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앞뒤 자고 계신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공예에 잡혀서 공회원들 앞에서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그의 설교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 그들의 선조들의 이야기로 풀어갑니다. 아브라함에 이어서 그의 자손들을 쭉 나열하지 않고 건너뛰어서 이제 요셉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게 된 것이죠. 특별히 오늘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측면과 인간의 믿음이 잘 어우러져서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요 고난과 역경 속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을 놓지 않았던 것이죠. 고난과 역경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인물. 그래서 스데반은 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할렐루야
고난은 있지만 고난이 끝이 아니라 거기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라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공예원들에게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으로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셉의 삶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셔서 약속을 이행해 가시는지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요셉의 삶에 대해서 오늘 구절은 첫 번째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의 시기로 고난이 시작됐다는 거예요. 우리 9절 말씀 함께 읽어봅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9절 앞부분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 조상들 누굽니까? 바로 요셉의 형들이죠. 형들이 시기했다. 그 시기심이 발동되어서 결국에는 애굽으로 팔려가는 고난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요셉이 형들에게 시기를 받았는데 시기를 받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뭐 때문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시계를 받아서 애굽으로 팔려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면하게 되느냐는 것이 창세기 37장 2절에서 11절에 보면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를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아버지의 편애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이 형제들을 다 고루고루 균등하게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고 특별히 요셉을 편애했다는 거예요. 우리 창세기 37장 3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보십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으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으니
여러분 이 야곱이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우선 요셉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가장 사랑했던 라헬, 레아와 라헬이 있었지만 요셉은 그의 눈이 레아에게로 향하지 않고 라헬에게로 향해 있었죠. 그래서 라헬과 함께하고 싶었던 그의 마음. 그러나 삼촌의 거짓으로 인해서 레와 함께 먼저 결혼하게 되고 이후에 내가 결혼을 하잖아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요셉의 마음 가운데는 누가 가장 컸어요? 바로 라헬이 가장 컸죠. 그의 자녀를 낳을 때에 누구를 더 사랑하겠어요? 라헬의 소생을 더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노년의 얻었대요.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가질 수 없었던 그 아들이 노년이 되어서 이 라헬을 통해서 자녀를 얻게 된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지 않겠어 이 아이를 보면 볼수록 너무나 예쁘고 내 아내를 닮은 것 같고, 내가 나이 들어서 이 정말 얻고 싶었던 아들을 얻었구나 하면서 사랑한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더 사랑함으로 그냥 사랑한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함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늘 누구 곁에 있어요? 아버지 야곱의 곁에만 있는 거예요. 형들은 밖에서 일을 해도 요셉은 늘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요셉을 위하여서 아버지는 무엇을 만들어줬어요? 채색 옷을 입혀주셨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셉은요 특별한 채색 옷을 입게 되었던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편애하고 있다라는 사실이 눈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채색 옷이라는 것은 단순한 옷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에서의 채색 옷은 일반적으로 고급스럽고 특별한 옷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채색 옷이라는 것은 여러 색으로 염색된 천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당신의 염료가 매우 비쌌고 또한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채색 옷을 입는다는 것 그 자체는 불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 권위가 상징되어져 있는 것이죠.
또한 채색 옷은 신분이나 역할을 구별짓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 옷을 입고 있다는 자체가 야 너는 좀 구별된 사람이다. 형제들이 쭉 있는데 형제들은 나가서 양을 쳐야 되니까 그 복장을 입고 있는데 이 마지막 태어난 동생만 채색 옷을 입고 있어요. 거기에서 이미 아버지께서 야 얘는 구별된 애야라고 보여준 것이죠. 따라서 채색옷은 요셉이 아버지의 편애를 받고 있다는 외적 증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의 입장에서 어찌 시기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형들의 입장이었다면 그냥 괜찮지 막내인데 괜찮아 뭐 이렇게만 할 거예요. 왜냐하면 한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잖아요. 어머니가 다르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 왜 작은엄마 아들만 저렇게 사랑하는가 이제 그러면서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할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이 채색옷은 형들에게 시기를 넘어서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창세기 37장 4절 말씀을 함께 읽어봅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이렇습니다. 형들이 시기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버지가 편애했다.
