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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 1-18절.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책벌하려고 함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초대 교회 교인들 특별히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교제를 하고 세례를 주었다는 이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1절.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the apostles and the brethren who were throughout Judea heard that the Gentiles also had received the word of God.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들었더니
Ἤκουσαν δὲ οἱ ἀπόστολοι καὶ οἱ ἀδελφοὶ οἱ ὄντες κατὰ τὴν Ἰουδαίαν
heard now the apostles and the brothers the being in the Judea
직역하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들었다’(Ἤκο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heard) 과거에 들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있는’(ὄ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유대에서 살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이란 원래 유대인들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행 2:29, 7:2), 여기서는 예수님 안에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6:3, 10:23).
이처럼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결정으로만 일들을 처리하지 않고, 전체 교인들의 동의하에서 업무를 처리해갔습니다.
그래서 전체 교회를 ‘온 무리’(행 6:5)라고 했고, ‘사도들과 형제들’(행 11:1)이라고 했고, ‘교회’(행 11:22)라고 했고,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행 15:4, 22)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ὅτι καὶ τὰ ἔθνη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that also the Gentiles received the word of the God
‘받았다’(ἐδέξαντο)는 부정과거로서(received) 과거에 받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2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Peter came up to Jerusalem, those who were circumcised took issue with him,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Ὅτε δὲ ἀνέβη Πέτρος εἰς Ἱερουσαλήμ,
when also went up Peter to Jerusalem,
‘올라갔을’(ἀνέβη)는 부정과거로서(went up) 과거에 올라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διεκρίνοντο πρὸς αὐτὸν οἱ ἐκ περιτομῆς
contending with him those of circumcision
직역하면 ‘할례받은 자들이 그와 다투어’란 뜻입니다.
‘비난하여’(διεκρίν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contending) 할례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베드로를 계속 비난하고 다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할례자’란 예수 믿는 것뿐만 아니라 할례를 받아야 참된 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빌 3:3, 골 4:11, 딛 1:10)
그런데 이 할례자들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하나의 당파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후에는 교회 내에서 하나의 당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즉 초기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형제들은 일반적으로 할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당파로 형성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3절.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aying, "You went to uncircumcised men and ate with them."
이르되
λέγοντες ὅτι
saying that
‘이르되’(λ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입니다(saying).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Εἰσῆλθες πρὸς ἄνδρας ἀκροβυστίαν ἔχοντας
you went to men uncircumcision having
직역하면 ‘무할례를 가진 자들에게 네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들어가’(Εἰσῆλθες)는 부정과거로서(you went) 용감하게 들어간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진’(ἔχ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having) 할례받지 못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무할례자’란 유대인의 성결법(laws of clean)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먹고,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함께 먹었다 하니
καὶ συνέφαγες αὐτοῖς.
and you ate with them
직역하면 ‘네가 그들과 함께 먹었다’는 뜻입니다.
‘함께 먹었다’(συνέφαγες)는 부정과거로서(you ate with) 베드로가 용감하고 단호하게 이방인과 함께 먹은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성도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당부하기를 이방인을 모조리 죽이고 이방인과는 혼인도 하지 말고, 교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여러 이방여인들과 결혼하여 이 명령을 어기다가 나라가 분열되었고, 아합왕은 이방 여자 이세벨과 결혼했다가 결국 북이스라엘은 바알 우상숭배로 망했고, 남쪽 유다도 신앙생활을 잘했던 여호사밧 왕이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데리고 왔다가 결국 남쪽 유다도 우상숭배로 멸망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런 구약성경의 전통을 무시하고,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서 식사하고 교제하고 이방인에게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베드로를 책벌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 15절에 보면 성령의 음성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큰 보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불결한 짐승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베드로가 항변을 했을 때 들린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베드로가 10장 34-35절에서 그의 깨달은 바를 고백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5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아니한다.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다 받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드디어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 안에 갇혀있었고, 전통과 문화 속에 갇혀 있었던 베드로는 눈을 뜨고 마음의 문을 열고 이방인 신자도 유대인 신자와 똑같이 예수님 믿으면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 이런 과정을 통해서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록 겸손과 온유가 필요합니다.
