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종심(從心)을 지나 자전거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역사와 문화를 만나고 풍류를 즐기는 것은 참으로 멋진 삶이 아닐 수 없다. 페달을 밟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 하나하나가 추억이 되고, 이름난 명소에 얽힌 역사와 선현들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맑고 화창한 5월, 우리는 서부축선의 안보와 문화관광의 도시 파주를 찾아 문산일대에서 라이딩 향연을 펼쳤다. 이번 여정의 관조 포인트는 통일공원, 화석정, 장산전망대, 인진각, 반구정이었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여행이 아니라 역사와 자연 그리고 분단의 현실을 함께 돌아보는 뜻깊은 역사기행이었다.
문산역에서 약 1,3km 떨어진 통일공원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6. 25전쟁의 상흔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은 전쟁에서 희생된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우리는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고 묵념하며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동문천과 장승배기로, 화석정로를 따라가니 화석정 입구가 나타났다. 정자에 이르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숨을 고르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 화석정에 도착하자 임진강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화석정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 두 그루와 향나무였다.
마치 화석정을 지키는 수호신 처럼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화석정은 조선 세종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정자다. 율곡 이이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고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화석정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던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임진강을 건너야 했는데, 병조판서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밝혀 어둠 속에서도 왕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했다는 일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화석정 현판이 걸려있고, 정자 안에는 율곡 선생이 어린 시절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문도 걸려 있어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더해준다.
화석정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장산전망대로 향했다. 임진리에서 장산리로 이어지는 길은 비포장 도로에 굴곡이 심하고 자갈이 많아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자전거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힘든 길을 지나고 나면 언제나 그에 걸맞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장산 전망대에 올라서자 힘들었던 순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눈앞으로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유빙처럼 떠있는 초평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개성 일대와 송악산, 마식령 산맥의 산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장쾌한 풍광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특히 초평도는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논과 밭있던 곳이 분단 이후 사람의 손길에서 멀어지면서 습지와 야생동물이 어우러진 생태 공간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인간에게는 아픔의 공간이지만 자연에게는 생명의 터전이 된 것이다. 장산 전망대를 내려와 헬기장을 지나 장산 1리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길은 줄곧 내리막이었다. 길가에는 찔레꽃과 아카시아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였다. 넓은 들녘에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임진강 철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유롭게 달리는 자전거길과 한발짝도 쉽게 넘을 수 없는 철책이 한 화면에 들어오니 분단의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 길은 평화누리길과 연결되어 임진강역과 임진각 관광지로 이어진다. 마침내 임진각에 도착했다. 임진각은 우리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분단의 아픔과 이산가족의 한,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염원이 함께 서려있는 곳이다. 이날도 많은 내외국인들이 이곳을 찾아 분단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었다. 녹슨 경의선 증기기관차 옆에는 철조망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철조망에는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알록달록한 리본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다. 우리도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겼다. 철조망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니 우리 민족이 겪어온 분단의 세월이 가슴에 와 닿았다. 망배단에는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그리움이 서려있었고, 통일 연못과 평화의 종, 미군 참전기념비,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 등 곳곳에서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임진각을 뒤로하고 여우고개를 넘어 반구정(伴鷗亭)으로 향했다. 반구정은 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 황희 정승이 말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임진강 하류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살았을 황희 정승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반구정에서 바라본 임진강변에는 또 하나의 현실이 있었다. 아름다운 강과 정자를 가로막은 철조망이었다. 자연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흐르고 있는데 인간이 만든 철책만이 강변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오히려 분단의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반구정을 둘러본 뒤 문산읍 신망리의 순대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뜨끈한 순대국과 수육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임월교를 지나 문산천과 갈곡천을 따라 옥석교에 이르렀을 즈음 김상태, 전인구 대원은 개인 사정으로 월릉역으로 향하고, 본대는 계획대로 진행하였다. LG디스플레이 파주산업단지를 지나 만우천을 따라 평화누리길 7코스와 6코스로 접어들었다. 이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해 북한과 가까운 대표적인 안보관광지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뒤로하고 공릉천 둑길과 수변자전거길을 따라 금릉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하루의 긴 여정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약 62km를 8시간 동안 달린 라이딩이었다.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천천히 길을 달리다 보면 자동차를 타고 지나칠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과 사람, 그리고 역사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의 라이딩은 때로는여행이고, 때로는 역사기행이며, 때로는 삶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된다. 싱그러운 5월의 신록 속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역사의 숨결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긴 하루였으며, 몸은 고됐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낭만과 여유가 가득 채워진 소중한 라이딩이었다.