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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3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한 번째 주일예배
성경: 엡4:17-24절(신314)
제목: 거짓과 절대 진리(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믿음은 (미래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현재와 과거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정의가 아니라 믿음이 작용하는 특징입니다. 우리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가 하셨던 일이나 하시는 일이나 앞으로 하실 일을 확실한 증거로 알고 반응(고백, 주장, 행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하셨던 것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오늘 본문(하나님의 말씀)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행하사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이 거짓이 아니라 확실한 진리(실상, 증거)임을 알며(생각하며), 믿음으로 반응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별됩니다. 첫째는 본문을 소개하는 ‘그러므로’로 시작한 17a절이며, 둘째는 이방인(옛사람)을 설명하는 17b-19절이며, 셋째는 이방인과 대조적인 우리 그리스도인(새사람)을 증거하는 20-24절입니다.
1. 오늘 본문의 소개입니다(17a).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여기서 ‘이것’은 17b-24절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것(17b-24)’을 접속사 ‘그러므로’를 통해서 앞에 있는 말씀에 근거하여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또한 ‘주 안에서 증언한다’라고 하여 ‘이것(17-24)’을 주님의 말씀으로 아주 중요한 진리(믿음의 증거)로 여기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17b-24)’이 ‘그러므로’를 통하여 근거하는 앞의 말씀은 넓게는 4:1절의 ‘그러므로’와 같이 ‘1-3장’이며, 좁게는 ‘4:1-16절’, 특히 ‘4:14-16절’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진리)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것(17b-24)은 4:14-16절에 근거하여 권면하며, 그것의 거짓(14)과 진리(15), 그리고 한 새사람(2:15)인 그리스도의 몸(16)의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이방인(옛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17b-19).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바울은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같이 행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7b). 이방인의 행함은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함’(19b)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의 행함을 설명하기 전에 그들의 생각(마음)의 내적 성향을 먼저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의 행함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이방인의 행함의 원인(이유)은 무엇일까요? 첫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허망하기 때문입니다(17). 여기서 ‘마음(누스)’은 생각(사고)이며, ‘허망한 것’은 ‘목적이 없이 허무한 것, 즉 무익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허망한 생각은 ‘유혹의 욕심’(22) 때문입니다. 여기서 ‘유혹(아파테)’은 진리와 반대되는 ‘모든 속임’(살후2:10), ‘헛된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골2:8), 에베소서에서는 ‘이 세상의 풍조’(2:2),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4:14), ‘마귀의 간계’(6:11)를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가 아닌 이런 거짓으로 그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허망한 욕심으로 행하게 하는 것(19)입니다.
둘째 이유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져 왔기 때문입니다(18a). 여기서 ‘총명(디아노이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해력(빛)’을 의미합니다. 딤후2:7절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셋째 이유는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18)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었기에(2:1) 그들의 생각은 허망하며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그들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들 영적 죽음의 원인을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은 ‘진리에 대한 그들의 무지함과 그들 마음의 굳어진 반응’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 무지함이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롬1:18)를 거절한 ‘그들의 책임’을 분명히 합니다.
넷째 이유는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왔기’(19a)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양심이 도덕적으로 마비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7b).
이제, ‘이방인의 행함’입니다(19b).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여기서 바울은 이방인의 행위의 악을 세 개의 술어(방탕, 모든 더러운 것, 욕심)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방탕’은 다른 사람의 권리나 감정, 그리고 도덕에 상관없이 수치나 두려움 없이 행하는 추한 행위를 의미하며, ‘욕심’은 더 많이 가지기를 탐내는 욕구인 탐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는 그들이 자신을 방탕에 적극적으로 팔아넘겼다는 것이며,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는 모든 죄악을 욕심으로 온 힘을 다하여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들의 이런 행함은 진리가 아닌 거짓을 받아들인(믿은) 결과입니다.
3. 이방인과 대조적인 우리 그리스도인(새사람)에 대한 증거입니다(20-24).
”오직(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여기서도 바울은 이방인에 대한 설명(17b-19)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에 앞서 우리의 생각의 변화를 위하여 그리스도(진리)를 배웠다는 사실을 먼저 설명합니다(20-21). 특히 진리와 성령으로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에 대한 언급(23)이 ‘의와 거룩함’ 덕목들의 서술(24)보다 앞에 나오며, 특히 ‘진리의 의와 거룩함(진리에서 나오는 의와 거룩함)’(24)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먼저 20절입니다. “오직(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그같이’는 이방인에 대한 설명(17b-19)을 가리킵니다.
‘이것(20)’은 너희 중에 그리스도를 잘못 배워서 이방인 같이 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17b)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운 것’(20)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21-24).
