을 낳아 모세는 그를 ‘게르솜’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그 말은 ‘이방인’ ‘객’이라는 뜻의 ‘게르’와 ‘그곳’을 뜻하는 지시대명사 ‘숌’이 결합한 형태로, ‘도피했던 그곳에서 이방인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음을 피해 도망 나와 정처 없이 헤매다가 그곳에 거처를 정했지만 그는 그곳에서도 객이었다는 참담함의 표현입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잊히면서 그렇게 모세의 인생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생명조차 이어가기 어려운 한겨울을 지나온 들꽃들, 돌보는 사람 하나 없지만 봄 동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작은 야생초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들꽃 언덕에 서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고 키우셨다고 유안진 시인도 고백하지 않습니까?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고, 그 향기는 하늘의 향기라는 사실을 그는 들꽃 언덕에서 알았답니다. 들꽃은 하나님께서 키우시기에 아름답고, 그 향기는 하늘의 향기랍니다. 들꽃 언덕, 그것을 감지하고 고백할 수 있었던 그 언덕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듯 보이는 들꽃 언덕에서 거센 비바람 앞에 세워진 것 같지만 버려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도 역시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무대 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5) 잠시 스텝이 엉키면
알 파치노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는 미국 육군 정보부와 대통령 참모로 활동한 예비역 대령 프랭크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으로 뒤덮인 인생길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완전히 시력을 잃고 조카 집에 얹혀사는 프랭크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식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서 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조카 부부가 시댁 방문으로 출타하게 되면서 한 주간 프랭크를 돌봐줄 아르바이트 학생을 찾게 되는데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찰리가 그 일을 맡게 됩니다. 집이 가난한 찰리는 오리건주에서 장학금을 받고 그 학교로 유학을 왔는데 돈이 없어서 추수감사절 연휴에도 고향에 갈 수가 없어 기숙사 문이 닫히는 연휴 기간에 머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무의미한 인생을 견디지 못해 프랭크는 화려한 자살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하는데 찰리가 그를 돌봐줄 사람으로 고용된 것입니다. 그렇게 찰리는 알지도 못한 채 프랭크의 자살여행에 동행하게 됩니다.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프랭크 대령은 향기만으로 그 여인이 어떤 비누를 사용하는지, 목소리만 듣고도 신장이 얼마인지, 머리칼이 어떤 색인지도 알아낼 만큼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였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아가씨와 멋지게 탱고를 추기도 하고, 최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리무진을 타고 뉴욕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냅니다. 연휴가 끝나갈 무렵 프랭크는 그의 생을 마감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낌새를 챈 찰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찰리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몇 학생들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교장 선생님 머리 위로 페인트가 쏟아지게 만들어 골탕을 먹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사회에서 선물로 받은 고급자동차를 타고 거들먹거리는 교장을 놀려주기 위해 부잣집 아이들이 벌인 해프닝이었습니다. 화가 난 교장이 범인을 찾아내 처벌하려고 목격자인 찰리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말하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찰리에게는 밀고하면 하버드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할 수 있도록 추천을 해 주겠다며 회유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거부하면 찰리도 공범으로 퇴학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가합니다. 연휴가 끝나면 찰리는 상벌위원회에 소환되어 전교생과 교직원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것에 대해 증언을 해야만 했습니다. 친구를 팔지 않으면 학교에서 퇴학을 맞을 수밖에 없는 위기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찰리는 친구를 팔아 그렇게 자기 인생을 세워가고 싶지 않았고, 그런 찰리의 모습에서 프랭크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게 생의 위기 가운데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서로 위로를 얻지만 한 사람은 죽으려고 하고, 한 사람은 살리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찰리를 잠시 심부름을 보낸 후에 훈장이 가득 달린 정복을 입고 생을 끝내려고 프랭크가 권총을 뽑아든 순간, 미심쩍어하던 찰리가 급히 되돌아와 그 광경을 목격합니다. 프랭크는 인생을 살 가치가 없고 더 이상 의욕이 없어 떠나려고 하니 막지 말라고 하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죽는다고 권총으로 위협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찰리는 죽더라도 결코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고 고집합니다. “네가 내 고통을 아느냐?”라고 소리치는 프랭크를 향해 찰리는 “탱고 스텝이 엉켜도 계속해서 춤을 추면 된다”고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그를 설득합니다.
“당신만 눈이 멀었습니까? 눈이 먼 사람은 세상에 아주 많아요. 생명을 귀하게 여기세요!” 살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만 대보라고 프랭크가 소리쳤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령님은 탱고를 잘 추기 때문입니다. 탱고는 함께 추는 것이고, 춤을 추다보면 스텝이 엉킬 때도 있지만 서로를 일으켜 세우면서 함께 계속 춤을 추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대령님에게서 배웠어요.” 그 말을 듣고 프랭크는 권총을 내려 놓습니다. 그렇게 찰리는 죽음의 늪에 빠져들던 프랭크를 건져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그렇게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왕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기를 원치 않으셨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탱고를 추기를 원하셨습니다. 스텝이 엉켜서 이방 땅에서 서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서로를 붙들어 주는 하나님의 탱고를 추는 사람으로 무대 위에 세우시길 원하셨습니다. 인생이 뒤죽박죽 되었다고 실망하여 모세는 지금 미디안 땅에 주저앉아 있지만 잠시 스텝이 뒤엉켜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이르고 계셨습니다.
6) 널 잊은 적 없었다
노예로 전락한 지 400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다 잊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고통과 탄식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부르짖음이 상달되었다”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상달되었다’는 히브리어 표현은 마치 향이나 연기가 위로 피어오르듯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닿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은 이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여기에서 ‘들으시고’(솨마)라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하다’라는 의미로 귓전으로 흘려듣는 상태가 아니라 귀를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말합니다.