두 번째 이유는요. 요셉의 태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 곁에 있는 것만 봐도 눈꼴 사나운 한국에 설상가상 이 요셉이 아버지 곁에서 형들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 고자질 고자질
형들이 이러한 잘못을 하더이다. 오늘 첫째 형을 제가 봤는데요.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큰 형님이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다음 날은 둘째 형님이요. 이렇게 이렇게 했습니다.
하면서 아버지에게 이 형들의 잘못을 구했다는 것이죠. 물론 이 요셉의 고자질은 악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본래 정직하고 악에 타협하지 않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던 좀 의로운 자였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한 성품은 이후에 고난 가운데에서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유혹할 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범죄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뿌리치고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죠. 그냥 그때 단순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는 삶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했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았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니 아버지께 고한 것은 실제로 형들이 잘못한 것이었고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잘못된 것들이 고쳐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선의로 했다 할지라도 형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달갑게 여겨지지가 않는 거예요. 분명히 형들의 입장에서 잘못했어요. 그런데 요셉 니가 구하는 게 더 마음에 안 든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리도 관계 속에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뭘 할 때 좋게 보여집니까? 관계가 좋으면 뭘 해도 좋게 보여져요. 사실은 근데 관계가 약간 틀어지고 서운한 마음이 있으면 뭐 하나 하는데 눈이 시선이 글로 가죠. 굉장한 강력한 눈빛을 발사하면서 그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 안 그래도 아버지 곁에서 채색 옷을 입고 저렇게 아버지 편해 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 그래도 마음이 기분이 안 좋은데 감히 형님들의 잘못을 고해 그러면서 막 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시기의 마음은 점점 커져가는 것이죠.
요셉의 이러한 태도는 형들과 갈등을 증폭시켰고 결국 그들의 마음 가운데 미움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죠.
형제들이 시기하게 된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꿈 이야기 꿈 이야기 요셉이 꾼 꿈은 사실 굉장히 특별한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통해서 요셉을 특별하게 생각하시고 계획하신 비전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이죠.
형님들 내 꿈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 곡식단이 벌떡 일어났는데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 절하더이다.
여러분 기가 찰 노릇이죠 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형들의 입장에서는 기분 안 나쁘겠습니까? 안 그래도 아버지 옆에서 맨날 우리의 잘못을 고하고 안 그래도 성질 나 있는데 어디 감히 와서 이야기한다는 게 꿈을 꿨습니다. 하면서 우리의 단들이 니네 단에 저래 제가 생각해도 기분이 상당히 나쁠 것 같아요. 한 번 그랬으면 괜찮겠죠. 근데 몇 주 후에 또 형들에게 막 다가와서 이야기해서 형님들 형님들 내 꿈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 이야기할 때 이미 마음이 상했을 거예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그런데 그때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왕별이 나에게 전하더이다. 이렇게 된 거 아니야
형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진짜 거의 뭐 또라이 이지를 발휘하네 이런 마음으로 요셉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꿈을 들은 형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죠. 그래서 창세기 37장 8절은 이렇게 기록해 주고 있어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미워하는 감정이 어떻게 됐어요? 증폭됐죠 처음에는 시기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시기가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미워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고 증폭되어져 가는 그의 삶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은요. 아버지의 편애를 받았습니다. 형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얄미웠습니다. 그리고 꿈 이야기로 인해서 형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던 것이죠. 급기야 형제들은 모여서 생각합니다.
저 녀석을 죽여야겠다.
