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1-10 인생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망언 3가지 진탕 고생합니다
약속의 땅에 대한 보고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고 외쳤고, 10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그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1-33)고 악평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보고를 선택해야 하는가? 여기까지 온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 결이 같은 갈렙의 보고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들은 악평을 선택했다. 평소 그들의 가치관이다. 부정론에 지배되자 이스라엘 온 회중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다. 기도한 것이 아니다. 비관적인 현실 앞에서 불타는 심정으로 악감정(애통, 한탄, 자포자기, 절망, 자기 연민, 후회)을 울부짖으며 밖으로 표출했다. 비관적이라고 생각할 때 대부분 기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처럼 좌절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좌절 앞에서 기도는 오직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만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악평 앞에서 하나님을 믿을[신뢰할] 수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현주소였다.
밤새도록 감정에 복받쳐 통곡하며 울고 나니 자기들을 이곳으로 이끈 모세와 아론을 향해 서슴없이 원망을 퍼부었다. 백성들이 두 지도자를 원망한 것은 질서를 깨는 일이었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악행이었다. 그들은 두 지도자를 원망하면서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불평[탓]하며 대항했다(2-4).
(1) 죽음 운운하며 하나님을 탓함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2,3)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습관적으로 죽음을 운운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비하히롯/홍해 앞]에서 죽게 하느냐?”(출 14:11),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신]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16:3) [출애굽한 지 1달밖에 되지 않음]
이번 가데스에서도 자기들에게 불리해지자 어김없이 죽음을 운운하며 하나님을 탓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3:7,8). 하지만 이들은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한다(3)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였다. 이것은 사탄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창 2:17)고 말씀하셨지만 사탄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3:4)라고 흔들리고 있는 하와에게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말했다.
그들은 불리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로 자청했다. 이스라엘은 세상과 벗 된 자들이었고, 육신[불리/비관/악평]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약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 롬 8: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8,9)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어 가면서까지 하나님을 믿자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도들이 되어 돌로 치려고 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다. 굴복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바로의 추격의 칼로부터, 광야의 죽음의 갈증과 기아로부터 고비 때마다 구원하셨다. 그들은 이를 실제로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자기들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하나님을 적대자요, 살인자로 매도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했다. 이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관해 '아는 것'과 '믿는 것'에 엄청난 차이를 나타냈다. 엡 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현실과 사람과 하나님마저 불평하고 있는가? 인생이 꼬여있다. 말끝마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다. 실패에 찌들어 있다. 진짜 힘들겠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 말씀에 거리가 먼 원수의 삶을 살고 있다. 여러분이 믿는 것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지 않았다. 이 격차가 심할수록 죽음과 우울한 감정을 느낄 것이고, 그런 말을 많이 할 것이다. 격차를 줄이고 싶은가? 없애고 싶은가?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라. 진실하게 불평, 불만, 탓, 죽고 싶다는 말을 회개하라. 믿음 없음을 회개하라.
(2) 추론의 대가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3) 세상과 벗이 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내가 하나님이 되어 내가 내 인생을 이끌어야 한다. 자신들의 삐뚤어진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온갖 추측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추측은 현실성도 없고 정확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악감정을 보호하려면 그 추측을 합리적인 논리로 바꿔야 한다. 본능이다. 거짓을 옹호하기 위해 계속 거짓을 진짜인 것처럼 말하듯이. 이때 하나님과 거리가 먼 온갖 억측들이 쏟아진다. 10명의 정탐꾼처럼 소설을 쓴다. 자신과 그 감정의 유리한 쪽으로 없는 말을 지어낸다. 패역(悖逆)이다. 사울 왕도 여인들의 노랫말에 억측을 쏟아냈다.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삼상 18:8) 불순종[거역/완고]하고 있었던 때이다. 점치는 거역, 우상에게 절하는 완고로 똘똘 뭉쳐 있을 때이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 있을 때이다.
(3) 옛날로 과거로 회귀, 과거에 대한 그리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3,4)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음과 같은 삶을 살고 있으면,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과거가 훨씬 더 좋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면, 현실에 집착하면, 말씀과 거리가 먼 악감정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처럼 죄를 짓던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하나님과 말씀 따윈 필요 없고 무조건 나를 좋게 해주었던 때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죽음과 함께 과거 애굽 또한 단골로 운운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홍해]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2),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의 무덤에서]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민 11:5,18,20)
우리는 현재 이스라엘을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 없음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늪에 빠졌을 때 이런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문제이다. 지난 과거를 경험 삼아 "이렇게 될 거야! 내 말이 맞지?" 하며 온갖 추측과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이 늪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죄에서 비롯된 생각 들이다. 회개하자.
애굽은 죄악 된 세계이다. 환난은 분명히 애굽 생활보다, 죄를 누리며 살던 삶보다 좋지 않다. 그래서 현재 환난보다 더 좋았던 죄 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환난은 패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 환난은 소망으로 가는 출입문이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난의 현실을 꿋꿋이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으로 나아가는 것이 환난을 대하는 믿음의 태도이다. 이런 진리를 잃어버린 채 환난 앞에서 이스라엘처럼 막말하면서 믿음 없이 최악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 생활로의 복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뜻[욕구]을 충족시키는 지휘관 선출을 운운했다. 이는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는 교만이요, 배은망덕한 불신이다.
백성들의 이러한 불신앙적이고 지나친 걱정은 후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이 염려했던 자녀들은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할 것이라(28)고 말씀하시면서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원망한 자 전부가 갈렙과 여호수아 빼고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의 시체가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다. 죽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할 것이다. 사로잡히겠다던 너희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볼 것이다”(29-3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꾼을 현장에서 죽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리셨다(37,38). 말씀에 대항하며 반대하면 어떻게 하시는지 눈으로 보여 주셨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히 10:38,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