‘기억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자카르’는 늘 염두에 두는 것, 마음에 두는 상태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장 25절에서는 ‘권념하셨더라’(개역한글)는 표현으로 확대됩니다. 이것은 ‘야다’와 ‘라아’라는 말이 합성된 단어로 ‘라아’는 ‘주목하다’라는 뜻이고, ‘야다’는 ‘알다. 돌아보다’ 등의 뜻입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풀면 ‘자세히 살피시고 돌아보셨다’는 의미입니다. 침묵하고 계신 것 같았어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한숨을, 눈물과 상처를 일일이 기억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박경리 시인은 인생의 황혼에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내 영혼이 /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내 영혼이 /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 질주하며 울부짖을 때 /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이다 /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모세를 바라보고 계셨고, 고통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 서울 올림픽공원 근처의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1부, 2부 예배를 잘 마치고 3부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배위원 좌석은 중앙 회중석 제일 앞자리에 마련되어 있었고 그 교회는 찬양 중심의 현대적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설교 전에 비교적 많은 찬양을 드리는 교회였습니다. 찬양시간 끝 부분에 한 찬양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나중에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흐느끼는 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교인들이 다 보고 있고 바로 설교를 해야 하는 설교자이기에, 강사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아 참아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흐느낌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찬양할 때 파노라마처럼 지나온 인생길을 보여주시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신 제 아홉 살 인생은 외갓집 소를 먹이기 위해 어느 논둑길에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소를 먹인 다음 저녁에 돌아가면 흰 쌀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추석 명절이면 옷도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머리도 비상하셨고,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었지만 젊은 날의 꿈이 좌절된 것 때문에 술을 많이 드셨기 때문에 우리집은 늘 어려웠고, 외갓집에 가면 딸 고생시키는 사위가 미워 외할머니께서 우리 형제들을 엄청 미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후 내내 꼴을 먹인 소를 끌고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가 아무 말씀도 안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중학교를 갈 수 있을지도 모를 그런 막막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부르고 있던 찬양은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내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 내 안에 계셔 /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셨죠 /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
“네 아버지는 혹 너를 잊었을지 몰라도 난 너를 잊지 않았다”라고 들려주시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디안 거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7) 다른 것에 눈길 두지 말 것
작은 물줄기는 결코 바위를 부수지 못하고 쇠를 자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곳으로 집중시키면 그건 가능해집니다. 모세는 지금 거기에서 그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능력, 교회의 능력은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때 나온다는 사실을 모세는 거기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미디안은 그냥 보내진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진 존재로, 가슴이 뜨거워진 존재로,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존재로 회복되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있다고 합니다. “절대 약초에 눈길을 두지 말 것!” 깊은 산속을 헤매다보면 돈이 되는 약초가 많이 보인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비싸고 돈이 되는 약초여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 쫓아다니면서 그것으로 보따리를 채우다보면 산삼은 결코 캘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지금 모세도 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네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이 느껴질 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 거기에서 나에게 집중하여라.”
미국의 프린스톤대학교와 유니온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콜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미국해외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평생을 사역했던 프랭크 로바크(1884-1970)는 민다나오의 모로 부족의 언어를 문자화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문맹인들의 평화의 사도”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문자를 깨우치고 곧바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언어학적 방법론을 일반화하여 문맹퇴치운동의 기초를 다진 학자로 영향력을 끼친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15년여의 사역을 통해 이런 놀라운 결과를 이루었지만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민하였고, 몇 분 단위로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분마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하였고, 그것이 그의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섰던 1930년이 시작되는 새해부터 그는 분초마다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향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생각이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며 움직인다. 집중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수많은 방향에서 오직 한 가지로 계속 되돌아오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는 보통 한 가지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그 이상의 것과 동시에 관계하며 그것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이 있다. 내가 고심하는 문제는 이것이다. 분초 단위로 내 생각의 흐름 속에 하나님을 내 생각의 중심에 둘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 생각의 잔상 속에 계시도록, 언제나 모든 개념과 지각의 중심이 되시도록 말이다.】
로바크는 순간 단위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개인적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일과 삶의 세세한 부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전해 줍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계획 안에서 그분께 붙들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작은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내게 너무도 놀랍고 황홀한 일이었습니다.”
외로운 선교지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몸부림치는 그를 높이셨고, 아무런 정치적 지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가난, 불의, 문맹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것이 세계 평화의 장벽이 된다는 생각에 1955년에 ‘로바크 문맹퇴치’(Laubach Literacy)를 세웠고, 나중에는 ‘세계문맹퇴치선교회’(World Literacy Crusade)를 설립하였습니다. 인생 후반부에는 전 세계를 다니며 문맹퇴치와 세계 평화에 대한 강연을 하였으며, 1984년에 선교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위대한 미국인 시리즈’ 기념우표(Great Americans series stamp)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에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매순간 순간마다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 인류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유명한 과학자가 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교육자들과 상하원 의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세상이 안고 있는 두려운 딜레마로부터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자신들과 세상을 구원하시기에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인구의 1/3이 교회에 속해 있으며, 그 1/3 중의 반절만이 정규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 설교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의 예배에서 43분 정도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탁월하고 좋은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을 자주 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예배 참석하는 사람들의 1/6만이 그리스도를 생각하는데, 그 시간이 일주일에 10분도 채 안 된다. 그들이 나라와 세상을 구원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대신에 그들은 이기심, 탐욕, 증오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분께 좀 더 시간을 드리기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