시기의 마음이 죽이겠다는 마음의 결심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물론 유다의 제안으로 죽음을 면하게 되었지만, 결국 요셉은 이스마엘 상인에 의해서 은이 집에 팔려서 노예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간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시기라는 것은 매우 무서운 영적 질병이다. 따라 합시다. 시기는 영적 질병이다. 여러분 죄인 된 인간의 첫 모습이 시기의 모습이었다라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발견하죠. 그러니까 그 시기의 뿌리가 굉장히 깊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류의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 사건의 발단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 아벨은 그의 재물을 받으실 수 있도록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라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가인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기 시작한 게 무엇입니까?
시기예요. 그래서 그 시기적 마음이 어떻게 됐어요?
들판에서 돌을 던지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죠. 이처럼 시기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울 왕과 다윗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다윗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닙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습니까? 시기 때문이예요.
제가 이렇게 성경을 보면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이 대목만 성경에서 빠졌다면 이 사건만 없었다면 사울이 다윗을 저렇게 죽이겠다고 쫓아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대목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여러분 왕이었던 사울이 들을 때 기가 찰 노릇이죠
지금 이 인간들이 무슨 얘
기를 하는 거야?
그래도 사람들이 좀 사울 왕이 듣기 기분 좋게 물론 다윗이 큰 일을 했죠. 그죠 그러나 그 발언들이 그리고 그러한 모습의 형국들이 결국에는 사울의 마음의 시기심이 불타오르게 결국 다윗을 죽이겠노라고 쫓아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죽였던 것 역시 무엇 때문입니까?
시기 때문이 그렇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2장 25절 26절에서는 교회를 몸으로 비유해 줍니다.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여러 지체가 서로 돌봐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해 그래서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지체가 서로 다투면 안 된다. 서로 돌봐줘야 된다. 세워줘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한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내에서도 때로는 시기로 인해서 분열이 생기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시기의 뿌리를 제거해야 된다.
왜요? 우리 인생의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시기하는 마음들이 다 있어요. 이게 우리의 죄성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발동하지 않도록 이것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여러분 이 시기는 누구에게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죄악 중에 죄악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죄악된 이 시기를 제거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제거하느냐는 거죠. 제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습니까? 저에게 스스로 외칩니다.
야 시기하지 말자 시기하지 말자 시기하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막 되는 이 시기가 안 됩니까?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시기를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그 앞에 딱 서면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게 우리의 연약함 아니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시기를 제거할 수 있는 특효약이 하나 있습니다. 매우 원론적인 건데 사실 그거밖에 답이 없어요. 그건 무엇입니까? 시기하는 대상을 더 사랑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내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그 사람을 사랑해 주는 겁니다. 그냥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면 잘한다고 격려해주고 조금 못했어도 그래도 잘합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한 것이지 물론 쉽지 않아요.
어떻게 우리가 말씀대로 전부 다 사랑하면서 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단번에 그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오늘도 해보고 내일도 이렇게 해보고 내 마음의 시기가 떠올라오면 하나님 나에게 능력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또 사랑해 보고 이렇게 사랑해 보고 저렇게 사랑해 보고 이러한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어느 순간에 도달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가 흘러가야 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신앙인이 살아야 될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 잘하면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조금 못해도 칭찬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우리 신은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제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 우리 주님의 삶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닮으라 하신 것이 있잖아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온유와 겸손 예수님의 겸손 우리가 담겠습니다. 예수님의 온유 우리가 담겠습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만 주님이 가셨으니 나도 한번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온유한 삶, 겸손한 삶을 살겠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의 성품이 점점 나의 인격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찬양 가운데 고백하잖아요.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기 이게 실제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요셉은 인생 가운데 형제들의 시기로 인해서 고난으로 시작됐다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할 건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요셉에게 고난만 주셨습니까? 그렇지 않죠 여러분 구절의 핵심은 뒷부분에 있어요. 뒤에 보시면 고난 가운데 있던 요셉에게 누가 함께하셨다 누가 함께 하셨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
여러분 한 문장에 두 가지 이야기를 해요. 고난이 함께했다. 하나님이 함께했다. 뭘 강조하고 싶어서 고난도 함께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씀을 펼쳐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가는 인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제 형제들의 시기로 고난이 함께했지만 고난도 함께 했지만 우리 하나님도 함께하셨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에 표현으로서 나타난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형통 따라합시다. 형통 요셉의 삶을 형통하다고 이야기하죠.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팔려갔잖아요. 그래서 보니발 장군 집배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삶을 형통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떤 말을 주시냐 하면 요셉의 주인이었던 보디발의 입술을 통해서 이 친구 하나님과 함께하네 공통하네라는 고백을 하게 했다는 것이죠.
