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컷】"日 각성하라"..미국 노신사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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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타임스]
지난해 8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강훈(영어명 스콧 강) 군의 의문사 사건과 관련, 진상규명대책위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레이먼드 워즈니악(64)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광복절인 15일 미국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경찰의 재수사 촉구 항의
집회에서도 선봉에 섰다.
이날 정오부터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거리집회를 지휘하면서 시위 방식을 놓고 경찰과 직접 협상을
벌이는가 하면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면서 `대변인'의 역할도 맡았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자신이 가르치던 강군이 일본에서 의문사를 했다는 비보가 전해지면서다.
일본 경찰이 타살로 보이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단순 사고사로 조기 종결 처리하자 분노를 느끼고
진상 규명 노력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그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스콧처럼 일본에서 피살했으나 인종차별 때문에 사고사로 처리된 사건이
여러 건 있다"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건 현장의 CCTV 화면을 본다면 `명백한 타살'이라며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해 4천500여명의 서명을 받았고 한국인의 인권을 경시하는
일본의 태도를 FOX 뉴스와 CNN 등 유력 언론에 고발했다.
그는 한국을 고향으로 여길 만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미 육군에 징집됐으나 휴전선에 배치된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은 잘못된 전쟁이어서 다른 곳으로 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훈련소 동기 159명 가운데
나만 한국에 배치됐다"며 "그 이후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비무장지대(DMZ) 근무 후 용산 캠프에서 `관심사병' 상담을 하는 동안 한국맹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봉사의 기쁨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1974년 군 제대 후 2년 전 조지아주 디캡카운티 교도관 근무를 끝으로 퇴직할 때까지 상담사를 하는 동안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한인들을 보살폈다.
한국 아동 2명을 입양해 훌륭하게 키워낸 그는 15년 전부터 염광장로교회를 다니면서 형편이 어려운
이민 1세대 한인 복지를 위해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교회 박해명 장로는 "워즈니악 씨는 집 없는 한인과 정신질환자들에게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건강보험과
소송 대행 같은 교회가 못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보물"이라고 말했다.
워즈니악 씨는 "이민 2세대는 미국에서 자라나 언제나 한국을 그리워하는 부모 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한인 1,2세대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강군 사망 1주기인 오는 30일 사비를 털어 일본으로 건너가 재수사 관철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나의 제자 스콧은 혼수상태에서 숨을 거두기 전 저 멀리 미국에 있는 나와 병상 옆 부모의 기도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며 "정의와 화해를 바라는 그의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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