교회 처음 나올 때는 다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교회에서 잔뼈가 굵으면 그 겸손하고 온유한 생각이 없어지는 경우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기 전에는 누구였습니까?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 사는 한 이방인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아브라함이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은혜를 잊고, 자기의 분수를 몰랐던 것입니다.
3. 두 번째,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가 누구이길래 하나님을 막겠느냐”고 했습니다. (17절)
4. 유대인들도 ① 구원을 선물로 받았고, ② 성령도 선물로 받았는데,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① 구원을 선물로 받았고, ② 성령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도 베드로처럼 자기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4절.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began speaking and proceeded to explain to them in orderly sequence, saying,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ἀρξάμενος δὲ Πέτρος, ἐξετίθετο αὐτοῖς καθεξῆς,
Having begun but Peter, he set [it] forth to them in order,
직역하면 ‘그러나 베드로가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차례로 진술했다’는 뜻입니다.
‘시작하면서’(ἀρξ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gun) 단호하게 말하기를 시작한 것을 가리킵니다.
‘진술했다’(ἐξετίθετο)는 미완료과거 중간태로서(set forth) 계속 진술하면서 설명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κτίθημι)은 ‘제시하다, 선언하다’(set forth, to declare)는 뜻이고, 중간태는 ‘설명하다, 해명하다’(expound, explain)는 뜻입니다.
(5절) 이르되
λέγων
saying
‘이르되’란 번역은 원문에는 4절에 되어 있는데, 한글 번역에는 5절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르되’(λέγων)는 현재분사입니다(saying).
1. 베드로는 ① 수사도의 권위를 내세워 맞서지 않았고, ② 할례파의 편협성에 대해서 훈계하지도 않았고, ③ 자신이 더 많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도 않았고, ④ 단지 자기가 겪었던 사실들을 설명하여 아직도 편협한 동료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모습은 노회나 총회나 당회에서 싸우기 쉬운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대단히 모범적인 자세입니다.
5절.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was in the city of Joppa praying; and in a trance I saw a vision, an object coming down like a great sheet lowered by four corners from the sky; and it came right down to me,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Ἐγὼ ἤμην ἐν πόλει Ἰόππῃ προσευχόμενος,
I I was being in city Joppa praying
직역하면 ‘바로 내가 욥바 시에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기도하고’(προσευχόμενος)는 현재분사이고(praying), ‘있었다’(ἤμη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계속 있었다는 뜻으로서, 두 동사를 합하면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는뜻입니다.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καὶ εἶδον ἐν ἐκστάσει ὅραμα,
and I saw in trance vision
‘보니’(εἶδον)는 부정과거로서(I saw) 과거에 황홀지경에서 환상을 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καταβαῖνον σκεῦός τι ὡς ὀθόνην μεγάλην
descending vessel certain like sheet great
직역하면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데’란 뜻입니다.
‘내려오는데’(καταβαῖνον)는 현재분사로서(descending)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τέσσαρσιν ἀρχαῖς καθιεμένην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by four corners being let down from the heaven
직역하면 ‘네 귀에 의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란 뜻입니다.
‘내려오는데’(καθιεμένην)는 현재분사로서(being let down) 계속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καὶ ἦλθεν ἄχρι ἐμοῦ·
and it came until me
직역하면 ‘그것이 내게로 왔다’는 뜻입니다.
‘내려왔다’(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그 보자기가 베드로에게로 내려온 과거의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6절.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I had fixed my gaze on it and was observing it I saw the four-footed animals of the earth and the wild beasts and the crawling creatures and the birds of the air.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εἰς ἣν ἀτενίσας, κατενόουν,
on it having looked intently, I was observing [it]
직역하면 ‘그것을 주목하면서, 내가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주목하면서’(ἀτεν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ooked intently) 눈을 고정시켜서 뚤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τενίζω)은 ‘눈을 고정하여 쳐다보다, 응시하다, 꾸준히 바라보다’(look fixedly, gaze, look steadily)는 뜻입니다.