창세기 39장 3절인데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러분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형통함은 고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형통함 하면 고난이 없는 것 그것을 떠올리기가 쉽겠죠. 그러나 여러분 형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가운데는 고난이 있었다는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요셉이 그 종으로 살면서 얼마나 신실하게 살려고 했었어요. 그가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계속해서 유혹하고 둘이 남았을 때 함께하자고 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듣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지켜보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슬러서 뿌리치고 그러고 나갔잖아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려고 애썼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좀 책임져주시고 좋은 일 있게 하시고 이제 노예가 아니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셔야 더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잖아요. 이거는 노예도 아니고 이제는 감옥 옥살이를 하게 되어버린 것이죠.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종으로 살았을 때 주인이 했던 말을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간수장이 똑같이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한번 보실까요? 창세기 39장 23절입니다. 같이 읽어봅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할렐루야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 요셉의 삶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채색 옷을 입었을 때에도, 노예로 팔려가서 노예의 옷을 입었을 때에도, 종으로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감옥살이 죄수복을 입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요셉과 함께하셨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니 요셉의 형통함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세속적 성공이나 물질의 풍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형통함의 핵심은 환경과 무관하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함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과 동행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저와 여러분들이 이 형통함의 길을 걸어가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고백하잖아요. 시편 1편 3절입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누가요? 그가 여기서 그는 누굽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그 자가 시냇가에 심긴 자인데, 이 시냇가에 심긴 자는 언제나 어디서나 형통하더라. 모든 일이 다 형통하더라. 쉽게 말해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면서 인생 앞에 놓여진 문제를 가지고 내가 헤쳐나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고 하나님이 어떤 것이 옳은 것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 길로 가겠습니다. 또 앞에 찾아오는 내 앞의 산을 보고 하나님 어떻게 하면 이 산이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힘들어서 거슬러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없애주십시오. 내 앞에 있는 사람 평지가 되어라. 할렐루야
내 앞에 있는 홍해는 하나님 어떻게 압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지팡이를 내 그러면 여길 것이다.
여러분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에베베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와 주셨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 주님과 함께함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다. 여러분 이거 놓치지 않는 우리 존경하신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이 나의 삶을 주장할 때 여러분 우리는 형통한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거예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인도해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야 너는 안 되겠다. 그래서 세운 인물이 누굽니까? 여수아지 여호수아에게 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에게 형통을 이야기하는데 야 여호수아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서 나의 종 모세가 내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아라. 그리하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씀이 율법책을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라.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라. 주야로 이것을 묵상해라.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내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오. 내가 형통하리로다. 할렐루야
우리의 인생의 여정 앞에 왜 흥해가 없겠어요? 왜 요단강이 없겠어요? 요단강 건너야 될 것 아니겠어요? 거기서 낙심하고 있겠습니까? 아니요. 우리 주님이 어깨 들고 제사장 앞으로 들어가라. 순종했을 때 물이 끊어집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돌아라. 순종했을 때 여리고가 끊어져버렸죠. 이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 아닙니까?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여서 우리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명기 29장 9절에는 아주 간결하게 이렇게 기록해 줍니다. 큰소리로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의 조건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형통한 삶을 위해서 말씀 앞에 서 있는 자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시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 시편 23편 4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더라 할지라도 왜 없겠습니까? 그 상황 가운데 여러분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요? 거기 뒤에 뭐라고 돼 있어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할렐루야 또 뭐라고 합니까?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아니하시 분명히 어둠 가운데 있는데 갈 길을 모르고 헤매고 있는데 주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길을 인도하시면서 야 일로 가야 터널의 끝이 있단다. 이쪽으로도 함께 가지 않으려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거기에 우리가 순종하고 가면 그 자리에서 맴맴돌면서 헤맬 이유가 없는 거죠.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니까 그 자리에서 맴맴돌면서 맨날 어둠 어둠 어둠 어둠 이러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면 야 가다 보니 가다 보니 저 안에 터널의 끝이 도달했구나. 할렐루야 이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인 것이죠.