21a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여기서 ‘만일(If)’이라는 조건절은 그들(너희)이 그를 듣고 또한 그 안에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의심하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참으로 그렇게 했다면(조건절), 그들이 그렇게 될(할) 수밖에 없다(21b-24), 이것이 진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첫째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웠다(20)는 것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들었다’(21a)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과거에 처음으로 ‘그에 대하여 들었다, 즉 그에 대한 선포(복음)를 들었다’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중생)을 의미합니다. 1:13절입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둘째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웠다(20)는 것은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21b)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안에서’는 그들이 ‘그를 참으로 들었던’(21a) 결과인 중생(거듭남)으로 그들이 그와 하나(연합) 되었다(1:23, 4:15b-16)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가르침’은 ‘그에 대한 가르침’인데, 이것은 ‘그를 참으로 들었던’ 그들이 주 안에서 ‘그에 대한 가르침(세례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웠다(20), 즉 그를 참으로 들었고 그 안에서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21a)는 것의 결과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21b)라는 부사절과 세 개의 부정사구(22-24)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먼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21b)입니다. 이것은 예수 안에는 마귀나 사람의 속임수나 세상의 풍조와 같은 거짓이 전혀 없고 오직 진리만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요1:1, 14), 진리이시기(요14:6)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으로 체현된 하나님의 말씀(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를 들었고 주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던’(21a) 우리 안에도 거짓이 아니라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와 하나 된 그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1:23, 4:15b-16).
그러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있을 그 진리는 무엇일까요?
바울은 이것을 세 개의 부정사구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우리말 성경에는 부정사구들을 명령형으로 번역하였지만(단순 명령으로도 해석 가능함), 헬라어에서 부정사구는 주동사의 목적이나 결과 또는 이유와 원인으로 주로 사용합니다. 여기서 주동사는 조건절(21)에 있는 ‘듣고(들었고)’와 ‘받았다’라는 부정과거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17)는 권면의 문맥을 보면, 우리말 성경같이 이 부정사들을 단순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미 일어난 옛사람을 벗어 버렸고, 새사람을 입었던 사실을 계속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명령).
그러나 우리는 이 부정사들이 ‘그를 들었고 주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조건절(21a)의 결과인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우리 안에 있을 진리’에 대한 설명으로 보아, 주동사(들었고, 배웠다)의 결과(목적)의 부정사로 이해합니다.
첫째로 22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렸다(벗어 버리기 위하여).” 여기서 ‘옛사람’은 유혹(진리가 아닌 거짓)의 욕심을 따라, 또한 구습(옛날의 생활 방식)을 따라 썩어져 가고 있는 허망한 사람(이방인)을 가리킵니다(17).
그리고 ‘옛사람을 벗어 버렸다(벗어 버리도록)’라는 과거 부정사로서 그리스도를 들었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던(부정과거 주동사) 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결과(목적)를 증거 합니다. 골3:9절입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과거 분사).” 이것은 창조(율법) 언약적으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골 2:20)와 같은 의미입니다(롬6:2-8, 갈 2:20).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들었고, 그 안에서 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결과로 우리는 옛사람을 이미 벗어 버렸다, 즉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 언약적으로 영원히 죽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된 진리입니다. 이 증거(진리)를 알고 믿음으로 반응(주장)하시기 바립니다. 이것에 대한 거짓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23절입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고 있다(되기 위하여).” 이것은 현재 수동 부정사로서 조건절(21a)의 부정과거 주동사의 결과(목적)로 현재 우리에게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너희의 심령’은 우리의 마음(누스, 생각)과 우리의 영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속사람’에 대한 말씀(3:16)과 일맥상통합니다. 롬 12: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영이 계속 새롭게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세대의 거짓(속임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운 복음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그것을 증거, 실행하시는 성령, 즉,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서입니다(딛으세요:5). 성도 여러분,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된 진리입니다. 이 증거(진리)를 알고 믿음으로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기 원합니다.
셋째로 24절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었다(입기 위하여).” ‘새사람을 입으라’도 과거 부정사로서 조건절(21a)의 부정과거 주동사 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결과(목적)를 가리킵니다. 골3:10절입니다. “새사람을 입었으니(부정과거 분사),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골3:1)과 같은 의미입니다(롬6:5, 13:14, 갈3:27). 엡2:5~6절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바울은 ‘새사람’을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재창조)을 받은 자’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는 ‘진리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의와 거룩함’은 ‘그 진리에서 나오는 성품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하나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요,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입니다. 엡2: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재창조된 그의 걸작품(포이에바), 새사람입니다(2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재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성도 여러분, ‘이것(21b-24)’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운(20), 즉 그를 들었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던(21) 결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말씀)입니다. ‘이것(21b-24)’이 우리 안에서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에 대한 세상의 거짓에 속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증거)을 진리로 알고 믿음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방인이나 우리의 행함에 앞서 이방인이나 우리의 생각(사고)의 성향을 먼저 설명합니다. 이는 행함은 생각(누스)의 결과, 즉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마음)을 지배하는 ‘거짓과 진리’ 즉 거짓 믿음과 참믿음에 따라 다르게 행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은 항상 먼저 진리를 말씀하시고 그 말씀으로 창조와 구원의 재창조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먼저 언약의 말씀이 있고, 언제나 그 언약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생각)에 거짓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증거)을 진리로 받아서 참믿음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운 결과로 우리 안에 있는 실상(진리), 즉 우리 자신의 정체성(22-24)에 대한 오늘 본문(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증거)로 알고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로 충만한 존재”(1:23), 복음의 진리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재창조된 새사람입니다(24). 이것이 우리에 대한 이해(생각)요, 진리요, 믿음이기에, 새사람의 본능(생명)으로 행하여 자연스럽게 의와 거룩함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기 바랍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기를 우리 안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9, 3:16, 20). 요8: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믿을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것이 주 안에 있는 우리에게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407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