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형 국가 교육과정 및 교육제도는 지난 100년간 이어왔다. 이 제도를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대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세상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표준형 학교교육은 학생의 개인적 특성과 흥미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교육에 쏟아지는 수많은 비난들, 붕어빵 찍어내기 교육, 일방적 주입식 교육,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 등의 비난들은 대부분 표준화된 학교 교육제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특성이다. 지난 50년의 학교 교육의 영광도, 그 엄청난 비난도 결국은 동전이 양면이었다.
우리나라 현재 표준화된 국민 교육제도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우민화 정책을 통해 들어온 프로이센의 표준화된 근대적 국민 교육제도다. 1920~1930년대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구한 근대적 계몽주의 정신, 그리고 미국 군정 기와 한국전쟁 이후에 한미 교육 사절단의 교육제도 컨설팅의 결과 들여온 미국의 공교육 제도가 결합되어 틀을 잡은 화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교육제도를 생각해 볼 차례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풍족한 물질문명 속에서 개인주의적 생활태도와 사고방식을 키워온 청소년 세대, 이제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움과 다양함을 창조해야 할 시대다. 이들을 위해 어떤 교육 패더다 임의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까?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은 누구나 똑같은 교육내용을 같은 속도로 배울 것을 요구한다. 땅끝마을 분교에서부터 강남 학교까지 전국 50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12년간 동일한 내용으로 동일한 속도로 배운 것이 가능한가. 표준화의 문제점은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한 차별적 교육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개인이 지닌 다양한 소질과 재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표준화된 국가교육 과정은 사람들의 다양성과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도 다양성을 자랑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가드너는 인간의 지능을 9개 분야로 나눴다. 예술적 지능, 시각 공간지능, 음성 언어지능, 논리 수학지능, 신체 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자기이해 지능, 생태자연 지능, 존재 지능이다.
표준화된 국가교육은 논리 수학지능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다. 다른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은 평균을 따라오지 못한 아이로 인식되어 심하면 문제아가 된다. 이런 교육은 특정한 소질과 재능을 지닌 아이들만 우대하고 다른 분야의 지능을 타고난 아이들은 차별하는 교육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열등감과 우월감을 불러오는 교육이다.
[282]12.05<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맘에 드림) 1~368P/368P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환경은 빈곤의 시대였다. 북한보다 더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너 나 할 것 없이 생존에 힘든 삶이었다. 초등학교 졸업만 해도 감지덕지다. 6학년까지 다니지 못하고 도중에 중퇴한 친구들도 많다. 농사일을 돌봐야 하거나 객지로 돈 벌기 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농사일을 돌보거나 산에 가서 땔감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가난을 벗어난 방법이 오직 공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농촌의 환경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면 일을 해야 하고 궁리 끝에 학교에 남아서 해 질 녘까지 공부를 했다. 도움 없이 혼자 한 공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었다. 농업학교의 수업은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터에 나가 실습하는 것이 많다. 마전리 뽕밭 가꾸기는 완전히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방학을 이용하여 도시로 나와 영수학원을 이용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학원에 청소해주고 무료로 강의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큰 복을 타고난 것이라 생각했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갈 곳이 없으니 그곳에서 잠자고 생활한 것은 영수를 공부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학원의 힘이다. 당시 규영이와 영표 셋이서 농협 시험에 응시했다. 나 혼자 합격했다는 소식이 무척 기뻤다. 이제는 월급을 받아 조금이나마 가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무척이나 좋은 소식이라 하여 후배들에게 자랑했다. 하긴 정식 인가된 농업학교 1회 졸업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283]12.06<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맘에 드림) 1~368P/36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