‘보니’(κατενό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I was observing) 그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계속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κατανοέω)은 ‘바라보다, 인식하다, 주의 깊게 생각하다, 분별하다’(take note of, perceive, consider carefully, discern)는 뜻입니다.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καὶ εἶδον τὰ τετράποδα τῆς γῆς, καὶ τὰ θηρία, καὶ τὰ ἑρπετὰ, καὶ τὰ πετεινὰ τοῦ οὐρανοῦ.
and I saw the quadrupeds of the earth, and the wild beasts, and the creeping things, and the birds of the air
‘보이더라’(εἶδον)는 부정과거로서(I saw) ‘내가 분명히 보았다’는 뜻입니다.
7절.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also heard a voice saying to me, 'Get up, Peter; kill and eat.'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ἤκουσα δὲ καὶ φωνῆς λεγούσης μοι
I heard then also voice saying to me
직역하면 ‘그 때 또한 내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내가 들었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시는’(λεγούσης)은 현재분사이고(saying), ‘내가 들었다’(ἤκουσα)는 부정과거로서(I heard) 분명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Ἀναστάς, Πέτρε, θῦσον καὶ φάγε.
Having risen up, Peter, kill and eat
‘일어나’(Ἀναστά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단호하게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고, ‘잡아 먹으라’(θῦσον, φάγε)에서 두 동사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kill, eat) 단호하게 잡아서 먹으라는 뜻입니다.
8절.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 said, 'By no means, Lord, for nothing unholy or unclean has ever entered my mouth.'
내가 이르되
εἶπον δέ
I said but
직역하면 ‘그러나 내가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ἶπον)는 부정과거로서(I said)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Μηδαμῶς, Κύριε, ὅτι κοινὸν ἢ ἀκάθαρτον οὐδέποτε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ὸ στόμα μου.
in no way, Lord, for common or unclean nothing ever entered into the mouth of me
직역하면 ‘주님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속되거나 부정한 것은 결코 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란 뜻입니다.
‘들어가지’(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entered) 단연코 들어가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9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 voice from heaven answered a second time, 'What God has cleansed, no longer consider unholy.'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ἀπεκρίθη δὲ ἐκ δευτέρου φωνὴ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answered but for second voice from the heaven
직역하면 ‘그러나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가 대답했다’는 뜻입니다.
‘대답했다’(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로서(answered) 확실하게 대답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Ἃ ὁ Θεὸς ἐκαθάρισεν,
what the God cleansed,
‘깨끗케 하신’(ἐκαθάρισεν)은 부정과거로서(cleansed)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깨끗하게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σὺ μὴ κοίνου.
you not do call common
‘네가’(σὺ,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속되다고 하지 말라’(μὴ κοίνου)에서 동사(κοίνου)는 명령형입니다(not do call common).
10절.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is happened three times, and everything was drawn back up into the sky.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τοῦτο δὲ ἐγένετο ἐπὶ τρίς,
this now happened on three times
직역하면 ‘이것이 세 번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happened) 과거에 일어난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καὶ ἀνεσπάσθη πάλιν ἅπαντα εἰς τὸν οὐρανόν.
and was drawn up again all into the heaven
직역하면 ‘그리고 모든 것이 하늘로 다시 올려져갔다’는 뜻입니다.
‘올라가더라’(ἀνεσπά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drawn up) ‘올려져갔다’는 뜻입니다.
11절.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behold, at that moment three men appeared at the house in which we were staying, having been sent to me from Caesarea.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καὶ ἰδοὺ, ἐξαυτῆς τρεῖς ἄνδρες ἐπέστησαν ἐπὶ τὴν οἰκίαν, ἐν ᾗ ἦμεν,
and behold, immediately three men stood at the house, in which I was being
직역하면 ‘보라, 곧 세 사람이 내가 있는 그 집 앞에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중요한 말을 하려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내가 있는’(ἦμεν)은 미완료과거로서(I was being) ‘내가 계속 기거하고 있던’이란 뜻입니다.