세 번째는요. 하나님과 함께하심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두 가지를 이야기했죠. 첫 번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앞서서 우선 쉬기 때문에 형제들이시기 때문에 고난이 있었다. 요셉. 그러나 고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 번째 함께 하셨다.
그러면 이 고난과 함께하심에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계획 약속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 요셉은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 사도행전 7장 10절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심에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우셨느니라.
여기 하나님께서 일하신 세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어요. 보이십니까? 동사가 건져내사. 첫 번째 동사 은총과 지혜를 주심에 세 번째 통치자로 세우셨다. 하나님이 세 가지 일을 하셨던 거예요. 모든 환란에서 건졌습니다. 건져냈다는 것은 무엇인가 구원의 은혜라는 것이죠. 즉 어려움 가운데 고통 가운데 있었던 이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내셨다.
왜요? 하나님이 이 요셉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구원해내신 거죠. 하나님께서 건져내시면 야 단순히 어려움만 피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이 어려움 속에서 건져내서 하실 일들을 해나가시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 가운데 건져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편 34편 1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고난이 많대요. 의인은 저는 이 말씀이 좀 서운하긴 해요. 왜 우리을 고난을 많이 주실까 좀 덜 주시면 좋은데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 10개의 고난이 있는데 거기에서 9개만 구원하면 얼마나 마음 아파요 근데 10개 다 구원했습니다. 이거 다 건져주신다고 거기에 감사함이 있는 것이지 그래서 하나님은 건지셨다.
두 번째는 뭐였습니까?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셨다. 그래서 꿈을 풀어낼 수 있는 그 지혜를 주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요셉에게 입했던 은총과 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한 것입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 하나님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형편 속에서 어떻게 이겨나갈지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구해야 하는 것이죠.
세 번째 통치자로 세우셨다라는 거 통치자로 여러분 그러면 통치자로 세운 목적은 무엇입니까? 통치자가 되었으니 끝 이게 아니라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었던 것이죠.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이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이었던 그래서 본문 오늘 11절부터 16절의 내용을 보시면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다 지금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요셉이 총리가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가족들이 구원을 받았고요. 그렇죠 기근 속에서 애굽으로 오는 그러한 과정에서 다시 그들을 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놀라운 축복의 과정들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이 구원의 역사 요셉 너만을 위한 것에 너가 세워짐으로 인해서 그 이후에 나타날 생명의 능력들이 있다. 너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너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내가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망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스데반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인간의 계획과 이해를 초월하여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고난의 삶을 살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잘 정리하셔야 돼요. 지금부터는 요셉이 고난받게 된 원인 물론 형제들의 시기로 인해서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고 결국 그를 높은 곳에 세우신 것이죠.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요셉은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게 있어요. 그리고 고백합니다. 창세기 50장 20절인데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형들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걱정하기 시작해요. 