‘서 있으니’(ἐπέστ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stood) 과거에 서 있는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ἀπεσταλμένοι ἀπὸ Καισαρίας πρός με.
having been sent from Caesarea to me
직역하면 ‘가리사랴에서 내게로 보내진’ (세 사람)이란 뜻입니다.
‘보낸’(ἀπεσταλμένοι)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ent) ‘보내진’이란 뜻입니다.
12절.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Spirit told me to go with them without misgivings. These six brethren also went with me and we entered the man's house.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εἶπεν δὲ τὸ Πνεῦμά μοι συνελθεῖν αὐτοῖς, μηδὲν διακρίναντα.
told now the Spirit me to go with them, not having discriminated
직역하면 ‘성령께서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말씀했다’는 뜻입니다.
‘의심 말고’(μηδὲν διακρίναντα)에서 동사(διακρίναντα)는 부정과거 분사인데(having discriminated) 원형(διακρίνω)은 ‘구분하다, 판단하다, 의심하다, 주저하다’(distinguish, judge, doubt, hesitate)는 뜻입니다.
‘함께 가라고’(συνε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o with) 단호하게 결단력 있게 함께 가라는 뜻입니다.
‘말씀했다’(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told) 분명하게 말씀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ἦλθον δὲ σὺν ἐμοὶ καὶ οἱ ἓξ ἀδελφοὶ οὗτοι,
went now with me also the six brothers these
‘가서’(ἦ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went) 과거에 간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καὶ εἰσήλθομεν εἰς τὸν οἶκον τοῦ ἀνδρός.
and we entered into the house of the man
‘들어가니’(εἰσήλθομεν)는 부정과거로서(we entered) ‘우리가 들어갔다’는 과거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 그가 설교를 시작할 때, 오순절 날 자기가 경험했던 똑같은 성령의 역사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막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여섯 형제’는 욥바 교회에 교인들로서 할례받은 유대인 성도들이었는데,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의 집에 가서 성령의 임재를 보았던 증인들로서, 지금 예루살렘 교회에 베드로와 함께 증인으로 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reported to us how he had seen the angel standing in his house, and saying, 'Send to Joppa and have Simon, who is also called Peter, brought here;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ἀπήγγειλεν δὲ ἡμῖν,
He related then to us,
‘말하기를’(ἀπήγγειλεν)은 부정과거로서(He related) 확실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αγγέλλω)은 ‘보고하다, 알리다, 설명하다’(report, announce, declare)는 뜻입니다.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14절. 보았다 하거늘)
πῶς εἶδεν τὸν ἄγγελον ἐν τῷ οἴκῳ αὐτοῦ, σταθέντα καὶ εἰπόντα·
how he saw the angel in the house of him, having been stood and having said
직역하면 ‘그의 집에서 천사가 서서 말하는 것을 어떻게 그가 보았는지를’이란 뜻입니다.
‘서서’(σταθέντα)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이고(having been stood), ‘말하는’(εἰπόντα)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aid) 과거에 서서 말하고 있었던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보았다’(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saw) 과거에 분명히 본 사실을 가리킵니다.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Ἀπόστειλον εἰς Ἰόππην, καὶ μετάπεμψαι Σίμωνα, τὸν ἐπικαλούμενον Πέτρον,
send to Joppa, and send for Simon, who is called Peter
직역하면 ‘(서서 말하기를) 욥바에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라고 불리는 시몬을 초청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보내어’(Ἀπόστειλ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end) 단호하게 즉시 보내라는 뜻이고, ‘청하라’(μετάπεμψαι)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end for), 원형(μεταπέμπω)은 ‘초청하다, 소환하다’(send after or for, summon)는 뜻입니다.
‘불리는’(ἐπικαλούμενον)은 현재분사 수동태입니다(is called).
14절.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will speak words to you by which you will be saved, you and all your household.'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ὃς λαλήσει ῥήματα πρὸς σὲ, ἐν οἷς σωθήσῃ σὺ, καὶ πᾶς ὁ οἶκός σου.
who will speak words to you, in which will be saved you, and all the house of you
직역하면,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너에게 그가 말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구원받을’(σωθήσῃ)은 미래 수동태이고(will be saved), ‘이르리라’(λαλήσει)는 미래형입니다(will speak).
‘너와 온 집’이란 고넬료의 가족뿐만 아니라, 종들과 과 고넬료에게 고용된 사람들과친척들과 친구들을 모두 가리킵니다.
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s I began to speak, the Holy Spirit fell upon them just as He did upon us at the beginning.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ἐν δὲ τῷ ἄρξασθαί με λαλεῖν,
in then the to begin my to speak,
직역하면 ‘그 때 내가 말하기를 시작할 때에’란 뜻입니다.
‘말하기를’(λαλεῖ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peak) ‘시작할’(ἄρξασθαί)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gin) 확실한 의지를 가리고 말하기 시작한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ἐπέπεσεν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ἐπ’ αὐτοὺς,
fell the Spirit the Holy upon them,
직역하면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임하시기를’(ἐπέπεσεν)은 부정과거로서(fell) 갑자기 성령님이 임하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ὥσπερ καὶ ἐφ’ ἡμᾶς ἐν ἀρχῇ.
as also upon us in beginning
직역하면 ‘처음에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이란 약 10년 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행 2:1-4)을 가리킵니다.
1. 오순절 날 베드로와 120명에게 임했던 그 성령의 역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을 했던 불결한 짐승처럼 느껴 왔던 그 이방인의 가정에도 똑같이 막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받고 방언한 현상도 똑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 때는 성령의 임재를 잘 붙잡아야 합니다.
처음 베드로가 성령 받을 때와 같이 고넬료에게도 성령께서 임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임재는 반복적입니다.
물론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교회 시대가 열리는 시작으로서 유일성과 독특성을 가집니다.
16절.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remembered the word of the Lord, how He used to say,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내가 주의 말씀에-- 생각났노라.
ἐμνήσθην δὲ τοῦ ῥήματος τοῦ Κυρίου,
I was remembered then the word of the Lord
직역하면 ‘그 때 주의 말씀을 내가 기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기억하게 되었다’(ἐμνήσθη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I was remembered) 분명하게 기억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하신 것이
ὡς ἔλεγεν,
how He said,
직역하면 ‘어떻게 그가 말씀하신 것을’이란 뜻입니다.
‘(말씀) 하신’(ἔλεγεν)은 미완료과거로서(He said) 과거에 예수님이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을 뜻합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Ἰωάνης μὲν ἐβάπτισεν ὕδατι,
'John indeed baptized with water
직역하면 ‘요한은 실로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세례를 베풀었으나’(ἐβάπτισεν)는 부정과거로서(baptized)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ὑμεῖς δὲ βαπτισθήσεσθε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you but you will be baptized in Spirit Holy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란 뜻입니다.
‘너희는’(ὑμεῖς: you)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리라’(βαπτισθήσεσθε)는 미래 수동태입니다(will be baptized).
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if God gave to them the same gift as He gave to us also after believing in the Lord Jesus Christ, who was I that I could stand in God's way?"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εἰ οὖν τὴν ἴσην δωρεὰν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ὁ Θεὸς, ὡς καὶ ἡμῖν,
if therefore the same gift gave to them the God, as also to us
직역하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동일한 선물을 주셨다면’이란 뜻입니다.
‘주셨으니’(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gave) 과거에 확실히 주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πιστεύσασιν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
having believed on the Lord Jesus Christ
직역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에게와 같이)’란 뜻입니다.
‘믿은’(πιστεύσασι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lieved) 과거에 확실히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ἐγὼ τίς ἤμην δυνατὸς κωλῦσαι τὸν Θεόν;
I how I was being able to forbid the God ?