어떡하지 일 났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그래도 이렇게 대우받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저 요셉이 우리에게 해코지할 텐데 우리가 한 거 다 기억하고 있을 텐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 걱정 걱정에 막 이렇게 있는데 요셉이 그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리고 하는 이야기 당신들이 나를 해야 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무슨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들을 잘 돌보고 내가 형들을 잘 돕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고 고백한 것이지 이처럼 하나님은 요셉을 세우셔서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그러니 여러분 한 사람의 고난은 때로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 되는 거 하나의 씨앗이 죽어서 열매를 맺듯이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24절은 이런 말씀을 주시잖아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하나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막 마음이 그렇잖아요. 하나님 꼭 굳이 희생을 저에게 요구하십니까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그 희생에는 정말 중요한 가치가 담겨져 있다는 거 그건 무엇이냐면 나의 희생을 통해서 한 영원히 살아나는 축복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희생을 너무 장황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새벽에 우리 교사 주관으로 새벽 기도회를 했습니다. 여러분 교사가 되려면 일부 예배를 우리는 지금 드려야 돼요. 이제 내년에는 또 바뀌겠지만 먼저 나와야 되잖아요. 먼저 나오는 수고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다 쏟아내야 되는 열정. 여러분 이거 보통 희생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희생이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내가 교사로 섬긴다는 그 자체가 놀라운 축복의 역사 나의 희생과 나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놀라운 축복의 과정이 된다는 것이죠.
찬양팀으로 섬기기 위해서 찬양을 해야 되고 악기를 다뤄야 되고, 그래서 앞에서 누군가부터 먼저 나와서 준비해야 되는 수고가 따르는 것이죠. 그러나 그 수고가 우리 신흥교회 예배를 생명 있는 예배로 살리게 한다. 할렐루야. 그러니 그 희생이 얼마나 값진 거예요 뿐만 아닙니다. 중보 기도로 섬기는 것 여러분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자리를 잘 짜야 돼요. 열심히 그 자리에 나와서 기도해야 돼요.
간절히 기도한다는 게 무엇이에요? 간이 저리도록 기도한다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 간절히 기도해 보셨어요? 숨이 턱턱 막힙니다. 떼굴떼굴 구릅니다. 여기 막 막혀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애씀과 노력이 무엇을 가져다줍니까?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에게 생명을 넣어주듯이 하나님의 역사가 그 기도를 통해서 생명 살리는 일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붕어빵 전도를 하려면 금요일날 중요 시간 2시부터 4시에 나와서 물론 일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일을 하셔야죠. 그러나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나와서 그것이 여러분 수고가 따르지만 하나님의 때 그 만난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내십니다. 놀라운 축복의 과정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나의 작은 희생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고 교회가 세워짐을 통해서 영혼들이 살아가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니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하는 모든 것은 생명 살리는 것임을 깨달으셔서 못하겠습니다. 하지 마시고 감사함으로 하겠습니다. 그게 혹 내 시간을 들여야 되고 내 물질을 들여야 되고 내 마음을 써야 되는 거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하겠습니다. 내가 기쁨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하겠습니다.
왜요? 나를 구원해 주셨어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요? 그냥 감옥에 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생의 총리의 삶으로 높이시니. 할렐루야 이런 은혜가 우리 신앙 공동체 가운데 있어서 고백되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애쓰고 노력했더니 하나님 이런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영혼만 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더하셔서 나의 삶도 풍족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게 재미있는 신앙생활 아니겠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열심히 하셨는데 나의 삶은 더 힘들고 더 지치고 힘들어서 더 못하겠습니다. 무슨 재미가 있으시다는 생각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고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그래서 열매 맺는 요셉의 삶이 고난으로 시작했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셨고 함께하셨고 함께하셔서 일으켜 세우셔서 총리가 되게 하시고 영혼들을 구원케 하셨고,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과정 가운데 왜 어려움이 없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돌파하게 하시고, 그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무너지게 하시고, 그때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일으켜 세우셔서 하나님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을 낮은 곳에서 높이 세우신 놀라운 축복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부어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