직역하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금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능히 막겠느냐’(ἤμην δυνατὸς κωλῦσαι)에서 맨 앞의 동사는 미완료과거(was being)이고, 가운데 단어는 형용사이고(able) 맨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to forbid)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금할 수 없었고(행 10:47),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교제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유대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구원하시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방인에게 복음과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은 인간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1.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막겠느냐?”
유대인만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도 예수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내가 어떻게 막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고,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편협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수사도인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위대한 선포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할례받아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지 말고, 무당이나 살인자나나 창녀도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믿고, 사람을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로 차별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유대인에게 주었던 선물을 이방인에게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처럼 예수님이 주신 성령의 역사는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러한 역사는 이스라엘에서 시작을 해서 2천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땅에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는 단군 문화입니다.
단군 문화는 쉽게 말하면 무당 문화입니다.
그리고 고려 시대는 불교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이조 시대는 유교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36년간 일본 식민지 문화가 있었고, 공산주의 문화가 있었고, 군사 독재 문화가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물질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국에 복음의 꽃이 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내 경험과 생각과 감정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무디> 선생님에게 찾아와서 자기는 죄의 정욕이 강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말씀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선생은 요한일서 1장 7절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안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청년에게 죄를 고백하게 한 후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래도 청년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래도 청년은 안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디 선생은 청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깨끗케 했다면 한 것이지, 네가 뭔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청년이 그제서야 믿어진다고 했습니다.
4. <루터>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로마 교황의 말대로 금식기도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빌라도의 28계단을 맨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지만,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5. 그렇습니다.
사람의 말도 믿어주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안 믿어서야 되겠습니까?
베드로도 3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유대인 성도들도 믿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방인도 예수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방인이 더욱 예수님 잘 믿고, 유대인이 이방인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9-11장의 말씀처럼 어느 땐가는 유대인들도 믿을 것입니다.
그제야 세상 끝이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18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heard this, they quieted down and glorified God, saying, "Well then, God has granted to the Gentiles also the repentance that leads to life."
그들이 이 말을 듣고
ἀκούσαντες δὲ ταῦτα,
Having heard then these things,
직역하면 ‘그러자 이것들을 듣고서’란 뜻입니다.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분명하게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ἡσύχασαν, καὶ ἐδόξασαν τὸν Θεὸν,
they were silent, and glorified the God,
직역하면 ‘그들이 잠잠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잠잠하여’(ἡσύχα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were silent) ‘그들이 잠잠했다’는 뜻이고, ‘영광을 돌려’(ἐδόξασαν)도 부정과거로서(glorified) 전심으로 크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되
λέγοντες
saying
‘이르되’(λ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입니다(saying).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Ἄρα καὶ τοῖς ἔθνεσιν ὁ Θεὸς τὴν μετάνοιαν εἰς ζωὴν ἔδωκεν.
Then indeed also to the Gentiles the God the repentance to life gave
직역하면, ‘실로 그렇다면,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생명 얻을 회개를 주셨도다’는 뜻입니다.
‘주셨도다’(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gave) 과거에 주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생명 얻는 회개’란 죄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그 결과로 영생을 얻는 가리킵니다. (행 2:38)
1. 이 말을 듣고 잠잠했습니다.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 을 때, 병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증인으로 서 있었기 때문에, 원수들이 비난한 말을 잃고 잠잠한 것처럼(사도행전 4:13),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과 형제들도 잠잠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오해와 다툼이 있을 때는 싸우려고 하지 말고, 베드로처럼 차례로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3. 마지막에 그들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3장 5-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오늘의 메시지 요점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의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이방인들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예수를 믿을 수 없으리라고 상상했던 그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도를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하고 논쟁을 했던 이방인들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당시의 유대인이 지금의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 당시 예수님을 전했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 믿는 이방인들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상 섬기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섬겼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상 숭배하던 나라에서 예수 믿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우상 섬기는 사람들이나 유대인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들이 주께로 돌아와서, 함께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